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德崇禪學 2-4 제4주제:鏡虛聖師의 思想體系와 韓國禪의 進路

淸潭 2008. 2. 22. 17:35
 

德崇禪學2-4 제4주제:鏡虛聖師의 思想體系와 韓國禪의 進路

 

한중광(성균관대학교 강사)

Ⅰ. 序 說

  영원한 시간의 바다 속에 가라앉은 지난 한 세기를 불교철학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반성해 볼 때, 20세기는 ‘밖으로’ ‘위로’의 기치로 치달은 세기였다. 오직 ‘밖으로’ ‘위로’ 치닫는 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과학기술의 造花는 얻었으나 인간과 자연의 生花는 잃어버리고 끝없이 空花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정 우리가 가야할 21세기, 새 천년의 길은 무엇이며 과연 그 길을 누가 온 몸으로 열어줄 수 있겠는가? 뼈아픈 자성으로 천년의 밤을 지새우며 떨리는 가슴으로 새 천년의 첫새벽을 열면서 문득 ‘길은 오직 나에게 있다(道在唯我)’ ‘길은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다(道不遠人)’는 도리를 깨닫게 된다. 진실로 우리가 가야 할 21세기의 참다운 길은 ‘밖으로’ ‘위로’만 치닫는 길이 아니라 ‘안으로’ ‘아래로’ 향하는 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그 ‘안으로’ ‘아래로’ 향한 큰 길을 鏡虛(1846~1912)가 걸어간 ‘부처로’ ‘중생으로’ 향한 길, ‘진리와 자유로’ ‘중생해탈과 역사해탈로’ 향한 길에서 발견한다. 鏡虛는 법호 그대로 부처의 ‘거울(鏡)’이요, 중생의 ‘허공(虛)’과 같은 聖師이다. 一然(1206~1289)은 『三國遺事』에서 한국불교의 첫새벽인 元曉(617~686)를 聖師로 ꡔ三國遺事ꡕ卷4, 「義解」(ꡔ韓佛全ꡕ 6, 347쪽 중). “聖師元曉.”
숭앙하였는데, 이제 필자는 한국근대선의 첫새벽인 鏡虛를 聖師로 우러러 기리며 元曉聖師와 鏡虛聖師의 만남, 그 천년의 만남에서 ‘참사람의 길’ ‘참삶의 길’을 확인한다.
  본고에서는 길의 聖師, 鏡虛의 웅혼한 삶과 그 웅대한 思想의 構造와 體系를 고찰해보고, 韓國佛敎․韓國禪의 進路를 모색하고자 한다.
Ⅱ. 鏡虛의 生涯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까지 ‘威音王佛의 깨침과 삶’을 살았던 鏡虛의 생애는 대체로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탄생에서 8세까지의 有道期는 가난했지만 엄격한 가풍 속에서 자란 탄생․성장의 世間期이다.
  둘째, 9세부터 59세까지 無道期는 9세에 淸溪寺로 출가하여 14세에 東鶴寺로 가서 붓다의 일대시교를 섭렵하고, 23세부터 대강사로서 명성을 떨치다가 34세에 대발심하고 처절한 수행을 하여 확철대오하고, 35세에 天藏庵으로 가서 이듬해 6월까지 悟後保任을 한 후 37세부터 59세까지 선풍을 진작한 수행․성도․전법의 出世間期이다.
  셋째, 60세부터 67세까지의 非道期는 북녘에서 빈배처럼 떠돌며 스스로 朴蘭洲라 부르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서 손을 드리우며 저자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제도한 異類中行의 出出世間期이다.

  만약 보살이 길 아닌 길(지옥․아귀․축생의 길)에 간다면 불도를 통달하는 것입니다. ꡔ維摩詰所說經ꡕ, 「佛道品」(ꡔ大正藏ꡕ 14, 548쪽 하~549쪽 상). “若菩薩 行於非道 是爲通達佛道.”

  이러한 世間을 넘어 出世間으로, 다시 出世間을 넘어 出出世間으로 펼쳐지는 극적인 생애에서 닦음과 깨침 그리고 깨친 후의 삶을 조명해 보는 것은 鏡虛思想의 構造와 體系를 모색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鏡虛는 닦음과 깨침 그리고 삶에 있어 후세에 참사람과 참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닦되 닦음이 없이 닦고(修無修修) 깨치되 깨침이 없이 깨쳐서(證無證證) 神劍으로 邪法을 깨뜨리고 活眼으로 正法을 드러내며 자비의 구름(慈雲)을 드리우고 지혜의 비(慧雨)를 내려서 중생해탈과 역사해탈의 연꽃을 피워내니 知行合一․覺行圓滿․行解相應의 참부처요 참사람이다.
천산을 저울질하는(秤千山) 敎學과 건곤을 삼키고 뱉는(呑吐乾坤) 禪旨, 높이와 폭을 아우른 理論과 實踐, 무애자재한 順行과 逆行, 不器와 不羈의 삶은 실로 三界火宅과 四生苦海를 벗어나려는 이에게 청량한 감로수와 같다 할 것이다.

Ⅲ. 鏡虛思想의 構造와 體系

  1. 思想構造
  鏡虛는 그의 저술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思想 構造와 體系를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鏡虛思想의 構造와 體系는 그가 남긴 저술과 닦음과 깨침의 과정 및 깨친 후의 삶을 분석 종합해서 발견할 수밖에 없다.
  佛儒道 三家에 정통하고 초인적인 參禪修行을 하여 古佛古祖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후 法輪을 굴리며 正法을 선양하고 被毛戴角의 길을 간 鏡虛의 생애와 삼세 모든 부처님의 골수요 역대 조사의 안목인 ꡔ鏡虛集」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鏡虛의 思想은 한마디로 말해 被毛戴角佛敎․被毛戴角禪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필자는 角乘佛敎․角乘禪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 핵심어는 了와 角이고, 그 핵심구는 照了心源과 被毛戴角이며, 이는 다시 眞心論․眞修論․眞覺論․眞人論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鏡虛思想의 構造






眞心論

道之本體

妙體

無心












照了心源


眞修論

道之直截

妙行

無住








被毛戴角佛敎․角乘佛敎





眞覺論

道之綱領

妙悟

無生











被毛戴角


眞人論

道之大用

妙用

無碍









  ‘마음 근원을 비추어 요달하라(照了心源)’는 것은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 마음 근원을 了達하고 위 없는 바른 깨침을 증득하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본질인 참 마음은 도의 본체(道之本體)요, 빛을 돌이켜 비추는 참 닦음은 도의 지름길(道之直截)이요, 참 마음을 보아 위 없이 바른 깨침을 증득하는 참 깨달음은 도의 강령(道之綱領)이다.

  빛을 돌이켜 비추어 마음 근원을 비추어 요달하라. ꡔ鏡虛集ꡕ, 「示法界堂」(ꡔ韓佛全ꡕ 11, 595쪽 상). “廻光返照 照了心源.”

  마음 근원을 돌이켜 비추어 공력을 들이고 오로지 정성을 들인다면 비록 삼장의 가르침을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삼장의 가르침이 여기에 있다. ꡔ鏡虛集ꡕ, 「正法眼藏序」(ꡔ韓佛全ꡕ 11, 600쪽 하). “返照於心源 用功專精 雖不用看過藏敎 藏敎在焉.”


  ‘몸에는 털을 덮어쓰고 머리에는 뿔을 이라(被毛戴角)’는 것은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성취한 뒤에 털을 덮어쓰고 뿔을 인 소나 말이 되어 일체 중생 속에 들어가 더불어 살아가며 교화 제도하는 부처의 삶을 말한다. 불보살이 스스로 생사윤회하는 육도 중생 속에 들어가 뭇 중생을 불법으로 인도하는 無緣慈悲의 삶, 참 사람의 삶이 바로 도의 큰 작용(道之大用)이다.

이류 속의 일
털을 덮어쓰고 아울러 뿔을 이었으니
등잔과 선탑에 벌레 우는 소리뿐
조사는 지금 이 몸 밖에서
오랜 세월 저자거리 뛰어다니네. ꡔ鏡虛集ꡕ, 「尋牛頌」(ꡔ韓佛全ꡕ 11, 630쪽 하). “異類中事 被毛兼戴角 燈榻語啾啾 祖師今身外 長年走市頭.”


