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모 옮김|책세상|전 2권|1권 2만5000원, 2권 2만3000원
-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노래한 프랑스 시인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1854~1891)의 별명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였다. 멀리 아프리카까지 바람처럼 떠돌아다녔던 랭보는 걸어다니면서 ‘미지(未知)와 영원을 만끽한’ 시인이었다.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란 별명은 랭보와 동성애 관계를 맺었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이 붙였다. 랭보와 베를렌의 사랑은 프랑스 근대 문학사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치정 사건을 일으켰다. 랭보보다 10살이 많았던 베를렌은 아내가 있었지만, 혜성처럼 나타난 17살짜리 천재 시인 랭보와 함께 치명적인 사랑의 독배를 마셨다.
랭보의 짧은 생을 세밀하고 방대하게 재구성한 이 평전의 부제는 ‘바람구두를 신은 천재 시인’이다. 이 책은 베를렌과 랭보의 만남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동원했다. 베를렌은 랭보의 시적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았을 뿐아니라, 랭보의 얼굴을 보면서 ‘어리지만 연애에 정통한 카사노바’라며 ‘선정적인 콧구멍’으로 ‘마술적인 아름다움을 풍긴다’라고 찬미했다.
랭보는 베를렌의 충동적 사랑에서 위안을 얻었다. 두 시인의 관계를 내사한 당시 파리 경찰의 보고서는 랭보를 이렇게 묘사했다. ‘도덕성이나 재능으로 보아 랭보는 괴상망측했다. 그는 누구 못지 않게 시 구사능력이 뛰어나지만 그의 작품들은 너무나 난해하고 혐오감을 준다.’
랭보가 결별을 선언하자 술에 취한 베를렌은 랭보에게 권총을 쐈다. 첫 발은 랭보의 왼손에 맞았고, 두 번째 발은 다행히 빗나갔다. 경찰에 체포된 베를렌은 신체검사를 받았다. ‘항문은 엉덩이를 약간만 벌려도 많이 팽창된다’ 는 터무니없는 검사결과로 인해 베를렌은 ‘습관성 남색’ 판정을 받았다. 랭보가 고소를 취하했지만, 도덕적 비난까지 가세해 베를렌은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랭보는 먼 방랑의 길을 떠났다.
이 평전은 랭보와 베를렌의 만남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신(神)의 불을 훔쳐 스스로 젊은 신(神)이 되려고 했던 랭보는 기성 시의 문법과 도덕에 반항했던 광기 어린 욕망의 시인이었다. 이 책은 랭보가 지상에서 보낸 한 철을 화려한 수사학과 방대한 고증을 통해 재현했고, 영원한 천재 시인의 이미지에 풍성한 삽화를 곁들여 인간적 실감을 불러일으킨다.
'글,문학 > 책 속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은 서로 존중하는 거야 (0) | 2007.04.14 |
---|---|
아빠, 낡은 집에서 ‘새로운 시간’ 찾았나요 (0) | 2007.04.14 |
치명적이어도… 사랑은 어쩔 수 없다 (0) | 2007.04.14 |
서양보다 150년 앞선 백과전서 (0) | 2007.04.14 |
“당쟁은 조선왕조 지속에 기여” (0) | 2007.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