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집 제4주제 논평:눈 먼 방석불교와 다리 저는 책상불교를 넘어서
고영섭(동국대학교 강사)
한 사람의 삶과 생각을 한 편의 논문으로 다 담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선법’이라는 역사와 초역사의 긴장과 탄력 위에서 펼쳐진 한 인간의 살림살이를 언어 문자로 표현해내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립이라는 사건을 통해 언어를 발견하고 도구를 발명한 인간이라는 동물은 언어 문자를 떠나서 자기 표현을 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 역설 위에 서면 더욱더 그러하다.
경허 성우(1846~1912)의 삶과 생각을 점검하고 그 위에서 한국선의 진로까지 모색하는 논자의 논문 「경허성사의 사상체계와 한국선의 진로」는 언어 문자를 넘어서 보여준 한 선사의 소식을 읽어내기 어려움과 아울러 한 인간의 살림살이를 역사 위에서 평가하기 어려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한국사상사 또는 한국불학사의 특징은 한 마디로 ‘종합성’ 과 ‘독창성’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종합성이란 인도-중국 등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사유와 안의 사유를 아우르고 그 위에서 새로운 독창의 색깔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즉 바깥의 단순한 물리적 종합이 아니라 치열한 가열의 고투를 거쳐 화학적 삼투되어 태어난 새로운 맛, 새로운 칼라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사상 또는 한국불학의 독창성은 다양한 이질적 개물들의 물리적 종합인 ‘비빕밥’에서 오기보다는 다양한 이질적 개물들의 화학적 삼투인 ‘곰탕’에서 참다운 살림살이의 진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졸저, ꡔ한국불학사ꡕ(서울:연기사, 1999), 15면.
그러한 모습은 승랑(5c말~6c중), 문아(원측, 613~696) 졸저, ꡔ문아(원측)대사ꡕ(서울:불교춘추사, 1999)
, 원효(617~686) 졸저, ꡔ원효, 한국 사상의 새벽ꡕ(서울:한길사, 1997)
, 의상(625~702), 무상(680~756), 지눌(1158~1210), 일연(1206~1289), 휴정(1520~1604) 등의 살림살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경허 성우의 사상체계는 어떤 것이며 한국사상사 또는 한국불학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를 이 논문은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반추해 보이게 하고 있다.
논자는 경허사상의 구조와 체계를 밝히면서 경허의 살림살이만이 한국선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논자의 글에서는 경허의 살림살이와 역사 속에서의 정당한 평가의 어려움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넘치는 자신감으로 헤쳐가고 있다. 이점에서 평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질문 1>
논자의 평전 ꡔ경허, 길 위의 큰 스님ꡕ(서울:한길사,1999)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이 논문에서 거듭 강조되는 ‘중생해탈’과 짝하는 ‘역사해탈’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질문 2>
논자는 元曉에 대한 一然(1206~1289)의 평가인 ‘聖師’라는 표현을 경허에게 거리낌 없이 붙이고 있다. 일연은 7세기에 살았던 원효에 대한 600여년 동안의 역사적 평가를 종합하여 13세기 말에 민족의 ‘성사’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일연이 원효를 ‘성사’라고 표현한 것은 87부 180여권의 수준높은 저술로 온갖 다양한 주장을 화회(和諍會通)하여 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歸一心源) 모든 생명체들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하였던(饒益衆生) 원효의 풍모가 불교의 일(一) 승려가 아니라 민족의 스승이요 민족의 부처님이며 세계의 정신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원효는 그만큼 몇백년 세월에 걸치는 온갖 풍상을 겪고도 한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있었기에 ‘성사’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산봉우리들의 이름에 붙은 ‘원효봉’, 사암명에 붙은 ‘원효사’ 내지 ‘원효암’, 그리고 거리명에 붙은 ‘원효로’, 다리 이름에 붙은 ‘원효대교’ 등과 같이 우리 민족의 성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인물의 풍모가 세월의 풍상에 좀더 깎이고 다듬어져서 곳곳에 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일찍이 대선사였던 龍城 震鍾(1864~1940)이 경허를 일러 “선마”(禪魔)라고 평가했음과 관계없이, 논자는 아직 입적 100년이 되지 않았고, 한국 역사 속에서 폭넓은 평가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싯점임에도 불구하고, 禪師이자 史家인 일연이 원효를 한국사 속에서 ‘성사’라고 평가한 것에 卽하여 경허를 ‘성사’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연이 원효를 평가한 민족의 ‘성사’라는 용례의 맥락과 논자가 경허를 평가한 ‘성사’의 용례는 같은가 다른가? 이런 평자의 질문에 대한 논자의 답변이 우리의 ‘머리’를 넘어 ‘온몸’으로 전달될 때 우리는 기꺼이 논자의 표현대로 경허를 ‘민족의 성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질문 3>
