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시〔牧丹詩〕/ 급암시집 제5권
지정(至正) 13년(1353, 공민왕2) 여름 4월, 새로 급제한 진사들이 대궐에 와서 숙배를 하였다. 금상이 불러서 모란시 사운을 짓도록 명하시니 진신(縉紳) 선생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서로 차운하였는데, 수백여 편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급암 시 19수는 다음과 같다.
연경에서 모란 뿌리를 싣고 요동을 지나왔노니 / 移根京洛過遼東
처음엔 생리가 우리 풍토와 맞지 않는가 의심했었네 / 氣稟初疑忌土風
뛰어난 자태가 여전히 경국지색인데 / 絶品尙爲傾國色
하물며 세장홍이라는 좋은 이름을 차지함에 있어서랴 / 嘉名況占洗粧紅
자주(自註)에 “분홍빛 모란을 바치며 이름을 구하는 자가 있었는데 범공 진(范公鎭)이 세장홍(洗粧紅)이라 이름하였다.”라고 하였다.
잎 아래서 꽃을 희롱하는 나비를 어여삐 여기고 / 弄芳葉底憐胡蝶
가지 끝에서 꽃술을 차는 한홍 - 제비이다. - 에게 겁을 주었네 / 蹴蕊枝頭刦漢鴻
초에 눈금 새기고 애써 시 짓는 일이야 아이들 장난일 뿐 / 刻燭苦吟兒戲爾
평론하실 때 노련한 종장의 정교한 솜씨를 좋아하시리 / 品題應喜老宗工
이상은 익재(益齋)에게 바친 시이다.
축수하느라 전각 동쪽에 줄지어 모여 있는데 / 慶壽相望殿閣東
청명하고 화창한 좋은 날에 또 따스한 바람 / 淸和佳節又薰風
더디게 가는 해에 하루가 일 년처럼 긴데 / 遲遲化日如年永
선명한 명화는 이슬을 떨구며 붉구나 / 灼灼名花泣露紅
매우 사랑하여 마음이 먼저 사슴을 막고 / 酷愛心先防野鹿
탐하여 보느라 눈이 가는 기러기를 좇지 않네 / 貪看目不送征鴻
운이 강한 데다 또 임금의 위엄이 가까이 있으니 / 韻强況復天威近
우곡 소년의 시가 정교하지 못한 것을 괴상히 여기지 마라 / 休怪愚童賦未工
이상은 우곡(愚谷)에게 바친 시이다.
익재(益齋)가 두 수로 독촉하셔서 애써서 책임을 면하다.
회상하건대 자은사 동쪽 땅엔 / 遙想慈恩佛寺東
온 성에서 소문 듣고 수레와 말 타고 다투어 왔었지 / 滿城車馬競趨風
뿌리를 뽑으면 꽃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는데 / 撥根可識花高下
누가 품질을 분홍빛 색깔로 나누리오 / 稟質誰分色淺紅
손님들의 말 때문에 훼손될 때도 있었지만 / 毀折有時因客馬
기러기를 기다려 법식대로 접붙여 심었다네 / 接栽如法待賓鴻
우리나라에도 근래 문원자가 있으니 / 三韓近有門園子
올가을엔 너의 정교한 솜씨를 청하고 싶네 / 我欲今秋倩爾工
별원의 동쪽에서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다투니 / 鬪麗爭姸別院東
안개 비와 어울리고 또 바람과도 어울리네 / 宜煙宜雨又宜風
향기는 짙어 우두산 전단수 향기를 맡은 듯하고 / 香濃如臭牛頭熱
명성은 높아 일찍이 학정홍이란 이름을 들었네 / 名重嘗聞鶴頂紅
맑고 아름다운 자태는 위엄 있는 봉황처럼 날아오르려 하고 / 逸態將騫若威鳳
뭇 꽃들은 다투어 사모하여 높이 나는 기러기를 좇는 듯 / 群芳競慕附冥鴻
이 꽃을 형용하는 데는 시가 최고이니 / 形容此物詩爲最
지금 누가 도끼로 코끝의 백토를 교묘하게 깎아 낼까 / 誰是今時斸鼻工
다시 올린다.
