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부처님 마음

[붓다를 만난 사람들] 10. 케마

淸潭 2010. 9. 24. 12:31

[붓다를 만난 사람들] 10. 케마
 
부귀영화 버리고 출가…혜성 같은 지혜 빛나
기사등록일 [2010년 09월 13일 11:49 월요일]
 

제행무상 진리 깨달아 비구니 지혜제일로
뛰어난 설법으로 대중교화 적극 나서기도

 
삽화=김재일

“부처님께서는 미인을 싫어하신대….”
신체의 부정을 즐겨 설하시다 보니 이런 소문이 날만도 하다. 한때 마가다국에는 부처님이 미인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소문이 여인들 사이에 퍼졌다. 이 소문은 마가다국의 왕비인 케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마가다국의 사가라(Sāgala)시의 왕족으로 태어난 그녀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미모의 소유자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피부로 그녀는 당시 최고의 강국이었던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의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아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른 터였다. 케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녀는 거울을 볼 때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신체의 부정을 설하시며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도 감탄하는 일이 없으시다니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케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만나봐야 자신의 외모를 칭찬해 주지도 않을 것이고, 괜히 신체가 부정하다느니 어쩌느니 기분 상하는 말씀만 하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부처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했다. 부처님과 절친한 사이로 신앙 또한 깊은 우바새였던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을 뵈러 갈 때마다 함께 가자고 권유했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사양했다.

“아름다움의 과실(過失)? 내가 왜 그런 설법을 들어야 해? 아름답게 태어나서 행복하기만 한데.”

케마는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 정말 싫었다. 한편, 빔비사라왕은 어떻게든 아내인 케마에게도 부처님의 법을 접할 기회를 갖게 하고 싶었다. 왕과 부처님의 인연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이전부터 시작된 깊은 것이었다. 출가하여 구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마가다국으로 들어간 싯다르타는 성안에서 탁발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것이 빔비사라왕이었다.

왕은 젊은 구도자의 온 몸에서 발하는 위광에 끌려 감탄하며 언제든 뜻을 이룬다면 자신에게 그 진리를 가르쳐달라고 청했고, 부처님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도 후 라자가하를 방문하여 왕에게 법을 설했다고 한다. 왕은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던 부처님을 위해 라자가하의 근교에 있던 죽림(竹林)에 승원을 지어 바쳤고, 이후 부처님께서는 종종 이곳에 머무르시곤 했다. 이 곳 죽림정사에서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는 것이 빔비사라왕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빼어난 미모로 왕비의 자리 올라

어느 날, 케마를 부처님께 데리고 갈 묘안을 떠올린 왕은 대신과 짜고는 그녀 앞에서 죽림의 아름다움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가 관심을 보이자, 왕은 “그냥 죽림만 구경하고 올 것이다. 부처님은 절대 안 만날 테니까 걱정 말거라”고 안심시켰다. 결국 케마는 왕을 따라 나섰다.

이리저리 대나무 숲을 거닐며 산책을 즐기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승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케마는 설마 부처님이 계실까 하며 승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한편 케마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부처님은 신통을 사용하여 천계에나 살 듯한 아리따운 여인이 자신에게 부채질하는 모습을 만들어 내셨다. 우연히 이 모습은 본 케마는 너무나도 아리따운 그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저렇게도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비한다면 자신이 그 동안 그렇게 뽐내던 스스로의 미모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부처님께서는 천녀의 미모가 늙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이셨다. 이는 빠져나가고,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고, 피부는 깊게 주름이 파이며 쭈글쭈글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던 케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미모. 그 동안 자신이 그토록 애착을 느끼며 가꾸어왔던, 또한 자만해 왔던 미모의 끝이 저런 것이라니…. 언젠가는 자신의 신체도 저렇게 흉하게 늙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몸서리쳤다.

케마의 마음에 동요가 일고 있는 것을 꿰뚫어보신 부처님께서는 신체에 대한 애착을 버릴 것을 그녀에게 설하셨다.
“미모에 집착하지 말거라.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나니, 무상의 도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름다움도 젊음도 이 천녀처럼 언젠가는 늙어 추하게 변해 가느니라.”

그 동안 육체의 아름다움에 매달려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며, 그녀는 처음으로 외모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났다. 부처님께서는 몸이라는 것이 사실상 얼마나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말씀하시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주시하여 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아가 내부에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끄고 열반에 도달해야 함을 강조하셨다.