‘角乘’은 ꡔ삼국유사ꡕ의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위에 놓아 두었으므로 이를 각승이라 했다’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각과 시각 등 이각의 숨은(미묘한) 뜻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원효불기’조목의 일연 贊(詩)을 보면 ‘각승은 처음으로 삼매축을 열었고’라고하여 ‘각승’은 원효의 별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경허불교와 경허선을 ‘각승불교’, ‘각승선’이라 할 때 이것은 ‘원효불교’와 ‘원효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원효’는 고유명사이기 이전에 이미 일반(보통)명사인 ‘새벽’(塞部) 또는 ‘첫새벽’(元曉, 始旦)이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논자는 논문에서 경허불교를 원효에 즉하여 “경허사상은 한 마디로 말해 ‘角乘불교’ 또는 ‘角乘선’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경허를 원효에 구속시키는 것은 아닌가? 경허는 그 나름대로의 가풍을 지니는 독특한 선사다. 그렇다면 경허의 가풍 속에서 경허가 모색한 핵심 키워드(核語)를 그의 사상을 표현하는 술어로 삼아서 해석해야만 경허를 살릴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평자는 ꡔ경허평전ꡕ을 쓰게 될 때 ‘원효에 기대서 경허를 제2의 원효로 만들 것이 아니라 경허를 살려서 원효를 제1의 경허로 만들 수는 없을까’를 생각한다. 경허는 ‘경허’가 되어야지 경허가 ‘원효’가 되어서는 경허 역시 ‘원효의 아류’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때문에 경허를 원효에 즉해서 설명하면 경허를 오히려 죽이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선의 정신은 ‘제 목소리’, ‘제 몸부림의 표현’이지 않은가.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인 ‘승랑’ ‘문아’, ‘원효’, ‘의상’, ‘무상’, ‘균여’, ‘지눌’, ‘일연’, ‘휴정’, ‘퇴계’, ‘남명’, ‘율곡’, ‘다산’, ‘혜강’, ‘추사’, ‘수운’, ‘해월’, ‘동무’, 등은 모두 ‘제 목소리’가 있다. 그래서 눈밝은 史家를 만나면 언제든지 ‘성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元曉가 ‘角乘’이라면 鏡虛는 그 ‘각승’에 상응하는 ‘무엇’이 있어야만 참으로 경허가 될 수 있고, 우리는 경허를 살려낼 수 있다. 그것이 경허가 바로 「悟道歌」 鏡虛, 「悟道歌」(ꡔ한불전ꡕ 제11책, 628하 면). “四顧無人, 衣鉢誰傳, 衣鉢誰傳, 四顧無人,” 여기서 전법의 상징인 ‘衣鉢을 전함’을 자기 아래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기 위로 보아도 그렇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禪의 힘’이 아닌가.
에서 말한대로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구나’(四顧無人)의 표호에 걸맞지 않겠는가. ꡔ경허집ꡕ에는 이러한 경허의 가풍을 살릴 수 있는 독특한 언어들이 무진장하지 않은가. 바로 그것을 찾아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것을 불교라는 틀을 넘어서서 해석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성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질문 4>
사실 선사들의 ‘가풍’과 그들이 남긴 ‘어록’은 상당한 출입이 있기 마련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인 ‘參禪’과 이정표인 ‘禪學’은 그래서 같은 것으로만 단정할 수 없다. 그의 ‘가풍’이나 ‘풍모’는 ‘언어 이전의 소식’이자 ‘손의 언어’(手話)요 ‘몸의 언어’(身語)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 문자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지독한 병이다. 화두를 해석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화두를 해석하지 않아야 된다는 입장은 치열한 화두(疑團) 일념의 역정 속에서 무르익은 내면의 소식을 ‘몸의 언어’를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몸의 언어’로 보여주는 선사들이 우리 역사 속에 드러나서 ‘몸의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불교의 존재가 외화되는 것이다. 화두를 해석해야 된다는 입장은 ‘말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그 의미를 헤아릴 길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말의 언어로는 다가가기 힘든 경계(소식)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의 언어’와 ‘몸의 언어’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 이것이 한국불교도들의 공통된 화두가 아닐까. 경허사상의 구조를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허는 선사다. 선사는 언어 이전의 소식인 몸의 언어를 체험한 사람이다. 그것을 말의 언어로 그대로 그려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참선’과 ‘선학’이 같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논자가 밝힌대로 ‘조료심원’과 ‘피모대각’은 불교의 존재이유이다. 이것은 보편적인 말로 바꾸면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요, 원효의 말로 하면 ‘귀일심원’과 ‘요익중생’이다.