하늘의 기틀 유유히 움직여 북두칠성 자루가 동쪽을 가리키더니 / 天機苒苒斗杓東
맥풍이 불어 뭇 꽃들을 다 쓸어 버렸네 / 掃盡群花到麥風
그림자가 햇빛 비추는 물결에 거꾸로 비치니 푸른 물결 위에서 흔들리고 / 影倒晴波搖鴨綠
꽃 빛깔이 짙은 이슬에 젖으니 선홍빛에 버금가네 / 色霑濃露亞猩紅
난간에 기대자 흥이 뗏목 탄 나그네와 같으니 / 倚欄興似乘楂客
붓을 마음대로 휘둘러 바다에서 장난치는 기러기처럼 썼다네 / 縱筆題如戲海鴻
천 가지 만 가지 모습을 형용하기 어려우니 / 萬態千容難可狀
다만 흠뻑 취해서 거문고 악사에게 연주시키리라 / 只宜轟醉奏琴工
추억하노니 옛날 연경에서 노닐다 귀국하던 때 / 憶昔游燕馬首東
내달리며 돈을 써서 중국풍을 사들였지 / 捐金奔走買華風
한 가지 색깔로 짙은 빛과 엷은 빛이 있는 모란을 모두 자랑했지만 / 共誇一色有深淺
흰빛과 붉은빛 꽃을 피울 수 있는 천와가 가장 사랑스러웠지 / 最愛千窩能白紅
사람의 뜻은 아름다운 여인을 태우고 가려 했는데 / 人意欲如馱美妾
꽃의 마음은 서리 맞은 기러기를 가리키며 거절하는 듯했네 / 花心似拒指霜鴻
이제 곳곳에서 다투어 가꾸고 있으니 / 卽今處處爭培養
깊은 정으로 동이를 안고 비의 신을 대신하리 / 抱甕殷勤代雨工
누가 모란꽃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들을 미혹시켰나 / 誰將尤物自誣東
하채와 양성이 모두 바람에 쓰러지듯이 미혹되었네 / 下蔡陽城共靡風
만약 연꽃과 나란히 선다면 아마 아름다움을 질투하려니와 / 若竝芙蓉應妬麗
작약은 꺼리지 않고 더불어 붉은빛을 번득이리 / 不妨芍藥與翻紅
서시의 취한 얼굴 세 잔 술을 넘었고 / 西施醉面過三爵
이백의 시정은 팔방에 가득찼네 / 太白詩情溢八鴻
절색의 이름난 꽃을 끝내 어디에 쓰랴 / 傾國名花終底用
하느님이 뜻을 두어 유달리 정교하게 만든 것이 우습구려 / 天公屬意咲偏工
청동용을 새긴 동문에서 왕위에 새로 임하시니 / 正位新臨碧鏤東
매번 특별한 은혜를 입을 때마다 황제의 교화를 도우셨네 / 每承三接贊皇風
시내가 환해로 흘러가니 은혜의 물결이 넓고 / 川朝幻海恩波闊
해가 함지에서 목욕하니 상서로운 햇무리가 붉도다 / 日浴咸池瑞暈紅
한나라를 부지했던 상산사호와 같은 은자를 부르시더니 / 旣召逋翁扶漢鵠
다시 정홍 - 한(漢)나라의 유자(儒者)이다. - 과 같은 현명한 사부를 구하시네 / 更求賢傅似丁鴻
지극한 덕으로 왕위를 계승할 뿐 다른 술책이 있는 것이 아니니 / 元良繼體非他術
지극히 바르고 삿됨이 없는 것이 특별한 방법일세 / 至正無私是妙工
이상은 우곡(愚谷)에게 올린 시로 상산사호(商山四皓)를 읊은 것이다.
날이 길하고 시절도 좋으며 태백성은 동쪽에 있는데 / 日吉時良太白東
음양가(陰陽家)에서는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난 쪽을 피한 연후에 집을 나선다.
황교 서쪽 언덕은 고요하여 바람도 없네 / 黃橋西畔靜無風
중을 받드니 애초에 마음마다 씩씩함을 보았고 / 奉中初見心心壯
아래로 내려와 술을 마시게 하니 얼굴마다 붉어진 것을 누가 부끄러워하랴 / 飮下誰慙面面紅
바다에 횡행하는 악어를 잡아 죽여 해가 제거되고 / 害去捕誅橫海鰐
구름으로 들어간 기러기를 쏘아 떨어뜨려 공이 이루어지네 / 功成射落入雲鴻
본조(本朝)에는 낙안공신(落雁功臣)이 있다.