  각 담론의 유기적 체계를 설명하면 경허불교의 핵심구인 ‘照了心源과 被毛戴角’에서 心源은 眞心論, 照는 眞修論, 了는 眞覺論, 被毛戴角은 眞人論에 배대할 수 있다. 眞心論은 경허가 깨달은 眞心에 대한 담론이고, 眞修論은 眞心을 깨닫는 수행에 대한 담론이며, 眞覺論은 참 깨달음 즉 無上正覺에 대한 담론이고, 眞人論은 無上正覺을 이룬 眞人의 삶에 대한 담론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眞心論은 眞心이 도의 본체임을 밝힌 담론이고, 眞修論은 廻光返照하는 미묘한 수행이 도의 지름길임을 밝힌 담론이며, 眞覺論은 眞心을 깨달아 無上正覺을 이룸이 도의 강령임을 밝힌 담론이고, 眞人論은 無上正覺을 이룬 뒤 被毛戴角의 길을 걸으며 뭇 생명으로 하여금 眞心을 깨달아 正覺을 이루게 하는 부처의 삶이 바로 도의 큰 작용임을 밝힌 담론인 것이다. 이 照了心源을 생명으로 하고 被毛戴角을 본분으로 하는 경허불교를 필자는 被毛戴角佛敎․角乘佛敎라 한 것이다.








返照

眞修論

















心源

眞心論









被毛戴角



眞人論


















了達

眞覺論


















  원효불교를 상징하는 ‘角乘’의 유래는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위에 두고 ꡔ金剛三昧經疏ꡕ를 지었기 때문이며, 그 뜻은 本覺과 始覺 二覺이라고 전해진다.

  길에서 ꡔ금강삼매경소ꡕ를 지으며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위에 두었기 때문에 각승이라 하는데, 이 또한 본각과 시각 두 각의 미묘한 뜻을 나타낸 것이다. ꡔ三國遺事ꡕ 卷4, 「義解」(ꡔ韓佛全ꡕ 6, 348쪽 중). “於路上 撰三昧經疏 置筆硯於牛之兩角上 因謂之角乘 亦表本始二覺之微旨也.”


  필자가 경허불교를 ‘被毛戴角佛敎․被毛戴角禪, 角乘佛敎․角乘禪’이라고 한 까닭은 경허 스스로 법어와 남긴 글에서 被毛戴角․異類中行․和光同塵․垂手入廛․灰頭土面․和泥合水를 누누이 강조하면서 被毛戴角의 길이야 말로 불교 본연의 길임을 주창했고, 또한 홀로 被毛戴角의 거룩한 삶을 구현했기 때문이며, 그 참뜻은 원효의 角乘과 경허의 被毛戴角 二角의 미묘한 뜻을 동시에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비록 ꡔ宋高僧傳ꡕ과 ꡔ三國遺事ꡕ에서 원효불교를 角乘이라 한 배경과 필자가 경허불교를 角乘佛敎라 한 배경은 다르지만, 굳이 필자가 角乘佛敎라 한 것은 첫째 경허불교의 골수는 바로 被毛戴角에 있고, 둘째 붓다의 정신과 一乘의 골수도 被毛戴角에 있으며, 셋째 원효의 角乘과 경허의 被毛戴角佛敎가 근본 정신에 있어 둘이 아니고, 넷째 한국불교사상사에서 두 거봉인 원효와 경허의 만남 그 천년의 만남을 통해서 한국불교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나아가 인류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원효와 경허의 공통 핵심어인 ‘角’에서 角乘佛敎라 한 것이다.

  2. 思想體系
    1) 眞心論
  붓다는 “마음이 만법의 근본” ꡔ法句經ꡕ, 「雙要品」(ꡔ大正藏ꡕ 4, 562쪽 상). “心爲法本.”
이요 “마음이 부처” ꡔ般舟三昧經ꡕ, 「行品」(ꡔ大正藏ꡕ 13, 906쪽 상). “心是佛.”
임 밝히고, 마음의 근원을 알고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함이 없는 법을 깨치면, 닦음도 없고 깨침도 없어서 모든 지위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 바로 여래의 땅에 들어가 대열반의 삶, 대해탈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 바로 佛道임을 선언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알고 부처님의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함이 없는 법을 깨치면, 안으로 얻을 바 없고 밖으로 구할 바 없어서 마음이 도에도 묶이지 않고 업도 짓지 않아서 망념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닦음도 없고 깨침도 없어서 모든 지위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높고 가장 뛰어나니 이것을 도라고 한다. ꡔ四十二章經ꡕ(ꡔ大正藏ꡕ 17, 722쪽 중). “識自心源 達佛深理 悟佛無爲 內無所得 外無所求 心不繫道 亦不結業 無念無作 無修無證 不歷諸位 而自崇最 名之爲道.”

  大乘佛敎의 아버지요 제2의 釋迦로 칭송되는 龍樹(Nāgārjuna, 150~250년 경)도 “마음이 곧 부처” ꡔ大智度論ꡕ(ꡔ大正藏ꡕ 25, 276쪽 중). “心卽是佛.”
라고 했고, 중국 禪佛敎의 완성자인 六祖慧能(638~713)도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다” ꡔ六祖大師法寶壇經ꡕ(ꡔ大正藏ꡕ 48, 551쪽 상). “若識本心 卽本解脫.”
고 했으며, 한국 禪佛敎의 철학적 토대를 이룩한 知訥(1158~1210)도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함께 깨친 것도 이 마음을 깨친 것이며 …… 모든 조사가 서로 전한 것도 이 마음을 전한 것이다” ꡔ眞心直說ꡕ(ꡔ韓佛全ꡕ 4, 717쪽 상~중). “三世諸佛同證 盖證此心也 …… 一切諸祖相傳 盖傳此心也.”
고 했다.
  이와같이 삼세의 모든 부처와 역대 조사가 자비로 드리운 법문이 오직 이 ‘마음’을 설했듯이, 鏡虛도 ‘佛法은 다만 마음에 있으니 마음을 알면 곧 부처이다’라고 재천명하고 있다.

  삼천대천세계에 누가 꿈속 아니랴
  불법은 다만 마음에 있네 ꡔ鏡虛集ꡕ, 「香閣」(ꡔ韓佛全ꡕ 11, 639쪽 중). “大界誰非夢 玄門祗在心.”


보고듣고     앉고서고     밥도먹고     똥도누고
언어수작     때로하고     희로애락     분명하다
그마음을     알게되면     진작부처     이것일세 ꡔ鏡虛集ꡕ, 「법문곡」(ꡔ韓佛全ꡕ 11, 635쪽 하).


  불교의 핵심축은 오직 이 ‘마음’이며 8만 대장경의 골수도 오직 이 ‘마음’이니, 불교는 마음의, 마음에 의한, 마음을 위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삼계에 있는 것은 오직 한마음이요 ꡔ大方廣佛華嚴經ꡕ, 「十地品」(ꡔ大正藏ꡕ 10, 194쪽 상). “三界所有 唯是一心.”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냄이다. ꡔ大方廣佛華嚴經ꡕ, 「夜摩宮中偈讚品」(ꡔ大正藏ꡕ 10, 102쪽 중). “一切唯心造.”
마음이 곧 부처라(心是佛)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心外無別佛)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으며(佛外無別心), 마음이 곧 법이라(心是法) 마음 밖에 법이 없으며(心外無法), 마음이 곧 도라(心是道) 마음 밖에 도가 없으니, 鏡虛는 佛法은 다만 마음에 있으며 마음을 알면 곧 부처임을 사자후한 것이다.
  鏡虛는 萬法의 本源, 존재의 實相을 마음․부처․眞心․眞如․佛性․心源․本心․一物․寶藏․本來面目․天眞面目․本地風光 등으로 이름하고, 一切處 一切時에 昭昭靈靈하게 知覺하고 神通妙用이 분명하며 不生不滅함을 밝히고 있다.

                앉고서고        보고듣고
着衣喫飯        對人接語        一切處        一切時에
昭昭靈靈        知覺하는        이것이        어떤건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妄想煩惱        本空하고
天眞面目        나의부처        보고듣고        앉고눕고
잠도자고         일도하고        눈한번        깜작할새
千里萬里        다녀오고        許多한         神通妙用
分明한        나의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ꡔ鏡虛集ꡕ, 「參禪曲」(ꡔ韓佛全ꡕ 11, 631쪽 상).


