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무총장 이영주..
도심 한복판에 연금된 박근혜 정권 제거 1순위
글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입력 2017.09.27. 16:37
수정 2017.09.27. 17:25
[경향신문] 서울시 중구 정동길 5. 서울 정중앙 광화문 네거리에서 700m밖에 안 떨어진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이다. 이곳에 2년 10개월째 ‘연금’ 상태에 있는 한 여성이 있다. 한겨울에는 난방이 끊어진 건물 구석에서 냉기와 싸워야 하고, 더운 여름에는 샤워시설이 없는 화장실에서 대충 씻어야 한다. 물론 이번 길고 긴 추석 연휴에도 집에 갈 수 없다.
그는 80만 조합원의 합법적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52)이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처음 직선제로 선출된, 그리고 첫 여성 사무총장이다. 그는 2015년 11월 14일 이후 경찰의 수배를 피해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생활한다. 민주노총이 조사한 결과 그는 2015년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가장 많이 통신자료를 수색한 인물이었다. 그는 본인뿐 아니라 남편과 두 아들의 통신자료까지 탈탈 털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수석부위원장 출신 민주노총의 사무총장인 그는 박근혜 정권이 제거하려 했던 1순위 인물로 꼽혔다. 새로운 촛불정부가 들어선 지 4개월이 넘은 지금 이것이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지론에 맞는 것인가.
1계급 특진 현상금 걸린 수배인물
“여기서 일하다 먹고 자고 눈뜬다. 식사(점심·저녁)는 경향신문 구내식당(민주노총은 경향신문 건물에 입주해 있다)에서 해결하고 휴일에는 당직자가 밖에서 사다준다. 외국의 노총 간부들이 찾아와 ‘집으로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고 한다. (하~하~ 그는 웃었지만 웃는 것이 아니었다) 작년 초 구속됐던 동지들이 ‘냉난방되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서울구치소가 훨씬 편하다’고 하더라.”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그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고 한 남편의 아내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지도, 어머니 역할도 전혀 못한다. 그는 “두 아들이 한 달에 한두 번 면회오듯 찾아온다”면서 “이번 추석 연휴에는 가족들이 번갈아 찾아오도록 날짜를 일일이 찍어줬다, 우리 가족이 민주노총 당직을 서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가 사무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유는 그를 잡으면 1계급 특진이라는 ‘매우 큰 현상금’이 걸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에선 그 1계급 특진을 노린 정·사복 경찰이 건물 주변에 쫙 깔렸다. 심지어 은밀히 폐쇄회로TV(CCTV)까지 설치했다. 박 정권이 무너진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경찰의 수배조치는 해제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노동부 장관이 이곳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정부가 수배 해제조치를 내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날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방문해 ‘한상균 위원장 실형 선고는 문제가 있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돌아가 바로 ‘석방돼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것이 현 정부의 한계와 정권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실형선고는 문제가 있지만, 석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과 나는 공범으로 사안이 같다. 한 위원장을 석방할 의지가 있다면 수배를 해제할 텐데 그 의지가 없다.”
마침 지난 9월 15일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천도교·한국종교협의회 등 6개 종단 지도자와 민변 등이 이번 추석에 한 위원장을 비롯한 30여명의 양심수 가석방을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기대가 큰 것은 사실이다. 이 사무국장은 “민주노총 입장에서 가장 큰 행사가 11월 12일 전국노동자대회”라며 “적어도 그때까지 나와서 무대에 함께 섰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문성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 위원장은 9월 19일 첫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은 내년 2월까지 노사정위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1989년 노사정위를 탈퇴했고, 한국노총도 2016년 노사정위를 탈퇴한 상태다. 민주노총은 노정 교섭을 먼저하고, 노사 교섭을 거쳐 노사정 교섭으로 간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 총장은 “노정 교섭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정위에 나오라는 것은 너무 진도가 나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문성현 위원장은 민주노총 출신으로 처음 노사정위원장에 임명됐다. 별 감흥이 없는가.
“어떤 사람이 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지금 민주노총에 노사정위에 들어오라는 얘기는 예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정리해고를 결정한 곳이 노사정위였고, 재작년 박근혜 정권이 노동개악을 시도했던 곳도 노사정위다. 새로운 정부는 새로운 노정 테이블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지난 5월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집권하면 ‘민주노총과 전교조부터 해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총장은 전교조 출신에 민주노총 실무책임자로 두 해체 대상 모두에 포함된다. 결국 보수 측 제거대상 1호인 셈이다.
“(하~하~) 홍준표 후보에게 대단히 감사하다. 이렇게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니. 그런데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어떻게 해산할지 되묻고 싶다. 민주노총·전교조는 해체가 불가능한 조직이다. 오히려 ‘공기나 바다를 없애겠다’는 공약이 더 쉬울 것이다.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면서 더 강해졌다. 법외노조 탄압 이전과 이후 조합원 수는 별 차이가 없다.”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2013. 10. 24)조치가 왜 내려졌다고 보는가. 교학사 교과서 반대 때문인가.
“박근혜 정권은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노동탄압을 통한 재벌의 안정적 독점 제공 등의 독재정권의 모든 경향성이 종합된 정권이었다. 교사들이 그 시기에 가장 뭉쳐 있었다.”
-홍준표 후보가 민주노총을 해산하려 한 것은 노동조합이 정치집단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위원장은 끊임없이 정치세력화를 추진했고, 민주노총 내부에도 이런 노선에 반발하는 세력이 있었다.
