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시대의 선승이시며 중국 선종의 시조(始祖)이신 달마 스님(菩提達磨大師)께서는 130세에 남인도 향지국을 떠나시어 오랜 항해 끝에 중국 광동에 이르시어 남쪽의 양나라에 가시어 양무제를 만나셨는데 그 당시 무제는 승속간에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렸으며 곤룡포(袞龍袍)보다도 가사(袈裟)를 수하기 좋아했고 경학에도 능통하여 어전(御殿)에 승려들을 초빙해서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을 즐겨 설하고 오경의주(五經義註) 2백여 권 및 많은 저술도 했으나 마음은 늘 현세적인 이익추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달마 스님과 무제의 만남에서 사상적 차이로 서로 결별을 하게 되는데 그 때 대화의 내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무제가 달마 스님에게 “짐은 절을 세우고 경을 간행하며 승려들을 수호하오. 그러니 그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하자 달마 스님께서는 “무공덕(無功德; 공덕이 없다)이오.”라고 단호히 말씀하시고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가시어 소림산에서 혜가 스님(慧可禪師)을 만날 때까지 9년간 면벽(面壁) 침묵에 드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일화에서 달마 스님께서 왜 무제에게 공덕이 없다고 말씀하셨을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또 그렇다면 달마 스님의 정신에 맞는 참다운 공덕은 어떻게 해야 짓는 것인지를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공덕이라는 말을 했을 때 세인들은 공적과 덕행을 말하며 불가에서는 현재 또는 미래에 행복을 가져올 선행(善行)을 말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선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선이라는 것은 착하고 올바름을 뜻하는데 진정한 올바름은 지혜로운 자만이 아는 것이니 결국엔 참선을 해서 깨달음을 얻은 뒤라야 온전한 공덕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구복불교(求福佛敎)를 해서 많은 복을 받아도 우리 마음에 삼악(三惡; 탐·진·치)은 그냥 남아 있으니 수행불교(修行佛敎)를 해야 도를 닦는 것이고 참다운 공덕을 지어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승보살(大乘菩薩)의 덕행은 육바라밀(六波羅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실천에 있는데 그 중 지혜는 나머지 바라밀의 주춧돌이니 보시도 지혜롭게 해야 참보시요, 지계도 지혜롭게 해야 참 지계이며 나머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지혜는 선정(禪定)에서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이 모두 선문(禪門)에서 나신 것입니다.
선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선(禪; dhyana)은 범어이며, 한역으로는 생각으로 닦는다(思惟修) 또는 고요히 생각한다(靜盧)로 번역하는데 선정과 지혜의 뜻을 가졌습니다. 일체 중생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품을 불성(佛性)이라 하는데 이를 깨닫는 것을 지혜라 하고 닦아가는 것을 선정이라 하니 선정과 지혜를 통틀어 선이라 부릅니다.
달마 스님께서 생각하신 공덕은 깨달음에 있는 것이요, 작복(作福)에 있는 것이 아닌데 무제는 복을 짓고 도를 닦는 것처럼 공덕을 내세웠으니 서로 맞을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선에도 얕고 깊은 것이 있으니 규봉 스님(圭峰宗密禪師)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첫째는 천상(天上)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고 지옥에 내려가는 것을 싫어하여 마음을 닦는 것을 외도선(外道禪)이라 하고,
둘째는 인과를 믿되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으로 닦는 것을 소승선(小乘禪)이라 하며,
셋째는 나와 법이 모두 공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닦는 것을 대승선(大乘禪)이라 합니다.
넷째는 마음이 본래 청정하여 번뇌가 없으며 지혜의 성품이 스스로 갖추어져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 이 마음을 의지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 하며 또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합니다.
최상승선은 일행삼매(一行三昧), 진여삼매(眞如三昧)라고도 하니 모든 삼매의 근본이 되므로 생각 생각 닦고 익히면 자연히 백천 만의 삼매를 얻을 것이니 달마 문하(達摩門下)에서 서로 전하는 것이 바로 선인 것입니다.
공덕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느냐 하면 화엄경(華嚴經)에 “함(爲)이 없이 대과(大果) 이름을 공(空)이라 이름하며 다만 일체를 교화하여 이익케 하되 오는 보(報)를 흔구(欣求)하지 않아도 저절로 무변한 묘상장엄(妙相莊嚴)을 얻을새 고로 덕(德)이니라. 또 복과 지혜가 두루( 周)함을 이름하여 공(空)이라 하고 사(事)를 통달치 않음이 없음을 이름하여 덕이라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바이(優波尼; 여신도)의 모임을 공덕회라 이름짓고 창립법회를 시작으로 실천 수행하여 나가는 목적이 바로 이 화엄경의 말씀에 있으니 천만 번 읽고 깊이 가슴에 새기기 바랍니다. 또한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이 보리요, 지혜이므로 청정한 마음을 이루는 공덕은 항하강의 모래 수와 같은 칠보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수승하다고 할 수 있으니 칠보탑은 마침내 무너져서 티끌이 되는 날이 있지만 한 생각 청정한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는 정각(正覺)을 이룬다는 확신으로 정진하십시오.
또 우바이를 요사이는 절에서 보살님이라고 보통 호칭하는데 원래는 보사님으로 보호할 보(保)에 절 사(寺)를 써서 절에 살림을 잘 보살핀다는 뜻으로 6·25사변 전까지 많이 쓰다가 사변 후부터 보살님으로 변화되었는데, 보살이라는 뜻이 깨달음의 성취를 바라는 자, 미래의 부처님, 위를 향해서 보리를 구하고 아래를 향해서 중생을 교화하려는 자, 자리(自利)의 행으로써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자 등의 고귀한 뜻을 지닌 명칭이니 그 뜻이 더욱 승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님들이 그냥 서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보살님이라는 명칭에 걸맞는 수행과 공덕을 짓는 생활을 하자면 마음자세를 새롭게 해서 정진을 하여야 되리라 생각합니다. 참다운 불자의 말과 행동과 마음씀이 모두 공덕이 되고 거짓된 불자의 말과 행동과 마음씀이 모두 죄악이 되는 것은 그 모양과 태도는 어떻든 본 마음에 따라 방편의 가치가 차이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공덕회의 일원으로 항상 공덕을 짓는 몸과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자신과 가정과 사회의 등불이 될 것이요, 모든 중생을 어여삐 여기시는 부처님의 마음과 같은 자애로운 풍모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달마선법이 중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 전해진 후 그 법등이 빛을 발하며 찬란히 이어져 내려오다 구한말(舊韓末) 희미해진 법등을 다시 밝히신 경허 스님(鏡虛禪師)과 그 뒤를 이으신 만공 스님(滿空禪師)께서 머무시던 이 도량에서 부지런히 정진해서 세세생생 영원히 공덕을 이루십시오. 기필코 성불하십시오.
- 공덕회 창립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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