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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밤고구마, 호박고구마 등 수많은 품종을 맛보는 데는 조선의 기근을 늘 걱정한 목민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메리카 열대가 원산지인 고구마가 한반도에 들어온 건 1700년대 중반. 동래부사를 역임했던 조엄이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종자를 가져왔다 한다. 그의 기행문 '해사일기' 중 한 토막. "대마도 산비탈에 감저라는 게 있는데, 왜음으로 '고귀위마(古貴爲麻)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잘 자라게 한다면 문익점의 목면처럼 백성을 매우 이롭게 할 것이다." 영조왕 당시 조엄은 11차 통신사. 그전 통신사들도 대마도 땅을 밟았으나 고구마의 가치를 몰랐느니 조엄의 '눈 밝음'은 실로 위대했던 것. 백성을 진정으로 생각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와의 차이로, 지금도 좋은 교훈이 된다. 그렇게 가져와 절영도(絶影島·부산 영도의 옛 명칭)와 거제도에서 키우게 했는데 절영도에서 성공을 거뒀다. 절영도가 고구마 시배지가 된 데는 당시 동래부사 강필리의 노력 덕분. 조엄의 각별한 당부를 잘 실천해 오늘날 영도에 이야깃거리를 하나 보탰으니 부산의 소중한 유산이다. 아쉬운 건 강필리가 1766년 남긴 최초의 고구마 재배 전문서 '감저보(甘藷譜)'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 당시 절영도 바닷가에 '조내기'라 불린 마을이 있었다. 오늘날 영도 청학동쯤. 그곳 고구마는 작으면서도 맛이 좋아 '조내기 고구마'로 불렸다. 동삼동 뒷산 등지서도 생산됐는데 지금은 대부분 주택지로 바뀌었다. 상품성이 떨어져 명맥이 끊길 처지에서 영도구에 '조내기 고구마(주)'라는 마을기업이 하나 생겼다. 작년에 부산시로부터 선정됐는데, 최근 안행부의 '마을기업 평가'에서 전국 10대 기업에 뽑혔다 한다. 현재 조내기 고구마를 원료로 캐러멜, 초콜릿, 국수 등을 생산 중. 사그라지던 '가치'를 되살린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옛것'을 '보석'으로 만드는 후속 작업이 있어야 겠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상업적 게시판 등)] ▒☞[출처] 국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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