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 興 差 使 (함흥차사)
咸興은 太祖 李成桂(이성계)의 고향이며 差使란 조정에서 懸案(현안)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보냈던 관리를 말한다. 朝鮮 건국후 太祖는 論功行賞(논공행상)을 실시하여 鄭道傳(정도전), 趙浚(조준) 등 개국공신들에게 都評議使司(도평의사사)라는 기구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이 기구는 막강하여 王族(왕족)과 士大夫(사대부)들의 불만이 높았다.
게다가 太祖가 繼妃(계비) 소생인 芳碩(방석)을 世子로 책봉하자 불만을 품은 正妃(정비) 소생 芳遠(방원)이 太祖가 병석에 있는 틈을 타 사병을 동원해 芳碩과 함께 그의 스승이었던 鄭道傳, 이복 동생 芳蕃(방번)을 죽이고 芳果(방과)를 世子로 앉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太祖는 무척 상심해 芳果에게 양위하니 이가 定宗(정종)이다.(1398년)
2년 뒤 芳遠이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태조는 정치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고향 함흥으로 잠적해 버렸다.(1401년) 태종은 평소 태조가 총애하던 成石璘(성석린)을 差使로 보내 가까스로 태조를 모셔오기는 했지만 이듬해 다시 咸興으로 가서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 뒤 太宗이 문안 인사차 差使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差使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조는 수차의 간청에도 돌아오지 않다가 태종이 보낸 無學大師(무학대사)의 간청으로 돌아온다. 이때부터 咸興差使라면 갔다가 소식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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