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9.02.08. 03:09
               
MIT·하버드 '먹는 주사제' 개발
거북등에서 본뜬 알약, 위벽에 통증없이 주입.. 주사제는 배변 때 배출

미국 과학자들이 알약 형태의 '먹는 인슐린 주사제'를 개발해 동물실험에서 혈당(血糖) 조절 효과를 확인했다. 상용화되면 국내 당뇨 환자 500만명 중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약 30만명이 일상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혈당을 조절하는 단백질인 인슐린은 인체 소화액에 변형되기 때문에, 그동안 먹는 약으로 개발되지 못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로버트 랭어 교수와 하버드의대 브리검 여성병원의 조반니 트라베르소 교수 공동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8일 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알약처럼 입으로 삼키면 위장에서 인슐린을 주입할 수 있는 '먹는 주사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먹는 인슐린 주사제는 콩알만 한 크기다. 윗부분은 도토리처럼 뾰족하고 아래는 납작해 전체적으로 종 모양이다. 안에는 인슐린과 주삿바늘이 들어 있다. 캡슐에는 이런 주사제 여러 개가 들어간다. 당뇨병 환자가 캡슐을 복용하면 위까지 전달된다. 캡슐은 위산에 녹아 사라지고 주사제가 밖으로 나와 위벽에 달라붙는다. 최종적으로 스프링의 힘으로 주삿바늘이 위벽에 박혀 인슐린을 주사한다. 위벽은 통증을 감지할 수 없어, 주삿바늘로 아플 일은 없다.

돼지 실험에서 이 주사제는 성인 당뇨병 환자가 한 번에 복용하는 5㎎ 용량의 인슐린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인슐린 주입 후 주사제는 대부분 몸 안에서 녹아 사라지고 일부 녹지 않는 부품은 배설물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됐다. 부작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뇨 환자들에게 알약처럼 먹는 인슐린은 꿈같은 이야기다. 그동안 통증이 크게 줄어든 주사제나 패치도 개발됐지만 알약만큼 편리하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주사제를 알약처럼 만드는 아이디어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자연의 지혜도 주사제의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다. 연구진은 주사제의 외형을 뒤집혀도 다시 제자리를 찾는 거북 등 껍데기처럼 만들었다. 덕분에 주사제가 소화기관 안에서 굴러가다가도 마지막에는 늘 바닥이 위벽을 향해 주삿바늘이 제대로 들어간다.

거북 등딱지처럼 뒤집혀도 바로 서는 알약 - 먹는 인슐린 주사제(오른쪽)는 뒤집혀도 바로 서는 거북 등딱지 모양으로 만들어 몸 안에서 항상 같은 형태로 서 있을 수 있다. /MIT

상용화 가능성은 크다. 이번 연구에는 인슐린 생산 1위 기업인 덴마크 국적의 글로벌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참여했다. 논문 대표 저자인 랭어 교수는 세계에서 논문 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공학자며 이미 300여 회사에 기술을 이전했다. 랭어 교수는 "먹는 주사제 캡슐은 다른 치료 단백질의 전달에도 활용 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