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인생〔人生〕

淸潭 2025. 1. 27. 14:42

인생〔人生〕

제월당집 제3 / ()

 

사람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 人生天地間

창고 안의 낱알처럼 미묘하지 / 眇若太倉粟

뜻과 기백 진실로 낮아지면 / 志氣苟低垂

가슴 속 회포 응당 움츠러들 테니 / 胸懷應局促

어찌 공을 세울 수 있으랴 / 何能立事功

분명 다시 보잘것없이 되리라 / 定復歸庸碌

나는 실로 평범한 사람이니 / 而我實凡材

감히 아름다운 옥과 같다 말하랴 / 敢言同美玉

옛 경전에서 찌꺼기를 훔쳐 / 前經竊粃糠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지 / 早歲忝科目

세상에서 부질없이 부침 겪으며 / 世路漫浮沈

명예의 굴레에 드디어 속박되었지 / 遂縳束

비록 끝이 삐져나온 송곳에 부끄럽지만 / 雖慙脫穎錐

도리어 구슬 없는 상자를 샀네 / 反買無珠櫝

처지는 낮고 음습한 곳에 있는 것처럼 괴로웠고 / 處地苦卑湫

신명은 모욕을 당할까 두려웠지 / 身名怕汚辱

바라는 것은 옛사람에게 있었으니 / 所希在古人

즐기는 것이 시속과 어긋났지 / 所樂乖時俗

벼슬길에 빠짐은 본래 마음 아니었기에 / 沒非素心

돌아와 초복을 입었네 / 歸來是初服

한가한 가운데 칠 척의 몸 / 閒中七尺軀

세상 밖 세 칸의 집에 살아가네 / 物外三椽屋

늦가을에는 국화가 언덕에 피고 / 秋晩菊綻崖

맑은 봄에는 꽃들이 골짝에 가득하네 / 春晴花滿谷

눈 덮인 푸르른 솔 어여쁘고 / 松憐帶雪蒼

안개와 어우러진 푸른 버들 사랑스러워라 / 柳愛和煙綠

이런 경치 무궁하니 / 景物自無窮

이내 삶도 만족스러운데 / 生涯亦云足

안타깝게도 병에 걸렸고 / 飜嗟疾病纏

다시 빠른 세월도 애석해라 / 更惜光陰速

팔십 늙은이 죽을 날 가까우니 / 迫桑楡

쇠잔한 몸 침상에 의탁하네 / 殘骸托床褥

청춘을 헛되이 보내고 / 靑年任擲虛

늙어서 한갓 부끄러움만 남았네 / 白首徒懷

위나라 무공은 나이 구십이 되어서도 / 衛武齒雖耄

공부하는 일 나날이 더욱 독실했으니 / 工程日彌篤

시인은 우아한 노래를 지었고 / 詞人作雅歌

학업은 기수의 대나무 자랑했지 / 學業誇淇竹

예전 현인들이 모범을 보였으니 / 前哲揭規模

이 마음 더욱 부끄럽고 위축되네 / 此心增愧縮

시를 지어 게으르고 혼매함 경계하니 / 題詩警惰昏

어둠을 깨뜨리는 밝은 촛불 같도다 / 破暗擬明燭

대도는 본래 평이한 것 / 大道本平夷

모름지기 옛사람의 자취를 따라야지 / 且須遵舊躅

 

[-D001] 사람이 …… 미묘하지 :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에아득하고 아득한 하늘과 땅이여, 굽어보고 우러러봄에 끝이 없도다. 사람이 그 사이에서 자그마하게 몸을 두었으니, 이 몸의 작음은 큰 창고의 낱알과 같도다.[茫茫堪輿, 俯仰無垠, 人於其間, 渺然有身, 是身之微, 太倉稊米.]”라고 하였다.

[-D002] …… 급제했지 :

송규렴이 경서를 깊이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명경과(明經科)를 통해 이른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다는 겸사이다. 그는 25세에 명경과에 합격하였다.

[-D003] 비록 …… 샀네 :

능력도 부족하면서 헛된 명성을 얻었다는 말이다. 탈영추(脫穎錐)는 탈영낭추(脫穎囊錐)와 같은 말로, 송곳의 끝이 주머니에서 삐져나온다는 뜻인데, 재능이 마침내 드러남을 비유한다. 전국 시대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이었던 모수(毛遂)나를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다면, 송곳 전체가 다 삐져 나왔을 것이요, 그 끝만 보일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라며 스스로를 추천했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76 平原君列傳》 무주독(無珠櫝)은 구슬 없는 빈 상자라는 뜻으로, 옛날에 초()나라 사람이 정()나라에서 화려한 상자에 구슬을 담아 팔았는데, 정나라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되돌려 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韓非子 外儲》

[-D004] 벼슬길에 …… 입었네 :

본래 관직에 뜻이 없었으므로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초복(初服)은 벼슬하기 이전의 복장이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나아갔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허물만 입었으니, 물러나 다시 나의 처음 옷을 닦으리라.[進不入以離尤兮, 退將復修吾初服.]”라고 하였다.

[-D005] 죽을 날 :

상유(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라는 뜻으로, 해가 떨어질 때는 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가지 끝에 걸린다고 하여 만년을 뜻한다. 《회남자(淮南子)》에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그림자가 나무 끝에 있는 것을 상유라 한다.” 하였다.

[-D006] ()나라 …… 독실했으니 :

위나라 무공(武公) 95세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일깨울 좋은 말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한다. 무공이 스스로를 경계하며 지은 시에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서, 구차히 하지 말지어다. 내 혀를 잡아 주는 이가 없는지라,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느니라.[無易由言, 無曰苟矣. 莫捫朕舌, 言不可逝矣.]” 하였다. 《詩經 抑》

[-D007] 시인은 …… 자랑했지 :

《시경》 〈기욱(淇奧)〉에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 문채 나는 군자여, 잘라 놓은 듯 다듬어 놓은 듯, 쪼아 놓은 듯 갈아 놓은 듯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본디 위 무공(衛武公)의 높은 학문과 덕행을 칭찬하여 노래한 것인데, 여기서는 곧 학문과 덕행을 절차탁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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