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故事成語

거세개탁(擧世皆濁)

淸潭 2013. 3. 19. 17:42

207DB34450D6941F10C586

거세개탁(擧世皆濁)

네이버 한시어사전에 나와 있는 어부사(漁父辭) 내용까지 첨부하기로 한다.

초(楚) 나라 굴원이 지은 초사(楚辭). 어부가(漁父歌). 모함으로 추방된 굴원이 노인 어부를 만나, 어부는 굴원에게 세상에 순응하라고 권하지만 굴원은 이를 거부한다는 내용으로, 시와 산문의 중간 형태임.

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거세개탁아독청 중인개취아독성 시이견방 ; 온 세상이 모두 흐렸는데 나 혼자 맑으며, 뭇 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로써 추방당했다오.)
鳳池司諫臥仙? 早知滄浪漁父歌(봉지사간와선사 조지창랑어부가 ; 중서성中書省과 사간을 지낸 분이 신선 배에 누워, 일찍이 굴원의 어부사에 화답했다네.)

새해가 다가오면 전국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교수신문이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2012년 올해 교수들이 가장 많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바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파사현정’은 원래 불교에서 나온 용어로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의미로 한마디로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 새해를 하루 앞둔 마지막 임시회 성남시의회 다수당으로서 새누리당이 책임 있는 지방정부의 야당으로서 낡고 묵은 발목잡기와 딴지 걸기식의 그릇된 관행을 버리고 생산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한 상생의 새로운 정치문화에 일조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 성남투데이

그러나 올해가 다 지나간 시점에서 교수신문이 지난 10~19일 다시 전국 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의 28.1%(176명)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뜻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이 뽑힌 것에 대해 교수신문은 혼탁한 한국 사회에서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교수신문은 분석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MB 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도 해법과 출구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으며,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MB 정부 끝자락에 윤리와 도덕이 붕괴하고 편법과 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며 “검찰과 법원은 법을 오ㆍ남용해 정의를 우롱했고, 대통령은 내곡동 부지문제 등 탐욕의 화신임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국정운영과 관련된 언급은 둘째로 치고 교수들이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택하면서 위정자들의 행태를 꼬집으며 자성을 촉구한 부분에 대해서만 주목을 하고 싶다.

성남시 지방정부의 현실을 보면 임진년 올해 내내 민선5기 시 정부와 의회는 생산적인 토론과 건설적인 논의보다는 대화와 설득의 부족뿐 아니라 일방적인 시정 발목잡기로 그 어느 때보다도 원활한 시정운영을 펼치지 못했다.

민선5기 이재명 시정부가 들어선 이후 실질적으로 첫 해를 맞이했던 지난 2011년의 잘못된 관행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내기에는 시 집행부와 의회가 서로 대립과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했으며, 뚜렷한 시정운영의 성과도 이루어 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올해 역시 시 정부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비판과 견제라는 허울 좋은 이름하에 시정운영의 발목을 잡혀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일을 추진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성남시 내에서 소수 집권여당의 한계를 여실히 절감을 했던 한해였다.

