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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S’만으로 재기힘든 류현진 기록의 무게

淸潭 2010. 8. 13. 08:46

‘Q.S’만으로 재기힘든 류현진 기록의 무게

OSEN | 입력 2010.08.13 07:31

 


조기강판 한 번 없이 올 시즌 선발 등판한 전 경기를 최소 6회 이상 버텨낸 뚝심과 그 모든 경기를 3자책점 이하로 막아내는데 성공한 한화 류현진의 투구기록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기록적 가치의 무게가 자꾸만 불어나는 느낌이다.

현재 진행형인 류현진의 'Q.S(Quality Start)'연속 기록은 28경기. 지난해(2009) 8월 19일 삼성 전을 시작으로 2010년 8월 8일 롯데 전까지 무려 1년 가까이 쉼 없이 달려오고 있는 중이다. 올 시즌만 떼어놓고 따지면 22경기 연속이다.

조계현과 권명철이 1995년 나란히 세웠다는 17경기 연속 Q.S 는 물론, 메이저리그의 26경기(세인트루이스 밥 깁슨, 1967~1968년)마저 훌쩍 뛰어넘은 그야말로 대기록중의 대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류현진의 기록행진이 계기가 되어 최근 부쩍 관심을 끌기 시작한 'Q.S'는 선발투수가 최소 6이닝 이상을 3자책점 이하로 막아낸 경기를 뜻한다.

Q.S 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투수 기록관련 통계방식 중의 하나로, 1980년대 중반 메이저리그의 어느 기자가 다승이나 승률에 의한 순위가 갖고 있는 선발투수의 능력평가와 관련된 허점을 보완하고자 고안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야구의 분업화, 전문화에 따른 투구 수나 등판 간격 조절의 여파로 선발투수의 완투기회가 점차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안목으로 착안한 기록 아이템인 셈이다.

Q.S 가 야구팬들의 관심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타기 오래 전인 1986년, 야구기록 동호인들의 소모임이었던 'SKBR(한국야구기록연구회)'이라는 모임에서는 Q.S 방식을 통한 투수의 능력평가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적용된 투수의 Q.S 획득 기준은 선발, 구원을 불문하고 등판 후 6이닝 이상 투구에 2자책점 이하였다. 방어율로 따져 3.0 정도를 투수의 합격선으로 보았던 것이다.

참고로 당시 통계자료를 잠시 인용해보면, 1986년 24승을 거두며 경이의 0점대 방어율(0.99)을 기록했던 선동렬(해태) 투수가 총 39경기에 등판, 26회의 Q.S 를 따낸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선동렬 투수는 선발(22경기)로만이 아니라 구원투수로 등판한 경기도 상당수(7구원승+6세이브) 있어, 긴 이닝을 던지지 않았던 경기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전 경기에서 Q.S 급 이상의 투구내용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선동렬 투수가 선발로 나섰던 22경기만을 대상으로 했을 때도 Q.S의 기준에 미달(4자책점 이상 실점)한 경기는 단 1경기 뿐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현재 적용되고 있는 Q.S 의 기준선은 3자책점 이하로 1점이 하향 조정되어 있다. 한 경기로 환산한 방어율로 치자면 3이닝에 1.5점씩, 4.50이 되는 셈인데, 선발투수의 방어율 치고 결코 우수한 방어율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 선을 기준선으로 잡은 이유는 리그의 한 경기 평균 득점이 대략 5점 가까이 되는 만큼, 승리를 위해서 선발투수진이 지켜줘야 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그쯤으로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한국프로야구에 그대로 적용하면 답은 더욱 확실해진다. 지난해(2009) 한국프로야구 한 팀의 경기당 평균득점은 5.16. 지금의 Q.S 획득 기준이 제시하고 있는 경기당 방어율(4.50)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팀이 승리할 확률은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올 시즌 역시 한 팀 경기당 평균득점은 5점을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범위를 넓혀 한국프로야구 28년간의 통산득점 대비로 따져볼 때는 한 팀의 경기당 평균득점은 4.43대로 낮아진다. 지금의 Q.S 환산 방어율 4.50보다 오히려 낮다. 득점보다 실점 수치가 더 높은 만큼 승률은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이전 3년간(2006~2008년)의 한 팀 당 경기당 평균득점 역시 지금의 Q.S 환산 방어율보다 낮은 3.94-4.27-4.48 정도에 머물렀다.

바꿔 말해 지금의 Q.S 기준은 우수한 선발투수를 가늠하는 불변의 척도로 삼기에는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기준을 상향 조정해 '7이닝 2실점 이하'로 기준선을 올려 따로 집계를 하기도 하는데, 'Q.S Plus'라 불리는 기록이 바로 이 기록이다.

참고로 올 시즌 류현진의 Q.S Plus 는 모두 17번. 총 22번의 선발등판에서 따낸 기록으로 그 확률은 77%이며, 해당조건 성립경기의 승률은 무려 88%(15승 1패)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대략 안정적인 선발투수가 아니라 진정 우수한 선발투수를 가려내고 싶다면 Q.S 보다는 Q.S Plus의 기준이 시공을 넘어 보다 효과적이다.

여기(Q.S Plus)에 한 술 더 떠, 탈삼진 조건(7K 이상)까지 더해 일명 '도미넌트 스타트(Dominant Start-지배적인 출발)'라는 용어를 가진 기록을 집계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근에 새로 알게 됐다. (선발투수의 구위를 비교하는 자료로는 쓸모가 있겠지만, 선발투수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탈삼진 숫자는 그다지 호소력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경기당 4사구 허용 빈도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선발투수가 일찍 무너지지 않고 경기 종반까지 버텨준다는 것은 경기의 승패를 떠나 팀 투수진 운용상에 절대적인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선발이 초반에 쫓겨날 경우, 중간 계투진을 일찍 가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팀으로서는 그만큼 투수운용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고, 경기 중 상대와의 전력균형을 맞추는데 있어서도 애를 먹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운드에서 오랫동안 버텨내는 선발투수들을 우리는 따로'이닝 이터(Inning Eater)'라고 부른다. 직역하자면 이닝을 많이 잡아먹는 투수쯤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선발투수가 이닝을 많이 잡아주면 그만큼 뒤에 나오는 투수들의 부담은 한결 줄어들게 된다.

현재 류현진의 경기당 평균 투구회수는 무려 7.78이닝. 혼자서 약 8이닝 가까이를 소화해내고 있다. 어지간한 마무리 투수 한 명만 있으면 경기는 그대로 끝이다. 신인으로서 18승을 거둬 데뷔 첫 해 MVP의 자리에까지 오르며 화려한 대관식을 가졌던 2006년 당시 그의 평균 투구회수는 6.70이닝이었다. 숫자로 지금의 류현진은 딱 1이닝 만큼 더 무서워져 있다.

류현진이 당대 최고의'이닝 이터'라는 사실은 지금 주목 받고 있는 연속경기 Q.S 보다 어찌 보면 더욱 찬란한 훈장일 수 있다.

2007년 대표적인 '이닝 이터'로 불리며 22승을 거두었던 외국인투수 다니엘 리오스(두산)의 그 해 경기당 평균 투구회수가 7.09이닝 정도였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의 류현진이 젖은 천에 잉크 풀듯 풀어내는 기록들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를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여기에 1998년 정명원(현대, 1.86) 이후 12년 만의 1점 대 방어율(현재 1.63) 재현과 1984년 최동원(롯데)이 세운 시즌 최다 탈삼진(223K)기록 경신 도전(현재 171K)은 그저 덤이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