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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왜 이리 추운가?

淸潭 2019. 7. 2. 10:16


신록의 6월을 떠나 보내고 여름이 무르익어 가는 더운 7월이 열렸는데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더운 여름 아니,

따뜻한 봄이라도 오려면 멀었고 아직 춥다.

 

미국과 중국의 세계 주도권 다툼 특히 무역전쟁,

이란과 미국의 전쟁기운,

미북간의 비핵화와 경제제재 해제및 체재안전 보장문제로 인한 미북의 긴장, 

종교갈등으로 인한 폭력과 살상,

경제 불균형 으로 인한 빈부격차심화,

곳곳에서 전쟁위험과 치안불안 등 혼란하고 어지럽다.

더욱 같은 민족인 우리나라 북쪽은 핵과 경제제재로 나날이 갈수록 엄동설한이다.

 

지난 6월과 금년 2월,

두차례의 성과없는 미북정상회담과 어제 쇼같은 짧은 판문점의

회담에서도 실질적인 비핵화의 성과나 일정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간 이어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UN의 경제제재와 각국의 압박이 강도 높게

실행에 옮겨지는 가운데 북한은 단말마적인 김정은의 우상화와 공포정치,

남한에 대한 군사적 전쟁위협을 멈추지 않는 이 계절은 우리에겐 춥다 못해 두려움을 준다.


우리사회도 여야의 극한적인 대립의 정치상황에서 갈등은 고조되고

화합과 협치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없는 정치실종의 현실이고,


경제는 최저임금 인상,

근무시간 단축,

노조의 강경투쟁,

탈원전,

대기업의 정부간섭 등

청년들의 일자리는 줄고 중소기업의 폐 휴업 증가,

대기업의 경쟁력 약화 등으로 갈수록 침체되고 국가 추진력은 그 동력을 차츰 잃어가고

국민들의 얼굴에 온화한 기운은 없고 삶은 고달파지며 체감온도는 춥다.

 

미국인들의 애송시 <The Cold Within>을 우리말로 ‘내부의 추위’이지만

우리 속에 살기(殺氣)’란 뜻도 있다고 한다. 작자 미상의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여섯 사람이 우연히 춥고 어두운 곳에 갇혔는데,

그들은 모두 나무지팡이를 하나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모닥불이 사그라지자,


첫 번째 여인은 자기 지팡이태워 거기에 있는 한 흑인을 따뜻하게 해주기가 싫어 자기 지팡이를 꽉 움켜 쥐었다.


두 번째 사람은 남에게 베푸는 건 교회 안에서나 실천할 일이지 밖에서는 필요 없다며 자기 지팡이를 태울 생각을 못했다.


세 번째 누더기를 거친 사람은 흥, 저 게으름뱅이 부자들을 위해 왜 내가 희생을 해야 해. 어림없지.’하며 누더기를 더욱 추슬렀다.


네 번째인 부자는 자기 재산을 어떻게 축내지 않고 지킬 것에만 골몰하였다.


다섯 번째인 흑인은 불기가 사그라지는 것과는 반대로 복수심뜨겁게 타올라 어떻게든지 백인들에게 앙갚음하려고 별렀다.


여섯 번째 사람은 다른 사람들 것은 놔두고 자기 것만 태우는 일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들 모두 자기 지팡이를 움켜쥔 채 얼어 죽었는데,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들은 바깥 추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차가움으로 얼어 죽었다.”

(They didn’t die from the cold without, They died from the cold within.)

맹목적인 증오, 차별, 시기, 미움, 편견, 언행불일치의 신앙, 빈부의 갈등, 이기심 등은

남만 죽이지 않고 자기 목숨까지 빼앗는 것으로 지금 우리 사회를 그대로 잘 묘사한다.


외부의 어려움을 단합하여 대항, 해결하지 못하고 자체분열과 갈등, 미움과 공격으로 모두 무너져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념과 세대간, 내편 네편으로 편가르기, 내로불남의 공격, 포퓰리즘으로 분탕된. 요즈음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를 바라보면, 바로 수긍이 간다.

 

저 시베리아 동토(凍土)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이 땅의 냉기는 언제 무엇으로 해동

시킬 것인가? 과연 언제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웃으며 화해의 손을 잡을

계절은 언제 올 것인가? 또한 언제쯤 이 땅에 참된 영혼의 계절은 찾아올 것인가?

이러한 화해와 평화는 누가 가져다 줄 것인가?

이 시대의 정치지도자인가? 경제인인가? 혁명가인가? 시민운동가인가? 군부인가?

종교인인가? 언론인가?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들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일까? 또한 언제 올 것인가?

오늘인가? 내일인가? 1년 후인가? 5년, 10년 후인가? 그렇다면 과연 언제쯤일까?

이젠 차라리 이 땅의 소리에 귀를 닫고 하늘을 바라보자.

그리고 나날이 신록의 푸르럼이 더해지고 차츰 오곡과 과일이 열매맺을 기운으로

무언의 함성을 지르는 저 푸른 아름다운 산천을 응시하자.

 

6월 첫 여름을 떠나 보내고, 더운 여름이 무르익는 7월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세월의 무게와 삶의 질곡, 상황의 변화에 찌들고 힘들었던 모든 인생의 짐들을 내려놓고,

푸르고 아름다운 숲과 나무, 꽃과 풀들을 바라보며 심호흡하며

창조주의 창조의 솜씨를 찬양하고, 형제 같은 우리들 서로 교제 소통하여 하나가 되는,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좋은 계절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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