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덕숭산에 기대어] 깨달음을 향하여

淸潭 2008. 3. 2. 22:04

깨달음을 향하여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법문(法門)을 많이 들으라고 권하셨으니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가 부처님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성취하였다면 지옥이나 축생, 아귀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 또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남의 믿음이나 욕심, 남의 지식을 따르지 않고 남의 뜻을 취하거나 남의 생각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진실하게 보고 아는 지혜를 가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배워서 바른 견해로 스스로 다짐하고 노력하기를 부처님의 행적만을 따라가고, 부처님의 말씀만을 따라하고, 부처님의 마음만을 따라가야 하는데 오늘날 신도님들이 체계적으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말씀을 배울 교육기관이 부족하므로 금번 본사에서 신도님들의 교육을 위한 불교대학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불교는 철학적(哲學的)인 내용이 기본으로 이루어진 교리가 많아서 무조건적으로 신앙심만을 가지고 이해할 수가 없고 철저히 과학적이고 이지적(理智的)이라 일정한 교육을 받지 않으면 그 기본정신과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불교역사에서 초기 교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당시 대표적인 제자들이 거의 부처님보다 연장자로서 넓은 지역에서 존경받았던 종교인, 정치인, 철학자였습니다. 이분들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천여 명의 출가집단을 지도하던 이교도의 지도자였으나 부처님을 뵌 후 부처님의 신통력과 자비하신 마음과 대상에 따라 방편으로 지도하시는 지혜로움과 논리 정연하신 이론, 막힘 없으신 말씀에 감동을 받아 자신은 물론 가까이는 처자, 제자, 친지, 친척들을 비롯하여 이웃나라 사람까지 교화해서 함께 출가하거나 재가 신도로서 부처님을 신봉하며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하였습니다. 실로 불교뿐만 아니라 고금을 통해 한 종교가 성립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믿음과 교육, 수행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난 사십여 년의 출가 생활을 조용히 돌이켜보면 처음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승가(僧伽)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좋아서 살 때보다 선지식을 만나서 배우면 배울수록 알면 알수록 더욱 구도심과 선심(善心)이 깊어짐을 느낍니다.
저의 마음이 이러하니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일은 자신의 출가 수행만을 기쁘게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만심과 아만심(我慢心)을 버리고 오직 정성으로 후학을 가르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법화경(法華經)에서 이르시기를, “나는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   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다. 나는 괴로운 사람을 기쁘게 하며,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게 하며, 불안한 사람을 편안하게 하며, 중생들을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 나는 모든 것을 알며 모든 것을 보고 있다. 나는 진리를 알고 진리를 말한다. 그대들은 다 나에게 와서 나의 설법을 들으라. 여래의 설법은 하나의 진리를 가르친다. 그것은 해탈 열반의 진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해탈과 열반에 궁극의 목적을 두고 수행을 하고자 원을 세웠다면 부처님 당시처럼 부처님의 설법을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 또 부처님께서는 “여래가 법을 설하는 것은 대지 위에 비를 내리는 것과 같고, 중생이 여래의 설법을 듣고 각자 자기에게 알맞은 길을 찾아서 실천하는 것은 비를 맞고 초목이 자라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설법 듣는 중생을 세 종류의 약초로 구분하시어 비교하시니, “중생들이 나의 설법을 듣고, 자기의 역량을 따라서 기쁨과 만족을 구하되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하는 이는 소약초요, 열반과 신통을 얻고 홀로 깊은 산 속에서 선정(禪定)을 닦는 이는 중약초요, 최고의 성불을 위해서 늘 정진하는 사람은 상약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설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여 하늘에서 고르게 내리는 비와 같거늘 중생의 근성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것이 같지 않음이 같은 비를 맞고도 자라는 형태가 다른 초목과 같은 것이니 이왕이면 우리도 큰 나무같이 불도에 전심해서 신통으로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오늘 신심을 발해서 정법을 배우려고 입학하신 불자님들은 우선 부처님과 보살님의 지혜와 자비를 흠모하고 가르침을 굳게 믿어서 겨자씨만큼도 의심이 없어야 하며 한 구절의 법문을 더 듣기 위해서 나찰(羅刹; 아귀)에게 몸을 던졌던 설산 동자(雪山童子)와 같은 용맹심을 발휘하여 열심히 배우고 한편으로는 계행(戒行)을 잘 지키고 삼매(三昧)를 잘 닦아서 온갖 선행을 베풀어 중생을 제도하여야겠습니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의 원력이 자리이타(自利利他;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함)에 있으니 어찌 스스로의 배움에 게을리하겠습니까? 오나 가나 간절한 마음으로 법문을 듣고 자신의 죄업과 어리석음을 깨치고 낱낱이 실천에 옮기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이르시기를, “널리 듣는 것만으로 도를 사랑하면 도는 알기 어렵고 뜻을 지키어 도를 받들면 그 도는 크고 큰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참다운 수행인이 되고자 하면 널리 가르침을 듣고(聞) 그 가르침의 뜻을 사유하여(思) 가르침대로 실천할 때(修) 도를 이룰 수 있으니 이 문사수 삼혜(聞思修三慧)의 방편을 잘 익혀야 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입학생 여러분들께 특히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공부를 하시다가 모르는 내용이 있어도 오늘의 용기를 잃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팔만사천 경전의 내용이 다 내 마음속 경장(經藏) 안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노력하십시오.
대방광여래장경(大方廣如來藏經)에서도 부처님께서 “불자들아! 일심으로 들어라. 내가 불안(佛眼; 부처님의 지혜의 눈)으로 일체 중생을 보건대 욕심, 성냄, 어리석음 등 여러 번뇌 가운데 여래의 지혜(如來智), 여래의 눈(如來眼), 여래의 몸(如來身)이 있어서 엄연히 부동하니라. 일체 중생은 그 몸에 여러 번뇌가 있어도 여래장(如來藏)이 있어 항상 때묻거나 물듦이 없고 덕상(德相)이 원만하게 갖추어 있어 나와 다를 바가 없느니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의 발심(發心)이 부디 성불(成佛)로 열매를 맺으십시오. 사바세계의 연꽃은 진흙에 뿌리를 두었습니다. 성불합시다.                                          

- 불교대학 입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