지난 7월부터 성남시의회 제6대 후반기 의장단 선출과 상임위 원구성으로 인해 내홍을 겪었던 새누리당의 등원거부로 4개월여 동안 파행운영 끝에 의회가 정상화되기는 했지만, 시의회 운영의 정상화는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습관적인 등원거부로 인해 툭하면 ‘파행운영’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시 집행부는 의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서로 대화와 타협, 상생을 위한 상시적인 테이블 마련을 통한 공론의 장 형성 등 그 동안의 갈등관계가 아니라 생산적인 관계를 모색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모습은 몽니를 부리는 듯 한 폐쇄적인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어 시의회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시민단체에서 시의회의 해산과 의정비 반납을 촉구하고 나섰겠는가? 이러한 지역사회의 비판과 여론에 대해서 새누리당은 ‘우이독경’식의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시 집행부가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고 오히려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도 새누리당은 지난 18일에 처리를 했어야 하는 법정 정례회 회기마저 어긴 채 새해예산안 처리를 위해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 임시회를 소집해 막판 배수진을 치면서 민주통합당과 이재명 시정부를 압박할 기세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민주적인 절차와 규칙에 따라 해당 상임위원회인 행정기획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조건부 찬성을 해 통과된 ‘성남도시개발공사설립조례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상식이하의 협상안을 내세우고 있어 이들이 정말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인지 의구심을 품게 만들고 있다. 그것도 시의회 원내 다수당이면서도 말이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원내 다수당이면서 성남시의회 회의규칙에 명시되어 있는 본회의 표결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더욱이 새누리당은 성남도시개발공사설립을 철회하면 시 집행부에서 일 년 내내 요구를 해 왔던 벤처기업 유치를 위한 정자동 시유지 매각건과 재개발사업 이주단지 확보를 위한 위례신도시분양아파트 사업 등에 대해 이번 회기 내에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도 아닌, 다음 회기에서 다시 한 번 전향적으로 검토를 해보겠다는 정치협상의 기본 룰도 벗어난 일방적인 주장만을 내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 측에서는 “한마디로 시 집행부의 항복을 받아내고 또 다시 시간을 벌어 놓은 뒤, 그 때 가면 또 다시 검토를 하자는 것에 불과한 지연전술로 보인다”고 부정적인 시선을 던졌다.

새누리당 박영일 의원은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기자회견을 통해 “시가 도시개발공사를 포기하면 위례신도시와 정자동 건은 찬성할 수 있고 개인 소신에 따라 본회의에 임할 것”이라고 정치적인 입장을 표하기는 했지만, 이 또한 새누리당 내부에서 받아들여질 지는 미지수다.

성남시의회는 지난 27일 의회운영위원회를 열어 31일 오전 10시 제191회 임시회를 하루 열어 행정사무감사결과보고서 채택과 각종 조례안 의결, 제3차추경예산안과 새해 예산안,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임명동의안 등을 처리할 예정이다. 올해 마지막인 31일 성남시의회가 그 동안의 불신을 벗어버리고 생산적인 의정활동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는 모습이 보고픈 올해의 세밑이다.

교수신문은 지난 10~19일 전국 대학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30%가 새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택했다고 한다. 제구포신은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로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새해를 하루 앞둔 마지막 임시회 성남시의회 다수당으로서 새누리당이 책임 있는 지방정부의 야당으로서 낡고 묵은 발목잡기와 딴지 걸기식의 그릇된 관행을 버리고 생산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한 상생의 새로운 정치문화에 일조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제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시의회의 모습을 보고 싶다. 시민들이 낸 세금이 쓸데없이 의정비로 나가는 비극적인 상황에 분노하지 않도록 말이다.

참고로 이번 대선에서 전국적으로는 새누리당이 이겼지만, 성남에서는 새누리당이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성남지역에서 그 동안 다수당으로서의 오만불손한 행태가 아닌 낮고 겸손한 자세로 성남지역에서의 패배원인을 성찰과 반성으로 되돌이켜 보는 정치인으로 거듭난다면, 이번 임시회의 좋은 성과도 기대해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필자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물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힐 수는 있지만 말이다.

한편 교수님들이 계사년 새해의 사자성어로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을 꼽았다고 합니다.

거세개탁이라고는 가끔 들어 보았으나 제구포신은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펼치자는 뜻이니 흔히 쓰는 송구영신(送舊迎新)과 비슷한 이야기 같습니다.

송구영신이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자는 수동적인 뜻이라면 제구포신은 묵은 것을 스스로 없애고(지워 버리고) 새 것을 찾아서 펼치자는 뜻이니 조금은 더 적극적인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춘추좌전에 나오는 말로 소공(昭公) 17년 겨울에 하늘에 불길함의 상징으로 보이는 혜성이 나타나자 노나라 대부 신수가 이를 오히려 변혁의 징조로 보아 제구포신이라고 해석했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교수들의 설명에 의하면 불길함의 징조가 나타나면 변혁이 필요하고 금년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의 심화된 갈등 양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구악을 퇴치하고 새로운 가치관과 시민의식을 고양해야할 것이라는 점에서 제구포신을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제구포신이라 하여도 옛것과 묵은 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니 선별하여서 잘못되고 나쁜 것만 골라서 없애고 새로운 것중에서도 이롭고 도움이 되는 가치있는 것만을 골라 받아 들이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공자의 말씀에도 옛것을 알고 새것도 알아야 한다는 말(온고지신:溫古知新)이 있으니 제구포신을 하더라도 지켜야할 바람직한 전통이나 미풍양속, 선인들의 지혜는 앞으로도 계속 익히고 펼쳐나가야 제구포신의 본래의 뜻을 살릴 수있을 듯 합니다

