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물이라도 흘러 흘러가면 결국에는 바다에 들게 됩니다. 한번 바다에 들면 모두 바닷물로 불릴 뿐 거기에는 동서에서 흘러온 이름이나 평야와 계곡에서 흘러온 이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떤 물이든 현재 바다에 흘러 들었으면 과거의 맛은 없고 오직 짠맛의 바닷물일 따름입니다.
부처님의 법도 이와 같아서 부처님께 믿음을 내어서 귀의(歸依)하였으면 그는 이미 부처님의 소중한 제자이며 자녀일 뿐입니다. 믿음이 곧 부처님 씨앗(佛種子)이기 때문에 믿음만 잘 지키면 언제고 부처님열매(佛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화엄경(華嚴經)에 믿음(信)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불심(佛心), 중생심(衆生心), 자심(自心)이 모두 일심(一心), 일성(一性), 일법계(一法界), 일지혜(一智慧)가 되어야 비로소 믿음을 성취한다.”라고 하셨고, 또 “믿음은 도의 근원(根源)이며 공덕의 어머니가 되는지라 일체 선법(善法)을 장양(長養)하며 의심의 그물을 끊어 제하고 애류(愛流)에서 벗어나게 하며 열반의 위없는 도를 열어 보이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모든 선행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수행자는 믿음의 힘으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믿음은 유리그릇과 같아서 항상 잘 지켜야 하는데 예를 들자면 한밤중에 보름달이 세상을 비추매 물그릇 속에 그 그림자가 있으나 그릇에 금이 가면 물이 세고 물이 세면 달 그림자도 따라서 없어짐과 같이 아무리 밝은 지혜의 달이라도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면 그 지혜의 빛을 담을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금강석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어떠한 가피도 입을 수 있고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함경(阿含經)에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가엾게 여기는 마음과 자비한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사람들이 너희들의 말을 기꺼이 듣고 받아들인다면 그들을 위해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마음을 이야기해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깨끗한 믿음에 들어가 머물도록 해야 한다. 그 네 가지란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대한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계율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땅, 물, 불, 바람이라고 하는 물질 구성의 네 가지 요소(四大)는 비록 변함이 있을지라도 이 네 가지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면 지옥, 아귀, 축생의 나쁜 길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수행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우선 삼보와 계율에 대한 확고한 믿음만 성취하여도 삼악도를 멸한다고 하였으니 믿음의 공덕은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출가 후 승속(僧俗)에 관계없이 많은 분들에게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도 했고 전하기도 했는데 그 분들의 신심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음이 천진하고 순진하며 세속의 욕망에 깊이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나 세속의 욕망에서 초월할수록, 구도심(求道心)이 강할수록 굳은 신심을 내는 것이지 학력이나 재산, 지위, 명예, 나이, 남녀의 차이 등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신심을 가지고 세상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따르려면 버릴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은 배우고 믿어야 하는데 인간이란 너나없이 어리석고 애착이 많아서 자신의 하찮은 지식과 재물을 선뜻 버리지 못하고 온갖 분별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특히 잘못 믿고 사는 것이 있어서 말씀드리고자 하니 나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각자 생각해 봅시다.
잘못된 믿음 첫째는 세상에 대한 지혜와 총명함을 믿는 것(恃世智聰), 둘째는 지위의 고귀함을 믿는 것(恃高貴位), 셋째는 나이가 많음을 믿는 것(恃年臘尊), 넷째는 가문이 훌륭함을 믿는 것(恃門族大), 다섯째는 보고 듣고 아는 것이 남보다 많음을 믿는 것(恃見聞人), 여섯째는 복덕이 많음을 믿는 것(恃福德大), 일곱째는 재산이 많음을 믿는 것(恃富饒大)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삶의 근본 문제인 생로병사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인데도 그 허망한 힘을 믿고 자만에 빠져서 일생을 보내다 마침내 저승사자 앞에서 통곡하며 무릎을 꿇으니 참으로 답답한 처신입니다. 세속의 부귀는 허망하여 믿을 것이 못된다는 확신부터 서야만 오롯한 믿음을 낼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부처님께서는 왕자로 태어나셨고 총명함이 뛰어나셨고, 인물도 수려하셨고, 무예에도 능하셨으나 이 모든 것이 생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깨달으시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으신 부처님 전에서 세속적 복과 권력과 지식, 재능 등을 달라고 기도를 드리니 어리석기 한없는 중생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세속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더라도 오직 부처님을 굳게 믿는 마음만 확고하면 그 공덕으로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세간의 고통을 뛰어넘어 깨달음의 도를 얻으며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거룩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정진하여야겠습니다.
저는 가끔 이른 새벽에 홀로 깨어나면 이산 스님(怡山禪師)의 발원문을 외우는데 늘 “날 적마다 좋은 국토 밝은 스승 만나오며 바른 신심 굳게 세우고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여 세상일에 물 안 들고 청정범행(淸淨梵行)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 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하는 대목이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며 저 또한 세세생생에 바른 신심 잃지 않고 더욱 견고해져서 기필코 성불하겠다는 원을 세웁니다.
우리는 항상 바른 신심을 얻기 위해서 부처님의 법이 존재하는 불국토에 태어나야 하고 바른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 원을 이루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니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바른 배움은 자신의 지혜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요, 진정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법을 만나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우둔하기 짝이 없었던 출라판타카 스님(周利槃特比丘)이 부처님에 대한 확고한 신심으로 늘 용기를 잃지 않고 수행해서 아라한이 되신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출라판타카 스님은 형인 마하판타가 스님을 따라서 출가를 하였으나 태어나면서부터 영리하지 못해서 형이 가르쳐준 “향긋한 진홍 빛 연꽃이 새벽에 피어나서 향기를 내는 것과 같이 창공에 빛나는 태양과 같이, 만물을 널리 비추어 밝히는 부처님을 보라.”는 한 구절을 넉 달이 지나도록 외우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어서 정사 밖으로 내쫓았으나 부처님께서 발견하시고 다정히 부르시어 “출라판타카야, 너는 나에게 출가하지 않았느냐. 형에게 쫓겨났으면서 왜 내가 있는 곳으로 오지 않는 것이냐. 자, 나와 함께 가자꾸나.”라고 하시며 다시 정사로 데리고 가시어 베 한 장을 주시면서 “출라판타카야, 이 자리에서 동쪽으로 앉아 먼지 때를 털어 버리자라고 외우면서 이 베를 만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출라판타카는 몇 달이 지나도록 “먼지 때를 털어버리자.”라고 하며 베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어느덧 베가 새까맣게 되어버렸고 이것을 본 출라판타카는 ‘부처님께서 이 베를 주셨을 때엔 손때 하나 없이 아주 새하얗었다. 그런데 내가 만져서 이렇게 더러워져 버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느 한 군데에 고정되어 있지 않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아차리신 부처님께서는 “출라판타카야, 이 베만이 먼지나 때에 더럽혀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번뇌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단다.”라고 말씀하시며 더욱 용기를 주시며 자비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우둔하다고 형에게까지 버림받았던 출라판타카는 부처님을 믿고 따르며 게으름 없이 수행하여 곧 아라한이 되었고 그 후 많은 신통력을 보이며 매우 감동적인 설법으로 대중을 지도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부처님을 믿는 마음만 견고하면 결코 도에서 물러남이 없어서 언젠가는 반드시 도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끝으로 저는 ‘신심이 곧 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교도소 교화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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