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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報恩)...

淸潭 2016. 3. 21. 15:20


 



 

보은(報恩)...

   


사람은 나이가 들면 지나온 과거을 추억하며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오늘은 옛날 얘기 조금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30년이 훨씬 지난 일입니다. 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어머니 얘기입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암 선고를 받으시고 아파 누워계셨을 때였습니다. 아버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많이 아프셨는데 자식들은 그때도 너무 어려서 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학교에 다니다 보니 참고서도 사야하고, 책가방도 사야하고, 학비도 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는 늘 돈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머니 혼자 벌어서 어린 자식들을 키웠는데 어머니가 몸져누우니 집에 돈 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돈 쓸 곳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가 되면 학비를 내야 했고, 책도 사야 했고, 운동화는 왜 그리도 잘 떨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어린 우리는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우리는 그때 어리기도 했지만 너무나 철이 없어서 어머니 품에 요술방망이라도 숨겨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머니에게 요구만 하면 뭐든지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픈 기억들입니다.

 

어떻게 혼자 몸도 가누기 힘든 아픈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했는지, 그리고 돈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아픈 엄마 앞에서 울고 불며 떼를 썼는지, 지금 생각해도 울컥 울컥 가슴이 미어지는 기억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때는 “엄마!”하고 부르면 뭐든지 다 채워지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학비가 없어서 학교에서 쫓겨 올 때도 있었는데,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엄마 주변에서 뱅뱅 돌고 있으면 엄마는 눈치를 채시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돈을 마련해 오셨습니다.  그 돈은 아마도 이웃에서 빌려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형제들이 한 자리에 모두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형들에게 뜬금 없이 물었습니다. “형님! 우리 엄마가 그 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돌아가셨을까?”하고요.

 

형들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우리 어머니가 모두 갚지 못하고 돌아가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집에는 돈을 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30년도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어머니가 혹시 갚지 못한 돈이 있으면 그 돈을 지금이라도 우리 형제들이 갚아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갚을 대상이 막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누구에게 얼마를 빌렸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어머니가 빌린 그 돈을 갚았는지 안 갚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분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니 그 빚은 갚아야 한다는데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이것에 대해 누구에게도 구체적으로 들은 것은 없지만 그때 아픈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준 분이나 어머니를 도와 주신 분이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가 어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그 당시에 어머니와 친했던 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픈 어머니에게 유달리 정을 많이 주셨던 분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모두가 이사를 가고 옛날 집에 사는 분은 한 분도 계시지 않았지만 그분들을 물어물어 찾아보니 많은 분들은 이미 돌아가셨고 생존해 계신 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한 분을 어렵게 찾아냈습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어머니에게 너무나 잘해주셨던 분이었습니다. 어느덧 연세가 여든 살도 훨씬 넘으셨는데 그분은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집에서 어렵게 살고 계셨습니다.

 

관절이 많이 안 좋다는 얘기를 미리 들었기에 쇠고기와 소뼈도 조금 사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며 사과부터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서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유독 어머니 얼굴과 닮은 저를 보고는 “왕기, 니가 느그 엄마를 유난히도 많이 닮았제.”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느그들 엄마가 살아 생전에 복을 많이 짓더니 느그들이 이렇게 잘 컸구나.”하며 흐뭇해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분 집에서 한참 동안 머물면서 어머니 얘기도 듣고 옛날 얘기도 하다가 일어섰습니다. 집을 나올 때는 그분의 손에 봉투 하나를 드리고 왔습니다. 우리 형제들이 준비한 이달치 봉투였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를 도와주셨던 분들을 찾아내서 그분들의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우리 형제들은 약간의 몫 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에게 매달 일정 금액씩 봉투에 담아서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연세가 많으신 이분들이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으실 때 맛있는 것이라도 사 드시고, 아픈 몸의 치료비라도 보태드리는 것이 저희들이 받은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은 어머니에게 고맙게 해주신 분이 혹시 돌아가셨으면 그분들의 자식들에게라도 빚을 갚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날 그 분의 집을 나와 긴 골목길을 걸으면서 우리 형제들은 하늘을 보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계시면 얼마나 흐뭇해 하실까...”

 

고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가져온 곳 : 
카페 >쌍쌍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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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LSLS|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