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시골살이 20수 〔村居 二十首〕

淸潭 2024. 8. 18. 11:05

동주집 전집 제4권 / 시(詩)○가림록(嘉林錄) / 이민구(李敏求)

시골살이 20수 〔村居 二十首〕

 

오랫동안 성남의 집 사랑하여 / 舊愛城南築

팔에 찬 좌동어 또 던졌네 / 新抛肘左銅

중년에 전원생활 서투른데 / 田園中歲薄

늦가을 골목길 텅 비었구나 / 門巷九秋空

집 손질하며 박 덩굴도 거두고 / 理屋收瓜蔓

울타리 세워 국화떨기 보호하네 / 栽籬護菊叢

시향은 참 배울 만하니 / 尸鄕眞可學

마침내 축계옹 되리라 / 終作祝鷄翁

2

섭현 수령의 두 마리 오리 / 葉宰雙鳧舃

멀리 궁궐로 날려 보냈네 / 歸飛禁闥遙

애오라지 고향 찾아가다가 / 聊尋下鄕路

잠시 북산 나무꾼에게 머물렀네 / 暫偶北山樵

난세에 기꺼이 편안히 누워 / 亂世甘高枕

미친 노래를 한 표주박에 부치네 / 狂歌寄一瓢

누가 알랴 장중울이 / 誰知張仲蔚

성명한 조정에 나가지 않고 늙은 줄을 / 已老聖明朝

3

게으른 성품 가는 세월 상심하여 / 懶性傷年往

돌아와 종일토록 쉬노라 / 歸來鎭日休

응당 벼슬살이 싫지만 / 自應嫌束帶

감히 갖옷 입기는 마다 않네 / 未敢厭披裘

궁벽한 땅이라 먼지바람 날리고 / 地僻風塵際

차가운 성에 초목은 가을로 접어드니 / 城寒草樹秋

강호에 기러기 돌아오면 / 江湖鴻雁到

기꺼이 너와 짝하리라 / 甘與爾同儔

4

밤나무 자란 숲 정자 언덕에 / 栗樹林亭畔

사립문 닫고 들 늙은이 살아가네 / 柴門野老居

성긴 울에는 묵은 풀 우거졌고 / 疏籬依宿莽

낙엽은 찬 도랑에 쌓였어라 / 落葉擁寒渠

만생 차조는 술 빚기 적당하고 / 晩秫宜供酒

그윽한 창은 책 읽기 좋구나 / 幽窓可讀書

백 년 의탁하겠다던 뜻을 / 百年棲託意

늙었으니 어찌하려는가 / 衰謝欲何如

5

들 넓어 흥취 불러일으키고 / 野闊延吾興

시내 길어 나그네 시름 끌어가네 / 川長引客愁

흐렸다 맑았다 가을 날씨 쉬 변하고 / 陰晴秋易變

뜨고 지는 해와 달에 한 해 저물려 하네 / 日月歲將周

새들 돌아오니 온 숲에 어둠 내리고 / 鳥雀千林暝

안개와 노을에 한 골짜기 그윽하다 / 煙霞一壑幽

타향살이 근심 많아 / 僑居關百慮

석양에 서쪽 누대 기대섰네 / 落景倚西樓

6

세상의 기심 사라져 / 世路機心息

시골집에서 게으른 성품대로 살아가네 / 郊扉懶性成

들 구름은 피어나 그대로 머물고 / 野雲生自住

강호의 해 졌는데도 밝은 빛 남았네 / 湖日落猶明

고요한 가운데 잠시 거문고 타니 / 暫撥琴書靜

맑은 궤석 사랑스럽네 / 祗憐几席淸

쓸쓸한 한 골짜기에 / 蕭然一丘壑

일 없어 다시 마음 끌리네 / 無事更關情

7

병들었어도 몸이 있어서 / 病後身猶在

가을 되자 흥취 없지 않네 / 秋來興不無

마음대로 아이들이 알게 하고 / 任從兒輩覺

기꺼이 늙은 농부와 함께하네 / 甘與老農俱