굴원의 어부사를 소헌 채순홍 선생이 활달한 예서로 표현했습니다.

관연 온 세상 사람들 다 탁하게 사는데 나홀로 맑을 수 있는지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홀로 깨어있을 수 있는지...

세상 굴러 가는대로 적응하며 살아 가는데 와 넌 홀로 깨끗하는냐 조롱을 들을 수 있는지...

우리 인간사회의 영원한 화두입니다.

'거세개탁'이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말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듦’을 의미할 때 쓰이는 말이다. 굴원이 모함을 받고 쫓겨나 강가를 거닐 때 한 어부가 “어찌 이 꼴이 되었느냐”고 묻자,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났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고 답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다만 이뿐이었다면 굴원의 《어부사(漁父辭)》가 시대와 세월을 거슬러 남겨진 수많은 한시(漢詩) 중에서 명시(名詩)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저 그런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시로 남았거나 잘해야 굴원이라는 굴곡많은 한 사대부가 남긴 비탄에 젖은 남긴 시 한 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시를 한 번 살펴보자.

《어부사(漁父辭)》

屈原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于斯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其糟而?其?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晧晧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굴원이 추방되어 강과 호숫가를 이리저리 떠돌며 시를 읊고 방황하니 안색은 초췌하고 몰골이 마르고 시들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초나라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어찌 이곳에 이르러 방랑하시오?” 굴원이 말했다. “세상이 모두 탁해졌는데 나 홀로 맑고 바르고자 했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몽롱하거늘 나 홀로 술 깨어 있고자 했노라. 이런 연유로 추방되었노라.” 어부가 다시 말했다. “성인은 만사에 엉키거나 얽매이지 않고 능히 세속과 어울려 옮아갈 수 있다 했소. 세인이 모두 탁하다면 왜 그대는 썩은 진창의 물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탁한 물결을 일게 하지 않으시오? 또한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세인이 혼몽하다면 왜 그대는 어울려 술지게미를 먹고 진한 술을 마시지 않으시오? 무슨 까닭에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하여 스스로가 추방되게 하였소?”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길, ‘새로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을 털어 머리에 얹고, 새로이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고 걸친다.’라고 했소. 그러니 어찌 청결한 몸에 더럽고 구저분한 것을 받을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배 속에 묻히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오. 어찌 깨끗하고 흰 내가 세속의 더러운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어부가 웃으며 노를 저어 배를 몰아가며 노래를 지어 말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고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 어부가 어딘가로 가 버려 다시 더불어 말을 나누지 못했다. (역: 문태준)

거세개탁의 배경 : 춘추시대(春秋時代)와 전국시대(戰國時代)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주(周)나라가 도읍을 호경(鎬京, 현재의 서안 부근)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BC 770년부터 이후 403년까지 약 360여 년간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공자가 편찬한 『춘추』를 토대로 불리기 시작한 이름이고, BC 403년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하는데,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이 이 시대에 전국을 유세하고 다니던 사람들의 활동을 기술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봉건제에 기틀을 두고 있던 주(周)나라의 국가체제가 흔들리면서 주의 종주권을 그나마 명목상으로라도 인정하던 춘추시대를 거쳐 이후 주나라의 권위조차 부정하고 제후들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시대가 바로 전국 시대였다.

