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憲裁(헌재), 대법원 판결 뒤집었다

淸潭 2012. 6. 8. 08:56

 

憲裁(헌재), 대법원 판결 뒤집었다

["失效 법 적용은 헌법 위반" 17년 만의 이례적 결정]
2008년 대법원 - "법 개정돼도 특별한 사정 있다면 부칙은 유효하다"
헌법재판소 결정 - "失效된 법 효력있다고 하면 국회 입법권 침해하는 것"
GS칼텍스, 재심 청구할 듯… 대법원 판단 주목

 

조선일보 | 조의준 기자 | 입력 2012.06.08 03:37 | 수정 2012.06.08 06:43

 

헌법재판소 가 대법원 판결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1995년 이후 17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법조계에선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놓고 신경전을 벌여온 대법원과 헌재의 자존심 싸움이 이 일을 계기로 불붙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헌재는 GS칼텍스 등 2개사가 "법인세 산정과 관련한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가 1993년 법 개정으로 실효(失效)됐는데도 대법원이 이를 효력 있다고 보고 세금 700억원을 물리는 판결을 한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낸 헌법 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효력이 있다고 (법을) 해석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고 7일 밝혔다.

↑ [조선일보]이강국 헌재소장(사진 왼쪽), 양승태 대법원장.

대법원은 지난 2008년 "법이 개정됐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부칙이 실효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며 GS칼텍스에 패소판결을 했다.

하지만 헌재는 "(법원이) 조세법은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실효된 조항을 유효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일종의 입법행위가 돼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과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법원의 법해석과 판단을 깬 것이다.

◇17년 묵은 갈등

이번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헌재가 문제가 된 법조항의 헌법 위반 여부를 따진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대법원 법 해석의 위헌 여부를 따졌다는 점에서 양 기관의 다툼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우리 법체계는 법률의 최종 해석권은 대법원에 주면서,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 소원(재판 소원)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헌재와 대법원은 17년 전에도 한 번 맞붙은 적이 있다. 헌재는 1995년 이길범 전 의원이 '양도세는 실거래가로 물리면 안 된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낸 소송을 대법원이 기각하자, "조세부과의 근거규정이 시행령에 있어서 헌법위반"이라는 한정 위헌 결정으로 대법원 결론을 사실상 뒤집었다. 그러자 대법원이 "그건 헌재의 견해일 뿐"이라고 다시 판결하면서 양측이 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 갈등은 중간에 낀 국세청이 이 전 의원의 부동산에 걸었던 압류를 푸는 방식으로 헌재 입장을 수용하면서 봉합됐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공은 대법원으로

이제 GS칼텍스는 대법원에 세금을 취소해달라고 재심(再審)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이 재심을 받아들이면 헌재 결정을 수용하는 셈이어서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큰 싸움으로 번질 공산이 크다. 대법원이 재심을 기각하면, 헌재가 '재판 소원'을 금지한 헌법재판소법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법원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당장 뭐라고 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자세다.

헌재 수뇌부는 재판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기본권 침해 문제 등에 한정해서 재판 소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헌재는 실제 제한적인 재판 소원을 심리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재판 소원은 4심제나 마찬가지여서 국력낭비가 심각하고, 헌법재판소법도 그 때문에 재판 소원을 불허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우리뿐 아니라 독일을 제외한 오스트리아 등 독립 헌재를 가진 여러 나라도 재판 소원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 소원

법원 판결이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할 때 헌법 소원을 내서 헌재가 심리하도록 한 제도다. 독일 헌재가 도입하고 있는데 ①위헌법률로 재판한 경우 ②기본권을 침해한 법해석을 한 경우 ③재판절차가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등에 한정돼 있다. 우리 헌법은 헌재에 위헌심사권을 부여하면서도, 헌법재판소법에 '재판은 헌법 소원의 예외'라고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