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경전

반야심경 해설

淸潭 2018. 2. 4. 12:28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본래 갖추고 있는 위대한 지혜에 이르는 마음의 경(해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제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관자제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가지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보고 괴로움과 재앙을 멸도했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또한 그러하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재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정불감)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귀,코,혀,와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無眼界乃至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무안계내지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 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괴로움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 없어진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密多故 心無 碍 無 碍故 無有恐怖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음으로 두려움이 없어서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뒤바뀐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故 得阿   多羅三漠 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 다라삼먁 삼보리)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아뇩다라 삼약삼보리를 얻느니라.

故知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그르므로 알지어다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에도 견줄수 없는주문이니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온갖 괴로움을 없에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느니라.

故設 般若波羅密多呪 卽設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나니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세번)

가자 가자 진리를 향하여 가자 우리 다함께
평안의 저 언덕으로 깨달아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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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用語)설명(說明)

◇ 삼장법사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藏)을 통달한 스님.
중국 고승인 현장의 속칭.
현장스님은 범어(梵語:Sanskrit)로 된 반야심경을 한문으로 번역을 하였다.
여기서, 경장(經藏)은 석가모니가 가르친 법,
율장(律藏)은 석가모니의 가르침 가운데
특히 불제자가 지켜야 할 계율,
논장(論藏)은 경과 율을 여러 가지로 해설한 성과를 모은 것이다.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큰 지혜로(깨달음) 저 언덕(해탈)에 이르는 도리를 밝힌
핵심이 되는 경전", 넓은 의미로는 "큰 지혜로 우리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 되는 말씀"을 말한다.여기서,

마하는 크다, 많다, 승리하다.

반야는 생명 내부의 움직임 속에서 절
로 솟아나는 지혜. 법의 이치를 깨달은 최상의 지혜.
따라서 반야를 얻은 사람은 성불하여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다.
바라밀다는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르는 상태,
심경은 핵심(중심)이 되는 경전을 말한다.

◇ 관자재보살
중생을 고통에서 구원코자하는 부처님의 자비로운 마음의 화신.

◇ 조견오온개공
몸과 마음이 모두 텅 비어있음을 비춰보다.
오온(五蘊)에는 인간을 구성하는 5가지의 구성요소
[색(色)온, 수(受)온, 상(想)온, 행(行)온, 식(識)온]가 있다.
인간으로 말하면 몸과 마음.
이 오온은 불교의 인간관(人間觀)을 나타내며,
인간은 이 5가지 작용 때문에 인간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색온(色蘊)은 물질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몸체 즉,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
인간으로 말하면 육신에 해당하는 부분,

수상행식(受想行識)은 몸체에서 활동하는
정신적인 작용, 수온(受蘊)은 몸체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때
느끼는 것 즉,즐거움과 괴로움을 느끼는 마음의 감수작용을 말한다.
상온(想蘊)은 느낀 마음의 상태.쾌감은 기쁨을,
고통은 분노를 느끼는 마음의 요소,
행온(行蘊)은 마음의 요소가 기쁨은 사랑, 분노는 증오로 바뀌는 것,
식온(識蘊)은 체험 중에서 의식하고 분별해서
아는 마음의 모든 인식작용을 말한다.
한편 공(空)은 색(물질)을 형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힘.
유(有)와 무(無)를 초월한 존재의 실상을 말한다.

◇ 도일체고액,사리자
도는 건너가다, 일체는 모든, 고액은 고난과 재액,
사리자는 석가모니 10대제자 중 가장 지혜가 많은 제자를 말한다.

◇ 제법공상
제법(諸法)은 일반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말로서
식물, 동물,무생물을 비롯하여 여기에 인간도 포함된다.
공상(空相)은 모든 법이 빈 모양.

