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2집 제2주제 논평:「한국선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평

淸潭 2008. 2. 22. 17:31
 

2집 제2주제 논평:「한국선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평

 

현 각(동국대학교 교수)

  어떤 하나의 철학이나 사상 및 종교는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나름대로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크건 작건간에 어떤 형식으로든지 그것이 생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과 시대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이 가령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처럼 항상 밀접한 관계속에 있으면서 그 가치와 고마움을 모르고 지내고 있듯이 우리생활속에 너무 깊이 밀착되어 있어 그 존재마져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종호스님의 논문 ꡔ한국선의 보편성과 특수성」은 그 주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한국이라는 지역적 역사적 환경속에서 한국선이 차지하고 있는 한국선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주제는 선을 연구하고 수행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되짚어 봄직한 내용이라 하겠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근대 한국선의 상징이기도 한 경허스님과 유서깊은 이곳 수덕사에서 본 주제에 관하여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ꡔ한국선의 보편성과 특수성ꡕ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필자는 우선 그 성격을
  “중국에서 형성된 선사상을 오롯하게 이어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만의 독특한 특징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선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수용하면서도 독자적 사상과 수행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에서의 선이다”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로부터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보편성에 대해서는 한국의 조사들이 보인 1. 선사상에의 철저함과 2. 중생의 제도라는 度生의 삶을 한국선의 보편적 모습으로 파악하고 있다. 곧 선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와 국극적 지향점에 대해 한국의 조사들은 가장 일반적인 모습과 보편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1. 선사상에의 철저함에 대해서는 다시 1.--1 인도와 중국에서 형성되어 유행한 모든 선사상의 수용, 곧 중국 선사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역사적 측면과, 1.--2 그 중요 내용에 대한 완벽한 파악 및 이를 종합하여 핵심사상을 압출하고 거기에 철저했던 사상적인 측면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있다.
  1.--1 그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선종 제4조 도신의 법을 수용한 법랑과 지덕을 비롯하여 신수계통의 신행, 그리고 한국선의 구산선문기에는 도의를 비롯한 많은 선사들이 마조도일 계통의 조사선과 순지의 위앙종의 전래 등을 언급하고 있다. 한편 청원-석두 계통의 선은 行寂과 兢讓을 비롯하여 海東四無畏大師의 조동선의 전래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법안종과 임제종의 양기파의 선 등 중국선종의 거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 그것의 수학과 전래와 그 선사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곧 중국의 오가칠종의 선사상에 대한 수용과 체득이 한국선의 역사적 측면에서의 보편적 모습이라 보고 있다.
  1.--2 그 사상적인 측면으로는 한국의 조사들이 보인 중생제도의 삶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선의 궁극적인 목적을 자신의 본래면목에 대한 깨달음을 이루고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度生의 삶에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십우도의 제8-제10 단계의 모습과 [좌선의]의 서두 부분의 인용하면서 중국에서의 예와 한국에서의 九山禪門期를 비롯하여 고려와 조선시대의 많은 예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선의 실천적인 자세가 한국선이 가진 보편적 모습이라 보고 있다.
  2. 필자는 한국선의 특수성에 대하여 2.--1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禪主敎從을 바탕으로 禪敎一致를 취하면서 궁극적으로는 捨敎入禪的인 면을 보이고 있는 것과, 2.--2 頓悟漸修 만의 강조와, 2.--3 독자적 관점을 형성하려 했다는 것과 2.--4 수행방법에서 看話禪의 행법만을 택하고 있는 것 등 네 가지를 들고 있다. 논평자는 필자의 이 네가지의 지적은 나름대로 한국선의 특수성에 대한 탁월한 견해라 보고 싶다.
  2.--1 선이 교와 구별되는 일반적인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큼 선과 교의 위치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도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필자가 예를 들어 언급하고 있듯이 말은 선교일치 내지 교선일치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내면은 어디까지나 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이것은 선종의 측면에서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비단 선에서만이 아니라 한국불교 일반에서 보이고 있는 한국불교에서는 보편성이라 할 수도 있지만 곧 인도 . 중국 . 일본에 비하여 한국선만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이기도 하다.
  2.--2 돈오점수의 강조에서는 돈오와 점수의 중국적 전개를 언급하면서 돈오한 이후에도 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펴고 있다. 특히 그 근거로서 돈오점수를 주장했던 조사들은 사상적으로 돈오돈수가 아니라 돈오점수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과, 돈오돈수는 본질적 측면에서 언급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돈오점수는 현상적 측면에서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을 내세우고있다. 이러한 해석은 돈오와 점수에 대한 하나의 해결대안이 아닌가 싶다.
  2.--3 한국의 조사들이 보이고 있는 독자적인 관점에 대하여 無染의 有舌無說土論과 梵日의 眞歸祖師說과 普照 등의 學無常師와 道詵의 裨補寺塔說 등 네 가지 측면에서 언급하고 있다. 지면상의 제한이 있었겠지만 필자가 언급한 이 밖에 좀더 논평자의 입장에서 언급되었으면 하는 점은 단순이론적인 것 이외에 보조국사의 몇 가지 독특한 禪理와 16국사의 배출이 있었고, 한국선에서 관법의 원류로서 ꡔ삼국유사ꡕ 권5 「廣德 · 嚴莊」條에 엄장이 원효로부터 배웠다는 錚觀法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와 같은 억불치하에서도 계속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선맥과 임제의 삼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과 그에 관련된 선논쟁 등이야말로 한국선의 특수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4 보조가 간화선을 주창한 이래 한국에서는 간화선일변도로 전통을 형성해오고 있다는 것 또한 독특한 것임에 틀림없다. 좀 아위운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간화선 위주의 전통이 형성된 그 이유가 조금이나마 언급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논평자가 보기에 그것은 임제종지의 세력이 컸던 이유에서 그랬겠지만 유독 간화선 수행만이 강조되어 온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선이 지니고 있는 단순명료와 함께 간명직절한 성격과 함께 그에 대한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몰입성 또한 그 하나의 이유는 아닐까.