논자는 ‘조료심원’에 ‘진심론’과 ‘진수론’과 ‘진각론’ 세 가지를 배대하고 있고 피모대각에 ‘진인론’을 짝짓고 있다. 그런데 진심론과 진수론과 진각론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이 ꡔ경허집ꡕ에 나오는 여러 구절과 용례를 척출하여 나열해 놓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담론의 제시로는 사상 구조가 되기에 너무 단일하다. 무릇 사상체계를 밝힐려면 해당 인물의 각 담론이 지니고 있는 유기적인 관계성(체계성)을 드러내야 한다. 경허의 사상체계가 ‘불교의 수증구조’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體化되어 있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좀더 구체적으로 경허의 각 담론이 지니고 있는 유기적 체계를 설명해 달라.
<질문 5>
‘피모대각’, ‘화광동진’, ‘이류중행’, ‘수수입전’ 등의 가풍은 이미 신라 성덕왕의 셋째아들로서 오조 홍인의 문하였던 지선-처적의 문하에서 나와 ‘남북종 이전의 한국선의 원류’였던 ‘정중선’ 또는 ‘무상선’을 제창했던 淨衆 無相(680~756)의 가풍에 잘 드러나 있다. 그의 가풍은 南嶽 懷讓을 만나기 전의 젊은 시절의 馬祖 道一의 가풍으로 전해졌고 南泉 普願, 鹽官 齊眼, 百丈 懷海, 章敬 懷暉와 西堂 地藏으로 이어져 신라말의 7산선문의 개(산)조의 가풍 속으로 전해졌었다(비록 남종계열이었지만). 이런 모습은 동리산문의 2대조인 烟起 道詵(신라말)을 거쳐 고려 일연의 莖草禪으로 이어지고 그 맥은 다시 조선의 東峰 雪岑(1435~1493)으로 이어져오다가 끊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송대 大慧 宗杲에 의해 정착된 간화선법이 한국에 전래되어 일반화되기 이전의 한국禪은 被毛戴角, 異類中行, 和光同塵, 合水和泥, 拖泥帶水 등의 매우 역동적인 불교이해의 지평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중선 또는 묵조선(조동선) 계열의 가풍이 그러했듯이, 그것은 오히려 한국의 독창적 선풍이자 부처님의 참다운 정신에 맞닿아있는 가장 불교적인 선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신은 곧 원효의 무애를 통한 대중교화행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경허의 피모대각, 異類中事, 灰頭土面, 화광동진, 垂手入廛 역시 무상선과 직접 닿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논자는 이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허불교의 수행문’에서 “치우친 수행문이 아니라 원융한 수행문이며, 원융문 가운데 경절문을 드러내고 경절문 가운데 원융문도 포용하는 것이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원융문의 참선과 경절문의 返照工夫로서의 간화선을 제시했는데, 그렇다면 원융문의 참선은 간화선에만 한정하는가. 아니면 평자가 위에서 언급한 무상선 이후의 한국선의 역동적 모습인 이류중행의 모습을 포함하는가. 포함한다면 간화선과 피모대각 등의 가풍과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질문 6>
이 질문에서는 경허의 사상을 설명해가면서 많은 인용문을 달고 있다. 그런데 이 인용문은 여러 곳에서 중복되고 있다. 주26)의 ‘보고 듣고’에서부터 마지막의 ‘이것일세’는 주14)에서도 나오고 있고, 주38)의 ‘앉고 서고’부터 중간쯤의 ‘생겼는고’는 주17)에서도 나오고 있고, 주44)의 첫부분인 ‘그마음을’부터 ‘이것일세’는 주14)에서도 나오고 있고, 마지막의 ‘천진면목’부터 ‘내게있다’는 주19)에서도 나오고 있고, 주67)의 첫부분인 ‘蕩蕩無碍’부터 ‘處處로다’까지는 주18)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중복들은 선이 지니는 ‘거두절미’ ‘단도직입’이라는 언어의 경제성을 생각할 때 군더더기라 생각된다.
이러한 몇 가지 질문에도 불구하고 평자는 경허의 삶과 생각에 대한 매우 진전된 시도인 이 논문을 읽고 경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적절한 평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핀치 히터’로 논평의 인연을 맡겨준 논자에게 이 점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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