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를 늘씬하게 썰어내니 맛이 다르네미각은 어느 날 갑자기 길러지지 않는다. 어머니가 해주신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고, 아버지 손을 잡고 여기저기 다니며 미각은 훈련된다. 이런 집에서 자란 아이는 다르다. 그렇게 자라 예술가로 성공해서 이름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분이 있다. 그가 서울에서 손님이 오면 항상 모시고 간다는 집을 가 보았다. 도다리 뼈째썰기 전문점인 부산 수영구 남천동 '영미횟집'. 막상 가서 보니 이전에 한 번 왔던 집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회사 간부들이 자주 이용한다며 데리고 가주었던 집이다.영미는 이 집 안주인 주경자(54)씨의 큰딸 이름이란다. 여자 이름은 어째 다 비슷해 보인다. 영미씨는 시집 가 잘 산다니 다른 영미도 그럴 거라고 믿기로 하자. 이 집이 장사 잘되는 것을 보고 이웃집에서도 역시 상호에 사람 이름을 넣었는데 장사가 안 되어 간판을 내렸단다. 맛이 중요하지 이름이 중요할까. 이 집은 일식집처럼 일인당으로 계산하는 게 특색이다. 자연산 횟감의 경우 일인당 2만5천원∼4만원.
도다리 뼈째썰기를 시켰다. 아! 이 집 회 썰어나오는 것 좀 보소. 도다리의 새하얀 속살이 늘씬한 아가씨 다리 모양으로 쭉쭉 뻗었다. "내 다리가 예뻐." "아냐 내 다리가 더 예뻐." 미스코리아들이 경쟁하는 것 같다. 회 밑에는 대나무 발, 또 그 밑에는 얼음팩이 놓여 한기가 올라온다. 이 길쭉한 회를 묵은지와 함께 싸서 한 입 먹었다. 회 맛이 다르다.
이 자리에서 25년째라는 주씨의 내공이다. "회를 좋아해서 이렇게 저렇게 썰어 보다 고기에도 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회를 이렇게 길쭉하게 썰게 되었다. 이 방식은 남자들보다 차분한 여자들에게 잘 맞는 것 같다."
묵은지가 맛이 있고, 전어 젓갈은 고소하다. 젓갈 좋아하는 분은 자주 오게 된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 집에 대해 한 줄도 언급이 없다. 이 집 단골은 대부분 50대 이상이고 젊은 사람들은 드물어서 그럴까. 단골들에게 튀김을 내놓으면 "내가 이 집에 튀김 먹으러 온 줄 아느냐?"고 야단을 친단다.
누가 제대로 먹을 줄 아는 걸까? 주씨에게 다른 집에서 회를 먹어 보았냐고 물었다. "딴 집 회는 두꺼워서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깻잎이 가득하게 든 매운탕이 진하고 맛이 있다. 어느새 상 위에 남은 음식이 거의 없다. 주씨는 "전어철이면 서울에서 손님들이 몰려온다"며 "잡숴 봐야 안다. 우리 집 전어는 금전어"라고 자랑한다. 전어철에 한 번 더 가야겠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오후 11시. 남천동 방파제 해변도로 쪽(뉴비치아파트 501동 옆). 051-628-1142. 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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