완적은 깨어 있던 시간 적었고 / 阮籍醒時少

방덕공은 외로이 자취 감췄지 / 龐公隱跡孤

어찌 길이 은거한다 말하랴만 / 何堪語長往

끝내 곤궁한 길 멀리하리라 / 終是遠窮途

8

초가 누각에서 쓸쓸히 바라보노라니 / 草閣憑寒望

검푸르게 땅거미 밀려온다 / 蒼然暮色來

농사 흉년이라 상심하고 / 爲農傷歲歉

풍경에는 늙은 신세 서글프네 / 卽事感年頹

물 줄었어도 흐름은 급하고 / 水落歸流駛

숲 성겨 돌아가는 새들 서두르네 / 林疏去翼催

산언덕 계수나무 잡는 곳에서 / 山阿攀桂處

늙고 병든 몸으로 또 머뭇거린다 / 衰疾且遲回

9

세월은 흘러가는 물 같아 / 年光猶逝水

저녁에 핀 꽃 이미 서리 맞았네 / 夕蕋已經霜

세는 머리를 어찌 막으랴 / 有鬢那禁白

무심히 술잔에 국화 띄우네 / 無心更泛黃

하늘의 운행은 항상 끊임없는데 / 天機常衮衮

사람의 일은 갈수록 아득하기만 / 人事轉茫茫

사문의 일 헤아려 보니 / 斟酌斯文感

후대 사람들 상심하게 할 뿐 / 徒令後代傷

10

초가집 서너 채도 보이지 않으니 / 草屋無三四

구름 덮인 숲 멀리 몇 겹이런가 / 雲林遠幾重

그윽하고 고독함에 관심 있는 것 아니라 / 非關好幽獨

나약하고 게으름 길러 볼까 하노라 / 只擬養孱慵

도를 배우자니 왕렬에게 부끄럽지만 / 學道慙王烈

벼슬살이는 병단을 사모하네 / 爲官慕邴容

가을 농토에 수확이 적지만 / 秋田雖少穫

내 저녁밥쯤은 지을 만하네 / 晩飯足吾供

11

가을 해는 빛도 부족해 / 秋日色猶薄

차가운 하늘에 저녁 시간 쉬 생긴다 / 寒霄陰易生

변방 기러기는 끝내 머물지 않고 / 塞鴻終不住

가지에 앉은 까치는 자주 놀라네 / 枝鵲自多驚

난세에 슬픈 뿔피리 소리 들리니 / 亂世聞悲角

깊은 산에서 나란히 밭 갈기를 생각하네 / 深山憶耦耕

숲 바람이 머리카락 날려 / 林風吹鬢髮

서리 기운 저물녘에 더욱 맑아라 / 霜氣晩彌淸

12

들 나루는 모래 따라 모양 바뀌고 / 野渡隨沙改

찬 다리는 물 따라 밑바닥 드러내네 / 寒橋逐水低

고기와 새우가 가을 저자에 널렸고 / 魚蝦秋市散

골목에는 저물녘 새들이 깃들었네 / 門巷暮禽棲

손님 떠나 의자 걸어 두고 / 客去須懸榻

나는 늙어 청려장에 몸 맡겼네 / 吾衰任杖藜

앞 숲이 점점 성글어져 / 前林漸疏豁

마른 잎이 그윽한 오솔길에 떨어지네 / 枯葉下幽蹊

13

성곽 밖에 농사일 드물어 / 郭外稀田事

가을 되어도 수확 적어라 / 秋來寡歲功

농사는 항상 부족해 괴롭지만 / 爲農常苦乏

빌붙어 살며 궁함을 사양하랴 / 寄食敢辭窮

발걸음이 산속에 두루 미쳐 / 步屧山中遍

그윽한 오솔길 나무 밑으로 나 있네 / 幽蹊樹底通

서리 내린 아침 상수리 주울 때 / 霜朝拾橡果

마땅히 원숭이에게 양보하지 않으리 / 應不讓狙公

14

병 낫자 아침 게으름 줄어 / 病起朝慵減

숲 사립문 서리 내린 새벽에 여네 / 林扉啓曉霜

지팡이 짚고 굽은 오솔길 찾아들어 / 杖藜尋徑曲

