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지음|김난주 옮김|민음사|96쪽|8000원
- 요시모토 바나나〈사진〉는 아이와 깊은 사랑에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요즘은 아이를 돌보는 데 정성을 쏟고 있다”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이 곁을 지켜주지 못할 먼 훗날에, 그녀의 아이가 펼쳐서 읽기를 바라며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가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사별이라는 아픔을, 요시모토는 특유의 평이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장으로 부드럽게 감싼다.
미쓰코는 18세가 되던 해 엄마를 잃는다. ‘사람이 정말로 죽네’라며 미쓰코가 놀라던 그날, 늘 엄마의 병상에 머물던 아빠는 임종조차 지키지 않고 가족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뿐인가. 아빠는 집을 나가더니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못생기고 깡마른 쉰 살짜리 초로의 여인 유리와 동거에 들어가 아들까지 얻는다. 소설은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아빠의 배신으로 상처받은 딸이, 아빠의 삶을 조금씩 이해해가며 마음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 석공의 도제로 들어가 스승의 딸과 결혼한 아빠는 장인(匠人)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세상은 아빠의 꿈을 빼앗아간다. 수입산 석재에 밀려 일거리가 없어진 아빠는 사랑하던 아내마저 잃음으로써 허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다. 장인이 되고자 했던 꿈도, 아내와 함께 생을 같이 하려던 남자로서의 바람도 무너졌다.
요시모토는 삶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허무로 돌려버리는 시간과, 그것에 저항해 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상처한 남자와 그를 바라보는 딸의 갈등을 통해 드러낸다. 아빠가 새 살림을 차린 유리의 집은 모든 것이 낡고 정체된 곳이다. 수십 년 지난 물건도 버려지지 않는 이 집을 방문했을 때, 미쓰코는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과 함께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아빠가 원하던 것은 이것이었을까.
- 유리의 집에서 미쓰코는 아빠가 찾고자 했던 것이 ‘새로운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낡은 가구와 정체된 공기는 시간의 파괴를 견뎌낸 것들이다. 아빠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시간으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않는 시간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허무를 벗어나기 위한 아빠의 노력은 조각이란 행위에서도 드러난다. 유리의 집 옥상에서 미쓰코는 아빠가 만들고 있는 돌고래 모양의 하얀 비석을 발견한다.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않은 아빠가 미쓰코에게 말한다. “엄마가 돌고래를 좋아했잖니. 네모난 비석은 멋대가리도 없고.”(52쪽) 아빠는 또한 유리를 위한 만다라도 조각한다. 소설은 이처럼 돌을 쪼아 조각을 만드는 아빠의 행위를 통해 기억이 시간의 파괴를 이겨낸다고 말한다.
요시모토의 소설은 과장되지 않는 문체로 삶의 아픔들을 드러내고 치유한다. 망각이 아닌 기억을 통해 상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과정이 담백한 글과 어울려 책 읽는 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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