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실/인물초대석

대선주자 수사’ 견해 밝힌 심재륜 前대검 중수부장

淸潭 2010. 2. 19. 15:06

[초대석]‘대선주자 수사’ 견해 밝힌 심재륜 前대검 중수부장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사는 검찰이 슬기롭게 판단해서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심재륜(63·사진) 전 부산고검장은 21일 대선 관련 고소 고발 사건 수사에서 검찰이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검찰 특별수사의 산증인으로 여겨져 왔던 그에게서는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그는 1997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재직 당시 한보사건 재수사를 지휘하며 정권의 압력을 물리치고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를 구속했다. 1999년 대구고검장 시절에는 검찰 수뇌부를 ‘정치 검사’라고 정면 비판했다가 면직 처분(2001년 복직)을 받기도 했다. 그런 심 전 고검장이 신중하게 접근하라고 주문한 데는 “검찰은 정치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원칙이 깔려 있었다. 그는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검찰이 중립성을 잃으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검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 관련 수사로 한나라당과 정면충돌한 검찰은 남은 4개월의 대선 기간 또 다른 시련의 기로에 서게 됐다. 그에게 검찰 수사의 바람직한 방향을 들어 봤다.》

△1944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고-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7회 △서울지검 특수1부장 겸 강력부장 △서울지검 3차장 △대검 감찰부장·강력부장 △대전·광주·인천지검장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구고검장·부산고검장 △2002년 변호사 개업

―대선이 다가오면서 검찰에 관련 사건이 밀려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나.

“1997년 대선 때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 당시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이 불거졌을 때 김태정 검찰총장이 전국 고검장 회의를 소집했다. 수사를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검사가 선거에 임박해서 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계좌 추적을 하는 데도 2개월이 넘게 걸릴 텐데 그 전에 어떻게 수사를 끝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또 국민은 어떻게 납득을 시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한 달여 동안 한나라당 대선주자 관련 수사를 했지만 논란이 많았다.

“검찰 스스로 종합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해서 정치적 목적에 영향을 주는 수사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고소 고발이 있었지만 신중히 판단했어야 했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수사 발표는 가능하면 자제하는 것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다. 선거에 임박해서 수사한다는 것은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한다.”

―대선까지 계속 고소 고발이 이어질 텐데 검찰이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하나.

“모든 사건을 다 수사하지 말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모 후보가 살인죄를 저질렀다면 수사를 안 할 수 있나. 하지만 검찰은 무엇을 확인해 주는 기관이 아니다. 범죄 혐의를 수사하고 혐의가 있으면 기소해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곳이다. 따라서 범죄 구성요건이 되는 것(기소의 대상이 되는 것)을 수사해야 한다. 수사를 하더라도 사실관계(실체)를 분명히 밝힌 것을 발표해야지,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못했다면 발표하지 말아야 한다. 실체를 밝히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되는지,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시점에 수사를 끝낼 수 있는지도 따져 봐야 한다.”

―13일 수사 결과 발표 뒤 정치권의 비난이 거세지자 검찰이 ‘추가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고 반박성 의견을 냈다.

“검찰이 조사 내용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피의 사실이라면 어떻게 공표할 수 있나. 피의 사실이 아니더라도 당사자가 스스로 밝히는 것은 모르겠지만 조사를 하는 기관이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으로 할 수 있겠나.”

―이번 수사에서 각종 영장이 기각되는 바람에 수사가 늦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런 거는 수사하면 안 된다’는 판사의 시각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서 수사 가부를 가려내야 하나.

“내가 검찰에 방법론적인 대안을 제안할 수는 없다. 대안은 검찰 스스로 그때그때 찾아내서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우리 검찰의 역량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수사에서 피고소인보다 오히려 고소인 측을 더 강력하게 수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일단 수사를 하게 되면 의혹의 실체가 있는 부분에 대한 수사 비중이 커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누가 고소 고발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의혹의 핵심이 누구한테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건과 관련해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것이 검찰의 중립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성은 확보되겠지만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검찰은 선거와 관련해서는 선거법 위반 행위에 수사를 집중해야 한다. 선거법 위반이 아닌 과거의 비리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결국 선거 관련 공방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기관은 검찰밖에 없는 것 아닌가.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검찰이 국민에게 뭔가를 가르쳐 줘서 판단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교조주의적인 태도일 수 있다. 검찰이 투표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검찰이 이미 한나라당과 관련해 강력하게 수사를 했기 때문에 범여권의 경선 과정에서도 고소 고발이 들어오면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관측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공평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특정 집단에 불이익이 있는지 등을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관계 기관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그쪽에 맡겨야 한다. 모든 것을 검찰이 다 해결할 수는 없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