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푸른 눈 수행자들의 보금자리 10년… '무상사' 주지 대진 스님
only don't know(오직 모를 뿐)" 법문에 명문대 출신 청년들 줄줄이 출가
숭산 스님, 계룡산에 절 세워
"외국인 스님 위해 지었지만 가장 한국 불교적인 절 만들고 싶어"
"무상사는 이제 열 살이 됐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아직 어린 아이죠. 앞으로도 아이들처럼 맑고 순수한 절이 됐으면 합니다."
'푸른 눈 수행자들의 보금자리' 충남 계룡시 무상사(주지 대진 스님)가 다음 달로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무상사는 지난 2000년 한국 불교 해외 포교의 선구자인 숭산(1927~2004) 스님이 설립했다. 1970년대부터 미국 등 해외 포교에 앞장서온 숭산 스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받고 출가한 외국인 승려가 수십명에 이르자 서울 화계사 국제선원 외에 계룡산 자락에 외국인 스님을 위한 수행처로 무상사를 창건했다. 2000년 9월 선원이 가장 먼저 문을 열었고, 2001년엔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 2004년 대웅전에 이어 작년엔 산신각까지 완공돼 번듯한 사찰의 격을 갖추게 됐다. 지난 2002년부터 무상사 주지를 맡고 있는 대진 스님은 "숭산 큰스님은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적인 법사와 스님들이 배출될 것'이라고 기대하셨다"고 말했다.
- ▲ 숭산 스님의 제자로 계룡산 무상사 주지인 대진(大眞) 스님은“앞으로 무상사가 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어울려 공부하고 정진하는‘우리 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10년 세월은 사찰을 둘러싼 환경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설립 당시 논산시였던 행정구역은 계룡시로 바뀌었고, 한적한 산골이었던 주변도 이젠 자동차로 5분이면 신도시에 닿을 정도로 교통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동안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숭산 스님의 입적(入寂)이다. 대진 스님은 "숭산 큰스님은 우리에게 큰 빛을 주셨다"고 했다. "법광(法光) 혹은 '마음의 빛'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직 그 빛은 죽거나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가 쏟아지거나 가득한 구름 속에서도 볼 수 있는 빛입니다." 그 빛에 이끌린 행렬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숭산 스님이 외국의 지식 청년들을 사로잡은 한마디는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었다. 온갖 첨단 지식을 꿰고 있으면서도 삶의 목적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진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스님은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백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를 통해 한국 선(禪)불교의 매력에 빠진 명문대 출신의 젊은이들이 줄을 이어 출가했다.
'무상사 10년'은 한국 불교 역사에 새로운 실험이기도 했다. 외국인 스님들이 이끌어가는 사찰이 숭산 스님이라는 큰 보호막이 없어도 자생(自生)할 수 있느냐는 불교계의 관심거리였다. 대진 스님은 "무상사는 현재 외부 지원 없이 신자들의 시주와 수행 프로그램 참가비만으로 꾸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매달 2~3번씩 법회에 참석하는 신자가 300여명, 부처님오신날에 등을 달거나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신자까지 합하면 1000명에 이른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 스님들이 대부분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안거를 비롯한 의례와 의식, 발우공양 등을 지키는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 23일 하안거를 마치기 전날 저녁엔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석달간의 수행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자자(自恣)'도 가졌다고.
"10년을 지내면서 깨달은 것은 수행자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정진하는 만큼 사찰은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젊은 수행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찰이 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장차 외국인, 한국인 구분 없이 어울려 오로지 열심히 공부하는 '우리 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무상사는 9월 11~12일 1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11일엔 '전 세계 테러 희생자를 위한 지장기도'를 올리고 12일 오전엔 기념 법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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