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비록 악도를 여의었더라도 사람의 몸을 받기 어렵고, 사람의 몸을 받았더라도 남자로 태어나기 어렵고, 남자로 태어났더라도 육근(六根;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이 완전히 갖춰지기 어렵고, 육근이 완전히 갖춰졌다 하더라도 좋은 곳에 태어나기 어렵고, 좋은 곳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부처님 계신 때를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계신 때를 만났더라도 수도하여 깨친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수도하여 깨친 사람을 만났더라도 믿는 마음 내기 어렵고, 믿는 마음을 냈다 하더라도 깨달으려는 마음(菩提心)을 내기 어렵고, 깨달으려는 마음을 냈다 하더라도 닦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 곳에 나아가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만 다행히 우리는 장부로 부처님 법 만나서 보리심을 내었으니 이제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학인으로 이 산중의 대중의 일원이 되셨으니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부지런히 경학(經學)에 힘쓰십시오. 미물인 나는 새도 쉴 때는 반드시 숲을 가려 쉬는 신중함이 있는데 학인이 배움을 구하면서 아무 곳에서나 스승 없이 살아서는 인생을 망치기 십상입니다.
만공 스님(滿空禪師)께서 초심자(初心者)에게 당부하시기를 “공부인은 모름지기 도량(道場), 도사(道師), 도반(道伴)을 잘 만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중국의 천태 스님(天台禪師)께서는 “오직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야 한다. 선지식에는 수행을 도와주는 외호선지식(外護善知識)과 함께 공부해가는 동행선지식(同行善知識)과 바른 법을 가르쳐주는 교수선지식(敎授善知識)이 있는데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인 여러분들께서는 천진한 마음으로 방장(方丈; 총림의 가장 어른스님)을 비롯한 선지식을 정성껏 모시며 모름지기 선지식을 의지하여 어두운 눈을 떠서 경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옥을 다듬어 부처님의 상을 만들고 돌을 깎아 탑을 세우고 금단에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새겨나가듯 혼신을 다해서 배우고 읽고 외우고 뜻을 밝혀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덕숭산의 가풍이 지금은 선풍(禪風)이 강한 곳이나 창건 역사를 보나 백제 때 혜현 스님(惠現大師)의 전기를 보나 법화신앙(法華信仰)이 깊고 교학도 깊었던 곳입니다.
혜현 스님에 대하여 잠시 말씀드리자면 스님께서는 이 도량에서 항상 법화경을 외우셨고 삼론(三論)을 전공하시어, 늘 강설(講說)을 하셨는데 그 때는 이 산중 골짜기마다 법화경 읽는 소리가 주야로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님께서 임종하신 후 생전의 유언에 따라서 매장을 하였다가 3년 후 화장으로 모시려고 관을 여니 몸의 다른 곳은 사대(四大)가 흩어졌으나 생전에 경을 독송하시던 혀는 선홍색 그대로 남아 신비로운 향기를 내고 있었습니다. 화장 후에도 혀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부도에 모시니 지금은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고 중국에 유학하신 적이 없으셔도 그 명성이 널리 퍼져서 당나라 고승전에 스님의 행장(行狀)이 실려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낱낱이 적혀 있습니다.
또 근대에 들어서 선불교의 중흥조(中興祖)이신 경허 스님(鏡虛禪師)께서 수법제자(受法弟子)들을 키우신 도량으로 기라성 같은 선객들의 행적(行蹟)이 생생히 살아 숨쉬는 총림입니다.
경허 스님께서는 대선사이시기 이전에 강백(講伯)으로서 이미 20대에 계룡산 동학사(東鶴寺)에서 강을 시작하셨고 30대에 조실(祖室)로 추대되시어 주석(駐錫)하시다 이 곳으로 오셔서 보임(保任)하시며 납자들을 지도하셨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처럼 사미(沙彌)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경허 스님의 ‘중 노릇 하는 법’이라는 글이 얼마나 좋았던지 자다가도 일어나서 외우고 밭 매다가도 호미로 장단 치며 외우고 마당 쓸다가도 빗자루로 써보고 어쩌다 큰절에서 정혜사로 심부름 가는 일이 있으면 중간에 금선대(金仙臺)에 꼭 들러서 스님 진영(眞影)에 절하며 외우고 그랬습니다.
이 자리에서 잠시 말씀드리면, “대저 중노릇 하는 것이 작은 일이리오. 잘 먹고 잘 입기 위하여 중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 되어 살고 죽는 것을 면하고자 하는 것이니…”
지금도 경허 스님의 법어(法語)를 접할 때마다 스님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이 넘쳐납니다. 오늘날 방장스님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호탕하고 훤출하게 설법하는 비구, 비구니의 본사를 살펴보면 이 산중스님들이 큰 맥을 형성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역사 속에 면면이 이어져온 이 산중의 덕화요, 저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 산중에 승가대학을 개원하면서 입교한 인연을 남다르게 생각하고 정진해야 합니다.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서산 스님(西山大師)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을 잘 알면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말씀을 잘 따르다 보면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으니 이해에는 선후의 차이가 있으나 마음과 말씀 자체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으니 부디 교학을 가벼이 여기는 어리석음을 짓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십시오.
돌이켜보면 삼국시대부터 우리 민족문화를 불교사상으로 이끌어 왔음에도 오늘날 민족종교로서 굳건한 자리를 지켜가지 못하는 것은 외세(外勢)의 힘을 얻은 타종교에 비해 사회적으로 포교, 출판, 복지사업의 기반이 약하고 활동이 미비한 탓도 있지만 출가자 개개인이 경율론(經律論)의 연구와 실천이 부족하고 너무 쉽게 정법(正法)보다 비법(非法)으로 살아가고 있는 탓도 크다 하겠습니다.
늘 제가 우리 승가의 앞날이 걱정스러운 것은 예전에 없던 병이 생겼는데 그 병폐가 점점 더 커져서 이 자리에서 밝혀드리니 각자 진단해서 처방하십시오.
첫째는, 승려가 일하지 않고도 시주밥을 먹으려 드는 것이요, 둘째는, 승려가 공부하지 않고도 시주밥을 먹으려 드는 것이요, 셋째는, 스승은 애써 가르치려 하지 않고 제자는 힘들여서 배우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우리 승가의 앞날과 불교의 앞날에 희망이 없습니다. 대중스님 모두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가르치려는 스승이 계실 때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반야경(般若經)에 수보리 스님(須菩提尊者)께서 부처님께 여쭙기를 “새로 진리에 뜻을 낸 보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배워야 합니까?” 하시니 부처님께서 “새로 진리에 뜻을 낸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배우려 하면 먼저 반야바라밀을 말할 수 있는 선지식을 모셔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만 보아도 오늘 이 자리의 학인스님들은 얼마나 복이 많은 것입니까? 산중에 눈 밝은 선지식 즉 방장스님이 계셔서 학인스님들이 뒤섞여 있고 뒤엉켜 있어도 옥(玉)과 석(石)을 구별하듯 분명히 구별하셔서 제 값을 쳐주실 것이고 소금물처럼 한 그릇에 녹아 있어도 소금과 물처럼 분리해서 맛을 인정해 주실 것이니 오직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릴 수 있는 명마처럼 지혜를 닦고 혼신을 바쳐서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면 흐르는 물은 언젠가는 바다에 들듯이 이 자리의 학인스님 모두 불법대해(佛法大海)에 들게 될 것입니다.
불법대해의 한 몸이 되기를 기약하며 학인스님 여러분의 앞날에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승가의 영원한 꽃 학인. 승가의 찬란한 꽃 학인, 학인 만세!
- 승가대학 개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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