을지병원 당뇨병동 24시
환자들 “더 빨리 손썼더라면” 가슴치며 후회… 갑자기 혈당 떨어져 ‘위기’ 겪기도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의 당뇨병동. 40여명의 환자가 누워있는 이곳은 고요했다. 소리없이 굳어가는 그들의 혈관처럼. 자신의 과거였고, 자신의 미래가 될 주변의 다른 환자들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모습은 무기력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다리 하나 잘라주고 눈 한쪽 빼주고 당뇨병이랑 바꾸고 싶어.” 6년째 당뇨합병증을 앓고 있는 송모(48)씨는 코에 산소공급기를 꽂고 한쪽 눈에 안대를 했다. 그의 왼쪽 발에는 붕대가 감겨있다. “백내장에 녹내장까지 오고 발도 수술했어. 허파에도 구멍이 뚫렸다나.” 어차피 하나씩 썩어들어갈 몸이라면 다 잘라버리고서라도 병을 떼어내고 싶지만 당뇨는 완치할 수 없는 불치병이다. 다만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연장시킬 뿐이다.
불과 보름 전에 당뇨에 걸린 사실을 안 임상근(46)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그러데. 우리 집은 이제 병원한테 내준거나 다름없다고. 평생 병원비로 다 들어간다고.”
이미 몇 년째 당뇨병을 앓고 있는 선배환자들은 더욱 냉소적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니까. 이제 합병증 하나하나 시작된다.”
“췌장에 뭘 투입하는 신기술이 발견됐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다 우리 죽고 나면 완성되는 거지.”
“합병증 오기 전에 진작 좀 관리를 했으면 나아졌을 텐데.”
“낫는 게 아니라 지연이 되는 거지. 어차피 10년 안에 다 망가지게 돼있어.”
“그래도 잘 관리한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산다데요.”
“돈이 있어야 좋은 거 먹고 좋은 데 다니며 관리할 수 있는 거지, 약값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관리는 무슨 관리!…”
당뇨병동에는 인슐린 주사를 맞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거나 저혈당으로 쓰러져 실려온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당뇨병은 완치할 수 없기 때문에 입원기간이 평균 1달 정도로 짧다. 합병증 때문에 족부정형외과 병동이나 신장내과 병동에 입원하는 경우도 많다. 이 병동에서 2년째 근무해온 윤금숙 간호사는 “혈당조절이 잘 돼서 나가도 며칠 만에 악화돼 다시 오는 분이 많다”면서 “자기관리를 잘 못하는 환자가 많이 입원한다”고 말했다.
“눈 멀고 이 녹아내려”
강정희(56·여)씨는 올해로 11년째 당뇨와 싸우고 있다. “당뇨병 환자는 겉으로는 멀쩡하지. 나이롱환자 같은 느낌이야. 배추 숨 죽듯이 축 늘어져있다가도 혈당이 올라가면 금방 팔팔하거든. 저혈당이 오면 배가 엄청 고픈데 다른 사람들은 그 심정 절대 이해 못하지. 시도 때도 없이 밥 찾으니까 이상한 눈으로 보기도 하고…. 혈당이 떨어지면 실신하기도 해. 나는 지나가는 경찰 붙잡고 우유 한 잔만 달라고 애원한 적도 있어.”
강씨는 남편이 신경성 질환을 앓을 때 6년간 병수발을 들었다. 그 때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결국 당뇨병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했지. 그래서 당뇨병 걸린 걸 알았어도 5년이나 그냥 방치해두고 살았어.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정말 무식했어. 초기에 관리했으면 지금처럼 합병증으로 고생 안했을 거 아냐. 협심증에 심근경색에…. 나 진짜 많이 아팠어. 말도 못하게 힘들어.” 강씨는 손으로 가슴을 치다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렸다.
“김세준씨 125! 이영현씨 417! 정숙자씨….”
