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野談,傳說,說話,등 1081

개와 고양이 구슬 다툼

개와 고양이 구슬 다툼 가난한 어부가 어렵게 생계를 잇고 있었다. 어느 날 물고기를 잡으러 갔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겨우 큰 잉어 한 마리를 잡았지만, 잉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는 놓아주었다. 다음 날 어부가 바닷가에 가니, 한 소년이 나타나 절을 하면서 자신은 전날 구해 준 은혜를 입었던 잉어로, 용왕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소년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어부를 용궁으로 초대하였다. 어부는 용왕의 대접을 받고 보배 구슬을 얻어 큰 부자가 되었다.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 노파가 찾아와서, 다른 구슬과 바꿔치기하여 보배 구슬을 가져갔다. 그 후 어부의 집은 다시 가난해졌다. 어부가 기르던 개와 고양이는 은혜를 갚으려고 노파의 집에 찾아가서, 그 집에 사는 쥐를 위협해 구슬을 되찾았다. 돌아오면서 강..

기사 와사 (起死 臥死)

기사 와사 (起死 臥死)起死臥死 (기사와사) 서서 죽으나 누워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조선 제17대 효종(孝宗) 때무인 출신 우의정 이완(李浣/1610~1674)은 본관이경주이고, 호(號)가 매죽헌(梅竹軒)이며, 시호(諡號)는정익공(貞翼公)이다.젊은 시절 사냥을 좋아했던 그가 하루는 노루를 쫓다가날이 저물어 깊은 산속을 헤매게 되었다.그런데 산중에 대궐 같은 큰집이 있어 대문을 두드렸다.그러자 갓 스물이 될까 말까한아름다운 여인이 나와서말했다.여기는 손님이 머물 곳이 못되니 그냥 돌아가도록하십시오."이완이 "맹수들이 득실거리는이 깊은 산중에 날은 저물고인가도 없는 데 어디로가겠소? 아무 데라도 좋으니하릇밤 쉬어가게 해 주시오"여인은 "잠자리를 드리지않으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손님께서 여기에 머무시면반..

개가해서 유복자 키운 열녀

개가해서 유복자 키운 열녀줄거리소씨 가문의 삼대 과부인 한 여인이 보쌈을 당한다. 여인은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유복자가 태어나기 전까지 하문(下門)을 지지며 버틴다. 이후에 후부(後夫)와의 사이에서 형제를 낳고 살았는데, 장성한 유복자가 장원급제하자 본남편의 아들임을 밝히고 함께 본가로 떠난다. 여인은 유복자를 먼저 들여 보낸 후에 본가 대문에 한 발만 내딛고 자결한다.변이유복자를 가진 채 개가하게 되는 여인이 절손(絶孫)의 위기에 처한 양반 가문의 며느리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화자의 성별에 따라 변이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남성 화자의 각편에서는 여인이 정절을 지키려고 자해하며 후부의 자식을 낙태하거나, 아이를 낳더라도 잔인하게 죽인다. 여성 화자의 각편에서는 부인이 아기를 낳다 죽은 상민의 집으로 보..

列女傳補注 (宋나라 鮑蘇의 아내) 女宗

列女傳補注 (宋나라 鮑蘇의 아내) 女宗              鮑蘇의 아내 女宗 女宗은 宋나라 鮑蘇의 아내이다. 그녀는 매우 공경스럽게 시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포소가 衛나라에 벼슬한 지 3년 만에 外妻를 얻었으나 여종은 시어머니를 더욱 공경스럽게 봉양하였다.〈宋나라와 衛나라를〉 왕래하는 사람을 통해 그 남편의 안부를 물었더니 〈포소가〉 外妻에게 매우 후한 재물을 보내준다고 하였다. 여종의 “이 집을 떠날 만하네.”라고 하였다. 여종이 말하기를 “무슨 이유입니까?”라고 하니, 맏동서가 말하기를 “남편에게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그대가 무엇 때문에 남아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여종이 말하기를 “婦人은 한번 혼례를 올렸으면 改嫁하지 않으니, 남편이 죽어도 개가하지 않습니다. 삼과 숫삼을 잡고 누에고치..

무산 사또

무산 사또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아들이없어 원통해하던 ‘마 첨지’고백호를 데릴사위로 들이는데… 마 첨지는천석을 추수하는 끝없는 들판만가진 것이 아니라 저잣거리의 요소요소마다 점포를 가지고세를 거둬들이는 게 곳간의 나락 더미보다 많은 회령 최고의 부자다. 마 첨지가가장 원통한 건 슬하에 딸 하나 뿐이라는 것이다.  첩을 수없이 얻고 씨받이도 들여놓았지만 백약이 무효, 마 첨지는마침내 데릴사위를 얻어 아들을 삼겠다고 작정했다. 서당을찾아가 훈장님에게 부탁을 했다. 훈장이추천한 데릴사윗감은 고백호다. 열아홉살고백호는 재주 있는 양반 집안의둘째 아들로,집안이 망해서 서당 다닐 형편도 못돼 책을 불사르고저잣거리에 얼쩡거리며 파락호로 살고 있었다. 마 첨지가저잣거리에 가서 고백호를 직접 만났다.  우람한 덩치..

