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漢詩

죽은 누이에 대한 哀辭

淸潭 2024. 7. 10. 09:33

 

죽은 누이에 대한 애사 

 

경신년 12월 4일 을축에 내 누이 유인(孺人) 김씨(金氏)가 젖병[乳病]으로 병석에서 죽었는데, 6일 뒤에 그가 낳은 딸도 죽었다. 아, 슬프다. 사람이 50세 이전에 죽는 것을 요절이라고 하는데, 지금 내 누이는 겨우 16세이다. 그가 죽은 것은 아이를 낳아 기르다가 그렇게 된 것인데 끝내 아이도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아, 어쩌면 그리도 혹독하단 말인가.

내 누이는 나면서부터 정신이 맑고 깨끗하여 지혜가 특출했으니, 어려서부터 모든 언행이 어른 같았고 자라서는 더욱 완전해져서 덕스러운 기운이 충만하였다. 그리하여 그 깨끗함과 고매함은 어떤 것으로도 더럽히지 못할 정도이면서도 인자함으로 남을 사랑하고 온후함으로 포용하였으니, 부덕(婦德)에 있어 미비한 점이 없었다. 그 때문에 부모님이 누이를 특별히 사랑하셨다.

우리 형제는 장부가 여섯이고 누이는 고명딸이다. 그러나 그가 사내가 아님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그는 총명함이 남들보다 뛰어나서 보고 들은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잊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혹 오래된 일이라 기억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늘 누이에게 묻곤 하였다. 그러면 누이는 즉시 그 일을 식별해 내고 “아무 날 아무 시에 있었던 일의 곡절이 이러하다.”고 말하였는데, 그 말을 천천히 따져 보면 열에 두셋도 틀리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은 그의 총명함을 아껴서 시서(詩書)를 가르쳐 주려고도 해 보았지만, 그는 번번이 사양하여 배우려 하지 않고 오직 바느질 같은 여자의 일에만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간혹 옛사람의 아름다운 언행을 일러주면 싫증을 내지 않고 듣기를 좋아하였다.

우리 집은 평소에 일이 많았고 또 어머니는 지병이 심하여 병석에 누워 계시는 일이 많았다. 누이는 8, 9세 때부터 벌써 어머니를 도와 자루와 상자 안의 자잘한 물건까지도 빠뜨리거나 흘리는 일이 없게 하였고 간혹 살림을 대신 맡아보기도 하였는데 그 역시 거뜬히 잘 꾸려나갔다. 우리 형제들이 각기 장가를 들어 집안에 들어온 부인들은 장단점과 성미가 각기 달랐으나 누이는 한결같이 사랑과 공경으로 대하여 털끝만치도 차별하지 않았다. 이에 그 부인들도 감동하여 누이를 좋아해서, 누이가 죽자 친정 부모의 상에 곡하는 것보다 더 슬프게 곡하였다. 아, 누이는 이처럼 어질었으니, 이 어찌 장수와 복록을 누릴 만하지 않다 하겠는가. 그런데 이제 이와 같이 된 것은 어째서인가? 옛사람의 말에 “기(氣)가 맑은 사람은 수명이 짧다.”고 하였는데, 아, 어찌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 가문은 명망이 높아 남들은 겉으로 보고 사치와 부귀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누이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니, 평생 호화와 안락 속에 지내며 괴로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 을묘년 이후로 가친께서 남쪽 바닷가로 유배 가셨는데, 그곳은 서울에서의 거리가 수천 리나 되는 곳으로 지대가 낮고 습하여 독기 서린 안개와 무더위가 심한 데다 해충과 독사가 들끓어 하루도 편안히 지낼 수가 없었다. 얼마 뒤에 또 북쪽의 철원(鐵原)으로 옮겼는데, 그곳은 서울과 다소 가깝기는 하나 산골의 풍속이 조잡하고 비속한 데다 거처와 음식이 매우 형편없어 한 가지도 마음에 맞는 것이 없었다. 우리 형제들도 그곳을 왕래하며 안부를 여쭈었을 뿐 일 년 내내 머물러 본 적이 없는데, 누이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5년 동안 가친을 따라다니며 온갖 고충을 다 겪었다. 그 때문에 평소에 마음이 울적하여 즐겁지 못하였고 늘 서울을 그리며 형제자매와 한자리에 모여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랐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다행히 세도(世道)가 회복되어 온 가족이 도성 안에 들어와 살게 된 마당에 누이가 죽고 말았으니, 누이는 평생 근심과 고충 속에 지낸 날이 많았고 즐거움과 안락 속에 지낸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누이는 이처럼 운명이 기박하였다.

