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법률상식

조희연, 믿었던 국민참여재판에 '제 발등 찍혔다?'

淸潭 2015. 4. 24. 20:25

조희연, 믿었던 국민참여재판에 '제 발등 찍혔다?'

  • 양은경 기자
  • 정경화 기자
  • 입력 : 2015.04.24 15:38 | 수정 : 2015.04.24 16:40

    23일 밤 9시36분,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 심규홍 부장판사가 417호 대법정에 들어섰다. 재판장 손엔 두 개의 봉투가 들려 있었다. 지난해 선거 기간 중 경쟁 후보인 고승덕 변호사에 대해 미국 영주권을 보유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재판이었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봉투 두 개엔 유무죄와 양형, 두 단계 판단이 들어 있었다. “유무죄에 대한 (배심원)평의 결과 7인 전원일치 유죄로 판결했습니다. 양형은 300만원 1인, 500만원 6인입니다.” 이어진 재판장의 선고도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

    “정권 끝나면 검찰 죽여버린다!”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선거로 뽑은 교육감을 날려버릴 수 있어.” 방청석에선 조 교육감 지지자들로 보이는 이들의 고함이 쏟아졌다. 유권자이기도 한 배심원들의 ‘전원일치’ 유죄 판결에 지지자들의 충격과 분노는 한층 더한 듯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그런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것은 조희연 교육감 본인이었다. 검찰은 애초 “배심원 또한 교육감 선거의 유권자들이어서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없다”며 국민참여재판에 반대했지만, 재판부가 조 교육감 신청을 받아들였다.

    조 교육감이 국민참여재판을 선택한 것은 나름의 전략이었다고 법조계에선 해석하고 있다. 조 교육감에게 적용된 선거법 250조(허위사실 공표죄)는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 그의 배우자 등에 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죄로 인정되면 당선무효(벌금 100만원 이상)를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조 교육감이 유권자이기도 한 배심원을 대상으로 “선출직 진보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부당한 기소”라는 주장을 펼쳐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 교육감은 재판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시민단체가 조 교육감을 고발한 이후 검찰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조 교육감에게 수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조 교육감은 응하지 않았다. 검찰은 조 교육감을 조사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구속 기소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약점을 잡히지 않고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 조사 내용을 뒤집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며 “이른바 진보인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라고 했다. 실제로 2013년 10월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가 살인 사건에 연루됐다고 허위 사실을 퍼뜨린 시사 잡지 기자 주진우씨와 ‘나꼼수’ 방송 진행자 김어준씨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조 교육감의 재판은 기대와 달리 진행됐다. 지난 20일부터 나흘간 열린 재판의 핵심 쟁점은 ‘기소의 부당성’이 아니라 조 교육감이 ‘고승덕 후보가 영주권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게 사실인지, 그럴 만한 근거가 있는지로 모아졌다. 선거법상 ‘허위사실유포’ 재판은 명예훼손 사건과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조 교육감이 의혹 제기 당시에 얼마나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그 근거가 있었다면 설령 의혹 제기가 사실이 아니라도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

    조 교육감 측은 법정에서 “지난해 5월 24일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가 ‘(고승덕 후보 )본인 역시 미국 영주권을 갖고 계시지요?’라고 올린 트윗이 수천번 리트윗되는 등 파장이 커져 의혹 해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후보자 검증을 위한 정당한 의혹제기였다는 것이다.

    조 교육감 측은 “최 기자가 탐사보도의 전문가이고, 선거캠프 관계자가 그가 추천한 고 후보의 지인에게 확인을 했고, 변호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트윗으로 의혹을 제기한 최 기자는 조 교육감 측의 문의에 추가 확인을 당부했고, 이후 고 후보가 비자 등 자료를 제시하자 사과를 표명했다.

    조 교육감 선거캠프 관계자가 확인했다는 고 후보의 지인도 법정에서 “영주권 보유 여부는 내가 모르는 일이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 측이 했다는 변호사 자문 역시 기자회견 등 의혹 제기를 한 이후에 이뤄졌고, 그것도 영주권 취득절차에 대한 일반적 수준이었음이 재판에서 드러났다.

    조 교육감은 최후 진술에서 배심원들을 향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가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한 점들이 재판에서 드러나면서 배심원 전원, 그리고 재판부 모두 유죄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무조건적인 의혹 제기가 허용될 수 없다”며 “피고인이 직접 (사실 관계를)확인하지도, 확인을 지시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조 교육감에겐 아직 항소심, 상고심이 남아 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조 교육감이 신청한 국민참여재판 결과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1심에서 배심원들이 전원 일치로 유죄 평결을 한 경우 2심, 3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참여재판에 여러 번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 정도 의혹 제기 근거를 가지고 조 교육감이 왜 국민참여재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선거관련 사건은 1심 6개월, 2심 및 3심 각각 3개월로 재판 기간을 제한하고 있어 이 사건은 1년 안에 결론이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