                淸淨光明        眞如佛性
나도않고        죽도않고        無爲眞樂        恒常이요
蕩蕩無碍        自在하니         寂光土        좋은國土
白雲流水        處處로다 ꡔ鏡虛集ꡕ, 「可歌可吟」(ꡔ韓佛全」 11, 633쪽 하).


                        천진면목
좋은부처        완연히        내게있다        살도죽도
않는물건        완연히         이것이다        금을주니
바꿀소냐        은을주니        바꿀소냐        부귀공명도
부럽지않다        하늘땅이        손바닥        위에있고
천만년이        일각이오        허다한        신통묘용
불에들어        타지않고        물에젖어        젖지않고
크려면        한량없고        작으려면        미진같고
늙도않고        죽도않고        세상천지        부러울것이
다시무엇        있을소냐 ꡔ鏡虛集ꡕ, 「법문곡」(ꡔ韓佛全ꡕ 11, 635쪽 하~636쪽 상).


  그리고 靈知하고 淸淨한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고, 모든 중생이 본래 이 마음을 갖추고 있으므로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님을 ꡔ鏡虛集ꡕ, 「茵峯和尙影贊」(ꡔ韓佛全ꡕ 11, 614 상). “生佛不二.”
갈파하고 있다.

  내게 있는 내 마음이 부처가 아니면 무엇인가. 「鏡虛集ꡕ, 「중노릇 하는 법」(ꡔ韓佛全」 11, 599쪽 중).


  사람마다 다 한량없는 보배 창고가 있어서 부처와 다름이 없다. ꡔ鏡虛集ꡕ, 「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文」(ꡔ韓佛全ꡕ 11, 603쪽 하). “人人皆有無量寶藏 與佛無殊.”


  평범한 보통 사람이 본래 비로자나로다. ꡔ鏡虛集ꡕ, 「悟道歌」(ꡔ韓佛全ꡕ 11, 629쪽 상). “張三李四本毘盧.”

  鏡虛는 마음에 대하여 체계적인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일체 중생의 本來面目이 空寂靈知하고 不生不滅한 참 마음이며, 이 참 마음을 깨달아 영원한 진리의 삶 영원한 자유의 삶을 살아갈 것을 간곡하게 일러주고 있다.

    2) 眞修論
  붓다의 가르침은 본래 一心이고 一法이며 一味이고 一乘이며 一道이다. 그러나 ꡔ金剛經ꡕ에서 “모든 賢聖이 함이 없는 법으로써 차별을 둔다” ꡔ金剛般若波羅密經ꡕ(ꡔ大正藏ꡕ 8, 749쪽 중).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고 설하듯이, 중생의 근기와 병에 따라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삼세의 부처와 역대 조사는 대자비로 눈썹을 아끼지 않고 설할 수 없는 법을 설했고, 범부 중생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들을 수 없는 법을 들어왔다. 산더미같은 8만 4천 법문 중 과연 修行正路는 무엇이며 入道正眼은 무엇인가? 禪과 敎를 통달하고 宗通과 說通을 아우른 경허가 제시하는 참 닦음은 무엇인가?
  경허는 부처를 이루는 참 닦음의 요체는 마음을 깨치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부처 되려면 내 몸에 있는 내 마음을 찾아 보아야 하는 것이니 ꡔ鏡虛集ꡕ, 「중노릇 하는 법」(ꡔ韓佛全ꡕ 11, 597쪽 상).


                사람이라        하는것이
몸뚱이는        송장이요        허황한        빈껍데기
그속에        한낱부처        분명히        있는구나
보고듣고        앉고서고        밥도먹고        똥도누고
언어수작        때로하고        희로애락        분명하다
그마음을        알게되면        진작부처        이것일세 ꡔ鏡虛集ꡕ, 「법문곡」(ꡔ韓佛全ꡕ 11, 635쪽 하).


                내마음을        못닦으면
如干戒行        少分福德        도무지        虛事로세 ꡔ鏡虛集ꡕ, 「參禪曲」(ꡔ韓佛全ꡕ 11, 632쪽 하).


  鏡虛는 마음을 바르게 닦고 바르게 깨쳐서 부처를 이루는 修行法의 양 수레바퀴로 禪敎兼修와 定慧雙修를 주창한다. 鏡虛는 불교사상사에서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인 禪敎의 대립 갈등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悟道歌」에서 禪과 敎가 본래 둘이 아님을 선언하고 있다.

  부처와 조사라고 이름하며 선과 교를 설하지만 어찌 특별히 다르리요. 분별을 냄이로다. 돌사람이 피리 불고, 목마가 졸고 있네. ꡔ鏡虛集ꡕ, 「悟道歌」(ꡔ韓佛全ꡕ 11, 629쪽 상). “名佛祖 說禪敎 何殊特地 生分別 石人唱笛 木馬打睡.”


  禪敎不二를 선언하여 선 없는 교의 병폐를 미친 지혜(狂慧)로, 교 없는 선의 병폐를 어리석은 선(痴禪)으로 비판하고, 진실한 말씀의 가르침(如實言敎)을 빌어서 스스로 닦고 스스로 깨달아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으려면 그 가르침을 빌리지 않고서는 아니될 것이니, 마치 씨앗이 생장함에 진실로 물과 흙을 의지하며 보배가 어두운 방에 있음에 반드시 등불을 빌려야 함과 같다. ꡔ鏡虛集ꡕ, 「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文」(ꡔ韓佛全ꡕ 11, 603쪽 상). “夫欲其自悟自修也 不可不借其言敎 如種之生長 寔賴水土 寶在暗室 必借燈光.”

  경허가 천명한 禪敎不二의 가르침은 敎없는 禪의 치우침에 떨어진 暗證禪師와 禪없는 敎의 치우침에 떨어진 文字法師의 병을 치유하고, 禪과 敎․觀照般若와 文字般若를 雙遮雙照하는 참 수행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禪敎不二을 선언하고 禪敎兼修를 주창하여 눈 먼 방석불교와 다리 저는 책상불교를 경책하고, 定慧雙修를 천명하고 있다.

  마땅히 무상이 덧없이 빠르고 나고 죽는 일이 큼을 생각하여 정혜를 부지런히 닦아야 할 것이니, 만약 정혜를 부지런히 닦지 않고 깨달음의 과실을 구하는 것은 뒷걸음질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며 월나라로 가려고 하면서 북쪽으로 수레를 모는 것과 같다. ꡔ鏡虛集ꡕ, 「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文」(ꡔ韓佛全ꡕ 11, 605쪽 상). “當念無常迅速生死事大 勤修定慧 若不勤修定慧而求佛果者 如却行求前 適越北轅.”


  그리고 ꡔ鏡虛集ꡕ과 범어사에서 편찬한 ꡔ禪門撮要ꡕ 그리고 제자들을 지도한 수행법을 분석해보면 修行門은 圓融門과 徑截門을 동시에 열어놓고 있다. 참선․주력․염불․기도 등의 수행이 마음 밖의 것이 없으며, ꡔ鏡虛集ꡕ, 「上張上舍金石頭書」(ꡔ韓佛全ꡕ 11, 611쪽 상~중). “禪誦祈念等行 無非是外.”
看話門의 惺寂等持와 念佛門의 一心不亂이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看話門에서는 惺寂等持하면 반드시 견성한다 설하고, 念佛門에서는 一心不亂하면 결정코 왕생한다고 설한다. 一心不亂이 어찌 惺寂等持가 아니겠는가. 만약 一心不亂을 타력이라 한다면 惺寂等持가 어찌 타력이 아니며, 만약 惺寂等持를 자력이라 한다면 一心不亂이 어찌 자력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一心不亂과 惺寂等持는 과연 어느 것이 더디고 어느 것이 빠르며, 어느 것이 어렵고 어느 것이 쉬운가. ꡔ鏡虛集ꡕ, 「與藤菴和尙」(ꡔ韓佛全ꡕ 11, 593쪽 상). “看話門中 說惺寂等持 必能見性 念佛門中 說一心不亂 決定往生 一心不亂 豈非惺寂等持耶 若以一心不亂 以爲他力 惺寂等持 豈非他力 若以惺寂等持 以爲自力 一心不亂 豈非自力 夫然則一心不亂 與惺寂等持 果孰遲孰速 孰難孰易乎.”