여러 제후국들 중에서 진(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국가, 서방의 진(秦), 북방의 燕(연), 동방의 제(齊) 그리고 중원의 한(韓)·조(趙)·위(魏), 남방의 초(楚)를 일러 전국칠웅(全國七雄)이라 하는데 굴원은 초(楚)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나 초나라 회왕(懷王)에게 좌도(左徒:左相)의 중책을 맡아, 내정·외교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초나라 회왕이 누구인가? 중국 역사에서 미녀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왕이었고, 암담한 제후였으니 애초에 굴원 같은 충신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주군으로는 역량이 부족한 자였다. 게다가 굴원 역시 정적(政敵)들과 자주 충돌했다는 것으로 보아 자기주장에 대한 믿음이 강하여 융통성이 부족하고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주변에 정적을 많이 만드는 편이었으리라는 건 능히 짐작이 된다.

전국시대에는 훗날 천하를 통일하는 진나라가 가장 강성하였기 때문에 나머지 여섯 나라들은 진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한 국가전략을 수립해야만 했다. 당연히 여러 주장들이 나와 경합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나머지 여섯 나라들이 위에서 아래로 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소진(蘇秦)의 합종론(合縱論)과 이들이 연합할 수 없도록 막아 진나라의 고립을 막으려고 했던 장의(張儀)의 연횡론(連衡論)이 가장 큰 힘을 얻었다. 굴원은 초나라가 제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에 속했으나 진나라의 장의(張儀)와 내통한 연횡파(連衡派)와 초 회왕의 애첩(愛妾)의 중상모략으로 인해 권좌에서 밀려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진의 모사(謀士)인 장의는 제·초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초나라에 잠입하여 신하들 사이에 자기편을 만들고, 장의와 간신들의 변설과 감언이설에 넘어간 초 회왕은 제나라와 단교한 뒤 영토를 약속한 진나라에 땅을 요구하였으나 한껏 비웃음만 당하고 만다. 격분한 초 회왕은 분을 참지 못하고 무리하게 출병하였으나 조나라에마저 배신당하고 두릉(杜陵)에서 대패하고 만다. 진나라는 화평의 조건으로 계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진해서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를 석방하고, 초 회왕을 폐위하여 진나라에 보내도록 요구했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급히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

초 회왕은 자식들에 의해 폐위되어 포로나 다름없는 신세로 진나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의 자리에 올랐는데, 막내 자란은 자신의 아버지를 객사하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였으므로, 굴원은 이를 비난하다가 다시 죄를 받아 양쯔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는데 《어부사(漁父辭)》는 이때에 남겨진 작품이다. 《사기》에 실려있는 <회사부(懷沙賦)>는 굴원이 마침내 분을 참지 못하고 창사(長沙)에 있는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긴 절명시(絶命詩)였다.

굴원의 또 다른 목소리, 어부

《어부사(漁父辭)》를 찬찬히 읽어보면 굴원(사대부, 지식인)이 추방되어 방황하는 동안, 그를 알아본 한 어부(민중)와의 대화를 시로 옮긴 것이다. 먼저 어부가 그를 알아보고 묻기를 ‘자네는 삼려대부에 속하는(국가운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인데 어째서 이렇게 초췌한 모습으로 강가나 방황하고 있소?’하고 묻자 굴원은 ‘세상이 모두 더러워졌는데 나만 깨끗하게 굴다 보니 이렇게 되었소’라고 답한다. 굴원의 대답 속에는 초나라(세상)가 망하게 된 것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자신의 책임보다는 그의 주장에 귀기울여주지 않은 세상(초나라)에 대한 한탄이 녹아있다. 그의 말을 들은 어부가 말하길 ‘자네는 세상이 더러워서 자네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만약 자네가 깨끗하게 산다는 명분보다 주변에 더 많은 동료들을 포용하고, 이들과 함께 임금에게 좀더 현명하게 간언하였더라면 그런 세상에서라도 희망을 만들어내고,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어부의 힐난어린 목소리에 굴원이 재차 변명하기를 ‘세상이 이토록 더러운데 내가 어찌 그 속에서 나의 뜻을 굽히고, 그런 자들과 통하여 대사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겠네’라고 말한다. 그러자 어부가 웃으며 말하길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럽다면 발을 씻으면 되지’라며 융통성 없는 굴원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굴원은 어부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미 그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보이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과연 굴원이 강가를 헤매다가 정말로 현명한 어부를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어부사(漁父辭)》 속에 등장하는 현명한 어부 역시 사실은 굴원의 다른 페르소나가 들려주는 목소리였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그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며 충성을 다했던 초나라의 멸망은 정해졌고,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전 회한으로 가득했던 굴원은 어부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의 과오 - 강직하였으나 융통성이 없었던 - 에 대해 고백하고 성찰한 것을 시로 남겼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의 세계화,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목소리, 거세개탁

