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명법문 명강의

십이시가(十二時歌)

淸潭 2024. 9. 11. 10:05

십이시가(十二時歌)

 

한밤중 자시(子時)

 

半夜子 心境何曾得暫止

思量天下不出家人 似我住持能有幾

土塌床破蘆 老楡木枕全無被

尊像不燒安息香 灰裏唯聞牛糞氣

 

마음경계가 잠시라도 언제 그칠 때 있더냐

생각하니 천하의 출가인 중에

나같은 주지가 몇이나 있을까

흙자리 침상 낡은 갈대 돗자리

늙은 느릅나무 목침에 덮개 하나 없다네

부처님 존상에는 안식국향 사르지 못하고

잿더미 속에서는 쇠똥냄새만 나는구나.

 

닭 우는 축시(丑時)

 

雞鳴丑 愁見起來還漏逗

裙子褊衫箇也無 袈裟形相些些有

無腰袴無口 頭上靑灰三五斗

比望修行利濟人 誰知變作不

 

깨어나서 추레한 모습을 근심스레 바라본다

군자(裙子)도 편삼(褊衫)도 하나 없고

가사(袈裟)는 형체만 겨우 남았네

속옷에는 허리 없고 바지에는 주둥아리가 없다.

머리에는 푸른 재가 서너 말

도 닦아서 중생 구제하는 이 되렸더니

누가 알았으랴! 변변찮은 이 꼴로 변할 줄을.

 

이른 아침 인시(寅時)

 

平日寅 荒村破院實難論

解齋粥米全無粒 空對閑窓與隙塵

唯雀噪勿人親 獨坐時聞落葉頻

誰道出家僧愛斷 思量不覺淚沾巾

 

황량한 마을 부서진 절은 참으로 형언키조차 어려운데

재공양은 치워버리고 죽 끓일 쌀 한 톨도 없다

무심한 창문과 가는 먼지만 괜스레 바라보나니

참새 지저귀는 소리 뿐, 친한 사람 아무도 없다

호젓이 앉아 때때로 떨어지는 낙엽소리 듣는다

누가 말했던가, 출가인은 애증을 끊는다고

생각하니 모른 결에 눈물 적신다.

 

해뜰 녘 묘시(卯時)

 

日出卯 淸淨却飜爲煩惱

有爲功德被塵慢 無限田地未曾掃

攢眉多稱心少 耐東村黑黃

供利不曾得來 放驢喫我堂前草

 

청정함이 뒤집혀 번뇌가 되고

유위공덕(有爲功德)은 속진(俗塵)에 덮이나니

무한전지(無限田地)를 일찍이 쓸어본 바 없어라

눈썹 지푸릴 일만 많고 마음에 맞는 일은 적나니

참기 어려운 건 동촌(東村)의 거무튀튀한 늙은이

보시 한번 가져온 일이란 아예 없고

내 방 앞에다 나귀를 놓아 풀을 뜯긴다.

 

공양 때의 진시(辰時)

 

食時辰 煙火徒勞望四隣

饅頭子前年別 今日思量空嚥津

持念少嗟嘆頻 一百家中無善人

來者祇道覓茶喫 不得茶去又

 

사방 인근에서 밥짓는 연기만 부질없이 바라보노라

만두와 찐떡은 작년에 이별하였고

오늘 생각해보면 공연히 군침만 삼킨다

생각을 지님은 잠깐이요 잦은 한탄이로다

백 집을 뒤져봐도 좋은 사람 없어라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차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는 발끈 화를 낸다.

 

오전의 사시(巳時)

 

禺中巳 削髮誰知到如此

無端被請作村僧 屈辱飢悽受欲死

胡張三黑李四 恭敬不曾生些子

適來忽爾到門頭 唯道借茶兼借紙

 

머리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가 청을 받아 촌중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에 처량한 꼴, 차라리 죽고 싶어라

오랑캐 장가와 검은 얼굴 이가는

공경하는 마음은 조금치도 내지 않고

아까는 불쑥 문앞에 와서 한다는 말이

차 좀 꾸자, 종이 좀 빌리자고 할 뿐이네.