  鏡虛가 ꡔ禪門撮要ꡕ에 수록한 ꡔ血脈論ꡕ, ꡔ觀心論ꡕ, ꡔ菩提達摩四行論」, ꡔ最上乘論ꡕ, 「宛陵錄ꡕ,  ꡔ傳心法要ꡕ, ꡔ蒙山法語ꡕ, ꡔ禪警語ꡕ, ꡔ修心訣ꡕ, ꡔ眞心直說ꡕ, ꡔ勸修定慧結社文ꡕ, ꡔ看話決疑論ꡕ, ꡔ禪門寶藏錄ꡕ, ꡔ禪門綱要集ꡕ, ꡔ禪敎釋ꡕ 등 문헌들의 저자와 내용, 그리고 제자들을 지도한 수행법 즉 水月(1855~1928)은 ꡔ千手經ꡕ을 지송하다가 千手大悲呪三昧를 얻었고, 慧月(1862~1937)과 滿空(1871~1946)은 公案을 참구해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漢巖(1876~1951)은 경허의 ꡔ金剛經ꡕ 강의를 듣고 깨달음을 얻은 사실들을 살펴보면 경허가 제시한 수행문이 圓融門임을 알 수 있다. 중생들의 근기와 병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방편과 약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실로 한 법도 버릴 법이 없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한 법도 옳다고 결정하지 말며, 한 법도 그르다고 결정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망령됨을 물리치고 참됨을 도모하며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함이 함께 밧줄을 잡고 스스로를 묶는 것이다. 만일 대도를 깨달은 사람은 한 법도 옳다고 보지 않으니 어찌 한 법이 그름이 있으리요. ꡔ鏡虛集ꡕ, 「與藤菴和尙」(ꡔ韓佛全ꡕ 11, 594쪽 상). “古人云 不定一法是 不定一法非 斥妄謀眞 捨此取彼 幷是執縛自繩 若悟大道之人 不見一法是 何有一法非.”


  확철대오해서 참 마음을 깨친 佛祖의 경계에서는 8만 4천 법문이 모두 生死의 병을 치료하는 妙藥 아님이 없고 涅槃城에 이르게 하는 正路 아님이 없다. 그러나 깨치지 못한 범부 중생의 경계에서는 8만 4천 법문의 말에 떨어져 뜻을 잃어버리고 방편에 떨어져 진실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경허는 “了義에 의지하고 不了義에 의지하지 말라” ꡔ鏡虛集ꡕ, 「梵魚寺設禪社契誼序」(ꡔ韓佛全ꡕ 11, 600쪽 중). “依了義不依不了義.”
고 경계하고, 마음을 깨닫는 미묘한 수행법이 返照工夫임을 밝힌다.

                찾는길이        여럿이나
아주옅게        말할진대        返照工夫        最妙하다 ꡔ鏡虛集ꡕ, 「可歌可吟」(ꡔ韓佛全ꡕ 11, 634쪽 상).


  그 廻光返照하는 구체적인 수행법으로 話頭을 참구해서 마음을 깨닫는 看話禪을 徑截門으로 제시한다. 鏡虛는 주로 가장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話頭라고 할 수 있는 ‘이뭣고(是甚麽)’話頭와 가장 대표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는 ‘無字’話頭를 가지고 바른 참구법을 설하고 있다.

  항상 내마음을 궁구하되 보고 듣고 일체일을 생각하는 놈이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고 모양이 있는 것인가 모양이 없는 것인가 큰가 작은가 누른가 푸른가 밝은가 어두운가 의심을 내어 궁구하되 고양이가 쥐잡듯 하며 닭이 알 안듯 하며 늙은 쥐가 쌀든 궤짝 쫓듯 하여 항상 마음을 한군데 두어 궁구하여 잊어버리지 말고 의심하여 일을 하더라도 의심을 놓지 말고 그저 있을 때라도 의심하여 지성으로 하여 가면 필경에 내마음을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니 부디 신심을 내어 공부할지니라. …… 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고 의심하여 오고 의심하여 가고 간절히 생각하기를 배고픈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여 잊지 말고 할지니라. …… 내마음을 항상 의심하여 궁구하면 자연 고요하고 깨끗하여 지나니 극히 고요하고 깨끗하면 절로 마음을 깨달아 부처 되느니라. 돌아가지 아니하고 곧은 길이니 이렇게 하여 갈지니라. ꡔ鏡虛集ꡕ, 「중노릇 하는 법」(ꡔ韓佛全ꡕ 11, 597쪽 상~599쪽 상).


닦는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추려        적어보세        앉고서고        보고듣고
着衣喫飯        對人接語        一切處        一切時에
昭昭靈靈        知覺하는        이것이        어떤건고
몸뚱이는        송장이요        妄想煩惱        本空하고
天眞面目        나의부처        보고듣고        앉고눕고
잠도자고        일도하고        눈한번        깜작할새
千里萬里        다녀오고        許多한        神通妙用
分明한        나의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疑心하고        疑心하되        고양이가        쥐잡듯이
주린사람        밥찾듯이        목마른이        물찾듯이
六七十        늙은寡婦        子息을        잃은후에
子息생각        간절틋이        생각생각        잊지말고
깊이궁구        하여가되        一念萬年        되게하여
廢寢忘飧        할지경에        大悟하기        가깝도다 ꡔ鏡虛集ꡕ, 「參禪曲」(ꡔ韓佛全ꡕ 11, 631쪽 상~중).


  이와 같이 경허가 제시한 修行門은 치우친 수행문이 아니라 원융한 수행문이며, 圓融門 가운데 徑截門을 드러내고 徑截門 가운데 圓融門도 포용하는 것이다. 경허불교의 修行門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鏡虛佛敎의 修行門






參禪
















看經













圓融門
念佛













修行門

祈禱
















呪力












徑截門


返照工夫

看話禪








  경허가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선언하고 모든 修行門이 마음 밖의 것이 없음을 밝히고도 무엇 때문에 話頭를 참구해서 마음을 깨닫는 看話禪을 徑截門으로 제시했을까? 먼저 불교의 修證構造와 간화선의 修證構造를 살펴보고, 경허가 간화선을 徑截門으로 제시한 참 뜻을 밝히고자 한다.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見性成佛)’고 했는데, 그 닦음과 깨침의 구조는 무엇일까? 일체 중생이 다 眞如佛性을 구족하고 있는 본래 부처(本覺)이므로 닦을 것도 깨달을 것도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생사윤회하는 범부 중생(不覺)이므로 마음을 닦아서 깨달아야 하는 것(始覺)이다. 佛性을 직접 원인(正因)으로 하고 發菩提心과 修行을 간접 원인(緣因)으로 하여 無上正覺(佛果)을 얻는 것이다.

  내가 두 가지 원인을 설하였으니,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이다. 직접 원인은 불성이라 하고, 간접 원인은 보리심을 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인연으로 위 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는 것이니 마치 돌에서 금이 나는 것과 같다. ꡔ涅槃經ꡕ, 「師子吼菩薩品」(ꡔ大正藏ꡕ 12, 778쪽 상). “我說二因正因緣因 正因者名爲佛性 緣因者發菩提心 以二因緣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如石出金.”


