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불교경전

돈항본 단경 사게송(四偈頌)

淸潭 2016. 5. 2. 11:11

돈항본 단경 사게송(四偈頌)




1.   멸죄송(滅罪頌)---19품 滅罪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끝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三業)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요.
만약 마음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懺悔)니라.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2.   무상송(無相頌)---22품 修行




설법도 통달하고 마음도 통달 함이여!
해가 허공에 떠오름과 같나니

오직 돈교(頓敎)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수는구나.




가르침에는 돈과 점이 없으나
미혹함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만약 돈교의 법을 배우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하지 않느니라.




설명하자면 비록 일만 가지이나
그 낱낱을 합하면 다시 하나로 돌아오나니
번뇌의 어두운 집 속에서
항상 지혜의 해가 떠오르게 하라.




삿됨은 번뇌를 인연하여 오고
바름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됨과 바름을 다 버리면
깨끗하여 남음 없음(無餘)에 이르는 도다.




보리(菩提)는 본래 깨끗하나
마음 일으키는 것이 곧 망상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있나니
오직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는 도다.




만약 세간에서 도를 닦더라도
일체가 다 방해되지 않나니

항상 허물을 드러내어 자기에게 있게 하라.
도와 더불어 서로 합하는 도다.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거늘
도를 떠나 따로 도를 찾는지라
도를 찾아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필경은 도리어 스스로 고뇌하는 도다.




만약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대는
행동의 바름(正行)이 곧 도이니
스스로에게 만약 바른 마음이 없으면
어둠 속을 감이라 도를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잘못이라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 도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고자 할진대는
모름지기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하지 말라.
이는 곧 보리가 나타남이로다.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서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나니
세간을 떠나지 말며
밖에서 출세간의 법을 구하지 말라.




삿된 견해(邪見)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正見)는 세간을 벗어남(出世間)이니
삿됨과 바름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하리로다.




이는 다만 단박 깨치는 가르침이며
또한 대승(大乘)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하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나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3.   진가동정게(眞假動靜偈)---28품 眞假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




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유정(有情)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無情)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는 행(不動行)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도다.
능히 모양()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이지 않는다
.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眞如)의 씀()이니라
.
모든 도를 배우는 이에게 말 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用意
)
대승(大乘)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
앞의 사람이 서로 응하면 곧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존하려니와

만약 실제로 서로 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라.
이 가르침은 본래 다툼이 없음이라 다투지 않으면 도()의 뜻을 잃으리오
.
미혹함에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들어가느니라.




 




 




 




4.    자성진불해탈송(自性眞佛解脫頌)---31품 眞佛




 




진여(眞如)의 깨끗한 성품(淨性)이 참 부처(眞佛)
삿된 견해의 삼독(三毒)이 곧 참 마군이니라.
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가 집에 있고
,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 오는 도다
.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 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화신(化身)과 보신(報身)과 정신(淨身)이여
,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자신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찿는다면
곧 부처님의 깨달음을 성취한 씨앗이니라.
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성품 나는지라
.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음욕의 성품은 본래 몸의 깨끗한 씨앗이니
,
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이로다.
만약 금생에 돈교(頓敎)의 법문을 깨치면

곧 눈앞에 세존을 보려니와
만약 수행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할진대는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 도다.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다면

그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니라.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
가서 찾음이 모두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나니

세상 사람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닦으라.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에게 알리노니
,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부질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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