이 활쏘기가 번거로운 일이 아님을 진실로 알겠으니 / 固知此擧非爲劇
흉악한 섬 오랑캐를 매우 미워하기 때문일세 / 深惡島夷頑不工
이상은 우곡(愚谷)에게 올린 시로 서쪽 교외에서 활쏘기를 관람한 일을 읊은 것이다.
우러러 어리석은 두꺼비 - 하마(蝦蟆)이다. - 를 바라보며 얄미워하노니 / 仰面生憎癡活東
광한궁에 비린 바람이 가득하네 / 廣寒宮殿滿腥風
재능을 논하려 해도 날카로운 발톱과 어금니를 보지 못하니 / 論才未見瓜牙利
저민 고기를 씹어도 붉어진 입술을 누가 알아채랴 / 嚼臠誰知口吻紅
내 열어구처럼 날아오르고자 하노니 / 我欲飛昇如禦寇
너는 어찌 탐욕과 포학함이 반홍 - 도적의 이름이다. - 보다 심한가 / 汝何貪暴勝潘鴻
맑은 샘에서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낼 뜻을 일찍이 두었으니 / 玉泉曾有刳腸志
날카로운 비수를 대장장이에게 부탁해야겠네 / 寸鐵應憑鑄冶工
이상은 우곡에게 올린 시로 월식(月蝕)을 읊은 것이다.
아미산과 절동 지역을 두루 돌아다닐 때 / 行遍峨嵋與浙東
중국인들이 모두 우러르며 양풍이라 불렀네 / 華人咸仰號揚風
몇 번이나 문정공을 생각하며 귀밑머리 세었던가 / 幾思文定鬢絲白
매번 충선왕을 꿈꿀 때마다 피눈물 흘렸지 / 每夢忠宣淚血紅
《서정록(西征錄)》에 “멀리 돌아다니니 그리워하시는 노부모께 또한 부끄럽다.〔遠游還愧老親思〕”라는 시구와 “존귀한 분이나 비천한 이나 진실로 마음이 같고, 꿈과 현실이 다른 것이 아니라네.〔尊卑苟同心 夢覺非異境〕”라는 시구 등이 있다.
뜻은 절실 - 원문 훼손 - / 志切▨▨▨▨▨
성은 민씨이면서 홍이라 이름하지 못함이 부끄럽네 / 姓慚爲閔未名鴻
흰머리 문하생은 비록 쓸모가 없지만 / 白頭門士雖無用
감히 당년에 정밀하게 단련시켜 주신 은혜를 잊으랴 / 敢忘當年鍛鍊工
이상은 익재(益齋)에게 바친 것이다.
잠깐 피었다 지는 내동 - 풀이름이다. 동지 이후에 자랐다가 5월에 시든다. - 을 비웃으며 / 一餉榮枯咲乃東
팔순에도 탈 없이 여전히 시를 읊조리시네 / 八旬無恙尙批風
맑은 시는 차가운 빙설 세 가닥이요 / 淸詩氷雪三條冷
씩씩한 뜻은 붉은 무지개 만 장일세 / 壯志虹蜺萬丈紅
옛날에 태수가 되어 문 안에 누웠더니 / 臥閣昔年乘五馬
기러기 두 마리가 수레를 따라 도처에서 춤을 추었지 / 隨軒是處舞雙鴻
우국(虞國)이 일남 태수(日南大守)가 되어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자 기러기 두 마리가 수레를 따르며 춤을 추었다 한다.
지금까지 후진의 귀감이 되시니 / 至今後進爲龜鑑
문장도 정교하고 공무에도 능숙함을 알겠네 / 須信文工吏也工
이상은 우곡(愚谷)에게 바친 것이다.
북두칠성 자루가 동쪽을 가리킬 때 매화는 햇빛 따라 일찍 피고 / 梅早空光斗指東
연꽃은 가을바람 따라 늦게야 핀다네 / 芙蓉晩趁鯉魚風
잎은 청록색 소매를 반쯤 걷은 듯하고 / 葉疑半袖揎雲碧
꽃은 엷은 해당화 빛깔로 깊숙한 방에 기대어 섰네 / 花倚深房淺海紅
뭇 꽃들이 여종 걸음으로 뒤에서 시봉하는 듯하더니 / 婢膝群芳宜事後
작은 기러기가 종 낯짝처럼 여전히 큰 기러기를 좇는구려 / 奴顔小雁尙趨鴻
노니는 벌들이 꿀을 따려다 거미줄에 붙으니 / 游蜂採蜜黏蛛網
독거미가 벌의 옛 공을 불쌍히 여기랴 / 毒螫憐渠夙昔工
이상은 모란을 읊은 시이다.