오후 4시, 조용하기만 하던 병동이 부산해졌다. 당뇨병동에서는 오전 6시와 10시, 오후 4시와 9시, 네 차례 혈당체크를 한다. 간호사가 이름과 함께 혈당수치를 불러주면 병실 분위기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혈당수치가 140 근처면 정상. 400㎎/㎗이 넘은 할머니는 “뭐야. 왜 이렇게 높게 올라갔어”라며 대뜸 소리를 지른다. 1시간 전에 마신 커피 한 잔이 원인이었다. 125㎎/㎗가 나온 강정희씨는 박수를 칠 정도로 기뻐했다. “피 한 방울에 우리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거야. 이거 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다 박혔잖아. 결과가 정상이면 좋고 비정상이면 계속 신경 쓰이고 스트레스 받고 그런 거지.”
옆 병실의 노하윤(28·여)씨가 퇴원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병동에서 눈에 띄게 어린 주부 환자다. “스물한 살 때 췌장염에 걸리면서 당뇨병을 후천적으로 얻게 됐어요. 인슐린 주사를 꼬박꼬박 맞아줘야 하는데 어린 마음에 안맞으니까 살이 빠져서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쓰러져서 3일 만에 눈 떠보니 중환자실이었어요.” 노씨는 1년에 한 번 꼴로 쓰러졌다. 이번에는 당뇨합병증으로 이가 녹아내려 뽑기 위해 입원했다. 염증이 생길 위험 때문에 일반 치과에서는 당뇨병 환자의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에 걸리면 신경이 무뎌지거나 이상해져요. 피부를 살짝 건드려도 혈관 속에서부터 따끔거려요. 소화신경에도 이상이 생겼는지 몇 년째 변비 아니면 설사만 해요.”
노씨는 3년 전 아이를 낳으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적이 있다. “당뇨병 환자들은 수술하려면 혈당조절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나오려고 하잖아요. 제왕절개를 하려니 혈당수치가 높은 내가 위험하고, 안하려니 아기가 위험하고. 다행히 둘 다 무사하긴 했지만 그 땐 정말 죽을 뻔했어요.”
당뇨병동에 들어와 있어도 위기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한 간호사는 “갑자기 혈당이 떨어져 사망한 환자도 있고, 합병증이 심해져 중환자실로 내려가면서 사망한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서서히 몸의 한구석에서 합병증이 진행되는 것이 당뇨병이다. 특히 피가 잘 돌지 않아 발가락이 썩는 ‘당뇨 발’은 환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합병증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감각이 둔해져서 발끝에 자주 상처가 나는데, 이 작은 상처가 금방 커져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낫지를 않는다. 혈관에 피가 잘 돌지 않으니 항생제를 주사해도 상처가 난 부위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곪기 시작하면 살이 썩고 결국 절단하게 된다.
절단 후 의족과 같은 보조기를 착용한다고 해도 보조기에 새 살이 긁히면서 또 상처가 날 수 있다. 이 병원의 족부정형외과 환자는 절반이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다.
고모(42·여)씨는 20년째 당뇨를 앓고 있다. 그의 발목 위에는 복사뼈 2배만한 크기의 분화구 같은 상처가 있다. 얼마 전 역시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침침해진 눈으로 발톱을 깎다가 상처가 났다. 그 상처가 며칠 만에 이렇게 번졌다. 지난 4년 동안 6번 입원했다. 상처가 굳어서 나가도 조금 걸으면 금방 다시 물집이 잡혀서 또 입원해야 하는 식이었다.
“걸으면 상처가 나지만 안 걷고 어떻게 살아요. 내가 그래도 피부관리사 일을 하면서 앉아있으니까 그나마 이 정도죠. 병도 병이지만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아요. 그러다가 우울증 온다니까요. 스트레스 받으면 또 혈당 올라가죠. 악순환이에요. 당뇨 걸린 사람 있으면 내가 도시락 싸다니면서 얘기해줄 거예요. 애초부터 조심하라고.”