◇ 십이처
십이처(十二處)는 육근과 육경을 말한다. 여기서 육근(六根)은 안이비설신이(眼耳
鼻舌身意)로서 6가지의 주관적인 인식작용 즉, 눈, 귀, 코, 혀, 몸과 생각을 말하
고, 육경(六境)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으로서 6가지의 객관적인 인식작용
즉, 물질, 소리, 향기, 맛, 촉감과 법을 말한다.
십이처란 눈으로는 물체를 느끼고, 귀로는 소리를 듣고,
코로는 냄새를 맡고, 혀로는 맛을 보고, 몸으로는 촉감을 느끼고,
의식으로는 지각하는 일을 말한다.

◇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십팔계의 하나인 육식을 말하며,
십팔계는 육근, 육경과 육식으로 구성된다.
육식(六識)에는 육근과 육경 사이에서 도출되는 인식작용인 안식계,
이식계, 비식계, 설식계, 신식계, 의식계가 있다.여기서,
안식계(眼識界)는 눈으로 보아서 인식되는 것,
이식계(耳識界)는 귀로 들어서 인식되는 것,
비식계(鼻識界)는 코로 냄새를 맡고 인식되는 것,
설식계(舌識界)는 혀로 맛을 보아 인식되는 것,
신식계(身識界)는 몸으로 촉감을 느껴 인식되는 것,
의식계(意識界)는 의지로 지각을 느껴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명∼노사 즉, 12인연을 줄인 말.
십이인연(十二因緣)은
무명, 행, 식, 명색, 6입, 촉, 수, 애, 취, 유, 생과 노사를 말한다.
여기서, 무명과 행은 과거이인(過去二因)으로서 이로 인해
식, 명색, 육입, 촉, 수 5가지(현재오과)가 생긴다.
애(愛),취(取)와 유(有)는 현재삼인(現在三因)으로서
이것이 현생의 씨앗이 되어 미래의 결과인 생과 노사를 낳게 된다.

무명(無明)은 어둠(暗)을 말하며,
이 때문에 생(生)과 사(死)의 윤회 수레바퀴가 되풀이 된다.

행(行)은 어두운 정신세계에서 무엇인가 요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단계. 잠재적인 무의식력이며, 충동력을 말한다.

식(識)은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인식작용.
새로운 생을 시작해야겠다는 사고(思考)를 시작하는 순간을 말한다.

명색(名色)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받는
"오온". 몸과 마음을 말한다.

육입(六入)은 육처 즉,
육근(안이비설신)이 형성되는 시기로서
어머니 뱃속에서 여러가지 기관들이 형성되는 시기,

촉(觸)은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시기로서 이 시기는
느낌만 있지 느낌을 식별하는 기능은 없다.

수(受)는 감정을 감수하고 인상을 느끼는 능력이 발동되는 시기.
육입에서 한 걸음 더나아가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단계.
싫은 것은 배척하고 좋은 것은 받아들 이는 단계,

애(愛)는 애착심을 느끼는 단계로서 애착대상을 계속
진행시키려는 성질이 있으며,
이성을 느끼는 감정은 바로 애의 단계이다.

취(取)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취하여 가지려는 행동,

유(有)는 한번 취한 것은 자기 것으로 하려는 소유욕으로서
이것은 애와 취를 바탕으로 거기서 여러 가지 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서 우리 인생살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생(生)은 애, 취 및 유의 상태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서
애, 취 및 유의 생활을 지속하는 것,
노사(老死)는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죽음후의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변하고 영혼만 남는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생(生)을 시작하기 전의 단계이다.
죽음은 깊은 잠과 형태가 유사하며,
영혼은 깊은 잠속에 있다가 팔식(八識)에 잠재되어 있는
무명(無明)이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인연 있는 곳을 찾아서 다시 움직인다.

업식(業識)이 있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윤회(輪廻)를 되풀이한다.
때때로 살아있는 동안 어느 한 곳에 너무 집착하면
영혼만 남게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물질화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평소에 애(愛,) 취(取), 유(有)의 업(業)을 잘 지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인연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달라진다.