계곡 남쪽에서 휘파람 불며 모이고 혹은 동쪽에서 모이니 / 嘯聚溪南或聚東
남방 오랑캐의 막된 행동은 본래 그들의 기풍일세 / 洞蠻無賴固其風
마른 웅덩이의 물고기는 거의 죽을 듯 붉은 비늘이 닳았고 / 涸魚垂死磨鱗赤
미친개는 쉴 새 없이 달려 뻘건 거품을 토했네 / 猘犬狂馳吐沫紅
호랑이 가죽으로 병기를 싸게 할 수 있었으니 / 凶器可敎包以虎
승전보는 기러기보다 빨라 이미 전해졌네 / 捷書已報疾於鴻
개선가 소리 속에 농사와 길쌈질을 편안히 하니 / 凱歌聲裏安耕織
왜적의 괴수가 교묘히 숨어 있는 대로 내버려 두리라 / 也任渠魁竄伏工
이상은 남쪽의 적을 격파한 일을 읊은 시이다.
이웃 왜구가 대마도 동쪽에서 침범해 왔으니 / 隣寇來從戴馬東
가벼운 배로 석우풍 - 역풍이다. - 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네 / 輕舠不畏石尤風
풍년은 저절로 흉년의 고통이 되었고 / 豐年自作凶年苦
주린 얼굴일 뿐 모두 붉은 안색이 없다네 / 草色皆無肉色紅
개돼지처럼 탐욕스러운 마음 억제하지 못하고 / 不禁貪心如狗彘
다만 장기를 살려 오리와 기러기를 배웠구려 / 只因長技學鳧鴻
오늘 관군의 승전보를 듣고 기뻐하노니 / 喜聞今日官軍捷
장군을 부리는 솜씨가 뛰어난 우리 군주께 감히 하례를 올리네 / 敢賀吾君命將工
이상은 동쪽의 왜적을 생포한 일을 읊은 시이다.
평진후가 정동향의 집을 열어 놓고 / 平津開閣正當東
날마다 훌륭한 손님을 맞아들여 시를 구했다네 / 日接佳賓訪雅風
‘꽃이 그림자를 희롱한다’ - 장삼영(張三影)이다. - 와 같이 좋은 시구를 매번 칭찬하였으니 / 好句每褒花弄影
‘촛불이 붉게 흔들린다’와 같이 긴요치 않은 사를 누가 읊겠는가 / 閑詞誰詠燭搖紅
가정(嘉定) 중에 명망 높은 어떤 달관이 재상이 되었는데 선비를 좋아하되 등용하지 않았다. 어떤 손님이 “바깥사람들이 〈촉요홍사(燭搖紅詞)〉를 많이 부른다.”라고 하자 달관이 그 까닭을 물었는데 손님이 “날마다 선비를 몇 번이나 보셨던가요, 보고 나서 다시 그만두니 일찍이 보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요.”라고 하였다.
장자는 꿈에 나비로 변한 것을 알았고 / 莊知化夢爲胡蝶
곽광은 하늘로 가버린 아홍을 그리워하길 자주했네 / 霍愛摩天憶阿鴻
곽광(霍光)은 자(字)가 아홍(阿鴻)인 아들을 사랑했는데 아들의 죽음에 이르러 ‘하늘로 가 버렸다’라고 하였다.
흘러가 버린 지난 일을 공은 생각하지 마시고 / 往事悠悠公莫念
꽃 보고 한 번 취해 하늘의 정교한 솜씨에 답하소서 / 看花一醉答天工
공이 주신 〈누실시(陋室詩)〉에 “꽃을 찾아도 싹이 나오지 않는다.〔探花苗不秀〕”라는 시구가 있었다. 그래서 아홍의 고사를 써서 공의 뜻을 위로한 것이다.
○이상은 익재에게 바친 시이다.
평소의 덕망은 파동의 으뜸 / 平生德望冠巴東
소나무 아래서 솔솔 부는 바람을 다투어 좇는다네 / 松下爭趨颼颼風
꿈에서 일찍이 오색 붓을 받았으니 / 夢筆早曾傳五色
시를 지은 것이 어찌 삼홍 시 정도이겠는가 / 作詩奚啻詠三紅
응자화(應子和)에게 삼홍(三紅) 시가 있다.