내 누이는 14세에 시집을 가서 시집간 지 3년이 되었으나 미처 시댁으로 돌아가지 못하다가 지금 죽어서야 비로소 시집갈 때 입었던 옷과 시댁에 가서 시부모를 뵐 때 갖추려 했던 물건으로 염습을 하였다. 아, 어찌 차마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부인이 시댁으로 돌아가는 것은 선비가 조정에 출사하는 것과 같으니,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운 덕을 드러낼 길이 없다. 어진 누이가 비록 다른 사람들처럼 장수와 복록을 누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수명을 조금 더 연장하여 시댁에 돌아가 시부모를 뵙고 그 유순하고 아름답고 정숙하고 현철한 덕을 드러낼 수 있게만 되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마침내 그렇게 되지 아니하여 그 수려한 용모와 아름다운 행실이 규방 안에 갇힌 채 영원히 다시는 드러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하늘이 이 누이를 내면서 아름다운 덕을 부여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단 말인가. 죽은 사람이 지각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지각이 있다면 무어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 애사를 쓰는 것은 내 슬픔을 토로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슬프디슬프고 애통하디애통하다. 애사는 다음과 같다.

 

아, 우리 누이는 / 嗟嗟我妹

특출한 자품 타고나 / 生絶特兮

맑은 정신 깨끗하고 / 淸瑩灑落

온화하였네 / 又溫穆兮

많고 많은 형제 중에 / 兟兟弟兄

장부가 여섯인데 / 丈夫六兮

너는야 그 가운데 / 爾在其間

주옥 같은 고명딸 / 皎如玉兮

형제들의 글소리를 / 詩書洋洋

귀에 익히 들었으며 / 耳則熟兮

삼과 모시 길쌈하고 바느질하는 / 麻枲箴絲

여자 일에 열심히 공 들이더니 / 劬女職兮

훌륭한 선비에게 시집을 가서 / 歸于吉士

기쁨과 즐거움이 참으로 컸네 / 孔嘉樂兮

여도를 눈앞에 펼쳐 놓고서 / 女圖陳前

가르침과 법도를 밝게 익히고 / 昭訓則兮

훌륭한 옛 여인 거울 삼아서 / 鑑古碩媛

자신의 행실을 검칙했으니 / 以自飭兮

온화하고 정숙하고 조심스러운 / 雍雍淑愼

아름다운 덕성을 고루 갖췄네 / 具令德兮

신이 있어 누이의 일 들었다면은 / 神之聽之

장수와 복록을 내릴 터인데 / 宜壽福兮

어찌하여 불쌍타 여기지 않고 / 胡寧不弔

갑자기 혹독한 화를 내렸나 / 奄此酷兮

슬프다 누이가 요절한 것은 / 哀爾夭椓

아이 낳아 기르다 그렇게 된 것 / 祟生育兮

이는 본디 상서로운 일이건마는 / 曾是吉祥

도리어 목숨을 해치었구나 / 反爲虐兮

으앙대는 아이를 낳아 놓고서 / 呱呱墮地

사흘 밤을 넘기지 못하였구려 / 不三夕兮

게다가 자식까지 남기지 못해 / 而又不遺

피붙이 이어갈 아이 없으니 / 綿血屬兮

이슬인가 번개인가 물거품인가 / 露電泡沫

