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아들을 곡하다. / 이산해

淸潭 2020. 2. 28. 18:29

아계유고 제2권 / 기성록(箕城錄) ○ 시(詩)

아들을 곡하다.

      
홀홀히 나를 돌아보지도 않느냐 / 邁邁不我顧
울며 가슴 쳐도 너는 알지 못하고 / 哭擗汝不知
목 놓아 불러봐도 너는 깨지 않네 / 長呼汝不寤
네가 간 지도 어언 반달이 지났건만 / 汝逝已半月
어이 한 번 꿈속에도 오지 않느냐 / 胡不一入夢
정령이 어찌 지각이 없으랴마는 / 精靈豈無知
나의 슬픔 더할까 봐 걱정해서겠지 / 恐我增摧慟
경진년에 네 형을 곡할 당시엔 / 庚辰哭汝兄
지하에 함께 못 묻힘이 한스러웠는데 / 恨未同入地
이듬해 봄 다행히도 너를 얻어 / 翌春幸得汝
슬픈 심정이 자못 위로되었었지 / 哀情頗自慰
아침저녁으로 장성하기를 바랐나니 / 朝夕冀長成
얼마나 마음 쏟아 지성껏 가르쳤던가 / 何心勤訓誨
네 나이 겨우 열 살이 지나자 / 汝齡纔過十
훤칠하게 또래들 중에 빼어났었지 / 頎然出同隊
지난해 뜻밖에 전란을 만나서 / 前歲値喪亂
열 식구가 산 속으로 피신할 적에 / 十口竄林谷
허둥지둥 네 어미와 누이를 따라 / 遑遑隨母妹
천리 먼 이곳 유배지로 찾아왔었지 / 千里尋遠謫
갖은 고초 겪으며 높은 재를 넘고 / 間關踰峻嶺
주림 목마름 참으며 산길 물길 지나 / 跋涉忍飢渴
황보촌에 와서 산 지 삼 년 동안 / 三年黃保里
죽으로 끼니 때워도 탈이 없기에 / 饘粥幸無恙
네가 맘껏 뛰놀게 내버려두고 / 任汝恣遊嬉
네가 건강한 게 마음 든든했었지 / 恃汝尙康壯
다리 아픈 것쯤 걱정하지 않았더니 / 脚痛吾不憂
마침내 위독해질 줄 누가 알았으랴 / 誰知竟危劇
여드레 만에 기운이 실낱같더니만 / 八日氣如線
가물가물 점점 끊어지려 했었지 / 奄奄漸就絶
사람들은 삿된 귀신이 붙었다 했지만 / 人疑邪作崇
허탄한 소리라 나는 듣지 않았고 / 誕妄吾不許
어떤 이는 종기가 안에서 생겼다 해도 / 或言腫內發
이 말 역시 근거없다 믿지 않았지 / 此說亦無據
맥을 짚어보아도 아무도 병을 모르니 / 證脉皆不識
무슨 수로 좋은 약인들 쓸 수 있었으랴 / 何由試良藥
완연한 너의 이목구비가 / 宛宛汝眉目
내 옆자리에 항상 있는 듯하고 / 如在吾坐側
낭랑한 너의 웃음소리는 / 琅琅汝笑語
먼저 간 네 형들과 노는 듯하네 / 如對兩兄謔
해 저물면 너 오길 기다리고 / 日暮待汝歸
밤 깊으면 널 불러 함께 잤지 / 夜深呼汝宿
때때로 네가 죽은 줄도 잊고 지내다 / 時時忘汝死
소스라쳐 문득 정신이 들곤 한단다 / 翻然忽驚覺
통곡해도 소용없는 줄 익히 알지만 / 固知慟無益
너무도 사랑했기에 억누르기 어렵구나 / 情鍾難自抑
죽음에 어찌 나이의 선후가 있으랴만 / 死豈有先後
죽지 못한 이 몸 슬픔이 끝이 없단다 / 未死情未了
네 형이 겨우 스무 살에 죽더니만 / 汝兄二十亡
지금 너는 열네 살에 요절하였구나 / 今汝十四夭
아들을 잃은 사람 물론 많겠지만 / 人孰不哭子
누가 나처럼 참혹한 슬픔 겪었으랴 / 誰如我偏酷
내가 평소에 악한 업을 많이 쌓아 / 平生吾積惡
겹친 재앙을 이렇게 불러들였구나 / 致此殃禍沓
무주공산에다 너의 널을 묻고서 / 空山寄旅櫬
향화를 사르고 한 번 곡을 하노라 / 香火時一哭
네가 놀던 곳에는 동풍이 불어와 / 東風舊遊地
풀은 지난해처럼 이렇게 푸르건만 / 草如去年綠
너는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 汝去不復廻
이내 가슴이 어이 찢어지지 않으랴 / 如何不摧裂
조만간에 성은을 입고 사면되거든 / 早晚倘蒙恩
말을 빌려 너의 유골을 싣고 가서 / 貨馬載汝骨
고향 산에 돌아가 고이 안장하고 / 歸葬故山土
나 죽거든 너와 한 산기슭에 누우련다 / 死後同一麓
나의 소원은 오직 이것뿐이지만 / 志願止此足
사람 일이란 알 수 없음을 어이하리요 / 人事柰難必
넋은 어디고 마음대로 갈 수 있으리니 / 魂去無不之
네 형을 찾아가 함께 잘 지내려무나 / 尋兄好追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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