◇ 무고집멸도
사성제(四聖諦)인 고제, 집제, 멸제, 도제를 말한다.
여기서, 고제(苦諦)는 인생은 괴로움으로 충만되어 있다는
견해로서 불교에서는 이 고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집제(集諦)는 고(苦)의 원인이 되는 것,
멸제(滅諦)는 괴로움이 소멸된 것으로
삼독(탐진치:욕심, 성냄, 어리석음)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
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는 일은 불교의 목적이자 종교가 향하는 목표이다.
도제(道諦)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으로서 팔정도가 있다.

팔고(八苦)는
생, 노, 병, 사의 사고(四苦)와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오온성고를 말한다. 여기서,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좋아하는 것(사람)과 헤어짐으로서 괴로운 것,

원증회고(怨憎會苦)는 싫어하는 것(사람)과 만나서 괴로움것,

구부득고(求不得苦)는 자기가 구하려는 것이 얻어지지 않아 괴로운 것,

오온성고(五蘊盛苦)는 몸과 마음 그 자체가 하나의 고통이 되는 것.

팔정도(八正道)는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을 말한다.

여기서,
정견(正見)은 바른 소견. 존재의 실상을 바로 꿰뚫어 보는 것,
정사(正思)는 바른 생각. 정견이 이루어지면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정어(正語)는 바른 언어. 올바르지 못한 말은
             삼업중에서 구업(口業)을 짓는 것과 연관된다.
정업(正業)은 바른 행위. 삼업(신·구·의)을 통하여 바른 업을 짓는 것,
정명(正命)은 바른 생업.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바른 수단,
정정진(正精進)은 바른 정진. 곧 바른 수행, 정념(正念)은 바른 기억.
             부처님 말씀을 올바로 기억하여 전하는 것,
정정(正定)은 바른 명상. 올바른 삼매로서 앞의 7가지가
             실천에 옮겨질 때 이루어지는 최상의 단계.

◇ 무지역무득
깨달음을 향하는 최상의 열쇠가 되는 지혜마저도
깨달음의 문이 열리는 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이를 무지(無智)라 하며, 불교에서는 완성이 없고 끝이 없기 때문에
완성상태에서 얻어지는 것마저 부정하고 있어 참으로 깊이 들어가면
얻는 것마저 없는 순간이 되는데 이를 무득(無得)이라 한다.

◇ 보리살타, 심무가애
보리살타는 보살. 깨달은 중생을 말하며,
심무가애는 "마음에 아무 걸림이 없다"는 말로서
"지혜의 완성은 모든 장애를 없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 무유공포
"두려움이 없다"는 말로서 마음에 아무 거리낌이 없으면
그 결과로 두려움이 걷히고 밝은 세계가 펼쳐짐을 말한다.

◇ 원리전도몽상
"바른 이치를 어기고 헛된 생각을 하는 것"으로부터
멀리 떠난다는 말로서 "올 바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전도는 평상한 도리를 어기고 바른 이치를 위반하는 것,
몽상은 꿈과 같은 실현성 없는 헛된 생각.

◇ 구경열반
보살이 지혜의 완성으로 얻게 되는 종착점으로서 최상의 경지를 말하며,
"반야심경"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즐거움의 상태가 "구경열반"이다.
여기서, 열반은 인간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는 온갖 삼독과 번뇌 망상을
불 끄듯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를 말한다.
3독(三毒)은 탐진치(貪瞋痴)로서 "욕심, 성냄, 어리석음"을 말한다.

◇ 삼세제불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

◇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범어를 그대로 음역한 깨달음의 절정을 나타내는 말로서
"더 없이 충만한 깨달음"을 뜻한다.

◇ 대신주, 대명주, 무상주
주(呪)는 주문 또는 진언.
대신주는 위대한 주문,
대명주는 심원한 지혜의 주문,
무상주는 최고의 주문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가테 가테    바라가테    바라삼가테     보디    스바하"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건너가자  건너가자  넘어서 건너가자  모든 것을 넘어서 건너가자 
그 곳에 공의 깨달음이 있느니라"

