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맑고 밝은 삶으로] 천도재의 공덕

淸潭 2008. 3. 2. 22:27

천도재의 공덕

 

천도(薦度)라는 뜻은 보편적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삶을 영위해가는 모든 행동과 행위가 육식(六識; 눈, 귀, 코, 혀, 몸, 뜻의 6종류의 인식작용)을 통해 아뢰야식(阿梨耶識; 가장 근본적인 식의 작용, 감춰진 잠재의식)에 전달되고 전달된 것이 저장되어 모여진 것을 업(業)이라 하며 이 업이 쌓이고 쌓여 그 결과에 따라 육도(六道;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수라도, 인간도, 천도)를 윤회하게 되는데 이 업의 덩어리들을 정화(淨化)하는 작업을 천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재(齋)라는 뜻도 몸, 입, 뜻의 3가지 행위를 삼가하여 몸을 깨끗이 한다든지 죄를 참회하고 새롭게 된다는 것이니 천도와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천도재는 영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고 정법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게 하여 깨달음의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여 생사의 고통스러운 윤회를 벗어나도록 하는 가장 뜻깊고 장엄하고 엄숙한 의식을 봉행하여야 하며 아울러 재(齋)가 외형적인 면에서만 성대히 이루어지는 데 목적을 두지 마시고 더욱 내실적으로 정성을 다하여야겠습니다.
스님들께선 법력과 의범(儀範)에 의하여 천도길을 제시하여 인도해 주시고 대중께서는 오직 일심으로 스님들께서 제시한 길에 영가들이 지나가는 꽃다리를 놓아드리는 심정으로 순간순간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염불을 하여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위신력과 스님들의 도력과 대중의 정성으로 모든 영혼이 악업으로 뭉쳐진 업의 덩어리를 다 놓아버리고 청정무구(淸淨無垢)한 해탈의 복락을 누리게 하여야겠습니다.
특히 영가님들은 영혼의 세계에서 오셔서 형상이나 소리만으로는 통할 길이 없고 다만 간절하고 정성스러운 마음과 법력으로 관해야만 통할 수 있는 것이니 염불을 함에 있어서 소리만 흉내내고 정력(定力)이 없는 고성염불(高聲念佛)이나 정성이 부족한 화려한 재물만으로는 천도재의 목적을 다 성취할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대중의 진실한 참회와 간절한 기도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의식과 발원으로 재를 봉행하여야 영가님과 대중의 업장이 소멸되고 천도재의 목적을 원만히 이루게 됩니다.
제가 이제부터 멋진 재를 지내신 혜월 스님(慧月禪師)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혜월 스님께서는 수덕사와 가까운 덕산면 신평리에서 태어나시어 정혜사(定慧寺)에서 삼촌 되시는 혜안 스님(惠安禪師)을 어머니와 함께 뵈러왔다가 12세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하고 싶어서 혜안 스님과 살다가 15세에 사미계(沙彌戒)를 받으시고, 19세에 천장사(天藏寺)에 계시던 경허 스님(鏡虛禪師)을 찾아가서 참선의 관문(關門)을 두드리기 시작해서 22세에 인가(印可)를 받으시고 남방으로 내려가셔서 선법을 펴셨습니다.
혜월 스님께서 부산에 계실 때 하루는 부산진에 사는 우바새(優婆塞; 남자신도) 한 사람이 찾아와서 아버지의 49재를 스님 계신 절에서 모시고 싶다면서 그 당시로는 상당한 액수의 돈 뭉치를 스님께 드리고 가자 스님께서는 돈 뭉치를 세어보지도 않으시고 그대로 벽장 안에 넣었습니다. 49재가 되는 날 아침 맏상좌이신 운암(雲巖) 스님께서 재 준비를 위해서 부산장에 먼저 내려가면서 스님께 “스님, 제가 먼저 가서 물건을 사 놓으면 스님께서 천천히 돈 가지고 내려오셔서 값을 치르십시오.” 하고 장에 가서 재에 쓸 공양물을 흥정했습니다.
한참 후 스님께서는 돈뭉치를 꺼내서 주머니에 넣으시고 장으로 가시는데 그 때 양쪽 다리가 몽땅 끊어 없어진 걸인이 길 가에 엎드려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순간 주머니에서 돈 뭉치를 꺼내서 모두 걸인에게 주고 장으로 걸어가셨습니다.
운암 스님은 외상으로 재물을 사놓고 스님께서 돈 가져 오시기만을 기다리다 스님을 뵙자마자 돈을 달라고 하니 스님께서는 “응, 벌써 재 다 지냈어.” 하는 말씀 한 마디만 하시고 다시 절로 향해 가셨습니다.
멍하게 서있는 운암 스님에게 스님을 모시고 오다 돈을 어디에 쓰신 줄 아는 마을 사람들이 운암 스님께 그 내력을 말하니 운암 스님은 기가 막혀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인부 두 명까지 구해서 실어놓은 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게에 있으니 잠시 후 이 소문을 들은 재자집에서 돈을 가지고 와서 재를 성대히 지냈으며, 재자들은 혜월 스님같이 도인스님을 뵙게 되고 또 49재도 스님께서 증명해 주신 점에 대하여 더욱 더 존경과 감사의 예를 올렸다고 합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혜월 스님께서 지내신 재야말로 가장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순간에 이루어진 멋진 재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극치입니다. 걸인을 보시는 순간 그 돈이 얼마인지 헤아려 봄도 없이 어떤 돈인지 걸인에게 많다는 생각도 주고도 주었다는 생각도 인사 받을 생각도 없이 바람처럼 지나쳤으니 이 얼마나 멋진 보시이며 재입니까?
범인들로서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조차 없는 무애행으로 금강경(金剛經)에 있는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도리를 여실히 보여주신 위대한 가르침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혜월 스님의 도력 앞에서 그 누가 감복하지 않겠습니까만 재자들의 신심도 칭찬할 만합니다. 재를 잘 모시기 위해서는 삼륜(三輪; 주는 자, 받는 자, 시주물)이 모두 청정해야 하는데 이 49재야말로 재자나 스님이나 공양물이 다 청정하여 서로 상견(相見)을 떠나 공적(空寂)한 경지에서 일체 집착을 여의었으니 가장 수승한 공덕을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법구경(法句經)에서 부처님께서 죽음에 대해 이르시되,

“마음의 집중은 죽음을 벗어나는 길
마음이 집중되어 있지 않음은 죽음의 길
바르게 마음이 집중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마음이 집중되지 못한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삶을 맞이하기 위한 수행의 방법으로 각종 재일에 갖가지 공덕을 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죽음을 초월하는 길을 모르고 사는 백년의 삶보다 단 하루라도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알고 살다가는 것이 바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도의 의미가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므로 모름지기 깨달음을 향해가는 깨어있는 순간 순간이 재를 지어가는 것이지 사후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재라는 치우친 생각은 이제 버려야 겠습니다.
끝으로 만공 스님(滿空禪師)께서 파계사 성전암에 계실 때 이르신 영가천도법문을 전하며 오늘 천도재에 드리는 말씀을 거둘까 합니다.
만공 스님께서 이르시되

“업이 가벼운 자는 명이 짧고,
업이 무거운 자는 명이 기니라.

허무한 것이 진실한 몸이어니
인아상(人我相)이 어디에 있을까 보냐
망령된 정령(精靈)을 쉬어 제하지 아니하고
곧바로 반야선(般若船)을 타리라.
虛無眞實體
人我何所有
妄情不休息
卽泛般若船”

나무아미타불

- 생명나눔실천회 천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