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戌年 冬安居 宗正猊下 結制法語
불기 2562년 11월 22일
綠樹靑山毘盧身(녹수청산비로신)이요
海上波濤廣長設(해상파도광장설)이라
若人問我解何宗(약인문아해하종)하면
金剛般若定慧力(금강반야정혜력)이라
푸른 나무 푸른 산은 비로자나 전신(全身)이요
바다 위의 파도소리는 모든 부처님의 법문이라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떤 종지(宗旨)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금강반야의 정(定)과 혜(慧)의 힘이라 하리라
금일(今日)은 무술년 삼동구순(三冬九旬)의 안거(安居)를 시작하는 동안거(冬安居) 결제일(結制日)이라.
결제에 임하는 사부대중들은 이번 안거에는 반드시 대오견성(大悟見性) 하겠다는 태산같은 용맹심과 불퇴전(不退轉)의 각오로 매일 매일 새롭게 발심(發心)과 신심(信心)을 다져야 할 것이라.
화두참선(話頭參禪)은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번을 챙겨도 뼈골에 사무치는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와 씨름하듯이 화두를 챙기고 의심해야 함이라.
화두와 씨름하라는 것은 씨름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경기에 임하듯이, 간화수행자는 화두를 챙기고 의심하고, 또 챙기고 의심하기를 끊어짐이 없이 해서 번뇌와 망상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화두가 있는 이는 각자의 화두를 챙기되. 화두가 없는 이는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 인가? 하는 이 화두를 들고 앉으나 서나, 가나오나, 산책을 하나 일을 하나, 하루에도 천번 만번 챙기고 의심하야야 함이라.
중국의 당나라 시대에 마조(馬祖)선사와 석두(石頭)선사, 그리고 혜충(慧忠)국사 이 세 분 선사(禪師)께서 선풍(禪風)을 크게 드날리시던 때였다.
마조선사의 제자인 남전선사가 마조 도인께 인가(印可) 받으신 후, 어느 고암(高庵)에서 지내면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기다리시던 때가 있었다.
고암에서 한가로이 생활하고 계실 때, 하루는 객승(客僧)이 찾아와서 하룻밤 머물기를 청했다. 하룻밤을 함께 지내고 아침 공양을 지어 드시고는, 남전 선사께서 객승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나는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밭에 가서 일을 하리니, 점심 공양 때게 되거든, 스님이 밥을 지어 드시고 나에게도 한 그릇 갖다 주시오.”
그러고는 남전 선사께서는 밭에 가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점심 공양 시간이 한참 지나도 객스님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래서 남전 선사께서 암자로 돌아와 보니 그 객승이 암자 안에 있는 살림살이를 모조리 부숴 놓고는 평상(平床)에 태연히 누워 있었다.
남전 선사께서 그 광경을 보시고 객승이 누워 있는 평상으로 가서 나란히 누우시자, 객승은 벌떡 일어나서 그만 가버렸다.
여기에 불법(佛法)의 고준한 안목(眼目)이 있음이라.
남전 선사께서 후에 출세(出世)하셔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암자에서 살 때에 어떤 영리한 객승이 한 분 왔었는데 오늘에 이르도록 그 객승과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하고 그 객승을 두고 크게 칭찬하셨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이여!
암자 안의 살림살이를 다 부숴버리고는 평상에 누워 있다가, 남전 선사께서 옆에 와 누우시니 벌떡 일어나서 가버린 그 객승의 용심처(用心處)를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불조(佛祖)와 더불어 동행하는 안목을 갖추었음이로다.”
남전 선사께서 살림살이가 다 부서져 있는 광경을 보시고, 객승이 누워 있는 평상에 가서 나란히 누우셨던 뜻을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구름이 허공 가운데 일어났다가 멸하는 것을 스스로 관찰하는 눈을 갖추셨도다.”
하루는 마조 선사의 제자들인 남전(南泉)선사, 귀종(歸宗)선사, 마곡(麻谷) 선사, 세 분이 남양 혜충(南陽 慧忠) 국사를 친견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며칠을 걸어가다가, 남전 선사께서 길바닥에 커다란 원상(圓相)을 하나 그려놓고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이 원상에 대해서 한 마디씩 분명히 이를 것 같으면 혜충 국사를 친견하러 가겠거니와, 바로 이르지 못할 것 같으면 친견하러 갈 수 없네."
이에 마곡 선사는 그 원상 안에 주저앉으셨고, 귀종 선사는 원상을 향해 여자 절[女人拜]을 한 자리 나붓이 하셨다.
그 광경을 지켜보시던 남전 선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그렇게 이른다면 국사를 친견하러 갈 수 없네. 도로 돌아가세."
그러자 이 말 끝에 귀종 선사께서,
"이 무슨 심보를 행하는고?"
하고 한 마디 던지셨다.
참으로 귀종 선사는 불조(佛祖)를 능가하는 안목이 있음이라.
알겠는가?
선지식은 이러한 차별삼매(差別三昧)를 바로 보는 명철(明徹)한 지혜의 눈을 갖추었는지 그 진위(眞僞)를 점검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불법정안(佛法正眼)을 갖춘 선지식을 속일려고 해도 속일 수가 없다. 선지식은 그 낙처(落處)를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입을 여는 순간에 바로 그 진위(眞僞)를 척척 가려내지 못한다면,
아직 정안(正眼)을 갖추지 못한 참학도중인(參學途中人)인 것이니, 마땅히 다시 참구해야 옳음이라.
그러면 남전 선사께서 귀종선사와 마곡 선사의 답처(答處)를 보시고 혜충 국사를 친견하러 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남전 선사를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백주 대낮에 도적질을 하다가 도적의 몸이 드러나 간파(看破)당함이로다.
세 분의 도인들이 한가하게 사는 세계를 알겠는가?
[대중이 아무 말 없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相喚相呼歸去來(상환상호귀거래)하니
不覺露濕全身衣(불각로습전신의)로다
서로 부르고 부르며 오고 가다가
전신이 이슬에 젖음을 깨닫지 못함이로다.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치고 하좌하시다]
佛紀 2562年 11月 22日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眞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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