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인곡당(법장스님)

[덕숭산에 기대어] 매화꽃 향기

淸潭 2008. 3. 2. 21:52

매화꽃 향기

 

흰 눈 속에서 소나무의 푸르름이 더욱 빛나고 어둠 속에서 폭포수의 소리가 더욱 힘차듯 혼탁한 시대에 선풍(禪風)은 더욱 청량합니다. 도안(道眼)을 갖추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자비심으로 가엾은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원력으로 정진하러 덕숭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도 이 산중의 어른스님들의 덕화(德化)로 화두(話頭)를 받아 살아온 지 40여 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참선법(參禪法)을 배울 때는 숨쉬는 것은 잊어도 화두는 안 잊어서 얼른 도를 깨쳐서 부처님과 부모님, 스승님, 시주님 등 일체 모든 생류(生類)의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습니다.
마음 하나 가지고 하는 공부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묘(妙)하고 변화무상(變化無常)하여 뜨거울 땐 맹렬한 불길보다 더 뜨겁고 찰 때는 엄동설한(嚴冬雪寒) 얼음 덩어리보다 더 차갑고 빠를 때는 눈 한번 깜박일 동안에 온 세상을 다 돌아다니고 가만히 있을 때는 깊고 고요한 듯하다가 움직일 때는 성난 파도가 하늘까지 닿는 듯하니 일상에 여여(如如)하게 정진한다는 것이 칼끝을 걷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행자(行者) 때부터 이 날까지 참선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에 변함이 없는 것은 신령한 이 마음만이 모든 법의 왕이며 모든 부처님께서도 이 마음을 깨달은 자리에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존귀하고 도의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이니 마음공부 외에 더 이상 무슨 수행이 있겠습니까? 산중에 선지식을 모시며 사는 것을 그 때나 지금이나 큰 복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공 스님(滿空禪師)께서 “사람이 만물 가운데 귀하다는 것은 나를 찾는 데 있다.”라고 하신 법훈(法訓)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만공 스님께서 대도인이 되신 것도 이 마음을 보셨기 때문이요,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깨치신 것도 이 마음이고, 삼세의 모든 보살님께서 공부하신 것도 이 마음이며, 팔만사천 대장경의 내용도 다 이 마음을 드러낸 것이고, 모든 조사스님들께서 서로 전하신 것도 이 마음이니 마음 공부야말로 수행의 주춧돌인 것입니다. 정진하다 보면 크고 작은 장애는 따르기 마련인데 저는 평소 ‘장애가 지혜의 씨앗이다’라고 생각하고 다가오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장애에 좌절할 것도 없고 피할 것도 없고 내가 갈 길 가다 보면 밤하늘에 구름과 연기가 사라지면 밝은 달이 저절로 드러나는 듯 마음 공부도 이와 같아서 무명(無明; 어리석음)의 그늘이 사라지면 사라진 자리만큼 지혜의 밝은 빛이 나타나므로 부처님의 가피 속에 화두를 노를 삼아 세월의 강을 이만큼 건너왔습니다.
오늘 견성암(見性庵) 대중스님들께서 저를 청하여 자리를 마련하셨으니 지금부터는 견성에 대하여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중국 남북조시대의 달마 스님(達磨大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견성을 하라. 견성하지 못하면 염불을 하거나 경을 외우거나 계를 지켜도 온전한 이익이 없다. 염불하면 인과를 얻고 경을 외우면 총명함을 얻고 계를 지키면 천상에 나고 보시하면 복을 얻기는 하겠지만 결코 부처는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혜능 스님(慧能禪師)께서 견성에 대해 이르시기를 “여러분! 나의 법문은 8만 4천의 지혜를 자유자재로 작용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8만 4천의 번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번뇌가 없으면 반야의 지혜는 항상 자기의 본성(本性)에 있고, 본성을 여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도리(道理·法)를 깨달은 사람은 망념이 없는 무념(無念)인 것이며, 어떤 존재에도 집착됨이 없는 무집착이다. 허망된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로가 진실의 자기인 것이다. 지혜도 관조하여 일체의 모든 존재를 취하거나 버리지 않으면 견성(見性)하여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보편적으로 선학(禪學)에서는 견성을 스스로 각자 자신의 성스러운 불성을 깨닫고 불도를 이루어 인격완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견성성불(見性成佛)이 곧 선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인 것입니다.
‘견성’이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이며, 사명(寺名)이 견성암인 이 곳에서 견성 외에 또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이 곳은 최초 비구니 선원으로 건립된 견성을 목표로 일상사를 행하는 곳입니다. 성품에는 남녀의 차별이 없고 오직 형상의 차별이 있을 뿐이니 이 도량에 발을 디뎠으면 비구니라는 관념(觀念)과 타성(惰性)을 버리고 대장부의 기개로 용맹스럽게 정진하여야겠습니다.
견성법은 절대 평등이라 백정(白丁)도 견성을 해서 큰 소리 탕탕치는 것이 문헌(文獻)에 얼마든지 있거늘 스스로 성별에 차별심을 내어 자잘한 살림을 짓지 마십시오.
옛이야기 하나 해드리자면 저도 우리 노스님(碧超禪師) 밑에서 있을 때 이 곳에 와서 운력(運力)했습니다. 그 때 무슨 마음으로 했겠습니까? 그저 이 도량에 훤출한 비구니 도인이 나오길 원했고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때는 그래도 이 산중에 이 나라에 도인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도인스님들 밑에서 비구가 비구니 절 짓느라고 돌 깨고 지게 지고 험한 일을 기쁜 마음으로 했던 아름다운 시절이었습니다.
경허 만공 가풍(鏡虛滿空家風)이 아니면 참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불사를 우리 노스님이 중심이 되어서 이루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에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노스님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노스님은 제가 지금처럼 돌아다닐 것을 아시고 행자 때 하루는 콩을 한 자루 주시며 골라 오라고 하셔서 혼자 밤늦도록 골라서 가져가니 고생했다고 하시면서 그 날로 화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늦은 밤에 제 손을 잡고 대웅전 앞 마당으로 나가셔서 제게 “지금 받은 화두를 생각하며 마당을 질러가다가 놓치면 되돌아 오너라.”고 하셔서 저는 그 때 금방 될 줄 알고 ‘예’ 해 놓고 밤새 왔다 갔다 했는데 우리 노스님이 저를 지켜보시며 새벽까지 마루에 앉아 계셨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노스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보름달 아래서 화두를 안고 긴 포행을 해 보시고 각자의 살림살이를 챙겨보시는 것도 의미 있는 밤이 될 것입니다.
중국 송나라시대 라대경(羅大經)이 편집한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나온 어느 무명의 비구니 스님의 오도송(悟道頌)이 하도 좋아서 몇 십년째 애송해왔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읊습니다.

“종일토록 봄을 찾아도 봄은 보이지 않아라
짚신이 닳도록 롱두산 꼭대기 구름 속을 헤매었네.
돌아와 매화꽃 향기 속에 미소 띄며 걷노라니
봄은 매화가지 끝에 벌써 가득히 와 있었네.”
盡日尋春不見春
芒鞋踏遍    頭雲
歸來笑撚梅花嗅
春在枝頭已十分

- 동안거결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