<교수신문>에는 2012년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과 교수들마저 정치참여를 빌미로 이리저리 떼거리로 몰려다니고, 진영논리와 당파적 견강부회가 넘쳐나 세상이 더욱 어지럽고 혼탁하다”며 “이명박 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해법과 출구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고 거세개탁을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김민기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는 “MB정부의 부패, 공공성의 붕괴, 분노사회 등 우리사회의 문제를 직시했다”, 김석진 경북대 교수(경영학)는 “모든 것에 획일적으로 시장과 경쟁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근시안적 접근으로 자신의 이익만 우선하고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만이 ‘거세개탁(擧世皆濁)'의 의미였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들의 근거도 나름 일리가 있겠으나 나는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된 절묘한 까닭의 이면에는 크게 두 가지의 함의(含意)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매사 남 탓하기 좋아하는(선거 패배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작태들을 보라) 우리 사회에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더러움을 질타하지만 정작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 그 세상을 변화시켜야 했음에도 자신의 무지와 무능으로 인해 실패한 세력들(지식인, 정치인, 진보개혁세력)에게 던지는 어부(민초)의 질타가 이 사자성어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역사상 중국인들에게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중국 대륙이 곧 천하(天下)였다. 그런 의미에서 춘추전국시대는 그들이 20세기 말엽 개방개혁시대를 거치며 만나게 된 ‘21세기의 세계화’ 이전에 경험한 ‘고대의 세계화’였던 셈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천하쟁패는 정치·경제·사회제도의 급격한 변모를 이끌며 중국 대륙을 뒤흔든 세계화였고, 그 당시 변화의 속도와 진폭은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세계화를 능가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시대였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제후국들은 봉건적 신분질서를 뒤흔들었고, 무한경쟁을 통해 토지 소유의 제한이 폐지되어 백성들에게도 사유제가 허락되었으며, 부유한 계층은 더욱 넓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농경법도 기술적으로 진보하여 무기뿐만 아니라 농기구에서도 철기가 사용되었고, 소(牛)를 농사에 이용하게 되면서 수확량이 증대되었다. 농경을 위한 수리관계 공사를 위해 천문지리와 같은 학문도 발달하면서 생산력이 더욱 증대된 만큼 상공업도 발달하여 도시에는 상설시장이 생겨나면서 금속으로 주조된 화폐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이미 춘추시대 중기 이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루어졌던 문물의 눈부신 발전은 훗날 진시황에 의한 천하통일과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한나라가 이후 중원의 패자가 되어 세계최대의 제국으로 자리 잡게 되는 기초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공후(公侯)를 주군(主君)으로 모시는 의리와 능력만이 중시될 뿐 신분과 출신, 계급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자본의 국경 없는 이동 못지않은 대단한 변화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나 글로벌리즘(globalism)이 중국에서는 이미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 그런 맥락에서 굴원의 《어부사(漁父辭)》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역시 남다를 것이다.