흰 수염에 눈빛이 비치니 소나무 사이 학이요 / 白須映雪松間鶴
노련한 기개 가을 하늘에 비껴 있으니 하늘 끝 기러기일세 / 老氣橫秋天外鴻
팔십에 벼슬 그만두기까지 한 가지 결함도 없는 데다 / 八十懸車無一缺
거문고 연주와 말 타는 일 예부터 모두 능숙하였지 / 鳴琴按轡昔俱工
이상은 우곡(愚谷)에게 바친 시이다.
한 차례 이슬비 갑자기 동쪽에서 내리니 / 一番微雨忽從東
좋은 시절은 성큼 가고 불던 바람도 바뀌었네 / 佳節駸駸革緖風
전에 봄 싹이 막 예쁘게 돋아나는 것 보았는데 / 昨見春芽才茁嫩
이제 이슬 맺힌 꽃받침에 벌써 붉은 눈물이 달린 것 보네 / 今看露萼已啼紅
향기 옅어지면 매번 꽃떨기 지나간 사향노루 생각하고 / 損香每思經叢麝
잎이 더럽혀지면 들에 가득한 눈에놀이 - 멸몽(蠛蠓)이다. - 를 유달리 싫어하네 / 汚葉偏嫌滿野鴻
이름난 꽃을 피우느라 정력을 다했으니 / 開了名花精力盡
하늘의 정교한 작업은 이제부터 쉴 만하네 / 天工從此可休工
이상은 모란을 읊은 시이다.
매화 한 그루가 나지막한 난간의 동쪽에 있어 / 寒梅一樹短櫺東
아침저녁으로 지척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부네 / 晨夕吹香咫尺風
국화는 눈 내리기 전에 말라도 여전히 깨끗하고 어여쁘지만 / 未雪菊枯猶冷艶
연꽃은 가을 다가와 시들면 범상한 붉은빛이네 / 望秋蓮謝是凡紅
골격이 맑아 가지 위에 벌과 나비가 없고 / 骨淸枝上無蜂蝶
자태가 빼어나 구름 사이로 능에와 기러기를 쫓는 듯하네 / 態逸雲間逐鴇鴻
은자가 어찌 국화뿐이겠는가 / 隱士豈唯延壽客
꽃을 품평한 주염계의 견해 정밀하지 않네 / 品花周老論非工
익재 노인이 여러 노인들이 지은 모란 시와 잡제(雜題) 무려 수백 수를 찬술하여 《병거견민집(屛居遣悶集)》을 만들었다. 이 편은 그 책에 실려 있던 것인데 이제 여기에 기록한다. 지정(至正) 경자년(1360, 공민왕9) 7월 16일 제민(齊閔)이 삼가 쓰다.
[주-D001] 세장홍(洗粧紅) :
깨끗이 씻고 화장한 듯한 붉은 꽃이라는 의미이다.
[주-D002] 범공 진(范公鎭) :
송나라 인종(仁宗)과 철종(哲宗) 때의 사람 범진으로, 진사시에 급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다. 신법(新法)에 대해 논하여 왕안석(王安石)과 사이가 좋지 않게 되자 치사(致仕)하였다. 철종이 즉위한 뒤에 다시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가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평생 동안 노불(老佛)과 신한(申韓)의 학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宋史 卷337 范鎭列傳》
[주-D003] 초에 눈금 새기고 :
초에 눈금을 긋고 촛불이 그 눈금까지 타는 동안에 시(詩)를 짓는 ‘각촉부시(刻燭賦詩)’에서 온 말이다.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경릉왕(竟陵王) 자량(子良)이 밤에 학사들을 모아 놓고 이처럼 시간을 정해 시를 짓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南史 卷59 王僧孺列傳》
[주-D004] 사슴을 막고 :
금(金)나라 원호문(元好問)이 지은 〈증휴량장련사(贈休糧張煉師)〉에 “숲 가운데 편안히 앉으니 사람들은 모르는데, 사슴은 꽃을 물고 벌들은 꿀을 따네.〔中林宴坐人不知 野鹿銜花蜂課蜜〕”라고 하였다.
[주-D005] 기러기를 …… 심었다네 :
모란을 가을철에 접붙여서 심으면 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D006] 문원자(門園子) :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지은 《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에 나오는 인물로 복성인 동문씨(東門氏)이다. 그는 모란을 접붙이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 부자들이 모두 그에게 많은 돈을 주며 모란을 접붙여 주기를 청하였다.