 

해가 남쪽을 향하는 오시(午時)

 

日南午 茶飯輪還無定度

行却南家到北家 果至北家不推註

苦沙塩大麥酢 蜀黍米飯

唯稱供養不等閑 和尙道心須堅固

 

차와 밥을 탁발하여 도는데는 정한 법도가 없으니

남쪽 집에 갔다가 북쪽 집에 다다르고

마침내 북쪽 집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일 수 없다

쓴 가루소금과 보리 초장

기장 섞인 쌀밥에 상추무침

오로지 아무렇게나 올린 공양이 아니라며

스님이라면 모름지기 도심이 견고해야 된다고.

 

해 기우는 미시(未時)

 

者回不踐光陰地

曾聞一飽忘百飢 今日老僧身便是

不習禪不論義 鋪箇破席日裏睡

想料上方兜率天 也無如此日炙背

 

이때에는 양지 그늘 교차하는 땅을 밟지 않기로 한다

한번 배부르매 백번 굶주림을 잊는다더니

오늘 이 노승의 몸이 바로 그렇도다

()도 닦지 않고 경()도 논하지 않나니

헤진 자리 깔고 햇볕 쐬며 낮잠 잔다

생각커니, 저 하늘의 도솔천이라도

이처럼 등 구워주는 햇볕은 없으리로다.

 

해 저무는 신시(申時)

 

晡時申 也有燒香禮拜人

五箇老婆三箇癭 一雙面子黑皴皴

油麻茶實是珍 金剛不用苦張筋

願我來年蠶麥熟 羅喉羅兒與一文

 

오늘도 향 사르고 예불하는 사람은 있어

노파 다섯에 혹부리 셋이라

한 쌍의 부부는 검은 얼굴이 쭈글쭈글

유마차라! 참으로 진귀하구나

금강역사여, 애써 힘줄 세울 필요없다네

내 바라노니, 누에 오르고 보리 익거든

라훌라 아이한테 돈 한푼 주어 봤으면.

 

해 지는 유시(酉時)

 

日入酉 除却荒涼更何守

雲水高流定委無 歷寺沙彌鎭常有

出格言不到口 枉續牟尼子孫後

一條拄杖麁楋 不但登山兼打狗

 

쓸쓸함 밖에 무얼 다시 붙들랴

고상한 운수납자 영영 끊기고

절마다 찾아다니는 사미승은 언제나 있다

격식을 벗어난 말 입에 오르지 않나니

석가모니를 잘못 잇는 후손이로다

한가닥 굵다란 가시나무 주장자는

산에 오를 때뿐 아니라 개도 때린다.

 

황혼녘 술시(戌時)

 

黃昏戌 獨坐一間空暗室

燈光永不逢 眼前頓是金州漆

鐘不聞虛度日 唯聞老鼠鬧喞啾

憑何更得有心情 思量念箇波羅密

 

컴컴한 빈 방에 홀로 앉아서

너울대는 등불을 영영 보지 못하고

눈앞은 온통 깜깜한 금주(金州)의 옷칠일세

종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럭저럭 날만 보내니

들리는 소리라곤 늙은쥐 찍찍대는 소리뿐

어디다가 다시 마음을 붙여볼까나

생각다 못해 한번 바라밀을 뇌워본다.

 

잠자리에 드는 해시(亥時)

 

人定亥 門前明月誰人愛

向裏唯愁臥去時 勿箇衣裳著甚蓋

劉維那趙五戒 口頭說善甚奇怪

山僧囊罄空 問著都緣總不會

 

문앞의 밝은 달, 사랑하는 이 누구인가

집안에서는 오직 잠자러 갈 때가 걱정이러라

한벌 옷도 없으니 무얼 덮는담

유가 유나(維那)와 조가 5(五戒)

입으로는 덕담하나 정말 이상하구나

내 걸망을 비게 하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인연 물어보면 전혀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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