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당뇨친구’ 탤런트 김성원·이치우씨
'당뇨는 공부해야 하는 병', 의사 말 잘 들으면 오래 살 수 있어
“과음, 과식, 과로! 당뇨의 3대 발병요인을 다 갖고 있었지. 35살에 중증당뇨란 진단이 내려진 후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김성원)
“몸 관리를 잘못해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어. 당뇨는 술, 맛난 음식 먹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해. 독한 마음 먹지 않음 이길 수 없어.”(이치우)
탤런트 김성원(68)씨와 이치우(67)씨는 서라벌예대 4회 동기생으로 45년이 넘도록 연기생활을 함께 해온 친구 사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또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똑같이 당뇨병에 걸린 것이다. 그때가 1960년대 말이었으니 당뇨란 질병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뭐 좋은 거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병에 걸렸지. 종합검진이란 게 그땐 없었어. 우리는 운이 좋아 빨리 병을 발견한 덕에 오늘날까지 살아 있지만 당뇨에 걸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세상을 버린 이들이 참 많아.” 김성원씨는 당뇨합병증으로 사망한 선배 주선태 박노식 이낙훈씨와 황운진 프로듀서, ‘여로’의 작가 이남석씨 등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동료연예인’ 합병증 안타까워
두 사람은 1962년 기독교방송 4기 성우로 연예계도 함께 데뷔했다. TV가 별로 보급되지 않아 라디오 성우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연예인 생활이란 게 녹음과 녹화의 강행군, 이틀이 멀다하고 벌어지는 술자리, 전국의 산해진미를 맛보는 순회공연 등으로 당뇨병이 자라기에 더없는 온상이었다.
이치우씨는 34살에 당뇨 판정을 받았다. “첫 일일 연속극인 ‘한중록’에서 영조를 연기할 때였지. 이가 아프고 눈곱이 끼기에 충무로의 내과의원을 찾았더니 당뇨라는 거야.” 혈당수치가 무려 400㎎/㎗이었다. ‘술·담배 끊고, 아침과 저녁 식후에 한 알씩 먹으라’는 말과 함께 의사로부터 한 달치 약을 받아들고 왔지만 혈기방장하던 30대 초반의 나이에 의사의 충고는 깊이 와닿지 않았다. 담배를 매일 2갑씩 피고 소주를 3~4병씩 마시던 시절이었다. 익숙한 생활 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백병원 의사로 있던 동생 이성우(64)씨가 그를 구했다. “형, 폐에 구멍이 났어! 죽고 싶지 않으면 술 끊어”라는 동생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당뇨 합병증으로 이미 폐결핵이 진행되고 있었다. 6개월간 약을 먹고 몸을 추슬러 허파의 반점은 사라졌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늘 피로하고 대사가 잘 외워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폐는 더욱 나빠졌다. 4년 전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에서 각혈을 했다. 레이저관을 삽입해 허파에 난 구멍을 땜질했다. 하루 온종일 걸리는 수술을 4차례나 반복했다. 2003년 9월에는 심장혈관 수술을 했다. 종아리와 대퇴부의 동맥을 떼어서 심장에 이식하는 대수술이었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지금은 숨이 가쁘지도 가슴이 답답하지도 않다.
“의사 말을 들어야 해. 나는 우습게 보다가 폐결핵에 걸렸어. 그리고 무조건 많이 걷고 운동해야 해.” 이치우씨의 건강관리법은 골프다. 분당의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 매일 나간다. 한 달에 두 번씩은 필드에 선다. 매일 아침과 저녁 두 차례 인슐린 주사를 맞고 혈당강하제를 먹는다. 그리고 아스피린을 매일 한 알씩 먹는다. “폐, 심장, 콩팥으로 합병증 징후가 차례차례 나타났지만 용케 다 피해서 살아났어. 난 운이 좋았지.” 이치우씨는 말했다. “그래도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조심할 거야.”
“술 못마시니 친구 떨어져”
김성원씨는 ‘모범환자’다. 의사들이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그가 당뇨환자라는 사실은 연기자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다. “당뇨는 주변 사람뿐만 아니라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알리는 게 좋아. 그래야 술을 권하지도 않고 식성이 까탈스럽다는 둥 불필요한 오해를 안 사지.”
34년, 인생의 절반 동안 당뇨와 싸울 때 동갑내기 아내 안상희씨도 함께 싸웠다. 89㎏의 거구에 돼지고기 10인분을 혼자 먹어치우던 그에게 오직 잡곡과 채소만 먹게 했다. 아내는 늘 두 번씩 밥상을 차린다. 율무, 수수, 기장, 현미, 보리, 검정콩을 섞어서 만든 잡곡밥에 나물, 생선, 미역국이나 씻은 김칫국이 김성원씨의 밥상이다.
모범환자도 술의 유혹을 매번 뿌리치진 못했다. 1980년 드라마 ‘대명’ 종영파티에서 폭탄소주를 마시고 병원에 실려가 40일간 누워있었다. 그 후 링거줄을 3년 동안 목에 걸고 다니며 술의 유혹을 이겨냈다.
술을 못마시니 친구들이 떨어져 나갔다. 음식도 술도 그리고 그것들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지는 파티도 멀어졌다. 촬영장에서 김성원씨의 쓸쓸한 점심식사는 잡곡밥에 계란 흰자를 둘러서 살짝 튀긴 주먹밥과 잣죽이다. 매일 혈압약 2알, 혈당강하제 2알, 아스피린 1알을 먹는다.
“눈이 침침하거나 졸립거나 양쪽 어깨부터 철사로 긁듯이 저려오면 저혈당 신호야. 약이나 초콜릿을 먹어줘야 해. 워싱턴에 갔을 때였는데, 가족 선물 사느라 쇼핑에 몰두하다 6시간이나 아무것도 안 먹은 거야. 후배들이 ‘뭐 안 드시냐’고 해서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더라고.” 흰 설탕을 물에 타서 한 사발씩 들이켜도 저혈당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식당의 고기 냄새에 구역질이 나 화장실로 뛰어가면서 토하지 않으려고 얼굴을 긁고 뺨을 때렸다. 혈압이 높은 당뇨환자는 구토가 뇌출혈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성원씨는 당뇨병을 ‘혈당과의 줄타기 게임’이라고 했다. 때로는 용감하게 코냑도 한두 잔 마신다. 물론 자신의 몸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가능한 게임이다. 그리고는 운동을 통해 혈당을 줄인다.
이치우씨와 거의 매일 전화통화를 한다. 신문, 방송, 의학잡지에 최근 정보가 실리면 스크랩해서 보내주기도 한다. 걷기 위해 차도 팔았다. 하루에 5000~6000걸음을 꼭 걷는다. 그는 “당뇨는 공부하는 병”이라고 했다. “당뇨환자는 고집과 자존심을 버려야 해. 의료지식을 공부하고 의사에게 증상을 시시콜콜 얘기해야 해. 알면 이기고 모르면 지는 게임이거든.”
허만갑 주간조선 기자(mghu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