[주-D007] 우두산(牛頭山) 전단수(栴檀樹) :
우두산은 천축국 남해(南海)에 있는 산으로 소머리 형상으로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에 향목(香木)인 전단수가 자라는데 이 나무는 향기가 매우 강하고 잘 없어지지 않아서 불상, 전당(殿堂), 기물 등을 만든다고 한다.
[주-D008] 학정홍(鶴頂紅) :
학 머리의 붉은 벼슬을 뜻한다. 모란꽃의 붉은 빛깔로 인해 붙여진 별명이다.
[주-D009] 도끼로 …… 낼까 :
기예가 매우 뛰어남을 의미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에 “영인(郢人)이 코끝에 파리 날개만큼 백토를 바르고 장석(匠石)에게 깎아 내게 하니, 장석이 도끼날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며 백토를 다 깎아 냈는데 코는 상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주-D010] 맥풍(麥風) :
보리 위로 스치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초여름을 알리는 바람이다. 장강과 회수 지역에서 5월에 부는 바람을 의미한다.
[주-D011] 뗏목 탄 나그네 :
진(晉)나라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은하수는 바다와 통해 있는데, 바닷가에 사는 어떤 이가 매년 8월이면 뗏목이 바다에서 하늘로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느 해엔가 때를 기다려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여 마침내 은하수에 이르렀고 여기에서 견우와 직녀를 만났다.
[주-D012] 하채(下蔡)와 …… 미혹되었네 :
하채와 양성(陽城)은 모두 초(楚)나라 고읍(古邑)의 이름으로 초왕이 귀공자들에게 하사한 땅이다. 여기에서는 귀공자들이 사는 지역도 아름다운 모란에 미혹되었다는 뜻이다.
[주-D013] 청동용을 새긴 동문(東門) :
벽동(碧銅), 즉 청동으로 용을 만들어 새긴 태자의 궁문(宮門)을 가리킨다.
[주-D014] 환해(幻海) :
허상의 고해(苦海)로 속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주-D015] 한(漢)나라를 부지했던 상산사호 :
원문은 ‘扶漢鵠’인데, 문맥상 ‘鵠’은 ‘皓’인 듯하여 교감은 하지 않고 고쳐 번역하였다.
[주-D016] 정홍(丁鴻) :
후한(後漢) 때 학자로 백호관(白虎觀)에서 오경을 강론하였는데 당시 관중에서는 쌍벽을 이룰 이가 없었다.
[주-D017] 이상은 …… 것이다 :
대본은 ‘右愚谷詠四皓’인데, 이 시들이 모두 ‘급암작’이라는 것을 유념해 보면 ‘愚谷’ 앞에 ‘呈’ 1자가 빠진 듯하여 보충 번역하였다. 이하도 같다.
[주-D018] 황교(黃橋) :
황해도 개성부 오정문(午正門) 밖에 있는 다리이다.
[주-D019] 중(中)을 받드니 :
중은 활쏘기에서 과녁에 적중한 화살의 숫자를 헤아리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이다. 나무를 깎아서 여형(閭形)을 만들고 그 등 부분을 깎아 입구를 만들어 산가지를 넣고 뺌으로써 적중시킨 화살 숫자를 계산한다. 중을 받드는 일은 활쏘기를 관장하는 이가 하는 일이다.
[주-D020] 아래로 …… 하니 :
《논어》 〈팔일(八佾)〉에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으니 있다면 아마도 활쏘기일 것이다. 읍하여 사양하고 오르며 내려와서 진 사람에게 벌주를 마시게 하니, 그 다툼이 군자답도다.’ 하였다.〔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라고 하였다.
[주-D021] 흉악한 섬오랑캐 :
원문의 ‘완(頑)’은 흉악하다는 의미이다.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묘는 흉악하여 관직에 나아가게 할 수 없다.〔苗頑 弗卽工〕”라고 하였다. 이 구는 급암 당대에 왜적이 고려를 자주 침탈했던 상황과 관련된다.
[주-D022] 날카로운 발톱과 어금니를 :
원문은 ‘瓜牙利’인데, 문맥상 ‘瓜’는 ‘爪’인 듯하여 교감은 하지 않고 고쳐 번역하였다.