  佛性은 씨앗(正因)이고 發菩提心과 修行은 씨앗을 심어서 기르는 것(緣因)이며 無上正覺은 그 열매(佛果)인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佛敎의 修證構造



正因


佛性


本覺













發心














緣因





始覺












修行















佛果


正覺


本覺







  看話禪의 닦음과 깨침의 구조를 비유해서 설명하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망상으로써 섶을 삼고(以煩爲柴) 화두로써 화로를 삼아(以話爲爐) 그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바로 짚어넣고 태워서 지혜의 불을 일으켜(作智慧火) 열반의 밥을 짓는다(作涅槃飯)’고 할 수 있다. 이러한 修證構造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看話禪의 修證構造



煩惱妄想


以煩爲柴


不覺













以話爲爐












看 話 禪


話頭參究





始覺













作智慧火















眞如佛性


作涅槃飯


本覺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始覺으로써 本覺에 계합하는 간화선의 修證構造 역시 佛性을 正因으로 發心과 修行을 緣因으로 하여 無上正覺을 얻는 불교의 修證構造에 토대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수행법이 화두를 참구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生死가 곧 涅槃 ꡔ攝大乘論ꡕ 卷下(ꡔ大正藏ꡕ 31, 129쪽 중). “生死卽涅槃.”
이요 煩惱가 곧 菩提 ꡔ六祖大師法寶壇經ꡕ(ꡔ大正藏ꡕ 48, 350쪽 중). “煩惱卽菩提.”
이니, 수행 또한 生死와 煩惱를 떠나서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 世間을 무너뜨리지 않고 世間을 뛰어나며, 煩惱를 끊지 않고 涅槃에 드는 것이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에 드는 것을 좌선이라 합니다. ꡔ維摩詰所說經ꡕ(ꡔ大正藏ꡕ 14, 539쪽 하). “不斷煩惱 而入涅槃 是爲宴坐.”


  돈오를 닦는 사람은 이 몸을 떠나지 않고 곧 삼계를 뛰어나니, 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무너뜨리지 않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않고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ꡔ頓悟入道要門論ꡕ(ꡔ卍續藏經ꡕ 110, 849쪽 하). “修頓悟者 不離此身 卽超三界 經云 不壞世間而超世間 不捨煩惱而入涅槃.”


  看話禪의 수행도 번뇌망상을 끊고 話頭를 참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떠나지 않고 다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話頭를 참구하는데 그 요체가 있는 것이다. 번뇌망상의 자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참 성품이 바로 佛性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돌이키고 돌이켜서 그 근원으로, 佛性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 그 강의 수원지에 도달하듯이 일어나는 모든 번뇌망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그 번뇌망상의 근원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모든 번뇌망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 바로 화두참구이다.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사람은 땅으로 인하여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번뇌망상으로 인하여 육도윤회를 하는 중생은 번뇌망상으로 인하여 육도윤회를 해탈하는 것이다. 한 생각 미혹하면 깨닫지 못한 중생이요, 화두를 들어 한 생각 돌이켜서 근원에 사무쳐버리면 바로 부처인 것이다.

  한 마음을 미하여 가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이는 중생이요, 한 마음을 깨달아 가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는 모든 부처다. ꡔ勸修定慧結社文ꡕ(ꡔ韓佛全ꡕ 4, 698쪽 상). “迷一心而起無邊煩惱者 衆生也 悟一心而起無邊妙用者 諸佛也.”


  예를 들면 ‘이뭣고’ 화두를 참구하는 경우 일체의 알음알이를 버리고 다만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이렇게 참구하면 된다. 이와같이 빈부귀천과 남녀노소 그리고 유식무식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닦을 수 있는 쉽고 간단하며 미묘한 返照工夫이기 때문에 경허는 看話禪을 徑截門으로 제시한 것이다. 경허는 발심이 철저하다면 똥 누고 오줌 누는 이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닦을 수 있음을 누누이 웅변하고 있다.

그마음을        알게되면        진작부처        이것일세
찾는법을        일러보세        누나서나        밥먹으나
자나깨나        움직이나        똥을누나        오줌누나
웃을때나        골낼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깊이        의심하여        궁구하되        이것이
무엇인고        어떻게         생겼는가        큰가작은가
긴가짧은가        밝은가        어두운가        누른가
푸른가        있는것인가        없는것인가        도시어떻게
생겼는고         시시때때로        의심하여        의심을
놓지말고        염념불망         하여가면        마음은
점점맑고        의심은        점점깊어        상속부단
할지경에        홀연히        깨달으니        천진면목
좋은부처        완연히        내게있다 ꡔ鏡虛集ꡕ, 「법문곡」(ꡔ韓佛全ꡕ 11, 635쪽 하).


  일부에서 看話禪을 일부 상근기만이 깊은 산속에서만 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 오해하지만, 이는 實參實修 없이 死句參禪을 일삼는 책상불교의 산물이거나 맹목적 우월감으로 최상승을 주장하는 방석불교의 산물일뿐이다. 鏡虛가 看話禪을 경절문으로 제시한 참뜻은 오직 중생을 향한 끝없는 자비심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경허는 중국종파불교의 역사적 산물인 교판사상의 치우친 禪敎觀을 극복하고 부처님 마음인 선과 부처님 말씀인 교가 다르지 아니함을 선언하고, 8만 4천 법문이 모두 마음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므로 圓融門을 설한다. 그러나 범부 중생은 8만 4천 법문이 근기와 병에 따라 마음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妙藥인 줄을 모르고 문자에 집착하고 방편에 떨어져 밖으로 구하기 때문에, 일체의 사량분별과 이론을 배제하고 오직 알 수 없는 꽉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서 眞如佛性을 깨닫는 看話禪을 徑截門으로 제시한 것이다.
  경허는 참 수행의 길로 먼저 밖에서 구하지 말고 자신으로써 섬을 삼고(以自爲洲) 법으로써 의지처를 삼으며(以法爲依), 지니고 범함이 둘이 아닌 理戒로써 스승을 삼고(以戒爲師), 진실한 말씀의 가르침인 敎로써 등불을 삼아(以敎爲燈) 廻光返照하여 마음 근원을 요달하는 禪으로써 지름길을 삼고(以禪爲徑), 歸宗禪師의 다리를 펴고 통곡한 것으로써 법칙을 삼아(以哭爲則)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용맹정진하되 위 없는 바른 깨달음으로써 법칙을 삼아야(以悟爲則) 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修行門의 두 날개로 圓融門과 徑截門을, 修行法의 두 수레바퀴로 禪敎兼修와 定慧雙修를 제시하고 있다.

    3) 眞覺論
  불교는 自覺․覺他․覺滿의 가르침이니, 진실로 깨침은 불교의 시작이요 끝인 것이다. 불교의 생명인 깨침은 과연 무엇을 깨닫는 것이며, 참 깨침은 무엇인가?
  경허는 ‘본래 마음’ 또는 ‘성품’을 깨쳐서 부처를 이룸을 밝히고 있다.

  나의 본래 마음을 깨달으니 …… ꡔ鏡虛集」, 「悟道歌」(ꡔ韓佛全ꡕ 11, 629쪽 상). “悟我本心.”


  마땅히 그 본래 마음을 궁구하여 정밀하게 연마해서 밝고 미묘하면 백천 가지 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으리니 모든 부처와 조사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ꡔ鏡虛集ꡕ, 「贈承華上人」(ꡔ韓佛全ꡕ 11, 595쪽 하). “當究其本心 硏精 明妙則 百千三昧 無量妙義 不求而自得 諸佛祖豈異人哉.”


  ‘본래 마음’이란 眞心이요 성품이란 佛性이니, 자기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다 불도를 이룬다. ꡔ六祖大師法寶壇經ꡕ(ꡔ大正藏ꡕ 48, 351쪽 상).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
일체 중생은 如來藏(tathāgata-garbha)이요, 일체 중생은 다 佛性(buddha-dhātu)을 지니고 있으므로, 범부 중생이 佛性을 보아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인의 도로 가르쳐서 망상과 집착을 영원히 여의고 자기의 몸 속에서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하리라. ꡔ大方廣佛華嚴經ꡕ, 「如來出現品」(ꡔ大正藏ꡕ 10, 272쪽 하~273쪽 상). “奇哉奇哉 此諸衆生 云何具有如來智慧 愚癡迷惑 不知不見 我當敎以聖道 令其永離妄想執着 自於身中 得見如來廣大智慧 與佛無異.”


  일체 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 ꡔ佛性論ꡕ 卷1(ꡔ大正藏ꡕ 31, 787쪽 상). “一切衆生 悉有佛性.”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 즉 眞如佛性을 佛祖와 조금도 차별이 없이 갖추고 있으면서도 번뇌에 덮혀서 이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으나 번뇌에 덮혀있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涅槃經ꡕ 卷7, 「如來性品」(ꡔ大正藏ꡕ 12, 405쪽 중). “一切衆生 悉有佛性 煩惱覆故 不知不見.”


