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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淸潭 2020. 2. 19. 11:10

2003년 2월19일 오전 9시 53분,



          보소 보소 사람들아
          내 말 한 번 들어보소
          팔자가 기구하다
          팔자 타령 아니랄시
          그냥 하는 푸념이니
          길 멈추고 들어보소
          고운 얼굴 아니지만
          박색도 아닌 얼굴
          남편 만나 맺은 인연
          천년만년 살드랬소
          딸 하나에 시댁 눈치
          딸 둘에 남편 주름
          기어이 가진 자식
          다행히도 아들이네
          둘이면 어떠하리
          셋이면 또 어떠리
          남편 있고 나 있으니

          둘이 합쳐 한몸이면
          부모 봉양 자식 양육

          설마하니 풀칠하랴
          설마 설마 설마라니
          그 설마가 사람잡네
          잘못한 이 하나 없단
          IMF 그 시절에
          우리 남편 직장 잃고
          속내 가슴 태우다가
          시름시름 탄식 속에
          어느 한 날 가버렸오
          눈물 한 점 메마르고
          하늘은 노랬다오
          조막만한 아이들은
          아비 간 줄 모르고서

          오물오물 꼬물꼬물
          내 허리에 안기는데
          눈 질끈 농약 먹고
          나도 따라 가렸지만
          삼 남매 눈망울이
          눈앞에서 아른아른
          몇 번을 모진 목숨
          뒤돌아 챙겼다오
          살아야지 살아야지
          대구에서 영천으로
          시댁에 염치없이
          아이들을 맡기고서
          학교 급식 아줌마로
          손과 발이 부르트고
          이래선 안 되겠다
          영양사가 먼길이랴
          학원으로 직장으로
          걸음걸음 천근만근
          매운 눈물 날 때마다
          아이들을 떠올리며

          눈 다시 부릅뜨고
          약해진 맘 잡더랬오
          그랬는데 그랬는데
          어이 할까 어이 할까
          연기 나네 연기 나네
          지하철에 연기 나네
          나가고도 싶었지만
          문이 닫혀 못 나가네
          나가고도 싶었지만
          괜찮다는 안내 방송
          나 말고도 약속한 듯
          다들 자리 뜨지 않아
          그 말 믿다 죽은 목숨
          억장이야 무지려니
          무지로 돌리기에
          말 들은 게 죄일손가
          화마 끓고 여린 몸은
          하릴없이 스러지고
          영혼 겨우 챙겨들고
          사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수두룩히
          미련하게 착한 이들
          잘 살지도 못한 이들
          안타까이 설움겹다
          나섰다오 아이 보러
          죽기 전에 보낸 전화
          어무이 시어무이
          나 이대로 죽는갑소
          나 죽으면 우리 애들
          제발 제발 부탁하오
          말이야 그랬지만
          육십 말년 시어무이

          새우등짝 주름으로
          세 남매를 배겨낼까
          나섰다오 아이 보러
          차마 두 눈 못 감고서
          한 달음에 영천으로
          화마에 달궈진 혼
          차라리 시원토록
          한달음에 내쳤다오
          어이 할꼬 어이 할꼬
          우리 애들 어이 할꼬
          수영 난희 막내 동우
          일곱 여섯 네 살이라
          저 어린 가슴팍에
          어미 죽음 어이 팔꼬
          눈물도 말랐으니
          내 차라리 그냥 가련
          죽은 목숨 죄이려니
          눈 질끈 돌아설 제
          철없는 막내 동우
          지 가엽다 오는 이들
          사람들이 신기해서
          펄쩍펄쩍 뛰다니며


          우리 엄마 죽었다아!

          우리 엄마 죽었다아!


          어이 할꼬 어이 할꼬
          이러니 어이 할꼬
          아이 보니 한숨이요
          떠나자니 억장이라
          보소 보소 사람들아
          나 어쩌면 좋을거나

          보소 보소 사람들아

          나 어쩌면 좋을거나

 


 

   남으로 평생 살아도 모를 사람들이 죽어 내 눈에 밟힙니다.

   나는 여기에서 그들은 거기에서

   어쩌다 만나도 눈길 한 번 가지 않고 돌아설 사람들이 죽어 내 가슴에 멍울을 

   주렁주렁 달아 놓습니다.
   그래요. 결국 제 감상은 대구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안식을 기원하고 남은 유족에게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2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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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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哭, 소리 내어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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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20.02.18. 17:22 new
오늘은 대구 지하철 참사 17주기입니다.
방송이나 일간지에서 기억해 기리면
굳이 이 공간에 올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그 어느 매체에서도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군요.
검색해보니 대구 자체 작은 추도식만 눈에 들어옵니다.

참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옵니다.
이미 우린 경험했습니다.
누가 아픔을 상기하고 싶겠습니까만
잊고 싶더라도 그럴 수록 기리고 추모해야 더 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선거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정신 없는 요즘이지만
되짚고 다잡고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방 분위기 일조하지 못함에 송구함을 더합니다.