“우리 민주노총 강령 2호에 ‘우리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며, 민족의 자주성과 건강한 민족문화를 확립하고 민주적 제 권리를 쟁취하며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 특정 정당을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방법은 논의할 수 있지만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의 목표이자 임무다.”
그는 2013년 5만 조합원을 가진 전교조 법외노조 탄압 국면에서 수석부위원장으로 위기 돌파의 책임자였다. 그는 해직 전임자를 내쫓고 비루하게 연명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화 투쟁의 역사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맞설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는 “우리가 6개월 동안 고민하고 선택한 것은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면”이라며 “조합원이 감소하고 탄압이 심해져도 민주화 정신을 훼손시켜선 안된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치세력화는 민노총의 목표이자 임무”
여기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였다. 마침 그날은 전교조가 정부청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농성을 더 지속할 수 없어 곧장 세월호 투쟁으로 전환했다. 그는 “교사 입장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교사가 수없이 학생에게 한 말로 세월호 참사는 교사들에게 가슴에 박혔다”면서 “선생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 박근혜와 전면전을 해야겠다’고 결의한 것은 선생님들 반성의 표시였다”고 말했다.(그는 이 대목에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 사무총장은 역사왜곡이 ‘정신’을 유린한 것이라면, 노동개악은 ‘몸’을 괴롭히고 것이었고, 세월호 참사는 ‘가슴’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비유했다.
분노한 선생님들은 2015년 11월 5일 제1차 민중총궐기에 붉은 깃발을 들고 앞서 나갔다. 그는 “민주노총 대중집회에선 금속노조나 건설노조의 활동이 컸는데, 그날은 공공부문 노조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면서 “그날 깃발 들고 가장 앞장선 사람이 전교조 선생님과 청년들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1965년 경기도 의정부 출신으로 83년 서울교대에 입학해 87년부터 교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의 교사생활은 평소 그의 생각과 달랐다. 그는 “아이들을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학생에게 해서는 안될 것들이 위에서 지시로 내려왔다”면서 “내가 이러려고 교사가 됐나 하는 회의와 반성의 시기를 보낼 때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가 구세주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1987년 전교협에 가입해 적극 활동하던 그는 89년 전교조가 설립되자 당당히 투쟁선봉대장으로 섰다. 노동투쟁 현장에서 검게 타고 우락부락한 현장 노동자만 보던 TV 카메라 기자들은 ‘예쁘장한’(그는 50대지만 지금도 주름살이 거의 없다) 여성 투쟁선봉대장을 보고 집중 크로즈업을 했다. 이 화면을 보고 ‘반한’ 같은 전교조 교사가 그의 단식농성장을 찾아왔는데 그가 지금 남편이다.
전교조 초기 투쟁선봉대장으로 활약
그는 2012년까지 서울 중랑구 신현초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전교조 지부장, 수석부위원장(2013~2014)을 거쳐 2014년 민주노총 초대 직선집행부에서 한 위원장과 함께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한 위원장의 쌍차투쟁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그의 전교조 투쟁은 시청앞 등 거의 같은 장소에서 투쟁했지만 한 위원장은 그를 몰랐다. 나중에 ‘어떻게 모를 수 있나’라는 물음에 한 위원장은 ‘나는 여성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예상을 깨고 첫 민주노총 직선 위원장 선거에서 최종진 전 서울시지하철노조 위원장과 함께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러닝메이트로 당선됐다. 그는 한 위원장에 대해 “회의에서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려도 다음날 아침 ‘이렇게 하면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해결책을 구상해 온다”면서 “한 위원장만큼 돌파력과 집중력을 가진 활동가는 처음 봤다”고 평가했다.
한 위원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2016년 12월 구속됐다.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현재 화성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하지만 이 사무총장은 매주 옥중의 한 위원장에게 민주노총 상황을 보고하고 매주 화요일 사업 의견을 담은 ‘업무지침’을 받는다. 올해 말로 직선 지도부 3년 임기가 끝난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한 위원장의 옥중 출마설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결정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로 이를 부인했다. 그는 민주노총 직선 1기 지도부의 성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5년 아무도 투쟁하자는 말을 하지 않을 때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한 것이 민주노총이었다. 아무도 모이지 않을 때 민중총궐기를 통해 13만명을 모은 것도 우리 민주노총이다. 지금 우리가 잊고 있지만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이 우리 민중총궐기로 저지됐다. 우리 1기 지도부의 공약인 박근혜 퇴진과 노동개악 저지를 실현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민주주의의 길로 나가고 있다. 그러면 큰 공약은 지킨 것이 아닌가. 3년차인 올해 비정규직을 의제로 총파업을 계획했는데, 그것을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는 올 연말 임기가 끝나면 경찰에 출석할 것이다. 수배조치가 해제되지 않았으니 바로 구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 위원장과 공범이지만 위원장이 3년 실형을 받았으니 나는 3년 이하를 받지 않을까(하~하~)”라며 “위원장이 사면되고 내가 집행유예가 되면 전교조의 법외노조 투쟁과 해고무효 복직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동안 눈시울을 자주 붉혔다. 그는 피아노를 치며 초등학생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남편·아들과 외식도 하는 그런 보통 여선생님이었을 것이다. 책상 주변에 꽃화분이 가득한 보통의 여성이다. 그런 그를 삭발까지 하는 강인한 투사로 만들고, 이렇게 서울 한복판에 연금시킨 주범은 누구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비이성적 교육제도와 비인간적 노동조건, 그리고 비정상의 정치권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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