  부처님이 중생의 무리를 보니 다 여래장이 있으나 한량없는 번뇌에 덮여서 마치 더러운 꽃에 싸인 것과 같다. ꡔ大方等如來藏經ꡕ(ꡔ大正藏ꡕ16, 457쪽 하). “佛觀衆生類 悉有如來藏 無量煩惱覆 猶如穢花纏.”


  따라서 불성을 덮고 있는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면 불성은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고 미세념까지 다 끊어서 마음 근원으로 돌아가 구경각을 성취해야 불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번뇌를 제거하여 불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ꡔ大方等如來藏經ꡕ(ꡔ大正藏ꡕ16, 457쪽 하). “除滅煩惱 顯現佛性.”


  미세념을 멀리 떠났기 때문에 마음의 성품을 보게 되어 마음이 곧 상주하니 구경각이라 한다. ꡔ大乘起信論ꡕ(ꡔ大正藏ꡕ 32, 576쪽 중). “以遠離微細念故 得見心性 心卽常住 名究竟覺.”


  멀리 떠났을 때에 바로 불지에 있는 것이니, …… 이제 이 구경위에 이르러서는 무명이 영원히 다하고 한마음의 근원에 돌아가 …… 다시 나아갈 바가 없으므로 구경각이라 한다. ꡔ大乘起信論疏ꡕ 卷上(ꡔ韓佛全ꡕ 1, 710쪽 상). “遠離之時 正在佛地 …… 今至此位 無明永盡 歸一心源 …… 更無所進 名究竟覺.”


  다시 말해서 불성은 我空과 法空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드러나는 진여이므로, 煩惱障과 所知障을 끊어야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불성이란 곧 人과 法 두 가지가 공함으로써 드러나는 진여이다. ꡔ佛性論ꡕ 卷1(ꡔ大正藏ꡕ 31, 787쪽 중). “佛性者 卽是人法二空 所顯眞如.”


  我執에 의해 煩惱障이 생기고 法執에 의해 所知障이 생긴다. 이 두 장애로 인해 중생은 생사윤회를 하고 존재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한다. 我空의 이치를 깨쳐서 煩惱障을 끊으면 대열반을 증득하고, 法空의 이치를 깨쳐서 所知障을 끊으면 큰 깨침을 성취한다.

  번뇌장을 전환하여 대열반을 얻고 소지장을 전환하여 위 없는 깨침을 증득한다. ꡔ成唯識論ꡕ 卷9(ꡔ大正藏ꡕ 31, 51쪽 상). “由轉煩惱得大涅槃 轉所知障證無上覺.”


  煩惱障을 전환하여 열반을 얻고 所知障을 전환하여 보리를 증득함으로써 모든 번뇌를 정화하고 부처의 지위에 들어가야 불성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無上正覺을 얻으면 불성을 볼 수 있고 불성을 보면 無上正覺을 성취하게 되니, 여래 지위라야 불성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위 없는 바른 깨침을 얻어야 불성을 보게 된다. ꡔ大般涅槃經ꡕ 卷20, 「高貴德王菩薩品」(ꡔ大正藏ꡕ12, 740쪽 중). “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得見佛性.”


  불성을 봄으로 위 없는 바른 깨침을 이루게 된다. ꡔ大般涅槃經ꡕ 卷7, 「如來性品」(ꡔ大正藏ꡕ 12, 405쪽 상). “因見佛性 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구경각을 성취한 여래 지위라야 불성을 바로 볼 수 있고, 불성을 바로 보아야(見性) 생사를 벗어나 대열반을 얻는 것이다(成佛).

  중생의 불성은 모든 부처님의 경계다. …… 불성을 바로 봄으로 …… 생사를 해탈하여 대열반을 얻는다. ꡔ大般涅槃經ꡕ 卷26, 「師子吼菩薩品」(ꡔ大正藏ꡕ12, 776쪽 상). “衆生佛性 諸佛境界 …… 見佛性故 …… 解脫生死 得大涅槃.”


  六祖慧能은 본래 마음을 알고 성품을 깨치면 곧 해탈이요 반야삼매이며 무념임을 밝히고, 무념법을 깨치면 부처의 경계를 보고 부처의 지위에 이르게 됨을 천명하고 있다.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이고, 무념이다. ……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 가지 법이 통하며,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른다. ꡔ六祖大師法寶壇經ꡕ(ꡔ大正藏ꡕ 48, 351쪽 상~중).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地位.”


  경허도 불성을 바로 보아 부처를 이루는 見性成佛의 본질이 無念無心임을 밝히고, 無念으로써 으뜸을 삼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체 여러 가지 마음이 없으면 부처가 되나니라. ꡔ鏡虛集ꡕ, 「중노릇 하는 법」(ꡔ韓佛全ꡕ 11, 599쪽 상).


  옛사람이 이르기를 “만행을 갖추어 닦더라도 오직 무념으로써 으뜸을 삼는다”하였으니 수행의 요체가 결정코 이것에 있다. ꡔ鏡虛集」, 「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文」(ꡔ韓佛全ꡕ 11, 604쪽 중). “古人云 萬行備修 唯以無念爲宗 修行之要 定在斯焉.”


  요컨대 경허는 깨침은 如來藏이요 佛性인 본래 마음을 깨치는 것이고, 그 본래 마음은 미세념까지 다 끊어서 無上正覺을 성취한 부처의 지위라야 바로 볼 수 있으며 부처의 지위는 바로 無念임을 설파하고 있다. 그리고 본래 마음을 깨쳐서 究竟覺을 성취하고 無念無心의 佛地에 이르러야 참 깨침임을 천명하고 있다.

    4) 眞人論
  경허는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고 영원한 진리와 크나큰 자유와 하나된 사람을 부처․祖師․法王․道人․無事人․了事漢․無位眞人․出世丈夫․了事凡夫․第一等人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스스로를 大法王이라 부르고 있다.

홀연히        한무사인이        되었으니        이것을
부처라        하나니라 ꡔ鏡虛集ꡕ, 「법문곡」(ꡔ韓佛全ꡕ 11, 636쪽 상).


뻐꾹새        한소리에        盡日無心        終夜無心
無心客이        되었으니        明月이        無心하여
날비춰        無心하고        淸風이        無心하여
날불어        無心하다        無心行李        이러하니
無位眞人        이아니며        出世丈夫        이아닌가
諸佛諸祖        別求할까        興亡盛衰        누가알며
黜陟刀鉅        누가알꼬        泡沫風燈        可笑롭다
眞如涅槃        昨夢일세 ꡔ鏡虛集ꡕ, 「可歌可吟」(ꡔ韓佛全ꡕ 11, 634쪽 중).


  내가 대법왕이 되어 일체법에 모두 자재하도다. ꡔ鏡虛集ꡕ, 「悟道歌」(ꡔ韓佛全ꡕ 11, 629쪽 중). “我爲大法王 於法摠自在.”


  본래 마음을 깨치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구하지 않더라도 원만하게 얻게 되어 일체법에 자재하니, 어찌 부처와 중생․성현과 범부․나고 죽음․옳고 그름․선과 악․좋고 나쁨․아름다움과 추함 등에 걸림이 있으리요. 경허는 일체에 걸림 없이 호호탕탕 무애자재한 도인의 경계를 노래하고 있다.

                參禪잘한        저道人은
앉아죽고        서서죽고        앓도않고        蟬脫하며
오래살고        곧죽기를        제맘대로        自在하며
恒河沙數        神通妙用        任意快樂        自在하니 ꡔ鏡虛集ꡕ, 「參禪曲」(ꡔ韓佛全ꡕ 11, 632쪽 상).


蕩蕩無碍        自在하니        寂光土        좋은國土
白雲流水        處處로다        부처한번        되어놓면
무슨걱정        있을손가        보고듣고        앉고눕고
밥도먹고        옷도입고        말도하고        잠도자고
恒沙妙用        總持하니        얼굴앞에        分明하고
이마뒤에        神기롭다 ꡔ鏡虛集ꡕ, 「可歌可吟」(ꡔ韓佛全ꡕ 11, 633쪽 하~상).