[주-D023] 열어구(列禦寇) :
열자(列子)를 말한다. 그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다가 15일 뒤에야 육지로 돌아왔다고 한다. 《莊子 內篇 逍遙遊》
[주-D024] 반홍(潘鴻) :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 계양(桂陽) 땅에서 10년간 도둑질을 하던 도적이다. 복양(卜陽)과 함께 괴수가 되어 많은 도적들을 거느리고 재물을 약탈해서 매우 부유하였다. 형주 자사(荊州刺史) 도상(度尙)이 군대를 출동시켜 3년 만에 정벌하였다. 《資治通鑑 卷55 孝桓皇帝中》
[주-D025] 배를 …… 뜻 :
당(唐)나라 시인 노동(盧仝)의 〈월식(月蝕)〉 시에 “옛 노인의 말을 전해 들으니, 달을 먹는 건 두꺼비의 정기라네. 둘레가 천 리나 되는 달이 네 배로 다 들어가니, 이런 멍청이를 그 누가 낳았단 말이냐.……땅 위의 미천한 신하 노동은 옥황상제께 하소연합니다. 신의 마음에 한 치의 비수가 있으니 요망한 두꺼비의 창자를 갈라 버리렵니다.〔傳聞古老說 蝕月蝦蟆精 徑圓千里入汝腹 如此癡駭阿誰生……地上蟣虱臣仝 告愬帝天皇 臣心有鐵一寸 可刳妖蟆癡腸〕”라고 하였다. 이 시는 특히 역당(逆黨)들을 조롱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주-D026] 양풍(揚風) :
위엄을 떨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D027] 성(姓)은 …… 부끄럽네 :
이 시구는 민홍(閔鴻)처럼 준재(俊才)가 아니라서 부끄럽다는 의미이다. 민홍은 삼국 시대 광릉(廣陵) 사람으로 일찍이 오(吳)나라의 상서(尙書)가 된 적이 있으나 진(晉)나라가 세워진 이후로는 벼슬하지 않았다. 기첨(紀瞻), 고영(顧榮), 하순(賀循), 설겸(薛兼)과 함께 오준(五俊)으로 불리었다. 민홍이 어렸을 때 육기(陸機)와 육운(陸雲)이 그를 용구(龍駒)가 아니면 봉추(鳳雛)라고 칭찬하였다.
[주-D028] 내동(乃東) :
단향과에 딸린 한해살이풀이다. 반기생(半寄生) 생활을 하는데, 잎겨드랑이의 작은 가지에 엷은 풀빛의 작은 꽃이 피고, 여름이면 시든다. 한방에서 ‘하고초(夏枯草)’라고 하는데 약재(藥材)로 쓴다.
[주-D029] 문 안에 누웠더니 :
한(漢)나라 급암(汲黯)이 동해 태수(東海太守)가 되어 문 안에 누워 있었는데도 3년 만에 동해가 다스려졌다고 한다.
[주-D030] 기러기 …… 추었지 :
《예문유취(藝文類聚)》 〈안(雁)〉에 “우국(虞國)이 어려서 효행(孝行)이 있었는데 일남 태수(日南太守)가 되자 항상 두 마리 기러기가 청사에 머물러 있었다. 매번 현을 순행하게 되면 기러기들이 날아와 수레를 쫓아왔다. 우국이 수령으로 있다 죽자 기러기들이 상여를 따라와 묘 앞에서 3년을 지내다가 떠나갔다.”라고 되어 있다. 이로 인해 두 마리 기러기가 수레를 따라다닌다는 말은 고을 수령의 무고함을 의미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주-D031] 잎은 …… 듯하고 :
모란의 잎을 형용하는 말이다. 송(宋)나라 소식(蘇軾)의 〈사시사(四時詞)〉에 “옥 같은 손목에 청록색 소매를 반쯤 걷었으니, 누각 앞에 애끊는 사람 있음을 알겠도다.〔玉腕半揎雲碧袖 樓前知有斷腸人〕”라고 하였다.
[주-D032] 여종 …… 좇는구려 :
봄에 많은 꽃들이 화려한 모란 뒤에 피어 시봉하는 듯하더니, 어느덧 모란이 져서 작은 기러기가 큰 기러기를 따라 날아가는 가을철이 되었다는 뜻이다. 원문의 ‘비슬(婢膝)’과 ‘노안(奴顔)’은 비굴하게 아첨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므로 이 구절에는 조정의 아첨하는 신하를 풍자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주-D033] 휘파람 불며 모이고 :
강도(强盜)들이 그들의 도당을 불러 모을 때 휘파람으로 군호를 삼는다. 여기에서는 왜구의 활동을 묘사한 것이다.