天下非一人之天下 天下之天下

춘추전국시대라는 이른바 ‘난세(亂世)’를 거치며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의 고통 속에서 중국(인)의 문화적 심성구조에는 국가(임금)권력에 대한 충의(忠義)와 다른 맥락에서 백성에 대한 충의로서 의협(義俠)의 세계관이 출현한다. 그러나 의협의 세계가 최종적으로는 판타지나 무속(巫俗)의 세계로 후퇴하게 된 것은 현실정치에서 민중의 정의를 의미하는 의협이라는 대의명분이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운 정치인지 반증한다. 또 민중의 정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의협의 세계가 민중들에게 항상 존중받을 수는 없었다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굴원의 또 다른 페르소나인 어부의 목소리를 통해 그것을 엿볼 수 있는데, 어부(민초)가 원하는 이상적 사대부(지식인이자 정치세력)란 대의에 입각해 홀로 깨끗하고 고결한 명분의 수호자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의 평화와 갈리아의 평화가 동일한 의미일 수 없듯 왕의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백성의 태평성태와 같은 의미일 수 없는 것이다. 굴원이자 곧 어부인 작중화자의 회한은 민중의 정의를 표방하는 의협과 대의명분이라 할지라도 무능하여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거나 백성을 설득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대의명분이란 결국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천하관이란 천하도리를 논하는 이념인 동시에 현실정치를 반영한 철저한 실용주의이기도 하다. 백성들은 유능하지 못한(실패한) 의협도 판타지나 무속의 세계에서 신(神)과 영웅으로 떠받들지만 현실정치에서는 그 고통이 극에 달하여 반역(변혁) 이외에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거나 확실한 대안을 보여주기 전에는 선택하는 법이 없다.

무릇 천하를 논하고, 민중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天下非一人之天下 天下之天下(천하는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며 천하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의 것)”라는 말을 가슴에 새길 일이다. 《육도(六韜)》에 나오는 말이다.


* 신중국 건국 시기, 좀더 정확하게는 중일전쟁으로 일본의 침탈을 받게 된 중국에서 굴원은 민족적 이상을 재현하는 인물로 높이 표상되는데 특히 곽말약은 망국의 위기에 처한 중국인들에게 일본을 비롯한 외세저항의 상징으로 굴원을 첫 손에 꼽아 굴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희곡을 남기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단오절에 용주(용머리를 한 배)를 타고 강가에 나가 떡과 과자를 뿌리며 굴원을 기리는 풍습을 지켜왔는데 이것은 물고기들이 투신자살한 굴원의 사체를 훼손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래한 것이다.

휘호 : 近園 김양동 미술학 박사, (전)계명대 미대 학장, (현)계명대 석좌교수

'거세개탁'에 이어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에 오른 중에는 26%(163명)를 얻은 2위는 '나라를 다스리는 권력은 백성에게 있다'는 뜻의 '대권재민(大權在民)'이, 23.4%(147명)를 얻어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이 3위에 올랐다.

굴원이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며 초췌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있었다. 고기잡이 영감이 그를 알아보고 어찌하여 그 꼴이 됐느냐고 묻자 굴원이 "온 세상이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다"고 답한 데서 유래했다.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원문을 소개한다.

屈原旣放(굴원기방) 游於江潭(유어강담) 行吟澤畔(행음택반) -굴원이 죄인으로 몰려 추방돼 시를 읊조리며 강가를 방황하는데

顔色樵悴(안색초췌) 形容枯槁(형용고고)-얼굴빛은 초췌하고 형색은 수척할세라

漁父見而問之曰(어부견이문지왈) 子非三閭大夫與(자비삼려대부여)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 -어부가 굴원에게 묻는다. “삼려대부가 아니오?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는가?”

屈原曰(구원왈) 擧世皆濁(거세개탁) 我獨淸(아독청) 衆人皆醉(중인개취) 我獨醒(아독성) 是以見放(시이견방) -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 혼자 맑고 깨끗할 뿐 모두가 욕심에 취해있고, 나 혼자 이성이 밝고 청렴하므로 이를 죄로 몰아 이렇게 쫓겨 이 곳에 왔노라.”

漁父曰(어부왈) 聖人不凝滯於物(성인불응제어물) 而能與世推移(이능여세추이)-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사물에 얽매임 없이 꽉 막히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니

世人皆濁(세인개탁) 何不?其泥而揚其波(하불굴기니이양기파)-세상 사람들 모두가 흐려 악에 물들어 있다면 어찌 뻘속에 함께 있으며 풍파를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중인개취) 何不飽其糟而?其?(하불포이조이철기리)-많은 사람들이 사리사욕에 취해 있다면 그 술 찌꺼기라도 먹고 그 박주(薄酒)라도 마시면서 세인과 더불어 살지 않고 혼자 모나게 하고

何故深思高擧(하고심사고거) 自今放爲(자령방위)-어째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한 행동을 해 스스로 자신을 원지로 추방당하게 하는가.”