淸平調三首之一)청평조삼수지일 / 李白

(淸平調三首之一)청평조삼수지일 / 李白(이백)    청평조(淸平調)'는 본래 악부(樂府)의 제목이며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에 얽힌 이야기이다. 당나라 현종이 침향정(沈香亭) 앞에다 모란을 심고 그 꽃이 만개했을 때, 양귀비와 함께 노닐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정경을 당시의 궁중시인이었던 이태백에게 노래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에 이태백은 술에 만취되었으나 즉석에서 귀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연작 3수를 지었다. 이 三首의 시는 이백에게는 영예와 모욕을 동시에 안겨다 준 것이었다.처음에는 현종과 양귀비의 총애를 받았으나 이를 시기한 宦官高力士(환관고력사)의 모함에 의해 이백은 궁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고력사는 이 시에서 이백이 양귀비를 천한 출신이자 끝에가서는 평민의 몸으로 쫓겨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조..

강계 기생 무운(巫雲)의 수절(江界妓爲李倅守節)

강계 기생 무운(巫雲)의 수절(江界妓爲李倅守節)무운(巫雲)은 강계(江界)[강계(江界): 평북(平北)에 있는 지명.]의 기녀이다. 그는 자색과 기예로 한 때 세상에 이름을 떨쳤었다. 서울에 사는 성진사(成進士)라는 자가 우연히 그 곳에 내려왔었는데, 무운이 그를 천침한 뒤로는 서로간에 정애가 몹시 돈독해졌는지라 성진사가 서울로 돌아갈 때에 이르러서는 피차간에 연연해하며 서로 차마 버리지를 못하였다. 무운은 성생(成生)을 보낸 뒤 다른 사람과는 일절 관계하지 않기로 마음으로 맹서한 뒤 양 다리 사이를 쑥으로 뜸질하여 부스럼 자국을 만들어 나쁜 병이 있다고 핑계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전후의 사또들을 일찍이 한 사람도 모시지 아니하였다.대장 이경무(李敬懋)[이경무(李敬懋)(1728: 영조4-1799: 정조23)..

옛날의 속담

옛날의 속담 이불 생각하고 발 뻗는다.[量吾被 置吾趾]무슨 일이건 제 힘을 헤아려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불은 짧은데 발을 뻗으면 발이 반드시 밖으로 나올 것이다. 기와 한 장 아끼려다 대들보가 꺾인다.[惜一瓦 屋樑挫]시작을 조심하지 않으면 반드시 큰 재앙을 만난다는 말이다. 새벽달 보려고 초저녁부터 앉았다.[看晨月 坐自夕]때를 맞추지 못하고 너무 일찍 서두르는 것을 말한다. 새벽달이 보고 싶으면 새벽에 일어나도 될 것이다. 말 가는 곳에 소도 간다.[馬行處 牛亦去]재주는 지속(遲速)에 달린 것이 아니라 힘쓰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외나무 다리에서 원수를 만난다.[獨木橋 冤家遭]일이 공교롭게 만난다는 말이다. 모자(帽子)가 커도 귀는 짐작한다.[大帽子 斟酌耳]일이 혹 지나치더라도 반드시 한도가 있다는 것..

현대문학 창간호 : 희귀자료

현대문학 창간호 : 희귀자료 경남문학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희귀자료 여섯 번째 소개 자료는 단기4288(1955)년 1월 1일에 발간된 ‘현대문학 창간호’이다. 「현대문학」은 현대문학사에서 1955년 1월 1일 창간호가 발행된 이래로 현재까지 매월 발행되는 가장 오래된 순수 종합문예지이다. 「현대문학」 초대 사장은 편집 겸 발행인이었던 김기오로 1956년 사망하였으나 그 뒤 많은 발행인을 거쳐 오늘까지 발행되고 있다. 창간호 초대 주간은 조연현, 편집은 오영수이다.  「현대문학」 題字와 표지화, 권두화는 당대 내로라하는 화가와 서예가의 작품을 받아 발간되었다. 題字는 손재형 선생이 썼으며 손재형 선생은 ‘서예’라는 말을 창안하였고 그만의 독특한 서체를 만들어 서예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한 분이다.  표지 그..

“여보, 그 여배우랑 사귀어봐”···남편 불륜을 응원한 여자의 사연 [사색(史色)]

“여보, 그 여배우랑 사귀어봐”···남편 불륜을 응원한 여자의 사연 [사색(史色)]강영운 기자(penkang@mk.co.kr)2024. 5. 25. 09:33[사색-69] “그 여자와 연애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어요.”부인으로부터 도착한 편지에는 뜻밖의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기 있는 유명 여배우와 사귀어보라는 충격적인 메시지. 조롱이나, 비아냥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남편이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사랑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진의를 의심할 수 없는 담담한 필치였습니다.부인은 결혼생활에 지쳐 있었습니다. 시댁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잘나가는 남편 집안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건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엄격하고 보수적이며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시댁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