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수사모

[스크랩] 마음의 등 켜는 것이 부처의 뜻 (법장스님)

淸潭 2006. 9. 17. 20:42

법장스님 "마음의 등 켜는 것이 부처의 뜻"

<경향신문 2005/5/13/금/기획10면> 


범어문중과 함께 한국불교의 양대 선맥을 이어가고 있는 덕숭문중의 중심 수덕사. 근대 한국불교의 큰 스승 경허와 만공, 혜월, 수월을 비롯한 수많은 선승들이 주석하며 부처의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간 대도량 수덕사 한편에 ‘화소대(花笑臺)’가 있다. 부처와 마하가섭이 한 송이 연꽃으로 주고받는 ‘염화미소’에서 이름을 따온 화소대에서 불기 2549년 부처님오신날(15일)을 맞아 한국불교의 대표적 종단인 조계종을 이끌고 있는 총무원장 법장스님을 만났다.

 

 

먼저 부처님 오신 날의 뜻을 청했다.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부처님은 인류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화춘지절(花春之節)에 이 세상에 시현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스승들이 살다 갔지만 나의 고통을 없애주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스승이 부처님 말고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 오신 날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돌아간 그런 부처의 뜻을 새기는 날입니다.”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 등(燈)을 다는 것은 시간적, 물질적 의미의 등이 아니라 마음의 등을 켜는 것”이라며 “마음·지혜의 등은 비바람과 눈보라, 시간에도 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처의 길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는 의미였다.

 

 

-스님들 복지제도 필요-

 

스님은 “2년여 종단일을 해보니 모든 것이 마음과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며 곧 종단의 실무책임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스님은 “참선공부는 나 혼자 마음먹고 하는 일이지만 종단일은 여러 대중의 마음과 뜻을 수렴해서 해야 하니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의욕은 앞서지만 다양하고 다변화하는 시대 대중들의 그 마음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충의 일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종단이 과거에 비해 많이 투명화됐다는 말은 듣는다”며 “그 투명한 종단정립이 나의 서원이고 욕심이라면 욕심”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투명하지 않으면 신뢰를 잃고 신뢰가 없으면 존재가치를 잃고 이는 화합승가를 이룰 바탕을 잃는 것”이라며 “기업, 정치, 사회 모두가 투명해지고 있는데 종교가 그렇지 못하다면 생명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종단의 투명화 작업에는 재가불자단체들과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사찰재정 투명화를 위해 “신도회가 추천하는 회계사를 임명해 감사를 철저히 하고 종단 문화재위원제도를 도입해 지원 국비가 제대로 사용됐는지를 감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종무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중앙종회나 총무원에서 할 수 없는 종무체계와 선거법 등 제도적 혁신을 이뤄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스님은 현재 종단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스님들의 ‘노후복지제도’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출가한 스님들이 무슨 복지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노후복지는 용맹정진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일례로 스님은 “스님이 아프면 그 절의 주지스님이 치료해줘야 하는데 돈도 돈이지만 스님들이 미안한 마음에 말도 하지 않아 더 큰 병으로 번진다”며 “이는 수행정진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한국불교에서 마이너스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내년부터 65세 이상 스님들이 한달에 몇십만이라도 받을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그러면서 복지제도가 제대로 확보되면 현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주지 자리를 둘러싼 갈등 및 돈과 관련한 온갖 불협화음도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스님은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조계사 내 불교중앙박물관 내부공사 의혹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종단 책임자로서 의혹이 이는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의혹은 대체로 임종린씨와 나의 관계, 계약서 4개의 존재, 18억원 선수금의 수표지급 등으로 정리됩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사인한 계약서는 62억원짜리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로 내가 10만원이라도 결탁했다면 원장 자리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현재 재가단체를 포함한 범종단적 조사단을 구성해 조사를 진행중이니 결과를 지켜보면 알 것입니다.”

 

 

-화두에 정진 ‘승풍’부활-

 

이와 함께 스님은 “의혹제기자가 더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사를 조용히 지켜본 뒤 결과에 따르자는 뜻으로 들렸다.

 

스님은 성철스님 입적 이후 승풍이 많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스님들이 세류에 휩쓸리는 모습이 적지 않고 승가에서도 이를 묵시적으로 이해·수용하는 게 현실”이라며 “‘앉으면 부처님 얘기, 수행이 아니면 머물지 않았던’ 옛 승가의 승풍을 다시 진작해야 한다”고 필요성에 공감했다.

 

 

끝으로 스님은 자리를 일어서면서 방안에 걸린 편액을 가리켰다.

 

‘大喝一聲에 更無別疑’(큰소리 할 한번에 다시 따로 의심할 바가 없다). 수덕사 방장스님이신 원담스님이 자신에게 내린 게송이라고 소개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새기는 다짐인 듯했다.

 

 

〈예산 수덕사|글 배병문·사진 이상훈기자 bm1906@kyunghyang.com

 

 

-법장스님 걸어온 길-

 

법장스님은 1960년 수덕사에 입산, 원담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65년 정혜사 선원에서 안거를 성만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는 1주일간의 용맹정진을 5차례 해냈고, 21일간 단식정진도 7번이나 해냈다.

 

 

스님은 “한번은 앉아서 일순간이라고 여겼는데 문득 깨어보니 8시간이 지나가 있었다”며 삼매의 경지도 경험했다고 덧붙였다.

 

수덕사에서 수행했던 벽초, 원담스님 밑에서 시봉생활을 했다. 80년 중앙종회 의원으로 당선된 뒤 4선을 역임하는 등 종무를 맡아하는 ‘사판일’에 능력을 보였다.

 

80년대 초반부터 총무원 사회부장, 재무부장, 선거관리위원, 호계위원, 동국대 재단감사 등 조계종 행정의 핵심역을 두루 거쳤다. 94년 개혁종단 시절에는 개혁회의 의원, 법규위원을 지냈다.

 

또 92년부터 2003년까지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 주지를 맡았다. 이 시절 중창한 수덕사 전각만 무려 17개 동에 이른다.

2003년 2월부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맡고 있다.

-조계종 홈에서-

출처 : 수덕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글쓴이 : bany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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