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차분하게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밝은 햇살 아래 산색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뽀얗게 씻긴 바위와 어우러진 파릇한 새싹이 삶의 노래 생명의 환희곡을 부르는 듯 신비로운 색을 뿜으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다르게 산천의 색이 진하게 변하듯 산중 스님들의 도심(道心)도 짙어지길 바랍니다.
며칠 전에 모 사찰에서 설법을 마치고 오려는데 주지스님과 신도님들이 공양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며 산중공양(山中供養)을 권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공양 후 법회의 순서에 따라 오늘은 ‘공양 올리는 법’에 대하여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보시(布施)를 할 때 어떻게 해야 그 공덕이 가장 수승한가 하면 무주상(無住相)으로 보시를 해야 하며, 청정한 마음으로 청정한 물건으로 보시하여야 합니다.
즉, 보시는 보시하는 이(施者), 보시를 받는 이(受者), 보시하는 물건(施物)이 공한 이치를 서로 잘 알아서 바르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또 신도님들이 대중스님들께서 수행하시는 절에 가면 ‘이 스님은 훌륭하시고 저 스님은 모자란다’는 생각을 내서 자기 마음대로 스님을 가려서 백번 천번 공양을 올리는 것보다 평등한 마음으로 대중스님께 똑같이 한 번 공양을 올리는 공덕이 더 큽니다. 공양은 예로부터 평등한 것이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혜인 스님(慧因大師)께서 대중공양의 공덕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스님을 청하는 시주자가 차례에 따라 비록 범부승(凡夫僧)을 청했다 하더라도 성현을 청한 복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마음에 차별이 없으면 성현의 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시방승(十方僧) 가운데에는 성스러운 스님이 모두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 마음이 평등하여 불심에 계합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범부의 마음으로 가리고 저울질하여 소승의 성인과 대승의 성인을 따로 청하려 하지만 이렇게 하면 그 복을 얻는 것이 비록 적지 않다 하더라도 평등심으로 차례를 따르는 법에 의지하여 한 범부승을 청한 것만 같지 못하다.
그 얻은 바 복덕으로 말하면 5백인의 성스러운 스님네들 청한 복보다 더 많으니 만일 마음으로 간택함이 없이 청한다면 복덕은 한량이 없어서 성인과 같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기원정사를 세워서 보시한 수달다 장자(須達多長者)는 수많은 스님들 중에서 특히 빈두로 스님(賓頭盧尊者)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래서 빈두로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기 위하여 함께 계신 대중스님 5백 분을 모시어 대중공양을 올리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빈두로 스님을 걸인으로 착각한 수달다 장자의 집 문지기가 문에서 내쫓아내어 못 들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장자는 그 후에도 2번이나 더 공양을 올려도 스님이 안 보이자 찾아가서 “스님, 세 번이나 대중공양을 마련하고 기다렸는데 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스님께서는 “왜 가지 않았겠소. 걸인으로 착각하여 내쫓는 바람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셨던 기록만 보더라도 부처님 당시엔 신도가 아무리 개인적으로 믿고 존경하는 스님이 있어도 그 분만을 위해 별도로 초청해 공양을 올리거나 또 스님도 혼자 신도댁에 가서 공양받는 것을 얼마나 엄격히 금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 대중생활을 하면서 평등하게 공양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대중화합과 질서를 지키며 평등과 자비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일타 스님(日陀禪師)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신도들이 5백승재(五百僧齋)처럼 많은 스님들을 위하여 대중공양을 올릴 때는 한쪽 구석자리에 빈 좌복을 하나 더 마련해 놓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좌복은 성승(聖僧) 또는 승보(僧寶)가 오시면 앉으실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 정성이 지극한 재에는 대중도 모르는 형색이 남루하신 스님이 오셨다가 사라지는 예가 종종 있는데 중국사람들은 이 분들이 빈두로존자님이나 문수보살님의 응신(應身)이라고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대중공양에 대한 수많은 영험 이야기에는 늘 보살의 화현이 등장합니다.