⊙대승 불교 운동⊙

제 1 장  총설
부처님의 가르침에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 구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흔히 불교의 사상을 크게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소승이란 법어로 [히나야나]라고 하는데,
[작은수레]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소승이란 의미가 그렇듯이
소승 불교는 출가 인의 개인적인 수행만을 제일로 여겼으며
소승과는 대조적으로 대승이란 법어로 [마하야나]라고 하며
큰 수레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대승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부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는 근본 뜻을 쫓아 자기 자신은 물론
모든 중생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리와 이타라는 보살행의 실천을 통해서
다함께 성불하자는 데에 최고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생존 당시부터 입적 후 백년까지는 흔히
원시 불교 시대라고 말합니다.그후 부파불교 시대를 맞이 했는데,
그것은 계율의 해석 차이로 인해 갈라진 불교 시대를 말합니다.

대승불교 운동은 부처님의 입적후 오백년 경부터 시작되었으며,
원시 불교와 부파불교 시대를 거치면서 일어나 대승불교 운동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 때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대승불교 운동은 한 마디로 부처님의 근본 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진정한 뜻을 찾는데 있어서
단지 이론이나 관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살행의 실천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표방하는 대승불교 운동은
곧 공사상(空思想) 반야사상(般若思想) 연기설(緣起說)
중도사상(中道思想) 유심사상(唯心思想) 열반사상(涅槃思想)
보살사상(菩薩思想) 등을 그 사상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공사상은 반야심경을 비롯한 대승 경전에서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중요한 핵심 사상입니다.

공사상은 존재의 원리를 파헤친 것으로
반야 사상과 연기 설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반야 사상은 우주 삼라만상의 실상을 설한 공사상을
실천적인 면에서 완성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야는 공의 이치를 완전히 체득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야 사상은 우주 삼라만상의 실상을 설한 공사상을
실천적인 면에서 완성될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야는 공의 이치를 완전히 체득함을 말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연기설은 우주와 인생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 법칙입니다.
생사윤희의 순환 고리인 십이 연기는 부처님의 직접적인
깨달음의 내용인 것입니다.
연기설은 공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와 인생에 대해 철저히 파 해침으로써
존재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이론입니다.
대승불교의 사상 중에서 공사상, 반야 사상,
연기설은 앞으로 공부하게 될 {반야심경}의 근간이 되는
중심 내용이므로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1. 오시교(五時敎), 삼종(三宗), 삼관(三觀)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시고 사십구년 동안 각처를 다니시면서
가르침을 전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설해졌기 때문에 그 양과 내용은 참으로 방대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남겨진 말씀들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전문적인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재정립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서 사십구년 간 설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오시교라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화엄시(華嚴時)로,
성도 후 최초의 삼칠일간[화음경]을 설(設)한 시기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華嚴經)에서 깨달음 전체를 설하셨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쉬운 차원으로 끌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는 아함시(阿含時)로,
그 다음의 십이년간[아함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시기에는 주로 객관적(客觀的)인 물질계에 대한
가변성과 욕망의 절제 등에 대해서 설하셨습니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로,
그 다음의 팔년간 [유마경], [금광명경], [능가경], [승만경],
[무량수경]등 방등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연기의 법칙과 주관에 대한 부정을 언급하셨습니다.

