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잘 극복하길” 성폭력 피해자 배려한 판사에 ‘디딤돌상’
기사입력 2013-02-24 07:16:00
서부지법 김종호 판사 피해자보호 우수사례로
한 성폭행 재판에서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판사의 사려 깊은 태도가 화제가 되고 있다.
2012년 3월 14일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 피해 여성 A씨는 증인석에 앉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비공개로 열린 탓에 텅 빈 법정은 A씨의 흐느낌으로 숙연해졌다.
김종호 판사는 A씨에게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잠시 A씨의 눈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2011년 6월 평소 친하게 지낸 한 남자선배와 단둘이 술을 마시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고 선배는 A씨를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었다.
다음날 아침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다가 우연히 선배의 휴대전화를 보게 된 A씨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선배의 휴대전화에 옷이 벗겨진 자신의 사진과 이 사진을 다른 친구들에게 전송한 내용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휴대전화를 증거로 선배를 준강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선배는 합의로 성관계를 맺은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진행된 재판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은 시종일관 서로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A씨를 심문했다.
변호인은 A씨에게 "평소 주량이 얼마냐" "1차 술자리가 12시 넘게 끝났는데 2차를 간 이유가 뭐냐" 등 피해자로서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쏟아냈다.
또 사건과 무관한 이전 사례를 언급하며 "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으면서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그 사람을 찜질방 앞까지 데려다 줬는지"를 묻기도 했다.
김 판사는 변호인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불필요하게 피해자를 불편하게 하는 질문에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재차 확인하지 마라" "경찰 진술을 다시 묻지 마라" "뭘 확인하고자 하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직접 제지하고 나섰다.
확실히 성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성관계는 피고인이 인정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합의로 했는지만 서로 주장이 다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수치심에 떨던 A씨는 결국 합의 의사를 묻는 말에 "고소를 취하할 계획이 없다. 이 사건 이후 저 자신이 존엄하지 않게 됐다고 생각한다"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김 판사는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진이 배포되자 남성이 자신을 욕구배출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남성은 '합의'라고 생각했지만 여성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에게 "유무죄를 떠나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인간이 존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본인 자신을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픔을 잘 이겨내길 기원한다"고 조언했다.
B씨는 이후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준강간 사실이 인정돼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이날 재판을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한 우수 사례로 선정하고 김 판사에게 디딤돌 상을 수여했다.
김 판사는 24일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위로를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판사는 피해자 배려가 쉽지 않은 만큼 수사기관에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한 성폭행 재판에서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판사의 사려 깊은 태도가 화제가 되고 있다.
2012년 3월 14일 서울서부지법 303호 법정. 피해 여성 A씨는 증인석에 앉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비공개로 열린 탓에 텅 빈 법정은 A씨의 흐느낌으로 숙연해졌다.
김종호 판사는 A씨에게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까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잠시 A씨의 눈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2011년 6월 평소 친하게 지낸 한 남자선배와 단둘이 술을 마시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고 선배는 A씨를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었다.
다음날 아침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다가 우연히 선배의 휴대전화를 보게 된 A씨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선배의 휴대전화에 옷이 벗겨진 자신의 사진과 이 사진을 다른 친구들에게 전송한 내용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휴대전화를 증거로 선배를 준강간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선배는 합의로 성관계를 맺은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이날 진행된 재판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은 시종일관 서로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A씨를 심문했다.
변호인은 A씨에게 "평소 주량이 얼마냐" "1차 술자리가 12시 넘게 끝났는데 2차를 간 이유가 뭐냐" 등 피해자로서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쏟아냈다.
또 사건과 무관한 이전 사례를 언급하며 "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으면서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그 사람을 찜질방 앞까지 데려다 줬는지"를 묻기도 했다.
김 판사는 변호인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불필요하게 피해자를 불편하게 하는 질문에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재차 확인하지 마라" "경찰 진술을 다시 묻지 마라" "뭘 확인하고자 하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직접 제지하고 나섰다.
확실히 성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성관계는 피고인이 인정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합의로 했는지만 서로 주장이 다른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수치심에 떨던 A씨는 결국 합의 의사를 묻는 말에 "고소를 취하할 계획이 없다. 이 사건 이후 저 자신이 존엄하지 않게 됐다고 생각한다"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김 판사는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진이 배포되자 남성이 자신을 욕구배출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남성은 '합의'라고 생각했지만 여성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에게 "유무죄를 떠나 성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인간이 존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본인 자신을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픔을 잘 이겨내길 기원한다"고 조언했다.
B씨는 이후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준강간 사실이 인정돼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이날 재판을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한 우수 사례로 선정하고 김 판사에게 디딤돌 상을 수여했다.
김 판사는 24일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위로를 받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판사는 피해자 배려가 쉽지 않은 만큼 수사기관에서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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