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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상 받은 고범서 前한림대 석좌교수

淸潭 2010. 2. 19. 15:09

[초대석]인촌상 받은 고범서 前한림대 석좌교수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만난 고범서 전 교수가 라인홀드 니버 사상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50대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으나 요즘도 펜과 원고지로 새 원고를 집필 중일 만큼 학문의 열정이 뜨거웠다. 안철민 기자

“도덕성 앞세운 권력이 오만해지면 사회의 毒”



팔순의 노학자에게 우문을 던졌다. 그의 학문적 화두였던 20세기의 대표적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1892∼1971)의 저술을 모두 독파하는 데 얼마가 걸렸냐고.

“평생이 걸렸지요.”

그랬다. 그가 만 4년의 세월을 들여 니버의 생애와 그가 남긴 18권의 저술을 빠짐없이 요약해 올해 출간한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은 그렇게 평생의 공력이 들어간 책이다.

니버 사상 연구에 바친 공로로 올해 인촌상을 받는 고범서(81) 전 한림대 한림과학원 석좌교수에게 니버는 평생 화두였다. 그가 니버에게 심취한 이유는 ‘기독교 실용주의’라고 이름붙인 니버의 사상이 한국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석학에게도 평생이 걸린 일을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엄두를 내겠는가. 노학자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다 요약해 놓은 거 아니겠소.”

그렇지만 900여 쪽에 이르는 그 책을 여기서 다시 요약하는 것은 동어반복일 듯하다. 그래서 구체적 현실과 관련한 지혜를 구했고 그에 대한 이 ‘니버리안’의 답엔 거침이 없었다.

먼저 한국 기독교의 아프가니스탄 선교 문제를 어떻게 봐야할지 질문을 던졌다.

“니버의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이란 책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니버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겠다며 양심의 호소를 좇는 빛의 아들이 어둠의 아들보다 세상일에 어두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기 쉽다고 경계하며 양심 못지않게 지혜가 중요하다고 설파했습니다.”

선교를 하러 가더라도 세상물정 모르고 무분별하게 뛰어드는 것이야말로 빛의 아들이 저지르기 쉬운 “멍청한 짓”이라는 설명이었다.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적적 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양심에 호소하는 개인윤리와 강제에 기초한 사회윤리를 엄격히 구별할 것을 주창했다. 그는 윤리의 기초를 개인의 자율에 둔 칸트적 전통에서 벗어나 집단이기심을 통제하고 사회윤리를 실현하기 위해선 경찰력이나 군사력 등 폭력을 포함한 ‘정치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금지한 정부의 조처에 대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조치라고 항변하는 일부 기독교계의 논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분별력을 잃어 생명의 위기에 처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강제로 이를 제한하고 막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스스로 거기 가서 죽겠다는 순교의지를 표명하지 않는 이상 국가가 나서서 이를 말리는 게 당연합니다.”

고 교수는 “나는 매일 밤 우리 손자들이 선하게 살라고만 기도하지 않고 그만큼 슬기롭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며 한국 기독교계가 선함과 슬기로움을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도덕성의 원리를 정치 현실에 투사하려는 현 집권층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고 교수는 “정치 지도자의 도덕성이 곧 국가(사회)의 도덕성을 담보한다는 발상은 요순시대에나 가능한 전근대적 사고”라고 일축하면서 개인윤리와 사회윤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현 집권세력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현 집권세력이 주위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진작부터 실패할 것을 예감했습니다. 니버는 사회정의를 위해 정치권력이 필수불가결하다고 봤지만 그 권력이 오만에 빠지면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권력이 오만해지면 경직되고, 경직되면 사회 사태에 대한 반응이 둔감해져 과거 방법을 똑같이 관철시키려는 고집을 부리기 마련입니다.”

흔히 니버는 카를 바르트, 파울 틸리히와 더불어 20세기 개신교가 배출한 3대 신학자이자 미국이 배출한 최고의 신학자로 꼽힌다. 그렇다면 바르트나 틸리히가 아닌 니버의 사상이 한국 사회에 가장 절실한 이유는 뭘까.

“바르트가 절대적이고, 틸리히가 실존적이라면 니버는 실용적입니다. 바르트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우주적 관점에서 내려다봤기 때문에 소련의 헝가리 침공과 같은 구체적 현실에 둔감했고, 틸리히는 합리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패러독스(역설)적 상황에 깊이 천착함으로써 미학적 심오함은 갖췄을지언정 정치와 윤리의 영역에선 무익한 추상성에 빠졌습니다. 반면 니버는 개인윤리와 사회정의를 하나로 접목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구체적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가치관이 무엇인가. 진리는 최종적으로 단박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접근해 가는 근사적 해답들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믿음이다. 니버가 ‘민주주의의 챔피언’으로 불리는 까닭도 거기에 숨어 있다.

“민주주의가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한국에선 아직도 모든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려 듭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렇게 단숨에 최종해결책(final solution)을 찾는 제도가 아닙니다. 지난한 토론을 거쳐서 변증법적으로 근사적 해결책들(proximate solutions)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오류의 갈등으로부터 소량의 진리를 추출한다’는 니버의 통찰이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입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고범서 前석좌교수:

△1926년 평남 안주 출생 △1951년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1961∼1981년 숭실대(숭전대) 교수 △1969년 미국 유니언신학대와 컬럼비아대 협동과정 석사 △1973년 미국 밴더빌트대 박사 △1977∼1981년 숭전대 총장 △1982∼1983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1983∼1996년 한림대 철학과 교수 △1996∼2007년 한림대 한림과학원 석좌교수 △2000∼2006년 한국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