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는 보리행의 으뜸이며
해탈로 가는 길과도 같아
자식 위하는 부모 마음이
본의 아니게 악행 되기도
전법은 부모 은혜 갚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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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효’라는 단어를 접할 일이 드뭅니다. 어른과 스승을 공경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운 풍습이 현대사회에서는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효란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진각종을 창종하신 회당 대종사님의 말씀 가운데 물질시대를 가장 잘 나타내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물질이 일어나는 때는 사람들의 마음에 탐, 진, 치도 같이 일어난다. 탐, 진, 치가 치성하면 성품이 곧 어두워져서 일체 병폐가 생기므로 이때에는 누구라도 지혜를 밝히는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행해 나가야 한다. 또한 과학밖에 없다 하고 신성의 진리를 무시하면 오욕칠정에 전도되어 정신병이 늘어나고 살인, 도둑, 성범죄가 날로 늘어나서 국가, 사회, 가정이 위태롭게 된다. 그래서 물질이 일어나게 되면 성품도 같이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물질이 장건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고 국가 사회가 발전하고 불국토가 조성된다.”
우리는 물질의 발달과 함께 도덕적으로 얼마나 같이 발전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질에 전도되어서 우리 본래의 성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대에 왜 효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고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그 운명까지도 바꾸는 것입니다. 주어진 대로 팔자대로 타고난 대로 살면 재미가 없습니다. 죽을 때 까지 이 정도로만 살다가 간다고 할 수 밖에 없던 운명을 복을 짓고 수행을 하면서 180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종교이기도 합니다.
특히 많은 종교 가운데서도 불교는 중생이 깨달아서 부처님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설합니다. 부처님 교리 가운데는 부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에 간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또 부처님을 믿으면 누구나 다 극락가고 천당에 간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누가 얼마나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는가에 따른 것이지 믿으면 무조건 극락가고, 선을 아무리 행해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우선 우리는 그 점을 알고 가야 합니다.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내가 선을 얼마만큼 행하는가, 행하지 않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거 부처님께서도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심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心 是諸佛敎)’라. “일체의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여야 하고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면 이것이 곧 불교”라고 하신 것이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생은 원래 청정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탐, 진, 치에 전도되어서 지은 업장이 있습니다. 그 업장의 무게를 벗어나 해탈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기에 효를 행한다는 의미는 곧 해탈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는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같은 뜻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도교에서는 “효는 심덕의 대원”이라고 했습니다. 행실을 가장 중요시하는 유교에서도 “백행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에서는 “효는 보리행의 으뜸이 된다”고 했습니다. 결국 도교나 유교나 불교에서 옛 성인들의 말씀하신 근본은 효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똑바로 알 때 다른 은혜도 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나를 나아준 부모의 은혜를 아는 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고 스승의 은혜를 아는 것이기도 합니다. 형제의 우애를 아는 것이나 국가의 은혜를 아는 것까지 모든 근본은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내가 부모를 얼마나 알고 있고 어떻게 알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무엇보다 가장 큰 효도는 부모님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는 형식적인 효가 아니라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드리는 것, 그 다음에 그 마음을 선하게 갖게끔 인도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효는 부모님의 악한 부분을 선으로 인도해서 그 죄업을 소멸하게 하고 부처님의 진리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효는 부모님 잘 봉대해 드리고 좋은 옷 드리고 때로는 금반지도 끼워 드리고 좋은 곳에 살게 해드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상황은 그것도 안하니까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봅니다. 잘 봉대해 드리고 편안하게 모시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이전에 부모님께서 일생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길을 걸었다든지 선업을 짓지 않았을 때 옳은 길로 인도하고 선을 짓게 만들어 드리는 것이 효행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는 동안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것이 아니라 지어져 버립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자식 보다 옷 하나 더 입히고 공부 좀 더 시켜보려고 하다 보면 때로는 기본 틀에서 벗어나서 죄를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의 아니게 짓는 죄업을 누가 소멸시킬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부터 선의 길로 인도해서 소멸시키는 법을 알려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돌아가실 때 까지 내내 자식 걱정입니다. 죄를 소멸하기는커녕 자식을 위해 지옥을 가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진실한 효는 정법을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선을 짓는 쪽으로 인도해서 계를 받게 하고 경전을 읽게 하고 스스로 행하게 해야 합니다. 바른 가르침을 배우게 할 때 올바른 섬김이 된다고 했습니다. 정법대로 사신다면 격려를 해주시고 박수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부모님께서 먼저 불법에 귀의해 있다면 그 자식은 복이 많은 분입니다.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내가 따로 부모님을 제도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먼저 불법에 귀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부모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데 자식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되는 일을 싫어하고 멀리하는 중생의 측면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복을 받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어리석게도 복 되는 일을 하기는 싫어합니다. 세상의 일을 해보면 그렇습니다. 복 되는 일은 하기 싫고 어려워 보입니다.
중생의 모습 중에 행위와 관련된 특징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복 안되는 것은 쉬쉬하고 얘길 하지 않는데 복 된다 싶으면 한번 한 것도 자랑을 합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복 지은 것을 자꾸 드러내려고 해요. 드러내 버리면 받을 것이 없습니다. 거꾸로 복 되는 일은 자꾸 숨겨야 합니다. 안한 척 하고 감추어야 합니다. 몰래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죄 되는 일은 자꾸 드러내서 참회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됩니다.
다행히 금생에 사람 몸을 받았고 부처님의 진리를 알았고 그래서 효가 무엇이고 불효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윤회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태어나게 됩니다. 윤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자, 그렇다면 다음 생에 태어나긴 태어나는데 무엇으로 태어나시겠습니까.
내가 불효한 나무라고 하면 내 아들, 딸은 불효한 열매입니다. 내가 효도한다면 열매 역시 효도의 열매입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인(因)을 잘 지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나 자신의 좋은 인은 내 자녀가 본받고, 자녀도 좋은 인을 짓게 한다면 여러분은 인간 세상에서도 고통이 없고 영화를 부리고 천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성문, 연각, 불보살의 세계로 간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과거 칠세 부모가 어디 있는지 찾고 싶다면 바로 여러분 주위에 와 있을 겁니다. 인연이 닿은 곳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윤회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법회의 인연공덕으로 모두 해탈 열반 구경 성불에 이르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8월14일 부산 홍법사(주지 심산 스님)에서 봉행된 ‘제2회 이웃 종단 및 종교 지도자와의 만남’ 법회에서 효원 정사가 설한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효원 정사는
효원 정사는 1958년 태어났다. 1990년 건국대 법학과, 2001년 진각대학을 졸업했고 2010년 위덕대학교 불교대학원 석사를 수료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진각종 보덕심인당, 2002년부터 2007년 영신심인당 주교를 지냈으며 2007년부터 지금까지 진각종 부산교구 범석심인당 주교를 맡고 있다. 진각종 제12대 종의회 의원, 교육원 교법국장을 역임한 데 이어 현재 진각종 13대 종의회 의원이며 부산교구 교구청장을 맡고 있다. 부산에서는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부산지방경찰청 경승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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