약초 캐느라 덤불 헤치네 / 斸藥破榛荒

자취 감춰 만나는 사람 드물어 / 遯跡逢人罕

노래하며 심사 길게 논해보네 / 行歌論意長

시든 꽃을 쇠한 얼굴로 마주한 채 / 殘花對衰鬢

홀로 중양절 보내노라 / 獨自過重陽

15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 諧合旣非性

상황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났지 / 行違隨所遭

남들은 사마상여처럼 게으르다 의심했지만 / 人疑馬卿慢

나는 녹문의 높은 풍모 좋아했네 / 吾愛鹿門高

저자 가까워 물고기 야채 구할 수 있고 / 近市通魚菜

이웃집에 술도 있다네 / 隣家具酒醪

백년 인생 산야에서의 흥취 / 百年山野興

가을날에 넘실넘실 넘치네 / 秋日正滔滔

16

군수 사직은 절개 자랑하려 함이 아니었고 / 辭邑非姱節

밭을 구함은 노년을 위해서지 / 求田爲暮年

어찌 곡식을 구할 곳 없으랴 / 豈無通菽粟

인가도 가까이 있는 걸 / 亦有近人煙

들녘 나무 맑은 날 의지할 만하고 / 野樹晴堪倚

뜰 대나무 푸르러 사랑스럽다 / 庭篁翠可憐

남쪽 담장에서 처마 햇살 받으며 / 南墻負簷日

마음껏 아침잠 자련다 / 隨意竟朝眠

17

책상에 다른 물건은 없고 / 几案無餘物

예전에 지은 글만 있네 / 圖書只舊題

두려움 떨치니 비좁은 곳도 편안하고 / 匡怵容膝穩

지팡이 짚으니 몸도 반듯해지네 / 拄杖竝身齊

이웃마다 부르고 맞이해서 / 邀請皆隣舍

돌아오면 낮닭 우는 시간 지나네 / 歸來過午鷄

찬 시냇물 줄지 않아 / 寒溪流未減

말 탄 사람 가을 진흙탕 피해 가네 / 騎馬避秋泥

18

닭 울자 사람들도 일어나 / 鷄鳴人亦起

서리 달 아래 새벽 방아 소리 차갑구나 / 霜月曙舂寒

만물이 다 분수 따르니 / 萬物皆隨分

내 삶을 감히 편안히 여기노라 / 吾生敢自安

땔감 묶으니 가을 길 좁고 / 束薪秋徑細

지붕 손질로 한 해 일 마쳤네 / 升屋歲功殫

밭 갈고 우물 파며 늙어 가리니 / 耕鑿從茲老

〈벌단〉에 부끄러움 없으리라 / 能無愧伐檀

19

탁 트인 처마 앞에 소나무가 가리고 / 簷豁交松蓋

텅 빈 뜰에 대나무 그늘 깔리네 / 庭虛受竹陰

타향살이에도 이런 운치 있으니 / 僑居還有此

모든 것이 이처럼 성정에 맞구나 / 適性摠如今

한강 동작나루는 멀고 / 江漢銅津遠

구름 낀 관악산 깊네 / 雲山冠嶽深

세상 시름 잊지 못하고 / 未能遺世慮

고개 돌려 걱정하네 / 回首覺勞心

20

풀밭에 앉아 오래 술잔 돌리다가 / 草坐傳杯久

냇물에 친 고기 그물 더디게 거두네 / 溪漁捲網遲

된장으로 알맞게 요리하니 / 已調鹽豉適

기름져 꽤 먹기 좋구나 / 最與腹腴宜

들녘 해는 성긴 나무에 걸리고 / 野日銜疏樾

서릿바람이 굽은 언덕에 몰아치네 / 霜風振曲陂

취해서 보니 장인어른 생각은 / 醉看吾舅意

돌아가는 길에 손자 안아 보는 것이겠지 / 歸路擁孫兒

 

[주-D001] 팔에 …… 던졌네 :