이상은 평등한 마음으로 대중공양에 임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드렸고 이제부터는 청정하고 천진한 마음으로 공양을 올렸던 아쇼카 왕의 전생 이야기를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일찍이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탁발을 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 때 마을 귀퉁이에서 쟈야와 비쟈야 두 어린이가 모래성을 만들며 놀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모습을 뵙고 어린 마음에도 무엇인가 바치고 싶은 마음에 쟈야는 한줌의 모래 흙을 부처님의 발우 속에 넣어드리며 “보리가루를 드립니다.”라고 했고, 비쟈야는 합장 예배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또 쟈야는 부처님께 모래 공양을 바치며 “이 공덕으로 나는 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이 되어 붓다에게 공양할 수 있도록 하여지이다.”라는 원을 일으켰습니다.
이와 같이 쟈야는 천진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모래 공양을 바치며 원을 세운 선근(善根)을 심었고 부처님께서는 쟈야의 모래공양을 미소로 받으시니 청황적백의 광명이 삼천대천 세계를 에워싸고는 부처님의 주위를 세 번 돌고 왼손을 통해서 몸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를 지켜본 아난 스님께서 부처님께 “이 모래공양으로 인한 과보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하시니 부처님께서 예언하시기를 “아난아, 쟈야는 모래공양을 올린 선근으로 여래의 입멸 후 100년이 지난 때 아쇼카왕(阿育王)으로 태어나 정의(正義)의 왕, 이상(理想)의 제왕이 되어서 나의 유골을 각지에 보내어 팔만사천 탑을 세워서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육왕경을 통해보면 성현과 범부는 공양을 받음에도 그 차이가 있는데 성현은 정성과 믿음을 받으시는 것이지 결코 물질에 그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불보살님은 심식(心食)으로 마음으로 공양을 받으시고, 천신(天神)은 견식(見食)이라 눈으로 공양을 받으시고, 영혼은 촉식(觸食)이라 온 몸으로 진기(眞氣)를 빨아들이고, 인간은 구식(口食)이라 입으로 먹어야 공양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질의 가치보다 정성의 무게를 먼저 꿰뚫어 보시는 부처님께는 물 한 잔이라도 정성에 따라 하늘과 땅만큼의 공덕의 차이가 생깁니다.
부처님시대에 오직 무소유의 삶을 지키시던 스님들은 탁발(托鉢)을 하면서 공양을 하고 수행을 했는데 그 때부터 재가의 신도들은 사사시주자(四事施主者)라 하여 음식, 의복, 침구, 의약품을 스님들께 공양드려 승가를 외호하며 때로는 사원을 지어서 바치기도 하였습니다.
또 때로는 출가한 스님이 대중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렸는데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보면 신통제일 목련 스님(目連尊者)께서 아비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으시는 어머니 청제부인(靑提夫人)을 구제하려고 지옥까지 찾아갔으나 혼자의 신통력으로는 할 수 없음을 비통히 여기자 목련 스님의 효성을 가상히 여기신 부처님께서 하안거해제일(夏安居解制日)인 7월 15일 우란분절법회 때에 백 가지 공양물을 마련하여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중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어머니의 천도를 발원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이에 목련 스님께서 이를 받들어 행하여서 부처님의 가피 신통력과 스님들의 도력과 기도력으로 어머니 청제부인을 지옥에서 벗어나 화락천(化樂天)에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신통이 자재하신 목련 스님께서도 어머니를 위하여 대중스님들께 정성을 다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우리가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일체 중생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스님들이 공양을 하는 목적은 단순히 육신만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라 수행에 장애가 없는 한도 내에서 영양을 공급받고 정진하여서 자신의 해탈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구제하고 이익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오롯한 정성으로 평등하고 청정한 대중공양을 올려주신 신도님들과 일념으로 공양을 받아주신 산중스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오늘의 공양이 성불로 가는 길에 양약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산중공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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