넷째는 반야시로,
그 다음의 이십년 동안 [반야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부정의 부정을 통하여 공의 세계를 밝히셨습니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무려 육백여 부에 해당되며,
그 중에서 [반야심경]은 반야의 골수만을 간추린 경전에 속합니다.
반야시는 설법 기간도 가장 길며 반야부의 경전들을 통하여
깨달음의 정수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반야부 경전은 가장 방대한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교리 적인 면에서도 가장 중심에 들어 있습니다.
반야부 경전은 소승불교에서 부족했든 점을 보완하여
반야 사상을 바탕으로 대승불교를 꽃피운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반야부 경전의 중심 내용인 공사상,
반야사상은 대승불교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다섯째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최후의 팔년간 [법화경]과 [열반경]을 설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때에는 부정의 부정을 거쳐서 대긍정의 세계를 설하셨습니다.
이상의 다섯 가지 분류를 내용 면으로 볼 때 아함시는 소승 경전에 속하고,
그 나머지는 대승 경전에 속합니다. 또 아함, 방등, 반야,
법화열반의 네 가지는 하나의 화엄으로 종합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오시교와 연관지워 불교 경전을 내용적인 면에서
다시 삼종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은 처음에는 자신이 깨달으신 전체 내용을
화엄 사상으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이 너무 높아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한 법락(法樂)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로 끌어내려 차츰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세 가지 단계로 설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경전들은
이 세 가지 삼종의 범주 안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모든 현상계를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상(相)과 유(有)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괴로움도 있고, 괴로움의 원인도 있고,
괴로움의 소멸도 있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사성체(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분명히 있는 괴로움과 그 괴로움에 대한 원인과
해결 방법이 있다는 입장에서 사상제와 팔정도가 설해 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십년 간을 주로 모든 현상계가 있다고 하는
유와 상의 상식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아함경]은 주로 유(有)의 입장에서 설해진 경전에 속합니다.
유(有)의 차원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세계로,
많은 부분이 방편설(方便設)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있다고 하는 유의 사상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도 잘 통하는 세계입니다.
또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유의 상식으로 풀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설해진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현상계를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공과 무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여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공의 사상을 낳게 했습니다.
모든 현상계는 텅 빈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상을 공한 것으로 보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십일년 간을 주로 공의 입장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반야부의 많은 경전들은 모두 여기에 속하며,
앞으로 공부하게 될 [반야심경]은 바로 공이나 무의 입장에서
설해진 대표적인 경전에 속합니다.

셋째는 모든 현상계를 존재하는 그 자채로
[진리]라고 보는 성(性)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진성(眞性), 법성(法性), 진여(眞如)의 차원입니다.
성의 차원은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 진리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가장 차원이 높은 견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팔년 간을 성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설하셨습니다.
성의 차원에서 설해진 경전으로는
[화엄경], [법화경],능엄경, 열반경등이 있습니다.
성의 차원은 또 "비유비무"  "역유역무"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곧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의 입장은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과도 잘 통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므로
그대로 진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경전의 모든 말씀 즉 팔만대장경은 상, 공, 성의
삼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법문이든지 이 세 가지의 열쇠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선사의 법문을 빌려 삼종을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됩니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의 입장에서는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발사홍서원에 나오는 [중생 무변 서원도를
상, 공, 성의 각기 다른 안목에서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제도해야 할 중생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우주 만물이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중생 또한 공한 것으로 보아 공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견해입니다.
성의 입장에서는 중생이 곧 부처이므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 한다는 견해입니다.
상종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인 양
착각하여 사는 것은 상이나 유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공한것인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은
공이나 무의 입장입니다.
공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살 것이 있는 것입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사는 일 그 자체에만 매달려 살지만
공한 입장에서는 인생의 공한 일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지혜의 안목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차원이 높은 성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인생을 진리 그 자체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고 크게 뭉뚱그려 보면 위의 상, 공, 성
세 가지 견해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현상계를 볼 때 한가지 견해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상, 공, 성 삼종과 함께 우리의 안목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삼관이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공관(空觀)입니다.
모든 현상을 공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공관은 결국 공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관찰하는 입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의 실체는 본래 공한 것이며,
인연에 따라 잠깐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공관은 삼종에서 무와 공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이해하는
차원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가관(假觀) 입니다.
모든 현상계는 본래 공한 것인데 거짓 모습에 속아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가관은 앞의 삼종중 유와 상의 입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가관은 모든 현상을 가상의 입장에 집착해서 보는 안목을 말합니다.

셋째는 중도관(中道觀)입니다.
중도관은 현상계를 그대로 진리의 차원에서 보는 안목을 말합니다
중도관은 가장 이상적이고 차원 높은 입장으로 삼종 중 성의
견해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오시교와 삼종, 삼관을 통하여 [반야심경]의 경전 상
위치와 내용적인 면을 대강 살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반야심경]은 반야부 경전의 중심이며,
동시에 불경의 심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팔만대장경 전체의 정수는 반야부의 경전이며,
그 반야부의 정수가 바로 [반야심경]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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