屈原曰(굴원왈) 吾聞之(오문지)-굴원이 말하기를 “내 듣자하니

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새로 머리를 씻은 이는 반듯이 관을 털어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이는 반듯이 옷을 털어 입는데

安能以身之察察(안능이신지찰찰) 受物之汶汶者乎(수물지문문자호)-어찌해 맑고 깨끗한 몸으로 저 더러움을 받게 할 수 있겠는가?

寧赴湘流(영부상류) 葬於江魚之腹中(장어강어지복중) 安能以皓皓之白(안능이호호지백) 而蒙世俗之塵埃乎(이목세속지진애호)-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고 말지언정 결백한 몸에 어찌 세속의 더러움을 뒤집어 쓸 수 있겠는가.”

漁父莞爾而笑(어부완이이소)-어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호의를 표시하고,

鼓?而去乃歌曰(고설이거내가왈)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 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뱃전을 두드리며 떠나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창락지수탁혜) 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遂去不復與言(수거불복여언)-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침내 떠나 버리곤 다시 말이 없구나!

한편 2011년도에는 '나쁜 일을 하고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없다'는 뜻 '엄이도종(掩耳盜鐘)'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돼 정부의 소통 부재를 꼬집었다.

또한 2010년에는 '진실을 숨겨두려 했지만 실마리는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 있다'는 뜻의 '장두노미'(藏頭露尾)가, 2009년에는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의미의 '방기곡경'(旁岐曲逕)이 각각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굴자사 굴원영정

굴원(屈原/BC 343 ?~BC 277 ?)(동아대백과사전에서)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비극 시인으로 초(楚)의 왕족과 동성(同姓). 이름 평(平). 원 자. 생몰연대는 기본자료인 《사기(史記)》 <굴원전>에 명기(明記)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설이 있으나, 지금은 희곡 《굴원》의 작자인 궈모뤄[郭沫若]의 설에 따른다.

학식이 뛰어나 초나라 회왕(懷王)의 좌도(左徒:左相)의 중책을 맡아, 내정·외교에서 활약하였으나 법령입안(法令立案) 때 궁정의 정적(政敵)들과 충돌하여, 중상모략으로 국왕 곁에서 멀어졌다. 《이소(離騷)》는 그 분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사기》에 적혀 있다.

그는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였으나, 연형파(連衡派)인 진나라의 장의(張儀)와 내통한 정적과 왕의 애첩(愛妾)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왕은 제나라와 단교하고 진나라에 기만당하였으며, 출병(出兵)하여서도 고전할 따름이었다. 진나라와의 화평조건에 따라 자진하여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마저 석방하였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왕의 입진(入秦)도 반대하였으나 역시 헛일이었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이 되었다. 자란은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므로, 굴원은 그를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어부사(漁父辭)》는 그때의 작품이다. 《사기》에는 <회사부(懷沙賦)>를 싣고 있는데, 이는 절명(絶命)의 노래이다.

한편 자기가 옳고 세속이 그르다고 말하고, 난사(亂辭:최종 악장의 노래)에서는, 죽어서 이 세상의 유(類:법·모범)가 되고 자살로써 간(諫)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창사[長沙]에 있는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죽었다. 그의 작품은 한부(漢賦)에 영향을 주었고, 문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된다.

이항범 기자/웰빙코리아뉴스(www.wbkn.tv)

너와집나그네

가져온 곳 :
블로그 >..
|
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글,문학 > 故事成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嘗糞之徒 (상분지도)  (0) 2013.03.24
구우일모(九牛一毛)  (0) 2013.03.24
청출어람 (靑出於藍)  (0) 2013.03.19
교토삼굴(狡兎三窟)  (0) 2013.03.19
맹구주산 (猛狗酒酸)   (0) 201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