아무런 자취 없이 사라졌어라 / 滅無躅兮

애달파라 자애로운 우리 어머니 / 哀哀慈母

쓰라린 고통을 마음에 품어 / 懷痛毒兮

자나 깨나 가슴을 탕탕 치면서 / 寤寐摽擗

눈물로 이부자리 흠뻑 적시네 / 涕盈褥兮

맑고도 깨끗했던 누이의 음성 / 淸泠爾音

속기(俗氣) 없이 초연했던 누이의 모습 / 脫爾色兮

위에건 아래에건 좌우 어디건 / 俯仰左右

아른아른 눈과 귀에 가득 어리네 / 盈耳目兮

너에게 있었던 치마 저고리 / 爾有裳衣

손수 지어 갈무리해 둔 것이었고 / 手所作兮

여러 가지 패물이며 수놓은 큰 띠 / 雜珮鞶繡

옷상자에 깊숙이 보관했으니 / 襲箱簏兮

장차 너는 용모를 단장하고서 / 將汝爲容

시부모 곁으로 가려 했건만 / 舅姑側兮

그것으로 염습하여 영결을 하니 / 斂以送往

슬픈 심정 그 어찌 한이 있으랴 / 哀曷極兮

휑한 빈방 / 寥寥虛室

흰 휘장 드리워 놓고 / 垂素幄兮

너의 거처 그대로 베풀어 놓되 / 像設爾居

평소와 다름없이 마련했으니 / 儼平昔兮

옷가지며 이불과 대야와 빗을 / 衣衾盥櫛

베개며 자리와 함께 베풀고 / 陳枕席兮

아침이며 저녁으로 상식 올릴 제 / 朝晡上食

술과 고기 넉넉히 갖추었다네 / 有酒肉兮

어렴풋이 네가 마치 있는 듯하나 / 曖其若存

끝끝내 모습은 볼 수 없어라 / 竟莫矚兮

겨울 가고 봄이 와 철이 바뀌니 / 冬春代謝

자연의 변화가 빠르기도 해 / 運化速兮

분출되는 양기에 / 陽氣奮發

눈서리 녹고 / 霜雪滌兮

천지 기운 합하여 싹을 틔우니 / 句萌絪縕

만물 모두 새롭게 변화하누나 / 物皆革兮

여기저기 새들은 울어대면서 / 嚶鳴下上

서로 함께 어울려 희롱하는데 / 鳥相逐兮

슬프다 너는 영영 세상을 떠나 / 哀爾永逝

혼자서 어디로 갔단 말이냐 / 獨安適兮

아, 날짜 멀어져도 / 嗟哉日遠

아니 돌아와 / 不云復兮

그리움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 長懷永慕

허공만 물끄러미 바라본다네 / 窅虛廓兮

아득한 천지 조화 / 茫茫大化

생사의 경계 없어 / 無畛域兮

그 사이에 한 목숨 살고 죽는 건 / 死生其間

아침해와 저녁해 다름이 없이 / 若曛旭兮

끝내는 모두가 돌아가느니 / 終要歸盡

그 누가 수명을 조절할쏘냐 / 孰延促兮

아, 이 이치 / 嗟哉茲理

나 이제 깨달았으니 / 我所識兮

너에게 일러 주고 / 持以告汝

위안을 삼네 / 且自抑兮

허나 좀체 가시잖는 이내 슬픔은 / 耿耿余悲

끝끝내 억제할 도리 없으니 / 終莫塞兮

참으로 가련하다 너의 혼이여 / 哀哉爾魂

원통한 그 심정을 어이 풀거나 / 寃曷釋兮

 

[주-D001] 죽은 …… 애사 :

이섭(李涉)에게 시집가 출산의 후유증으로 죽은 누이에 대한 애사로, 작자의 나이 31세 때인 1681년(숙종7)의 작품으로 보인다.

[주-D002] 여도(女圖) :

옛날 여러 종류의 모범 여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농암집 제30권 / 애사(哀辭) / 김창협(金昌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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