이 가르침을 듣고 성자의 경지에 도달한 케마는 왕궁으로 돌아와 남편 빔비사라왕에게 출가의 뜻을 내비쳤다. 이전과는 달리 케마의 얼굴에서 성자의 기운을 느낀 왕은 그녀의 출가를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황금 가마에 태워 당당하게 비구니승단으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출가 후 그녀의 마음이 살짝 흔들리는 일도 있기는 했다. 어느 날 케마는 악마가 속삭이며 유혹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젊고 아름답구나. 나 역시 젊고 한창때이다. 자, 케마여, 우리 다섯 가지 악기나 연주하며 즐겨보지 않겠느냐.”

언젠가는 사라질 이 젊음, 그리고 아름다움…. 지금 마음껏 즐기지 않는다면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케마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한 가닥 욕망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길을 발견한 케마의 마음은 곧 제자리를 찾았다.

“병들고, 부서지기 쉽고, 악취를 풍기는 이 신체로 인해 나는 시달려왔으며 혐오를 느끼고 있다. 애욕에 대한 헛된 집착은 이미 뿌리째 뽑아 버렸다. 모든 욕망은 칼과 창에 비유되나니, 이들은 개개인의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요소의 덩어리를 난도질한다. 그대가 ‘욕락’이라 부른 것은 이제 내게 있어서는 ‘즐겁지 않은 것’이다. 쾌락의 즐거움은 모두 파괴되고, 무명의 암흑덩어리는 산산이 부서졌다. 악마여, 알거라. 너는 패배했다. 나는 올바르게 깨달은 이, 최고의 스승에게 귀의하여 그 분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났다.”

출가 15일 만에 아라한과 증득

이미 육체의 무상을 꿰뚫어 본 케마는 헛된 욕망의 즐거움에 빠져 고통 받는 길을 단호히 거부했다. 비구니가 된지 15일째 되는 날, 포살 중에 눈앞에 놓인 등잔불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게 된 그녀는 이후 타고난 총명함과 성실한 수행으로 비구니 제자 가운데 ‘지혜제일’로 평가받을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수행과 교리, 두 가지 모두에서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그녀를 비구들조차 당할 길 없어, 그들은 케마가 있는 승단에 교계(敎誡)하러 가기를 꺼렸으며, 설사 길에서 만나도 모두 피해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와 교리적 문답을 나눈 코살라국의 파세나디왕도 부처님과 그녀의 대답에 한 구절의 차이도 없다는 점에 놀라며, 케마의 불법 이해 내지 설법 능력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그녀를 지혜제일로 칭찬받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한편 케마는 웁파라반나라는 비구니와 특히 절친하게 지냈다. 웁파라반나는 출가하기 전 어머니와 남편을 공유하고, 딸과 남편을 공유하는 기구한 운명을 살았던 여인이었는데,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부처님으로부터 비구니제자 가운데 ‘신통제일’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비구니로 거듭났다. 부처님은 케마와 웁파라반나야말로 비구니의 척도이자 모범이라 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마치 비구들 가운데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의 관계처럼 이 두 사람은 친자매와 같은 두터운 우애를 지니고 있었다.

살아온 삶도 정반대였고, 미모로 인해 겪은 운명도 서로 달랐지만, 미모와 애욕이 야기하는 과실에 대한 이해에는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몹시도 더운 어느 여름날, 사왓티 근교에서 수행을 하던 케마와 웁파라반나는 잠시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모습을 본 악당들이 들이닥쳐 폭행하려 했다.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도 없는 상황임을 안 두 사람은 자신들의 두 눈알을 파내어 악당들에게 들이대며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설했고, 이 모습을 본 악당들은 감복하여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행동은 신통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보여지는데, 여하튼 애욕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꿰뚫어본 이들이기에 실행 가능했던 것이리라.

왕족의 집안에서 태어나 누구나 부러워하는 미모로 한 나라의 왕비까지 된 여인 케마. 아름다운 미모와 권력, 부에 대한 애착을 끊는 일이 어찌 쉬울까마는, 그녀는 부처님과의 만남을 통해 무상의 진리를 깨달고 헛된 집착을 벗어던지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모든 것을 손에 쥔 그녀의 버림이기에 더 위대하다.

다듬고 다듬으며 감추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추하게 늙어가는 이 육체, 또 언젠가는 형체도 없이 허공으로 사라질 권력과 부. 그 허망함을 알면서도 이들로부터 가차 없이 버림받기 전까지는, 아니 버림받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좀처럼 집착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들의 행로이건만, 케마는 이 모든 것들의 허망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순간 미련 없이 애착을 벗어던졌다. 이 위대한 용기야말로 그녀를 부처님의 비구니제자 가운데 최고라 칭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리라.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1064호 [2010년 09월 13일 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