이민구가 임천 군수를 사직했다는 말이다. 좌동(左銅)은 좌동어(左銅魚)로 지방관이 차는 패물인데, 구리로 만든 물고기 형태의 부절(符節)의 왼쪽 반을 말한다. 두목(杜牧)의 〈춘말제지주농수정(春末題池州弄水亭)〉에 “마흔 넷 지방관, 양쪽에 좌동어 찼네.〔使君四十四, 兩佩左銅魚.〕”라는 내용이 보인다. 《御定全唐詩 卷522》

[주-D002] 시향(尸鄕)은 …… 되리라 :

세상을 피해 은자적 삶을 살겠다는 말이다. 시향은 지명이다. 《열선전(列仙傳)》 권상(上) 〈축계옹(祝雞翁)〉에 “축계옹은 낙양 사람이다. 시향의 북쪽 산 아래 살면서, 백여 년 동안 닭을 길러 천여 마리가 되었다.〔祝雞翁者, 洛人也. 居尸北山下, 養雞百餘年, 雞有千餘頭.〕”라고 하였다.

[주-D003] 섭현(葉縣) …… 보냈네 :

이민구가 임천 군수를 사직했다는 말이다. 섭재(葉宰)는 섭 현령(葉縣令)을 지낸 동한(東漢)의 왕교(王喬)를 가리킨다. 부석(鳧舃)은 현령을 말한다. 동한(東漢)의 왕교(王喬)가 섭 현령(葉縣令)에 부임한 뒤에, 서울에 올 때마다 두 마리의 들오리를 타고 왔는데, 그 들오리를 잡고 보니, 옛날 상서성(尙書省)에 있을 적에 하사받은 신발 한 짝만 남아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後漢書 卷112上 方術列傳 王喬》

[주-D004] 미친 …… 부치네 :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살겠다는 말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어질다,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 물로 누추한 시골에서 지내는 것을, 남들은 그 곤궁한 근심을 감당치 못하거늘,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주-D005] 누가 …… 줄을 :

벼슬에 나가지 않고 늙어가겠다는 말이다. 장중울(張仲蔚)은 후한(後漢) 때 사람으로, 박학다식하고 천문과 시부(詩賦)에 능했음에도 몸을 숨기고 벼슬하지 않은 채 늘 빈한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가 일체 외출하지 않다 보니, 그의 집 마당에는 사람의 키를 넘을 만큼 쑥대가 우거졌다고 한다. 《高士傳 卷中 張仲蔚》

[주-D006] 감히 …… 않네 :

초야의 삶이 싫지 않다는 말이다. 피구(披裘)는 고고하게 숨어 사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 갖옷을 입고 나무를 하면서 연릉 계자(延陵季子)를 준엄하게 꾸짖은 은사 피구공(披裘公)의 고사와 한(漢)나라 엄광(嚴光)이 숨어 살면서 갖옷을 입고 낚시를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論衡 卷4 書虛篇》

[주-D007] 마음대로 …… 하고 :

진(晉)나라 때 왕희지(王羲之)가 사안(謝安)에게 말하기를 “늘그막에 이르러서는 의당 음악을 즐겨서 근심을 풀어야 하는데, 항상 아이들이 알까 염려하는 생각에 즐기는 맛이 감소된다.”라고 하였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여기서는 아이들이 알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고 흥을 즐긴다는 의미이다.

[주-D008] 완적(阮籍)은 …… 적었고 :

완적의 자는 사종(嗣宗)이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다. 그는 현실이 불만스러워 세상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술을 즐겨 마시며 노장(老莊)의 설에 심취한 채 살았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주-D009] 방덕공(龐德公)은 …… 감췄지 :

방공(龐公)은 후한(後漢) 때 제갈량(諸葛亮)이 존경했던 은자(隱者)로, 한 번도 도회지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방덕공을 말한다. 유표(劉表)의 간청도 뿌리친 채, 처자를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龐公》

[주-D010] 계수나무 잡는 곳에서 :

반계(攀桂)는 계수나무를 잡아당긴다는 말로, 은자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초사(楚辭)》 〈초은사(招隱士)〉에 “계수나무 가지를 부여잡으며 편히 오래 머무른다네.〔攀援桂樹兮聊淹留〕”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