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직책 서거정(徐居正) 무릇 물(物)은 각기 직책이 있다. 소의 직책은 밭가는 것이요, 말의 직책은 사람 태우고 물건 싣는 것이며, 닭의 직책은 새벽을 알리는 것이요, 개의 직책은 밤에 도둑을 지키는 것이니, 능히 제 직책을 다하면 직책을 지킨다 이르는 것이요, 제 직책을 못하면서 다른 직책을 가름하면 직책을 넘어섰다 이르는 것이니, 직책을 넘어서면 이치를 위배하는 것이요, 이치를 위배하면 앙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 가지 물건을 들어서 비유하건대, 닭이 새벽에 울지 아니하고 저녁에 운다면, 사람이 다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반드시 잡아 없애고 말 것이니, 직분을 넘어서는 데서 앙화를 받는 것이 아닌가. 나는 보건대, 양반의 집안에서 사내종은 농사를 직책으로 하고 계집종은 길쌈을 직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