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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潭 2019. 10. 27. 20:47

패자의 도열, 그리고 축하


백종인 입력 2019.10.27. 07:44 수정 2019.10.27. 08:01 

      


"된다고 했잖아요." (김태형)

"아, 글쎄 바꿔야한다니까요." (심판)

"아니 뭐 이런…." (김태형)

황당한 상황이다. 마운드 방문이 문제됐다. 횟수를 넘었단다. 규정상 바꿔야한다. 그 중요한 때. 말도 안된다. 하지만 어쩌랴. 방법이 없다. 덕아웃에 신호를 줬다. 고척돔의 함성이 소통을 가로막는다. "영수, 영수. 영수라니까."

얼떨결이다. 불려나온 투수도 긴가민가다. 마운드로 가려다 멈칫거린다. '나가는 거 맞죠?' 그런 얼굴이다. "그렇다니까." OK 사인이 떨어졌다. 그런데 표정이 놀랍다. 심하게 밝다. 천진난만? 분위기를 모르나? 너무나 즐겁게 달려간다.

난감하던 감독이었다. 그러나 걱정할 일 없었다. 씩씩한 한 마디가 있었다. "걱정마십시요. 잘 던지겠습니다." (배영수)

괜한 소리가 아니다. 정말 잘 던졌다. 박병호 삼진, 제리 샌즈는 땅볼로 끝냈다. 30번째 아웃 카운트였다. 1루심의 선언도 필요없었다. 오재일이 미트를 벗어던졌다. 김재호도 포효했다. 오재원은 글러브로 얼굴을 감쌌다. 덕아웃에서 우르르. 모두가 쏟아져나왔다. 고척돔에 함성만 남았다.

그 때였다. 또다른 움직임이 있었다. 1루 쪽이었다. 홈 팀 덕아웃이다.

하나 둘, 풀죽은 걸음들이다. 길게 도열했다. 처음은 관중석을 향해서다. 허리를 숙인다. 송구함은 그 깊이 만큼이다. 한번을 이기지 못했다. 끝내 안방까지 내줬다. 미안함, 아쉬움이 짙게 배었다. 그리고 감사함이다. 1년을 함께 한 팬들이다. 잔잔한 박수가 대답했다. '괜찮다'는 위로, '그래도 잘했다'는 격려가 한가득 실렸다.

그렇게 쓸쓸할 줄 알았다. 패자들의 퇴장이다. 본래 그런 것 아닌가. 엄혹한 승부의 세계다. 쓰러진 자들을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아니었다. 또 하나가 있었다.

도열은 퇴장하지 않았다. 몸을 돌려 그라운드를 향했다. 그곳은 승자들의 땅이었다. 환호의 파티가 한창이었다. 뜨거운 포옹, 감격의 울부짖음, 셀카 세리머니…. 그런 것들이 가득 찬 곳이었다.

극과 극, 명과 암. 대조적인 장면이다. 어색한 대치는 한동안 지속됐다. 자신들의 안방이었다. 그곳을 내준 일이다. 괴로운 파티였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기꺼이 자리를 지켰다. 박병호, 이지영, 박동원, 서건창, 김하성…. 길게 늘어서 묵묵히 배경이 됐다. 누가 뭐랄 것도 아닌데, 자청해서 말이다.

1, 2분? 제법 긴 시간이었다. 이윽고 승자들과 시선이 닿았다. 원정 팀 캡틴(오재원)이 사인을 냈다. 격렬하던 환호가 멈칫했다. 그들도 도열을 마주했다. 모자를 벗었다. 답례였다. 몇몇은 허리를 꺾었다. 진지하고, 정중했다.

물론 1루쪽 도열도 마찬가지다. 박수를 보냈다. 가슴에서 우러난 것이다. 비록 네 판에 끝났다. 그러나 매번이 치열했다. 마지막 이닝까지 안개같은 승부였다. 극한의 긴장을 함께 했다. 그런 파트너만이 선사할 수 있는 축하의 자격이다.

