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만공 스님께서 시자 한 명을 데리고
마을로 탁발을 나간 일이 있었단다
저녁때가 되었는데, 하루종일 시주 받은
곡식이 많아서 자루가 제법 무거웠던 모양이다
해는 서산에 걸려 뉘엿뉘엿 넘어가고
돌아갈 길은 먼데, 무거운 쌀자루를 등에 진
시자의 발걸음은 점점 느려져 앞서가고 있는
만공 스님과 자꾸만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었다.
마침 동네 어귀를 지나가고 있는데
젊은 처녀가 물동이에 물을 길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들에서 일을 마친
동네 사람들도 소를 몰고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만공 스님이 물동이를 인 동네 처녀를
와락 끌어안고는 입을 맞추고 말았다.
우물가이다 보니 동네 사람 여럿이 이 광경을 보았다.
당연히 큰 소동이 일어났다.
"저놈 잡아라." 동네 사람들은 만공 스님을
뒤쫓고, 뒤따라오던 시자에게도 덤벼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쌀 짐을 지고 따라오던 시자도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스님이 저럴 수가?"하는 찰나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동네 어귀를 벗어나고 말았다.
시자승도 잘못하면 동네 사람들에게 잡혀
몰매 맞게 될 판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만공 스님의 뒤를 따르는 수밖에
그리고 어느덧 절 밑 일주문이 바라다 보이는
곳까지 오자, 만공 스님은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스님 어찌 하시려고 그런 일을 하십니까?"하고
시자는 스님을 원망하였다.
만공 스님은 껄껄 웃으시며,
"이놈아,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절에 도착했겠냐? 아마 밤새워 왔을 거야.
짐도 가볍게 오지 않았느냐?"
-원정의 <<가슴속에 묻어둔 성철 스님의 골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