다음 글은 되도록 밝은 모습을 내보이겠습니다.
 
창비 20.02.18. 20:10 new
대구 지하철 참사는 2003년 오전 9시 53분, 정신질환자 김대한이 대구 중앙로 지하철 역에서 차량 안에
신나를 뿌리고 방화, 이로 인해 사망 192명, 부상 148명, 실종자 21명이 발생한,
세계 3대 지하철 참사 사건으로 거론 될 만큼 큰 참사입니다.
이후 철도 안전법이 강화됐지만 단순히 철도에 국한된 안전은 아닌지 자문합니다.

위 글은 당시 일간지들이 앞다투어 소개한 안타까운 사연들 중 하나를 소재로 했습니다.
열거한 이름들은 가명입니다.

 
 
가을하늘처럼 20.02.18. 19:47 new
이렇게 알려주시니 당시의 상황을 다시 기억해냅니다.
저도 지난 5.18에 그날의 일이 여기서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기에
삶의 방에 글을 올렸었지요. 그 날을 기억해주십사 하고...

이해인 수녀님의 추모시로 대신하려 합니다.

님들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니
- 대구 지하철 참사로 숨진 이들에게

이 해 인 (수녀.시인)

매화 향기가 봄을 재촉하는 2월18일 오전
봄과 같은 설렘으로 길을 나섰다가
1079호,1080호 전동차에서
불의의 참변을 당한 그리운 님들이여

눈에 익은 환한 웃음
귀에 익은 정겨운 음성
결코 잊지 못하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울고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가을하늘처럼 20.02.18. 19:40 new
「당장 살려내이소」

까맣게 타버린 전동차 보다
더 처참한 슬픔 속의 유족들이
애타게 오열하는 소리로
대구는 온통 눈물 바다입니다

갑자기 덮쳐오는 불길 속에
얼마나 뜨거웠을까요
숨도 못 쉬는 어둠 속에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가족들이 얼마나 보고싶었을까요

정말 죄송해요. 정말 부끄러워요.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어요
먼 곳의 적이 아닌 가까운 우리가
님들을 죽였습니다
님들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입니다

잘 가라는 말, 안녕이라는 말
차마 쉽게 할 수 없어
우리는 내내 울기만 합니다
밤에도 잠들지 못합니다

말 대신 마음을 전하는
한 송이 국화와 애도의 촛불이
 
가을하늘처럼 20.02.18. 19:42 new
가을하늘처럼
전국민의 기도임을 알고 계시지요?

고통 속에 일그러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예수님의 모습
우리의 죄 때문에 희생당한
예수님의 모습이 곧 님들의 모습이군요

그 희생이 헛되지 않게
우리가 힘과 지혜를 모을게요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깨어있을게요
님들의 육신은 타버렸어도
남기고 간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거에요

문이 잘 열리는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어둠이 없는 밝은 곳에서 환히 웃으세요
대구의 앞산 같은 마음으로
우리의 눈물 어린 사랑을 드립니다.안녕히!

2003.3.2 대구 가톨릭 신문에서 ...

창비님 글을 읽으며 속으로 울음을 삼킵니다.
고맙습니다. ^^*






 
창비 20.02.18. 21:21 new
가을하늘처럼

제가 다시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가을하늘처럼 님이 누군가와 댓글 설전을 하셨습니다.
그 누군가 씨가 '광주'를 건드렸던 모양입니다.
글로도 화가 느껴질 정도로 가을하늘처럼님은 엄청 분해하셨지요.

1989년에 여행하다 광주에 처음 가봤습니다.
1박2일... 그게 다입니다.
그 후, 두 번 다시 광주에 갈 '볼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방에 글을 내걸고 가을하늘처럼 님과 댓글을 주고 받을 때마다
지금껏 안 쓰고 묻어둔 그 1박2일이 자꾸 갈퀴로 다가옵니다.
결국 몇 자 적기 시작해서 지금은 A4 용지 6매 분량으로 늘려놨는데
정리하면 미욱하나마 내보이겠습니다.

 
 
아이오유 05:13 new
아~~참,그런일이있었지~,
까마득히 잊었
습니다.
염치없습니다.
 
창비 10:20 new
에구~ 아이오유 님. 염치라니요.
이건 염치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매스컴의 문제 같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떻게 일일이 다 챙기겠습니까.
저 역시 다음 글을 찾다 예전에 써 놓은 글을 발견하고
날짜가 다가옴에 고민했습니다.
뉴스로 알려주면 기억하고 다시 한 번 위로하고 마음 다잡으면 되는데
그마저도 외면하는 것 같아 씁쓸하더군요.
나아가 제 생각마저도 일개 필부의 오지랖인 것 같아... 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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