  본 논문의 주제가 나타내주고 있듯이 필자는 한국선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하여 많은 연구와 나름대로의 탁견을 제시하고 있다. 논평자는 여기에서 시사받은 몇 가지 내용과 함께 아울러 좀더 욕심을 내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 대해서도 필자가 연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고 싶다.
  첫째 중국선의 유입, 곧 적극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중국선의 수용이 과연 얼마나 완벽한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는가. 중국선의 전래가 자칫 중국선의 아류로 비쳐지는 경우로 이해될 수도 있을 터인데 필자는 그것에 대하여 중국선의 완벽한 파악으로 보고 있다.
  무슨 어떤 점에서 그런가?
  둘째 한국의 조사들이 보인 중생제도의 삶이 선사들만의 모습이었던가. 선 이외 여타의 많은 종파 및 사상의 종사들이 보인 것이 모두 선사들의 행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것을 선 만이 지니고 있는 보편성이라 할 수 있는가?
  부연설명이지만 그리고 곧 이 부분은 선의 사상적인 측면이라 하면서 줄곧 그 실천적 자세가 한국선의 보편적 모습의 하나라 하여 주제와 내용의 불일치를 내비취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수많은 선승들은 중생제도라는 선의 궁극적 실천행에 매진하고 있다. 바로 이런 실천적 자세가 한국선이 가진 보편적 모습중의 하나가 아닌가 여겨진다” 혹 여기에서의 실천이란 곧 사상적인 측면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을 의미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셋째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용어상 보편성을 중국선의 전승 내지 수용으로만 본다면 무엇하나 보편성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그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선의 보편성이라는 것은 한국선이 중국이나 일본 내지 다른 나라에까지 널리 인정받는 의미에서 보편성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중국선의 수용이라는 입장에서 보편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중국선의 보편성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 일반이 지니고 있는 보편성인지 한국선이 지니고 있는 보편성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수성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을 가리키는 경우와 함께 보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나라에 있을지라도 한국에 있는 그것에 대한 독특한 해석 내지 발전의 경우로 본다면 특수성은 오히려 보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보편성과 특수성은 다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다른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한국선에서만 내비취고 있는 것만을 언급하여 한국선의 특수성이라 한다면 한국선의 범위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런데 필자가 굳이 한국에서 자생한 것으로 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