  眞如佛性을 확철히 깨쳐서 한 번 뛰어넘어 바로 여래지에 올라 삼계를 뛰쳐나는 것이 대장부의 일생의 할 일인데, 위 없는 바른 깨침을 이루어 대장부 일생의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일없는 일밖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부처와 조사는 일없는 사람(無事人)이요, 함이 없는 참사람(無爲眞人)이며, 모든 배움을 끊고 함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絶學無爲閑道人)이며, 일 마친 범부(了事凡夫)이다. 실로 삼세의 모든 부처와 역대 조사가 한낱 일없는 사람일 뿐이니, ꡔ大慧普覺禪師書ꡕ(ꡔ大正藏ꡕ 47, 933쪽 하). “三世諸佛 只是箇無事人 諸代祖師 亦只是箇無事人.”
다만 목마르면 차를 마시고 곤하면 졸 뿐이다.
일없음이 오히려 일을 이룸이라
사립문 닫고 한낮에 조나니
산새들이 나의 고독 아는지
그림자 그림자가 창앞을 지나가네. 「鏡虛集ꡕ, 「偶吟」(ꡔ韓佛全ꡕ 11, 615쪽 상). “無事猶成事 掩關白日眠 幽禽知我獨 影影過窓前.”


  일 마친 장부에게는 실로 일없는 일밖에는 일이 없지만, 한량없는 중생을 위해서는 끝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중생계가 다함이 없고 중생의 업과 번뇌가 다함이 없기 때문에 일없는 사람에게 다함 없는 일이 있는 것이다.

自己부터        어서찾아        六道衆生        濟度하여
如我無異한        然後에        東園桃李        芳草岸에
露地白牛        어거하여        無孔笛을        비껴들고
囉囉哩哩        囉囉哩        太平歌를        불러보세 ꡔ鏡虛集ꡕ, 「可歌可吟」(ꡔ韓佛全ꡕ 11, 634쪽 하).


  一乘의 두 바퀴는 智慧와 慈悲이다. 본래 이루어야 할 부처가 없음을 바로 깨치는 것이 참 지혜요, 본래 제도해야 할 중생이 없음을 바로 행하는 것이 참 자비이다. 실로 제도해야 할 한 중생도 없는 것이지만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하는 것이고, 따로 설해야 할 한 법도 없는 것이지만 일체 법을 설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佛法의 오묘한 이치가 있는 것이며, 부처와 조사의 일없는 일 가운데 끝없는 일인 것이다.

                世上萬事        忘却하고
隨緣放曠        지내가되        빈배같이        떠놀면서
有緣衆生        濟度하면        報佛恩德        이아닌가 ꡔ鏡虛集ꡕ, 「參禪曲」(ꡔ韓佛全ꡕ 11, 631쪽 하).


  진실로 鏡虛가 온 몸으로 웅변한 眞人은 무엇이며, 眞人의 참삶은 무엇인가? 경허는 ‘마음 근원을 비추어 요달하여(照了心源)’ ‘몸에는 털을 덮어쓰고 머리에는 뿔을 이고(被毛戴角)’ 스스로 지옥․아귀․축생의 길을 가서 無碍自在하게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大自由人․大解脫人을 眞人이라 한다.
  깨침은 중생과 역사에 회향되어야 하며, 진리의 수레바퀴는 중생과 역사의 해탈을 위해 굴려져야 한다. 깨침이 무명의 삶을 지혜의 삶이 되게 하고, 질곡의 역사를 해탈의 역사되게 할 때 비로소 살아 숨쉬는 깨침이 되는 것이니, 깨침이 중생의 눈이 되지 못하고 역사의 발이 되지 못하면 그 깨침은 이미 바른 깨침이 아니며 죽은 깨침이며 닫힌 깨침이다.
  ꡔ鏡虛集ꡕ에서 사용된 용어 중에서 和光同塵․異類中事․被毛戴角․灰頭土面․垂手入廛 등의 용어들의 빈도수는 경허의 참뜻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입증하고 있다. 그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 감로의 문을 열 것을 선언한 轉輪頌에서 노래한 惺牛事 즉 깨친 소의 일은 바로 被毛戴角의 길인 것이다.

세속과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봄이 오니 성마다 꽃피지 않은 곳이 없다네
누군가 성우의 일을 묻는다면
돌계집 마음속 겁 밖의 노래라 하리라. 「鏡虛集ꡕ, 「題天藏庵」(ꡔ韓佛全ꡕ 11, 618쪽 상). “世與靑山何者是 春城無處不開花 傍人若問惺牛事 石女心中劫外歌.”


  불보살이 同體大悲心으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하여 자신을 감추고 티끌세상에 들어가 중생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불법으로 인도하는 것을 和光同塵․異類中行․被毛戴角․垂手入廛․灰頭土面․合水和泥․拖泥帶水 등으로 표현한다. 경허가 역설한 眞人의 삶은 여러 경전과 조사 어록에서도 붓다의 정신과 불교의 本來面目이 바로 被毛戴角의 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ꡔ法華經ꡕ에 “먼지와 흙을 몸에 뿌린다(塵土坌身)” ꡔ妙法蓮華經ꡕ, 「信解品」(ꡔ大正藏」 9, 17쪽 상).
는 구절이 있는데, 먼지와 흙을 몸에 뿌린 중생들의 모습으로 다가가서 근기에 따라 법을 설해서 마침내 一乘으로 인도한다는 가르침이다. 『華嚴經』에서는 중생이 있는 곳이면 그 어디에도 나아가 평등한 자비와 원력과 지혜와 방편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이며, 심지어 축생․아귀․지옥의 三惡道에도 나아가 한 중생도 빠지지 않고 거두어 들이는 불보살의 삶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같은 말할 수 없는 부처 세계의 티끌수 방편문으로 일체 중생이 있는 곳에 나아가 성숙케 하나니, …… 축생․아귀․지옥의 사는 곳에도 가는 것이다. 평등한 큰 자비와 평등한 큰 원과 평등한 지혜와 평등한 방편으로 모든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데, ……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함을 따라서 그들의 처소에 나아가서 이익을 얻게 하였다. ꡔ大方廣佛華嚴經ꡕ, 「入法界品」(ꡔ大正藏ꡕ 10, 330쪽 중). “以如是等不可說佛刹微塵數方便門 往詣一切衆生住處 而成熟之 …… 往畜生餓鬼地獄之所住處 以平等大悲 平等大願 平等智慧 平等方便 攝諸衆生 …… 隨諸衆生心之所樂 皆詣其所 令其獲益.”


  ꡔ維摩經ꡕ에서 유마거사는 보살이 능히 길 아닌 길(非道 : 지옥․아귀․축생의 길)에 갈 수 있다면 불도를 통달한 것임을 웅변하고 있는데, 보살이 길 아닌 길에 가는 것이 바로 온 몸을 털로 덮고 머리에 뿔을 인 마소가 되어 중생을 위해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 때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이 어떻게 불도를 통달합니까?”
  유마힐이 말했다.
  “만약 보살이 길 아닌 길에 간다면 불도를 통달하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어떻게 보살이 길 아닌 길에 갑니까?”
  (유마힐이) 대답했다.
  “만약 보살이 다섯 종류의 무간지옥에 가더라도 괴로워 성냄이 없으며, 지옥에 가더라도 모든 죄악으로 더럽혀짐이 없으며, 축생에 가더라도 무명과 교만 등의 허물이 없으며, 아귀에 가더라도 공덕을 구족하며, …… 문수사리여, 보살이 능히 이와 같이 길 아닌 길에 갈 수 있다면 불도를 통달한 것입니다.” ꡔ維摩詰所說經ꡕ, 「佛道品」(ꡔ大正藏ꡕ 14, 548쪽 하~549쪽 상). “爾時 文殊師利 問維摩詰言 菩薩 云何通達佛道 維摩詰言 若菩薩 行於非道 是爲通達佛道 又問 云何菩薩 行於非道 答曰 若菩薩 行五無間 而無惱恚 至于地獄 無諸罪垢 至于畜生 無有無明 憍慢等過 至于餓鬼 而具足功德 …… 文殊師利 菩薩 能如是行於非道 是爲通達佛道.”


