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법률상식

민·형사상 책임

淸潭 2014. 11. 29. 11:01


 

☞ 별거 상태에서 바람 피운 아내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 요즘 별거는 아니더라도 각방을 쓰는 부부가 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식었으면서도 자녀들 때문에 혹은 체면 때문에 마지못해 살아가는 ‘무늬만 부부’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이런 부부들의 부정행위와 관련한 분쟁도 자주 일어난다. 바람을 피운 배우자에게 이혼 소송과 동시에 형사고소 및 위자료 책임을 묻는 경우도 있고, 바람을 피운 상대인 제3자(상간남, 상간녀)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소송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법원에선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이 됐어도 아직 법률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경우 부정행위를 한 배우자나 그 상대인 제3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왔다. 껍데기만 남은 부부라도 법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경우 법적 책임을 지운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미 혼인 생활이 파탄이 나 헤어지기로 하고 별거하는 마당에 과연 정조 의무를 강제하는 게 옳은 것이냐 하는 논란이다.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최근 매우 의미있는 판결을 내렸다. 이미 혼인 관계가 파탄이 나 별거 상태인 부부의 남편이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남성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미 부부관계가 파탄이 났다면 남편은 불륜남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남편은 1심에서 패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5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부부 공동생활이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라면 제3자가 기혼자와 성적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두고 부부 공동생활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고, 그로 인해 상대 배우자의 권리도 침해된 것이 아니어서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혼인생활이 이미 파탄이 난 부부 한쪽과 성적인 행위를 한 제3자에게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성적 사생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라는 사회 인식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런 문제와 관련한 사실상의 첫 판결인데다 형식적인 외형 대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보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이다.

그렇다면 몇가지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우선 외도를 한 부인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이번 판결은 제3자에 대한 책임 여부를 묻는 것이지 당사자인 부인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3자에게도 불법행위 책임이 없으면 당사자인 아내에게도 책임이 없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만약 남편이 당사자인 아내에게 위자료 책임을 물어도 청구가 기각될 확률이 높다.

그럼 별거가 아닌 각방 생활을 하는 부부 중 한 사람이 바람을 피웠다면 어떻게 될까? 각방을 쓰는 부부도 실질적으로 혼인 생활이 파탄이 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재판에서 이를 입증하는 것이 문제다. 별거와 달리 동거하면서 각방을 쓰는 경우나 남남처럼 지내는 것이 바로 파탄으로 인정되기는 어렵고 재판에서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 별거에 이르지 않은 부부 중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면 자칫 위자료 책임을 질 수 있다.

그럼 이 경우 간통죄의 형사적인 책임은 어떻게 될까? 별거 기간이나 혼인 생활이 파탄된 이후지만 아직 이혼이 확정되기 전에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은 경우 무죄라는 판례는 아직 없다. 실무에서는 대부분 정상참작은 하되 유죄로 인정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간통죄 판례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파탄이 난 이후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민사적으로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면 형사적인 불법행위인 간통죄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부부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혼인생활이 파탄이 된 경우에 억지로 부부간의 법적 의무를 강제하고 그 의무를 저버린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옳은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법부나 수사기관 등 국가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부부 생활, 개인의 성적 결정권을 과도하게 간섭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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