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천불만다라] 97. 배타적 종교의 폐단

淸潭 2010. 1. 20. 15:23

[천불만다라] 97. 배타적 종교의 폐단
지도자가 종교편향하면 사회통합은 먼 일
기사등록일 [2010년 01월 18일 17:54 월요일]
 
중생의 삶과 죽음을 알고
집착하지 않고
바르게 살고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수행자라 부른다.
                          - 『법구경』

 
그림=이호신 화백, 수화자문=조계사 원심회 김장경 회장

부처님 당시 완기사스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이 분은 출가하기 전에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완기사는 죽은 사람의 두개골을 두드려 보면 그가 태어난 곳을 알아내는 신통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완기사를 중심으로 그의 무리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죽은 사람의 태어난 곳을 알려주고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들이 드디어 사왓티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시에 도착하여 그들이 목격한 광경은 시내의 모든 사람들이 향과 꽃 등 공양구를 손에 들고 일정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은 부처님이 계시는 제따와나 수도원이었다. 완기사 무리들은 부처님을 참배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완기사의 신통력을 자랑하고 완기사를 공경하는 것이 부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 될 것이라고 선동하였다. 결국 완기사의 무리와 부처님 제자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그들은 함께 부처님께 가서 누구의 신통이 더 완벽한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천안으로 이들의 방문을 아시고 완기사를 맞이할 준비를 하셨다. 각각 다른 세계에 태어난 다섯 개의 죽은 사람 두개골을 상위에 올려놓으시고 완기사를 기다리셨다. 완기사는 부처님이 물으시는 대로 두개골을 두드려보고서는 지옥에 태어난 사람, 천상에 태어난 사람 등을 정확하게 맞혔고 부처님께서는 완기사의 신통을 칭찬하셨다. 그러나 완기사는 마지막 한 개 남은 두개골의 태어난 곳은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신통 내세우는 종교는 혹세무민

완기사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부처님께 신통을 배우려는 목적으로 잠시 출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출가하여 수행을 쌓아가던 중에 드디어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중생들의 생사의 근원을 깨닫게 되었다. 완기사스님의 이와 같은 수행의 성과를 인정하시고 부처님은 위의 게송으로 찬탄하셨다고 한다. 완기사가 태어난 곳을 알지 못했던 마지막 두개골은 아라한과를 성취한 성자의 두개골이었다. 태어나고 죽어가는 생사의 윤회를 벗어난 성자는 이미 생사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신통이 뛰어난 완기사도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완기사스님은 스스로 성자가 되어서 부처님으로부터 생사를 뛰어넘은 성자라고 칭찬을 받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는 기적을 나타내어 많은 사람을 현혹시키고, 신통을 부려서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것으로 최고의 가치로 삼는 종교이념도 있다. 이것이 도를 넘으면 혹세무민이 되는 것이다. 그릇된 신념으로 배타적인 광신자가 되어 가정을 해체시키고 가산을 탕진하게 된다. 불교가 집착으로 얽매인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근원을 직시함으로써 깨달음의 도(道)에 나아가게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신통을 부리던 완기사도 생사의 윤회를 벗어난 아라한의 두개골은 어디에 태어났는가를 알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어갈 존재라는 인식이 희박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 중에 누가 먼저 죽어 가면 몹시 애통하게 된다. 삶에 집착했기 때문에 죽음에 역시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곧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깊이 통찰하면 삶에도 죽음에도 집착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겨울이 지나면 봄옷을 갈아입고 여름이 지나면 겨울옷을 찾는 것과 다름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야 참다운 불자다. 삶에 고통스러워하고 죽음에 비탄하지 않도록 평소 진리를 꿰뚫어 보는 자로서 자신을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신(神)만을 찬탄하는 일에 너무 치우쳐서 자신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여 너무 배타적이지 말아야 한다.

지역·이념 대립에 종교갈등까지 꿈틀

얼마 전 국민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시키기 위한 정치인의 발상으로 ‘사회통합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이미 우리나라는 배타와 갈등이 최고로 고조되어 있는 사회이다. 그리고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이 자신의 종교와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면서 갈등의 씨앗을 계속 뿌리고 있다. 우리사회는 지역과 이념의 갈등을 넘어서서, 이제는 종교의 갈등이 움틀 거리고 있는 사회이다. 한국의 관문인 서울역에 가면 예수님 말씀이 적혀 있는 종이 장 하나를 내보이면서 승려보고 개종하라고 권유한다.

세계종교의 하나인 불교의 가치는 이미 안중에 없고, 자기가 믿는 신의 우상화가 극에 달해서 타인의 종교나 인격은 이미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를 조장하는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고 사회의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데 어디에서 배타와 갈등이 해소되고 사회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부처님이 완기사를 깨우치셨듯이 헛된 망상(妄想)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바로세우는 지혜의 길과 남을 배려하는 자비의 마음을 배우려는 노력으로 사회통합은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시인하고 고행 정진하여 아라한의 성자가 된 완기사스님처럼 우리 모두도 냉혹한 깊은 겨울의 추위를 온 몸으로 받으면서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을 지켜가야 한다. 겉으로의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삶의 진실을 가다듬어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염원하면서 수행 정진할 일이다. 

본각 스님(중앙승가대 교수)


1032호 [2010년 01월 18일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