  ꡔ華嚴經ꡕ과 ꡔ維摩經ꡕ의 가르침은 ‘上求菩提 下化衆生’의 기치로, 생사에도 머물지 않고(不住生死) 열반에도 머물지 않으며(不住涅槃) 뭇 삶들의 뜻에 따르는 보살의 삶이 무엇인지를 眞人의 참삶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看話禪을 대성한 大慧宗杲(1089~1163)는 확철대오해서 佛祖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대비심을 일으켜 진흙탕물에 화합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일 마친 대장부의 본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를 요달하면 일체를 요달하고 하나를 깨달으면 일체를 깨닫고 하나를 증득하면 일체를 증득하는 것이 마치 한 타래 실을 벨 적에 한 번 베면 일시에 끊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가없는 법문을 증득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다시 차제가 없습니다. …… 만일 이미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마땅히 이 법문으로써 대비심을 일으켜서 순역의 경계 속에서 진흙탕물에 화합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구업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일체를 구제하여 부처님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니, 바야흐로 이것이 대장부의 할 일입니다. ꡔ大慧普覺禪師書ꡕ(「大正藏ꡕ 47, 925쪽 하). “一了一切了 一悟一切悟 一證一切證 如斬一結絲 一斬一時斷 證無邊法門亦然 更無次第 …… 若已到恁麽田地 當以此法門興起大悲心 於逆順境中和泥合水 不惜身命不怕口業 拯拔一切以報佛恩 方是大丈夫所爲.”


  부처와 조사는 大法王이라 교묘한 大悲의 方便으로 일체 중생을 一乘으로 인도해야하며, 부처와 조사는 大醫王이라 신묘한 大乘의 法藥으로 일체 중생의 生死라는 큰 병을 치료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유마거사가 “일체 중생이 병들어 있으므로 나도 병들어 있습니다. 만일 일체 중생의 병이 없어진다면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ꡔ維摩詰所說經ꡕ, 「文殊師利問疾品」(ꡔ大正藏ꡕ 14, 544쪽 중). “以一切衆生病是故我病 若一切衆生病滅則我病滅.”
라고 대사자후한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며, 대혜종고가 “부처와 조사는 …… 고뇌하는 중생의 생사의 큰 병을 치료했으므로 대의왕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ꡔ大慧普覺禪師書」(ꡔ大正藏ꡕ 47, 935쪽 상). “佛祖 …… 醫苦惱衆生生死大病 號大醫王.”
라고 갈파한 뜻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경허도 「尋牛頌」에서 자루를 메고 저자에서 노닐고 방울을 흔들며 마을로 들어가서 중생을 교화하는 垂手入廛이 진실로 일 마친 사람의 경계임을 노래하고 있다.

손을 드리우며 저자에 들어가다
……
향기로운 풀이 우거진 언덕에서 노닐고
갈대꽃 핀 섬에서 묵노라
자루를 메고 저자에서 노닐고 요령을 흔들며 마을로 들어가니
참으로 일 마친 사람의 경계로다
…… ꡔ鏡虛集ꡕ, 「尋牛頌」(ꡔ韓佛全ꡕ 11, 630쪽 중). “垂手入廛 …… 遊芳草岸 宿蘆花洲 荷帒遊市 振鈴入村 寔爲了事漢境界 …….”


  「土窟歌」에서는 깨친 뒤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티끌 세상에 들어가 머리에 재 뒤집어쓰고 얼굴에 흙 묻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 灰頭土面이 바로 眞人의 참삶임을 읊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꿈 속 아님이 없음을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집고 병과 발우를 가지고
구름이 자욱한 숲 깊은 곳에 들어가니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샘물 소리 옥 구르는 듯 하며
천길 노송에 백겹이나 등나무 덩굴 얽혔는데
두서너 칸 띳집을 짓고 뜻 맞는 벗과 함께
때로는 연하 낀 정취를 읊고 때로는 향 사르고 고요히 좌선하니
티끌세상의 번거로운 일 다시 없네
한마음 비고 영묘하여 모든 이치 환히 드러나니
곧 세상에 으뜸가는 사람이라
잔속에는 산중 신선의 술이라 만취하고
천지 삼라만상을 한 법인으로 인가하며
그런 뒤에 재 머리 흙 얼굴로 향기로운 풀 언덕에 유희하니
한 가락 젓대 소리 라라리로다. ꡔ鏡虛集ꡕ, 「土窟歌」(ꡔ韓佛全」11, 671쪽). “萬事無非夢中 忽然覺悟 拈柱杖携甁鉢 深入雲林邃處 百鳥有聲 泉石淙琤 千尋老松 百縈藤蘿 築數間茅屋 同知己友 有時咏煙霞趣 有時焚香靜坐 更無塵事相侵 一心虛靈 萬理昭彰 便是世間 第一等人 酌中山仙人酒 滿醉了 乾坤森羅 一印印之 然後 灰頭土面 遊戱芳草岸頭 一聲笛 囉囉哩.”


  경허는 오직 眞如佛性을 깨달아 존재의 본질과 실상을 요달하고, 無緣慈悲로 三惡道에 가서 밑 없는 배를 타고 同事攝하며 가없는 중생을 無上正覺에 이르게 하는 이를 眞人이라고 부른다. 無生의 이치를 透得하고 用無生死의 경지에 이르러 법계에 遊戱하며 被毛戴角의 길을 가는 자, 그만을 眞人이라고 부른다.

Ⅳ. 韓國禪의 進路

  진정 韓國佛敎․韓國禪이 나아가야 할 큰 길은 무엇인가? 2500여 년 전 보리수 아래에서 쿠시나가라까지 붓다의 큰 길, 1300여 년 전 무덤에서 穴寺까지 원효의 큰 길, 그리고 100여 년 전 천장암에서 갑산 웅이방까지 경허의 큰 길 외에 어찌 韓國佛敎․韓國禪의 큰 길이 있겠는가.
  영원한 인류의 스승인 붓다는 ‘위 없는 바른 깨침을 이루어 위 없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라(成無上正覺 轉無上法輪)’는 기치로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며 길을 설하다가 길에서 열반에 들었다.

  위 없는 바른 깨침을 이루어 위 없는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라. ꡔ長阿含經ꡕ 卷2, 「遊行經」(ꡔ大正藏ꡕ 1, 16쪽 상). “…… 成無上正覺 …… 轉無上法輪 …….”


  평등하고 바른 깨침을 이루어 미묘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라. ꡔ大方廣佛華嚴經ꡕ,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ꡔ大正藏」 10, 846쪽 하). “…… 成等正覺 轉妙法輪 …….”


  한국불교의 첫새벽인 원효는 ‘한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일체 중생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하라(歸一心源 饒益衆生)’는 기치로 一心․和諍․無碍의 큰 길을 걸었으며, 근대선의 첫새벽인 경허는 ‘마음 근원을 비추어 요달하여 온몸을 털로 덮고 머리에 뿔을 이라(照了心源 被毛戴角)’는 기치로 길 없는 길을 넘어 길 아닌 길을 걸었다.
  붓다와 원효 그리고 경허가 걸어간 큰 길은 오늘날 韓國佛敎․韓國禪이 나아가야 할 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진정 韓國佛敎․韓國禪은 불교의 생명인 照了心源과 불교의 본분인 被毛戴角으로 거듭나서 역사와 대중을 지혜와 자비로 장엄해야 할 것이다.

Ⅴ. 結 語

  鏡虛聖師의 思想은 ‘照了心源 被毛戴角’을 기치로 한 被毛戴角佛敎․被毛戴角禪, 角乘佛敎․角乘禪이라고 할 수 있으며, 思想體系는 마음 근원을 밝힌 眞心論, 修行門의 두 날개로 圓融門과 徑截門을, 修行法의 두 수레바퀴로 禪敎兼修와 定慧雙修를 제시한 眞修論, 眞如佛性을 깨쳐서 無念無心의 佛地에 이른 究竟覺을 참 깨달음으로 선언한 眞覺論, 그리고 마음 근원을 비추어 요달하여 몸에는 털을 덮어쓰고 머리에는 뿔을 이고 스스로 지옥․아귀․축생의 길에 가서 無碍自在하게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大自由人․大解脫人을 참사람이라 천명한 眞人論으로 이루어져 있다.
  鏡虛의 ‘角乘佛敎․角乘禪’이야말로 붓다의 정신이요 一乘의 골수이며 禪佛敎의 진면목이니, 21세기 韓國佛敎․韓國禪이 지향해야 할 正路요 正眼이며, 우리 모두가 마침내 가야할 眞人의 大道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