이금옥(72·여)씨는 2년 전에 오른쪽 발목을 절단했다. 처음에는 발가락만 잘랐지만 계속 썩어 들어가기 시작해 발의 3분의 1을 자르고 결국 발목까지 자르게 됐다. 침대 한쪽에는 의족이 놓여 있다. “누에, 뽕잎, 좋다는 한약만 먹었어. 병원에 안가고 좋은 약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고. 한 4~5년 전부터 발이 계속 저리더니 결국 이렇게 됐어.” 이씨가 이 병동에 오게 된 이유는 아직 성한 왼쪽 발에 5㎜의 작은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그 상처가 커져서 왼발까지 자르게 될까봐 떨었다. 아들 기우진(46)씨는 어머니 때문에 거의 당뇨박사가 됐다. “당뇨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병인지 몰랐어요. 암보다 더 무서운 게 당뇨병이에요.” 그는 “당뇨병 환자가 지켜야 할 수칙을 무시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튿날 아침 7시 반, 병원 식당에서 초진 환자들을 위한 식사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각자 식사량을 정해드렸죠? 대부분 밥은 이만큼 드셔야 해요.” 밥그릇의 반을 조금 넘길 듯한 양을 보고 한 환자가 “저거 먹고 어떻게 사냐”며 한탄했다. 양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 환자들은 뷔페식으로 차려진 아침을 먹었다. 육류 반찬 한 가지, 야채 반찬 두 가지를 정해진 양에 맞춰 덜어먹어야 한다.
발가락→발→발목 차례로 잘라
식사교육이 끝나고 당뇨센터 민경완 교수의 강의가 이어졌다. 다소 절망적인 내용이었다. “노력해도 당뇨병의 상태는 점점 악화됩니다. 내가 진료한 환자의 대부분은 10년, 20년이 지나 지금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민 교수의 이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환자들은 한숨을 지었다. 민 교수가 당뇨병의 실상을 그대로 얘기해주는 이유는 처음 온 환자들의 생각을 확 바꿔놓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을지병원은 처음 진료받는 환자들을 위해 당뇨학교를 운영한다. 식사교육뿐만 아니라 최소운동량을 알려주고 운동방법, 혈당측정기 사용법, 기록법을 통한 혈당조절방법을 가르친다. 일주일에 2~3번 있는 이 교육에 매번 30여명의 환자들이 참여한다. 병원 측에서는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도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당뇨병은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의 가족은 환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못먹게 해야 한다. 그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간병인은 “음식 못먹게 하면 노인분들이 짜증을 많이 내요. 너무 배고파할 때는 못 먹게 하는 우리도 마음이 안 좋죠. 어느 땐 잠시 한눈판 사이 먹어버리기도 해요. 내 앞에 왔던 간병인은 힘들다고 15일 만에 그만뒀대요. 당뇨병 환자는 치매환자 다음으로 간병하기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오후가 되자 당뇨병동의 6207호실이 갑자기 북적거렸다. 문병 온 가족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나보다. 천안에서 올라온 김윤성(38)씨는 할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회사에 하루 휴가를 냈다. 김씨의 아버지도 작년에 당뇨 합병증에 기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할머니까지 당뇨병으로 쓰러지자 9년간 남편 병간호에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당뇨는 유전병의 성격이 짙다. 집안에 당뇨로 죽은 사람이 있으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가족 중에 당뇨환자가 있으면 가정은 풍비박산 나요.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죠.” 김윤성씨는 병수발에 지친 어머니 걱정에 먼 길도 마다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병원에 들러 할머니를 돌본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옆에서 간호하는 어머니가 먼저 쓰러지겠더라고요. 합병증이 하나둘 시작되고 나중에는 거동을 못하게 되는데 너무 무서웠어요.” 처음에 재활의지가 대단하던 아버지도 점점 마음이 무너져 짜증을 냈다. 이제는 할머니가, 그리고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어머니가 무너져가고 있다. 할머니가 잠이 들자 김씨도 보조침대에 누워 금세 잠이 들었다.
교복을 입은 딸이 병실에 들어오자 유모(여·39)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50만~70만원이나 하는 입원비를 걱정하던 유씨다. “자기 관리만 잘하면 당뇨병은 그렇게 돈 들어가는 병은 아닌데, 한번 입원하기 시작하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죠. 입원한 지 2주짼데 이번 주 입원비는 아직 못 냈어요.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막막해요.” 막막한 것이 어찌 입원비뿐일까. 중학생 딸이 머뭇거리며 새로 사야 할 교재를 들먹이자 유씨가 말없이 웃음만 짓는다.
허만갑 주간조선 기자(mghuh@chosuncom)
※본 기사 작성에는 손기은 인턴기자(choori@empal.com)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