도열 끝에는 턱돌이도 있었다. 동글이도 숙연했다. 그리고 삭발한 윤영삼, 그 뒤에는 시리즈 최고의 뉴스 메이커도 함께했다.

2015년 이맘 때다. 라이온즈의 왕조시절이다. 정규시즌 1위는 가뿐했다. 5연패가 눈 앞이었다. 도전자는 베어스다. 14년째 암흑기였다. 3등으로 턱걸이했다. 준PO, PO를 거쳐야했다. 체력은 이미 바닥이었다.

하지만 의외였다. 언더독은 맹렬했다. 챔피언은 유린당했다(마카오 스캔들에 휘청한 상태였다). 5차전이 기껏이었다. 잠실은 새로운 챔피언의 탄생을 알렸다.

그들의 대관식 때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풍비박산난 패자들의 축하였다.

"프로의 2등은 비참하다. 선수 때 너무 많이 해봐서 잘 안다." 그렇게 괴로워했던 패장(류중일)이다. 그런 그의 팀들이 엄숙하게 도열했다. 새로운 왕조의 탄생에 박수를 보냈다.

늘 그렇다. 패자의 축하는 특별하다. 높은 품격이 담긴 탓이다.

https://play-tv.kakao.com/v/40326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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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 박수보낸 '패자' 키움,

고개 숙여 인사한 송성문


나유리 입력 2019.10.27. 15:51

               
2019 KBO 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2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두산이 11대9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4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종료 후 두산 선수단에 축하의 박수를 전하는 키움 선수들의 모습. 고척돔=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9.10.26/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두산이 키움에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전적 4승 무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종료 후 키움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두산 선수들. 고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9.10.26/
2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한국시리즈 4차전 키움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두산이 키움에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전적 4승 무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종료 후 키움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고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9.10.26/
2019 KBO리그 두산과 키움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26일 오후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두산이 4차전도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 4-0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준우승팀 키움이 도열해 두산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고척=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9.10.26/

[고척=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냉정한 승부의 세계. 하지만 그라운드 위 승자와 패자는 서로를 향한 진심이 담긴 인사를 나눴다.

2019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정규 시즌 우승팀인 두산 베어스가 1~3차전 승리에 이어 2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4차전까지 연장 10회 오재일의 결승타로 11대9 승리했다. 이로서 두산은 4승무패라는 완벽한 성적으로 통합 우승을 확정했고, 정규 시즌 3위에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키움 히어로즈는 1승도 하지 못하고 무대에서 퇴장했다.

최고의 명예가 걸린 한국시리즈인만큼 양팀 벤치의 지략 전쟁이나 선수단의 신경전도 대단했다. 특히 2차전을 앞두고 발생한 '막말 사태'가 불씨를 키웠다. 키움 송성문의 더그아웃 야유 발언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발생했고, 키움 주장 김상수와 송성문은 사과 인터뷰를 해야했다.

이번 논란이 시리즈 전체 결과를 바꿨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팀 분위기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두산 선수들은 정신을 바짝 차려 뭉치는 계기가 됐고, 키움은 특히 송성문은 남은 경기 내내 야유를 들으며 뛰었다.

다급한 마음과 달리 키움의 플레이는 매끄럽지 않았다. 벤치의 전략도 어긋나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4패로 막을 내렸다. 경기 후 선수단 미팅에서 김상수와 이정후 등 주요 선수들은 아쉬움의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모든 지난 사정을 떠나, 두산과 키움은 경기가 끝나고 진심이 담긴 인사를 나눴다. 두산이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세리머니를 할때 키움 선수들은 곧바로 퇴장하지 않고 더그아웃 앞에 일렬로 도열했다. 그리고 두산 선수들을 향해 박수와 인사를 보냈다. 패자가 보내는 진정한 축하였다.

기쁨에 취해있던 두산 선수들도 이내 키움 선수들을 발견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박수를 쳤다. 좋은 승부를 펼친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축하 인사에 대한 화답이었다. 특히 송성문은 경기가 끝난 직후 동료들이 퇴장하는 상황에서도 두산 선수들에게 여러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시리즈 내내 누구보다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고척=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