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제월당집 제3권 / 시(詩)
사람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 人生天地間
창고 안의 낱알처럼 미묘하지 / 眇若太倉粟
뜻과 기백 진실로 낮아지면 / 志氣苟低垂
가슴 속 회포 응당 움츠러들 테니 / 胸懷應局促
어찌 공을 세울 수 있으랴 / 何能立事功
분명 다시 보잘것없이 되리라 / 定復歸庸碌
나는 실로 평범한 사람이니 / 而我實凡材
감히 아름다운 옥과 같다 말하랴 / 敢言同美玉
옛 경전에서 찌꺼기를 훔쳐 / 前經竊粃糠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지 / 早歲忝科目
세상에서 부질없이 부침 겪으며 / 世路漫浮沈
명예의 굴레에 드디어 속박되었지 / 名繮遂縳束
비록 끝이 삐져나온 송곳에 부끄럽지만 / 雖慙脫穎錐
도리어 구슬 없는 상자를 샀네 / 反買無珠櫝
처지는 낮고 음습한 곳에 있는 것처럼 괴로웠고 / 處地苦卑湫
신명은 모욕을 당할까 두려웠지 / 身名怕汚辱
바라는 것은 옛사람에게 있었으니 / 所希在古人
즐기는 것이 시속과 어긋났지 / 所樂乖時俗
벼슬길에 빠짐은 본래 마음 아니었기에 / 汩沒非素心
돌아와 초복을 입었네 / 歸來是初服
한가한 가운데 칠 척의 몸 / 閒中七尺軀
세상 밖 세 칸의 집에 살아가네 / 物外三椽屋
늦가을에는 국화가 언덕에 피고 / 秋晩菊綻崖
맑은 봄에는 꽃들이 골짝에 가득하네 / 春晴花滿谷
눈 덮인 푸르른 솔 어여쁘고 / 松憐帶雪蒼
안개와 어우러진 푸른 버들 사랑스러워라 / 柳愛和煙綠
이런 경치 무궁하니 / 景物自無窮
이내 삶도 만족스러운데 / 生涯亦云足
안타깝게도 병에 걸렸고 / 飜嗟疾病纏
다시 빠른 세월도 애석해라 / 更惜光陰速
팔십 늙은이 죽을 날 가까우니 / 大耋迫桑楡
쇠잔한 몸 침상에 의탁하네 / 殘骸托床褥
청춘을 헛되이 보내고 / 靑年任擲虛
늙어서 한갓 부끄러움만 남았네 / 白首徒懷恧
위나라 무공은 나이 구십이 되어서도 / 衛武齒雖耄
공부하는 일 나날이 더욱 독실했으니 / 工程日彌篤
시인은 우아한 노래를 지었고 / 詞人作雅歌
학업은 기수의 대나무 자랑했지 / 學業誇淇竹
예전 현인들이 모범을 보였으니 / 前哲揭規模
이 마음 더욱 부끄럽고 위축되네 / 此心增愧縮
시를 지어 게으르고 혼매함 경계하니 / 題詩警惰昏
어둠을 깨뜨리는 밝은 촛불 같도다 / 破暗擬明燭
대도는 본래 평이한 것 / 大道本平夷
모름지기 옛사람의 자취를 따라야지 / 且須遵舊躅
[주-D001] 사람이 …… 미묘하지 :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에 “아득하고 아득한 하늘과 땅이여, 굽어보고 우러러봄에 끝이 없도다. 사람이 그 사이에서 자그마하게 몸을 두었으니, 이 몸의 작음은 큰 창고의 낱알과 같도다.[茫茫堪輿, 俯仰無垠, 人於其間, 渺然有身, 是身之微, 太倉稊米.]”라고 하였다.
[주-D002] 옛 …… 급제했지 :
송규렴이 경서를 깊이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명경과(明經科)를 통해 이른 나이에 과거에 합격했다는 겸사이다. 그는 25세에 명경과에 합격하였다.
[주-D003] 비록 …… 샀네 :
능력도 부족하면서 헛된 명성을 얻었다는 말이다. 탈영추(脫穎錐)는 탈영낭추(脫穎囊錐)와 같은 말로, 송곳의 끝이 주머니에서 삐져나온다는 뜻인데, 재능이 마침내 드러남을 비유한다. 전국 시대 평원군(平原君)의 식객(食客)이었던 모수(毛遂)가 “나를 주머니 속에 있게 하였다면, 송곳 전체가 다 삐져 나왔을 것이요, 그 끝만 보일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라며 스스로를 추천했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76 平原君列傳》 무주독(無珠櫝)은 구슬 없는 빈 상자라는 뜻으로, 옛날에 초(楚)나라 사람이 정(鄭)나라에서 화려한 상자에 구슬을 담아 팔았는데, 정나라 사람이 상자만 사고 구슬은 되돌려 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韓非子 外儲》
[주-D004] 벼슬길에 …… 입었네 :
본래 관직에 뜻이 없었으므로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초복(初服)은 벼슬하기 이전의 복장이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나아갔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허물만 입었으니, 물러나 다시 나의 처음 옷을 닦으리라.[進不入以離尤兮, 退將復修吾初服.]”라고 하였다.
[주-D005] 죽을 날 :
상유(桑楡)는 뽕나무와 느릅나무라는 뜻으로, 해가 떨어질 때는 빛이 뽕나무와 느릅나무의 가지 끝에 걸린다고 하여 만년을 뜻한다. 《회남자(淮南子)》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져 그림자가 나무 끝에 있는 것을 상유라 한다.” 하였다.
[주-D006] 위(衛)나라 …… 독실했으니 :
위나라 무공(武公)은 95세에 사람들에게 자신을 일깨울 좋은 말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한다. 무공이 스스로를 경계하며 지은 시에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서, 구차히 하지 말지어다. 내 혀를 잡아 주는 이가 없는지라,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느니라.[無易由言, 無曰苟矣. 莫捫朕舌, 言不可逝矣.]” 하였다. 《詩經 抑》
[주-D007] 시인은 …… 자랑했지 :
《시경》 〈기욱(淇奧)〉에 “저 기수 벼랑을 보니, 푸른 대가 아름답고 무성하도다. 문채 나는 군자여, 잘라 놓은 듯 다듬어 놓은 듯, 쪼아 놓은 듯 갈아 놓은 듯하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 시는 본디 위 무공(衛武公)의 높은 학문과 덕행을 칭찬하여 노래한 것인데, 여기서는 곧 학문과 덕행을 절차탁마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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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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