[주-D034] 병기를 …… 있었으니 :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무왕이 은(殷)나라를 이기고 상(商)나라로 돌아올 때……창과 방패를 거꾸로 싣고 호랑이 가죽으로 쌌다.”라고 하였다. 무기를 호랑이 가죽으로 싼다는 것은 무력으로 적의 군대를 복종시킬 수 있다는 뜻 또는 문덕(文德)을 드러내고 무력(武力)을 그치게 한다는 뜻이다.
[주-D035] 戴 :
‘對’의 오기인 듯하다.
[주-D036] 석우풍(石尤風) :
고대 전설에서 유래한 바람의 이름으로 역풍을 뜻한다. 옛날 상인 우씨(尤氏)가 석씨(石氏)에게 장가들어 금슬이 매우 좋았는데 우씨가 장사하러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자 석씨는 큰 병이 들었다. 석씨는 죽음에 이르러 자신이 남편을 가지 못하도록 말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이 죽어 큰바람이 되어 장사치 부인들을 위해 떠나는 장사치의 배들을 막겠다고 말하였다 한다. 《江湖紀聞》
[주-D037] 평진후(平津侯)가 …… 놓고 :
한 무제(漢武帝) 때 평진후 공손홍(公孫弘)이 승상이 되고 나서 객관(客館)을 짓고 객관의 동쪽으로 난 작은 문〔東閤〕을 열어 놓고 현사(賢士)들을 맞아들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여기에서는 이제현이 선비들을 좋아하였던 일을 일컫는다.
[주-D038] 꽃이 그림자를 희롱한다 :
송(宋)나라 이기(李頎)의 《고금시화(古今詩話)》에 나오는 시구이다. 어떤 이가 송(宋)나라 사인(詞人) 장선(張先)을 장삼중(張三中)이라 일컫자 장선이 자신이 지은 시구를 들어 자신은 장삼중이 아니라 장삼영(張三影)이라고 칭했다는 고사이다. 즉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나오니 꽃이 그림자를 희롱한다.〔雲破月來花弄影〕”라고 한 시구와 “예쁘고 유약한 몸으로 게으르게 일어나니 주렴이 덮어 꽃 그림자 걷혔네.〔嬌柔懶起簾壓卷花影〕”라고 한 시구, 그리고 “버드나무 길에 인적 없고 바람에 떨어진 버들개지는 그림자 없네.〔柳徑無人墜風絮無影〕”라고 한 시구를 들어 삼영(三影)이라 한 것이다.
[주-D039] 곽광(霍光) :
곽거병(霍去病)의 이복동생으로, 한나라 무제(武帝) 때 봉거도위(奉車都尉)가 되어 궁궐에 출입하였지만 근신하여 허물이 없었다. 그는 20여 년간 정권을 잡고서 친척들을 많이 기용하였는데, 그가 죽고 선제(宣帝)가 친정을 하면서 모반하였다는 죄목으로 그의 족속을 멸하였다. 《漢書 卷68 霍光傳》
[주-D040] 파동(巴東)의 으뜸 :
북송(北宋)의 정치가 구준(寇準)은 일찍이 뜻을 얻지 못해 파동현(巴東縣)의 수령으로 있었다. 그는 여기에서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므로, 그가 심은 소나무를 백성들이 감당(甘棠)나무에 비겼다는 ‘내공백(萊公柏)’의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정자후(鄭子厚)를 구준에 견준 것이다. 파동은 영남 지방을 말한다.
[주-D041] 꿈에서 …… 받았으니 :
우곡이 뛰어난 문재(文才)를 지녔다는 말이다. 《송사(宋史)》 권249 〈범질열전(范質列傳)〉에 “범질이 태어난 날 저녁에 그 어머니가 신인(神人)이 오색 붓을 주는 꿈을 꾸었는데, 그는 9세에 글을 지을 줄 알았고 13세에 《상서(尙書)》를 연구하여 생도들을 가르쳤다.”라고 하였다.
[주-D042] 삼홍(三紅) 시(詩) :
삼홍은 송(宋)나라 때 응자화(應子和)가 시를 잘하여 일찍이 ‘양안석양홍(兩岸夕陽紅)’, ‘납거단소홍(蠟炬短燒紅)’, ‘풍과낙화홍(風過落花紅)’이란 세 명구(名句)를 지어 당시 사람들에게 삼홍수재(三紅秀才)로 일컬어졌던 데서 온 말이다. 《山堂肆考 卷103 三影先生》
[주-D043] 국화 :
원문의 ‘연수객(延壽客)’은 국화의 이칭이다. 국화에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약효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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