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섀튼 교수의 이 같은 결별선언은 황 교수의 공직 사퇴 기자회견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MBC PD수첩팀에서 ‘난자 매매 의혹’과 ‘줄기세포 조작 의혹’을 추가로 제기한 다음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황 전 교수는 서울대에서 파면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황 전 교수팀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은 소위 ‘황빠’와 ‘황까’로 대표되는 지지층이 나뉠 정도로 국민적인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섀튼 교수의 결별선언이 황 전 교수팀의 ‘줄기세포 논문조작’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 셈이다.
하지만 국민에게 이처럼 큰 충격을 안겨 준 ‘줄기세포 조작사건’은 아직도 법정에서 지리한 진위 공방이 계속되고 있으며, 인터넷 등에서는 ‘황빠’와 ‘황까’ 사이에 설전이 여전하다. 또한 아직도 소수의 과학자들은 황 전 교수팀의 유일한 성공작으로 공인받은 복제 개 ‘스너피’의 진위를 다시 밝히자면서 재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 ‘그때 그 사람들’ 지금은 = 황 전 교수는 요즘 변호인단과 각별한 지인 외에는 외부접촉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측근들에 따르면 황 전 교수는 연구비 횡령 등에 대한 법정공방을 지속하는 가운데서도 연구 재개에 의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학계에 따르면 황 전 교수는 최근 과학기술부로부터 재단법인 ‘수암생명공학연구원’ 설립 허가를 받아 서울 구로동에 연구실을 마련했다. 재단은 황 전 교수의 동향으로 알려진 박병수 수암장학재단 이사장 겸 ㈜스마젠 회장을 이사장으로 이사 5명과 감사 2명으로 임원진을 구성했다. 출연재산은 25억원으로 사무실은 서울 방배동 수암빌딩에 마련됐다.
구로동 연구실에는 서울대 수의대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함께 해 온 대학원생들 상당수가 출근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구인력이 완전히 구성되지 않은 데다 주력 분야인 배아줄기세포의 경우 정부로부터 공식 연구허가를 받지 않아 실질적인 연구활동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과학계에서는 황 전 교수팀이 연구를 재개하더라도 무균돼지를 이용한 이종장기를 연구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는 또한 최근 서울대의 파면 처분이 부당하다며 서울행정법원에 파면처분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황 전 교수와 친분이 두터운 모 교수는 “(황 전 교수가) 그동안 해 온 연구 재개를 위해 동분서주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예전과 달리 극소수의 지인들만 만나기 때문에 행적이 많이 알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억9천600만원의 연구비를 편취한 혐의로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던 이병천 교수는 최근 징계처분이 끝나 서울대에 복직했다. 한때 바이오기업 등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던 이 교수가 서울대에 복직이 된 것은 세계 첫 체세포 복제 개 ‘스너피’를 탄생시킨 데 이어 멸종위기 동물인 늑대 2마리(암수 각 1마리)와 스너피의 여자친구격인 복제 개 2마리를 각각 탄생시킨 점이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반면 1억1천200만원의 연구비를 편취한 혐의를 받은 강성근 전 교수는 해임된 이후 다른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황 교수의 논문조작 실태를 PD수첩팀에 제보한 유영준 연구원의 경우도 아직까지 새로운 직업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대의대 안규리 교수는 정직 2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으나 지난 7월 병원 정기인사에서 신장내과 과장으로 임명됐으며, 한양대 윤현수, 박예수, 황정혜 교수도 각각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뒤 최근 복직했다.
다만 황 교수에게 결별을 선언하면서 결백을 선언한 섀튼 교수는 미국 내에서 살아남기 힘들것이라는 관측과 달리 여전히 피츠버그대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국가 연구비를 타내는 등 아직도 건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배아줄기세포 연구 어떻게 돼가나 = 그동안 황 전 교수팀과 함께 국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했던 연구기관들은 한마디로 구심점 없이 흔들리고 있다. 물론 황 전 교수팀이 주도했던 배아를 복제하는 방식의 연구는 완전 중단됐다. 이는 냉동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도 마찬가지다.
마리아병원의 경우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했던 박세필 박사가 제주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줄기세포 연구가 중단되다시피 했다. 미즈메디병원도 아직까지 연구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차병원은 성체줄기세포 분야로 발 빠르게 눈길을 돌렸다.
이에 따라 과학계 일각에서는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한층 속도를 높여가는 상황에서 이러다가 자칫 국내 배아줄기세포연구 자체가 중단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세필 박사의 경우 제주대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한다는 계획이지만 연구장비와 인력 확보 등 해결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실정이다.
불임시술에서 쓰고 남은 냉동 배아를 가지고 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연구해 온 미즈메디병원도 현재 일체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중단된 상태다. 물론 외부에서 들어오는 연구비도 없어졌다.
하지만 이 병원은 마리아병원과 달리 앞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원자력연구원 출신의 박현숙 박사를 새 연구소장으로 앉혔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또 다른 축인 차병원 산하 차바이오텍은 일찌감치 성체줄기세포를 주력연구 분야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차병원이 운영중인 제대혈은행과 함께 성체줄기세포 분야 연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병원은 국내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어려워지자 최근에는 미국 할리우드 차병원을 통해 미국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사업에 대한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활로를 찾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동안 황 전 교수팀에 가려졌던 연구팀이 새로운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연세대의대 김동욱 교수팀의 경우 척수 손상 재생에 필요한 ‘희돌기교세포(oligodendrocyte)’를 인간배아줄기세포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연구성과를 줄기세포 분야 전문 국제저널인 ‘스템셀(STEM CELLS)’에 게재했다.
또한 김 교수팀은 하버드의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배아줄기세포로 불안과 우울증 증상을 치료할 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 논문조작에도 한국 과학계 위상은 여전 = 황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으로 국내 과학계에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국제적 위상은 흔들림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황 교수 사건이 매듭된 이후 올 들어 7월까지 3대 국제 과학저널로 불리는 네이처, 사이언스, 셀에 게재된 국내 과학자들의 논문 수는 모두 16편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황 교수 사건 직전 7개월 동안(2005년 6월-12월) 3대 저널에 실린 논문 수 17편에 비교할 때 거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또 지난 한해 동안 3대 저널에 실린 국내 과학자들의 논문 수가 네이처 17편, 사이언스 10편, 셀 2편 등 모두 29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 들어 3대 저널의 논문 수가 오히려 증가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과기부 관계자는 “3대 저널에 실린 국내 과학기술자들의 논문 수를 볼 때 황 교수 사건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서 한국 과학기술계의 위상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그나마 생명윤리 중요성 체득은 교훈 = 황 전 교수팀의 논문조작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과학의 진보를 위한 생명윤리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귀중한 교훈으로 꼽히고 있다. 즉 황 전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당시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만 제대로 운영됐어도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과학자들의 평가다.
이에 따라 정부는 IRB의 질적수준 향상에 힘을 모으고 있다. IRB위원 양성을 위한 해외 연수 프로그램과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키로 했으며, 능력있는 IRB위원 양성에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이 밖에도 정부는 IRB의 연구 심의가 특정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외부인사와 비전문가들의 참여 폭을 넓히는 등 IRB 심의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난자의 사용에 대해서는 연구목적 뿐만 임신 목적의 난자 제공 등에 대해서도 기증 자격을 제한하고 의학적 검사를 의무화하는 등 관련 규정을 마련키로 했으며, 정자와 난자의 매매에 대해서는 금지규정을 엄격히 적용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