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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용돈

淸潭 2016. 4. 14. 11:01

부모님 용돈


입력 : 2016.04.13 06:49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7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10만원을 용돈으로 줬을 텐데 배달 사고가 난 것 아닐까' 의심했다. 전화해 캐묻자 눈치 빠른 아들이 답했다. "아이고 어머니! 며느리가 2만원을 더 보탰네요." 어머니는 아들 말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원철 스님이 산문집에 쓴 얘기다. 스님은 아들의 재치가 가정 평화를 위한 순발력이자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깨달음의 언어'라고 했다.

▶부모 용돈은 자식의 고민거리다. 낳고 길러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억만금을 드려도 모자란데 결혼하고 아이들 생기면 사정이 여의찮다. 부모 수명은 늘고 자식들 일자리는 갈수록 불안하다. 아이들 커가면서 돈 쓸 일은 많고 벌이는 뻔하다. 부모에게 손자·손녀 돌보는 수고까지 끼치는 자식이라면 봉투 준비할 때마다 머릿속이 더 복잡하다. 한 달에 얼마 드리는 게 좋을까. 설날엔, 생신엔, 어버이날엔….
▶분가한 자식이 한 해 양가 부모에게 드리는 평균 용돈이 192만원이라고 국민연금연구원이 집계했다. 2005년 155만원이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9년 120만원으로 줄어든 뒤 다시 늘어나고 있다. 8년 새 20% 넘게 오른 물가와 용돈 인상 폭이 비슷하다. 한 달에 부모님 용돈이 양가를 합쳐 16만원꼴, 근로자 평균 소득의 5%가량이다. 이 정도면 적당한 걸까. 누구나 고민하지만 답하긴 어려운 질문이다.

▶요즘엔 부모가 부유하면 자식들이 다투어 용돈을 올려드린다고 한다. 부모 건강이 나빠지면 자진해 모시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유산을 염두에 두고 효도까지 '보험' 삼아 한다는 얘기다. 부모 용돈마저 대개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그래도 명절에 부모님 찾아뵈면 어김없이 아이들 갖고 싶어했던 장난감을 내놓으신다. 형편도 넉넉잖은데 무슨 돈으로 사셨느냐고 볼멘소리하면 "그럴 돈은 있다"며 웃으신다. 얼마 못 드린 용돈이나 몇푼 안 되는 연금을 아껴 손주들 선물 사주는 게 그리도 즐거우신 모양이다.

▶부모님 챙겨드린다고 자식들이 내민 용돈은 얼마 못 가 손자·손녀와 자식 손에 되돌아온다. 사는 게 각박해 부모 용돈을 놓고 부부가 다투기도 하지만 부모님 사랑만큼은 늘 손자·손녀 장난감 같은 내리사랑이다. 원철 스님은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봉투'라고들 해도 거기에 제대로 마음을 담지 못하면 소용없다"고 했다. 까마귀가 늙고 병든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을 반포지효(反哺之孝)라고 한다. 진짜 반포지효는 '봉투' 두께가 아니라 자주 찾아뵙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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